제122화
# 담로 캠핑장 (4)
탁탁- 탁- 화륵
화진의 텐트 앞에는 작은 화로가 놓였고 그 안에서 장작이 불길에 타올랐다.
현수와 화진은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은 뒤 젖은 옷을 불 가까운 곳에 대고 말렸다.
“어후.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네요.”
화진이 불멍을 하며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인데.”
현수 역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진짜 저런 경우가 있긴 하네요?”
세정이 장비를 정리하다 물었다.
“네? 어떤 경우요?”
“귀신이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거요.”
“음?”
“그 괴담 모르세요? 저희 어렸을 때 공포특집 만화나 꽁트집 보면 들어있던 에피소드였는데.”
세정이 웃으면서 자신이 아는 에피소드를 풀기 시작했다.
*
배경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어요.
이 이야기도 버전 따라서 조금 다르던데 제가 기억하는 건 이거에요.
어떤 부부가 있었는데 아이가 병을 앓고 있었대요.
일어나서 걷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아이였는데 다른 병까지 얻어서 시한부가 되었다고 하죠.
그래서 아이를 떠나보내기 전에 마지막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바닷가에 놀러갔대요.
그런데 거기서 진짜 놀라운 장면을 목격한 거죠.
아이가 두 발로 뛰어다니면서 해맑게 뛰어다니는 장면을 보게 된 거예요.
부모는 마지막 순간에 기적이 일어났다고 기뻐하며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까 귀신이 그 아이의 머리카락을 잡고 들었던 거죠.
아이는 괴로워서 방방 몸부림 치고 있던 거였고요.
*
세정의 이야기가 끝나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휘이이이이이-
갑자기 바람이 스쳐 불자 화로의 불길이 펄럭였다.
“어디서 들어본 적은 있는 이야기 같네요.”
현수가 말했다.
“그럼 그 부부는 귀신을 어떻게 본 거래요?”
화진이 물었다.
그러자 세정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 글쎄요? 그것까지는 못 들었는데.”
“모든 무서운 이야기가 그렇죠. 어디서 시작 됐는지 불분명하고 개연성도 떨어지고. 아마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서 그런 걸 거예요.”
현수가 나뭇가지로 화로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그때, 캠핑장 사장 부부가 현수의 텐트 쪽으로 다가왔다.
“어어.”
현수와 화진, 세정이 머뭇거리며 일어났다.
혹시나 시비를 걸러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장은 현수를 보자마자 꾸벅 인사를 했다.
“아유. 감사합니다. 자칫하면 큰일이 날 뻔했는데 덕분에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어요.”
사장이 깍듯하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소녀가 죽거나 실종됐다면 캠핑장 영업에 큰 차질을 빚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귀신 때문이라는 것이 영상에 고스란히 담기면서 단순 사고에 대한 가능성도 일축할 수 있었다.
물론 정말 귀신에 의한 초자연적 현상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것이었지만.
“아닙니다.”
현수가 웃으면서 답을 했다.
그러자 고민을 하던 사장이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어보니 스트리머시라고 들었습니다. 캡틴 퇴마 채널하고 너도캠핑 채널 스트미러 분들이시라고.”
“아아. 네, 네.”
“너도캠핑 채널은 저도 구독 중이었는데. 알아 뵙지도 못했네요.”
사장이 화진을 보며 말했다.
화진은 말없기 묵례로 화답했다.
“저기- 죄송하지만 혹시 저희 캠핑장 상호가 노출이 되나요?”
사장이 물었다.
현수는 세정과 화진을 슥 본 뒤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상호 노출은 되지 않습니다. 혹시 피해가 가실 수도 있어서요.”
현수의 대답에 사장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음. 혹시 번거로운 게 아니면 그냥 자연스럽게 상호 노출을 시켜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광고를 해달라는 말씀이신가요?”
“아. 아뇨. 저희가 대형 스트리머 분들게 광고를 맡길 만큼 돈을 지불할 수는 없고요. 그냥 자연스럽게 간판이 스쳐 지나는 정도로. 하, 하하하.”
