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0화
# 담로 캠핑장 (2)
텐트를 설치하는 방송을 한 이후, 화진은 바로 저녁을 해 먹는 브이로그를 촬영했다.
화로를 설치해 숯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워 먹으며 이런저런 멘트를 이어갔다.
그러면서 간단하게 소주를 마시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현수와 세정은 화진의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앵글에 앉아 한 번씩 고기를 집어먹었다.
꽤 오랫동안 캠핑 콘텐츠를 진행해서인지 고기를 굉장히 잘 구웠다.
현수는 우물우물 고기를 먹으며 주변을 보았다.
확실히 해가 지기 시작하자 곳곳에 귀신의 모습들이 나타났다.
위협이 될 만한 귀신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현수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주변에 있는 모든 귀신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이는 화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우. 자꾸 시선이 느껴져서 촬영에 집중을 못 하겠어요. 하하.”
화진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이제 귀신의 시선을 느끼게 된 화진은 아직 적응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적응하셔야 해요. 어쩔 수가 없어요. 아마 모른 척 하면 귀에 대고 속삭일 걸요.”
“미치겠네요.”
화진이 이마를 붙잡고 중얼거렸다.
“앞으로 어떤 거 더 촬영하세요?”
“텐트 안에서 간단하게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마무리하면 돼요. 나머지는 내일 아침에 일어나는 장면하고 텐트 걷는 장면 추가 촬영하면 되고요.”
“오홍. 알겠습니다.”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수와 세정이 주변을 간단히 돌아보는 사이, 화진은 텐트 안에 쪼그려 앉아 카메라 앞에서 멘트를 이어갔다.
“그럼 저는 캡틴님과 생방송하러 가겠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만나요. 뿅!”
화진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카메라를 껐다.
그리고 텐트 밖으로 나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촬영 다 됐어요?”
현수가 화진을 보고 물었다.
“네. 내일 아침에 추가 촬영하면 돼요.”
화진이 텐트를 가리키며 말하고는 현수에게 다가왔다.
“좀 어때요? 이 주변은?”
“귀신들이 많네요. 여기서 귀신 소문이 안 난 게 신기하네.”
현수는 주변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뭇가지 위와 산길, 숲 사이사이에 귀신들이 방방 뛰어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으. 무서워.”
화진이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돌렸다.
그때, 어린 여자아이 한 명이 방방 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 아이에게서는 회색 기운도, 흰색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산 사람인 것이었다.
“다른 텐트 손님 아이인가 보네.”
현수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세정에게 시작하자는 손짓을 보냈다.
세정이 카메라와 구형 스마트폰을 거치대에 장착한 뒤 현수 앞에 섰다.
현수는 화진에게 다가오라는 손짓을 한 뒤 카메라 앞에 나란히 섰다.
“들어갈게요. 큐!”
세정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목요일에 인사드립니다. 캡틴 퇴마 박현수입니다!”
“너도캠핑 조화진입니다!”
현수와 화진이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 목요일 생방 좋당.
- 토요일도 계속 하는 거죠??
- 네, 네. 토요일은 토요일대로 방송하고 목요일 생방이 추가된 거.
- ㅋㅋㅋㅋㅋ굳굳굳굳굳
- 댜좋아
- 둘이 사귀는 거 맞는 듯.
- 퍼네 백퍼.
- 잘 어울리긴 한데.
- ㅈㄴ선남선녀
약 1000여 명의 시청자들이 한 번에 유입되어 들어왔다.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다.
- 아 술 먹고 있는데 알림와서 잠깐 들어옴ㅋㅋㅋㅋㅋ
- 가끔 거의 철야 방송도 하던데. 다음날 출근 어떡하지???
- 적당히 보다 자면 되지
- 보다보면 그게 안 된다니까.
시청자들은 목요일 방송에 대해 대체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그럼 캠핑장 주변을 한 번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수와 화진이 각자 장비를 챙겨들고 캠핑장 주변 산책로에 들어섰다.
- 거기 어디에요??
- 경치 좋다.
- 밤인데도 아늑한 게 느껴지는 듯함.
- 조용하고 좋다.
- 위치 공유점
“어딘지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지금 캠핑장을 이용 중인 다른 분들도 계시니까요. 가급적 조용히 촬영 진행할게요.”
현수가 카메라에 대고 말한 뒤 화진에게 이어 물었다.
“여기 처음 오세요?”
“네. 여기 위치는 예전에 알았는데 촬영으로 오기는 처음이에요.”
“이 정도 규모에 이런 산책로라면 보통 어느 정도 수준이에요? 좋은 정도가?”