사장이 멋쩍게 웃었다.
엄밀히 따지면 ‘무료 광고’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현수나 화진이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간판이 노출된다고 해서 뒷광고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뿐만아니라 ‘유료 광고 포함’이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다만 귀신이나 악귀를 믿지도 않아놓고 이슈가 될 것 같으니 홍보수단으로 쓰려는 장삿속이었다.
“그러다 인명피해가 발생하면 어떡하시려고.”
“저수지를 아예 폐쇄하려고 합니다. 울타리를 쳐놓고 접근 금지를 하려고요. 낚시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열어놨던 건데.”
사장이 말했다.
‘주먹구구식 임기응변이구만.’
현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낚시하는 투숙객 때문에 물귀신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도 저수지를 개방해놓고, 이런 일이 발생하자 저수지를 폐쇄하더라도 캠핑장 간판을 영상에 넣으려는 것이었다.
속셈이 뻔했지만 역시나 사장이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도의적인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기회주의적인 면모가 눈에 띌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간판을 촬영해도 되면 저희야 편하죠. 카메라 앵글 신경 안 써도 되니까.”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오늘 일 잘 해결해주셔서 감사 의미로 드리는 거니까 맛있게 드세요.”
사장은 접시에 담긴 부침개를 건네주었다.
현수는 접시를 받아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럼 쉬세요! 필요한 거 있으시면 부르시고.”
사장 부부가 꾸벅 인사를 하고는 돌아갔다.
현수와 화진, 세정은 그 자리에 서서 돌아가는 둘의 뒷모습을 보았다.
“사업을 하려면 저 정도 멘탈을 가져야 하나 봐요.”
세정이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허허.”
현수가 웃으며 대답했다.
“대충 먹고 한숨 자죠. 내일 아침에 촬영하신다며요.”
“그래요. 자기 전에 술이나 한잔 할까요?”
화진이 아이스박스에서 소주와 맥주를 꺼내며 말했다.
* * *
화진과 세정은 텐트 안에서 잠을 청했고, 현수는 텐트가 보이는 차량 운전석에 앉아 잠잘 준비를 했다.
오늘 생방송은 짧은 편이었지만 굉장히 강렬했다.
현수는 이렇게 화진의 콘텐츠에 도움을 주며 생방송을 진행하는 것이 과연 효율적인 것인지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 너도캠핑 채널의 구독자는 어느 정도 줄어들 가능성이 농후했다.
어떤 스트리머든 이성이 끼어들게 되면 일부 구독자들은 구독을 취소하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화진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성이 와일드한 캠핑 콘텐츠를 진행하다 보니 치근덕대는 남성 구독자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옆에 현수가 바싹 달라붙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그들은 당연히 실망할 것이었다.
그 생각이 미치자 현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여캠이든, 남캠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스트리머가 솔로기를 바라는 것.
어쩌면 ‘헛된 기대심리’ 때문이겠지만 결국 그 기대심리 덕분에 후원을 받고 돈을 벌기에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했다.
물론 너도캠핑 화진은 그런 기대심리에 부흥을 하는 타입은 아닌 걸로 보였다.
그래서 정작 화진은 현수와 함께 다니는 것에 대해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뭐 그렇게 심각해?”
뒷좌석에서 수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와우씨! 깜짝이야!”
현수가 화들짝 놀라 뒤를 보았다.
수정은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배실배실 웃고 있었다.
“어디 계시다 이제 나타나신 거예요?”
“근처 산책 좀 했지.”
수정이 대답했다.
“귀신인 거 잘 아니까 그렇게 깜짝깜짝 놀래키지 좀 마세요.”
“네가 귀신을 보는 게 문제인 거지, 내가 놀래키는 게 문제니.”
맞는 말이었다.
“내 엄마, 아빠나 귀신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우리 부모님이었으면 날 보고 너처럼 놀라지는 않을 거 아냐.”
“갑자기 왜 그런 소리를 해요?”
“그냥. 오늘 그 여자애를 보니까 엄마, 아빠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
수정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현수는 아무 말 없이 화진의 텐트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주변으로 흰색 연기가 스멀스멀 나타났다 사라졌다.
귀신들이 텐트 주변으로 다가오다가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 정도 현상은 언제 어디서든 늘상 있는 일이기에, 현수는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뭐, 보초라도 서는 거야? 너 조화진 좋아하지?”
수정이 장난기 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뭐라는 거예요. 잠이 안 와서 그래요.”
“농담이야, 농담. 네가 누굴 좋아하든 무슨 상관이야.”
“누나가 제 주변에 있으면 누구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나요. 계속 누가 지켜보고 있는 느낌인데 무슨 연애를 해.”
“뭐 어쩌겠니. 허태훈 그 인간 멱살 잡고 저승으로 갈 때까지는 네 옆에 있어야 할 판인데.”
허태훈.
그 역시 분명 방송을 보고 있었을 것이었다.
다행히 현재 촬영 분량으로는 장소 공개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여길 찾아올 가능성은 없었다.
“허태훈만 처리하면 성불하신다는 거죠?”
“천도재를 지내면 억지로라도 성불하겠지만 네가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천도재 무지 아프대.”
수정이 현수의 팔을 툭 치며 말했다.
현수는 피식 웃으며 팔짱을 꼈다.
“미안하게 생각해. 네 사생활을 뺏어버린 건. 그런데 운명이려니 해. 사람과 사람의 연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촘촘하더라고. 나도 죽고 나서야 알게 된 거지만.”
“뭐, 촘촘하겠죠.”
“네가 생각하는 거 보다 더 촘촘하다고.”
“그래서 저하고 누나는 어떻게 촘촘한 거예요?”
현수가 물었다.
그러자 수정이 무언가 대답하려는 듯 입을 우물거리다 고개를 돌렸다.
“아휴. 됐다. 때 되면 알게 되겠지.”
그녀는 뭔가 알고 있는 듯 말을 멈추었다.
현수는 수정이 전에도 이런 식으로 ‘운명’과 ‘인연’에 대해 뭔가 자꾸 흘리는 것을 들었다.
분명 둘의 관계에 뭔가가 있다는 걸 수정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을 것을 알기에, 현수는 더 묻지 않았다.
돌아가는 상황으로 봐선 나쁜 관계는 아니리라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었다.
*
새벽 4시.
잠깐 깜빡 잠에 들었다가 깬 현수는 텐트 옆에 한 여자가 서있는 것을 발견했다.
물에 들어갔다 나온 듯 옷과 머리카락이 푹 젖어 있었다.
심지어 머리카락은 얼마나 긴 지 바닥에 닿을 정도였다.
현수는 아까부터 계속 보였던 귀신들 중 하나라 생각하고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 했다.
아직 잠에서 덜 깬 것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끼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힛
현수의 배낭 안에 든 고스트돌들이 일제히 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전원을 켜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울기 시작한 것이었다.
번뜩
잠에서 화들짝 깬 현수가 옆에 두었던 솔트샷건을 들었다.
스으으으윽
머리가 긴 귀신이 텐트 안 쪽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순간 현수는 그 귀신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물에 빠진 화진을 구하러 들어갔을 때 봤던 바로 그 물귀신.
머리카락으로 화진과 예슬의 발목을 칭칭 감고 당기던 그 물귀신.
악귀였다.
화진와 예슬이를 물속으로 끌어들여 죽이려 했지만 실패하자 물 밖으로 올라와 데려가려는 것이었다.
“안 돼!”
현수가 소리쳤다.
그러자 악귀는 현수가 탄 차량으로 몸을 돌리더니 사라졌다.
현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 순간이었다.
젖은 머리카락들이 차량의 앞 차창을 ‘철퍽’하고 뒤덮었다.
그리고 그 틈으로 악귀의 서슬 퍼런 눈이 보였다.
순간 엄청난 소름이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