“음. 이 정도면 그래도 중상급 정도? 캠핑장 주변 산책로가 이렇게 잘 정리가 되어 있으면 좋죠. 가족단위로 오기도 좋고.”
화진이 주변을 가리키며 말했다.
손전등 없이도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곳곳에 조명이 설치되어 있었다.
지이이잉 파밧 파밧-
그 순간이었다.
산책로 곳곳에 설치된 조명이 합선 소리와 함께 깜빡였다.
“뭐지? 전력이 부족한가?”
화진이 가로등처럼 세워진 전등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니요.”
반면 현수는 산책로 끝 쪽을 보고 있었다.
새하얀 연기들이 스멀스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어머. 저거 뭐야? 어디서 바비큐하나?”
화진이 놀라 물었다.
“아뇨. 귀신의 형체에요. 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흰색은 귀신, 회색은 악귀. 한이 강하면 강할수록 사람의 형태로 보이고요.”
“그럼 저렇게 연기 형태라는 건-”
“-한이 그리 강하지는 않은 ‘귀신’들이라는 거예요.”
현수가 대답했다.
그 사이 세정은 다가오는 연기를 쭉 촬영했다.
- 오 많다.
- 저 정도 연기 양이면 수십 명 쯤 되는 것 같은데???
현수의 방송을 줄곧 봐온 시청자들은 심령카메라에 포착된 하얀 형체의 덩치만 봐도 그 수를 가늠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귀신들은 쭉 다가오더니 현수와 화진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현수는 그런 하얀 연기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아까 방방 뛰며 놀고 있던 여자아이가 귀신 사이를 가로질러 지나는 것이 보였다.
현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아이를 유심히 보았다.
분명 산 아이였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의 머리 위에 회색 구체가 둥둥 떠 있다는 것이었다.
“악귀에요!”
현수가 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여자애가 악귀라고요?”
“아뇨. 저 여자애 근처에 악귀가 있어요.”
현수는 하얀 연기 쪽으로 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순간 화진은 머뭇거렸다.
사람의 형체는 아니지만 하얀 연기 자체가 귀신인 걸 알게 되자 가로질러 지나가기 껄끄러운 것이었다.
“괜찮아요. 해코지하지 않을 거예요.”
세정이 말해주었다.
화진은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현수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저 아이 근처에 악귀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아신 거예요?”
여자아이를 쫓아가는 현수를 보고, 화진이 물었다.
“보통 악귀에 쓰인 사람은 어깨나 머리 같은 몸에서 회색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어요. 후광이나 아우라처럼 회색빛을 내기도 하고요.”
“네, 네.”
“그런데 지금 캠핑 님도 보이시겠지만, 저 아이 머리 위에 악귀 구체가 떠 있잖아요. 이건 악귀가 사람 형체가 아니라 저런 ‘구체’ 형태로 아이에게 계속 속삭이고 있다는 의미에요. 바로 옆에서.”
“뭐 때문에 그러는 거죠? 조종을 할 거면 그냥 빙의하면 되지.”
화진은 악귀에 쓰였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물었다.
“파장이 안 맞으면 빙의할 수 없어요. 빙의 한다 해도 금방 튕겨 나가고요.”
현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다른 타깃을 찾으면 되지. 왜 저렇게까지 해서 아이를 데려가는 거죠?”
화진이 물었다.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애를 데려가는 목적이 있는 것 같은데요.”
현수가 중얼거렸다.
“깔깔깔! 나도 나도!”
여자아이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듯 방방 뛰며 어딘가로 달려갔다.
점점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현수와 화진은 서둘러 아이의 뒤를 쫓았다.
[담로 저수지 - 담로 낚시터]
[20시 이후 출입금지 (동계 18시 이후 출입금지)]
아이는 저수지 입구를 알리는 이정표 아래로 총총 달려갔다.
이곳에 올라올 때 보았던 바로 그 팻말이었다.
현수와 화진은 걸음을 멈췄다.
“지금 저녁 9시인데.”
현수와 화진이 서로를 보았다.
그때, 현수는 저수지 수면 위로 회색 안개가 피어있는 것을 보았다.
올라올 때 느꼈던 악귀의 기운이었다.
“여자아이를 물로 끌어들이고 있는 거였어요.”
현수가 거침없이 저수지 쪽으로 달려갔다.
화진은 카메라를 보며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고 뛰기 시작했다.
- 헐. 물귀신이 뭍까지 올라와서 딴 사람을 데려가려는 거임??????
- 악질이다....
- 어떻게 생각하면 그만큼 빨리 탈출하고 싶어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 탈출?????
- 다른 영혼을 데려오면 자기가 성불할 수 있어서 다른 사람 죽이는 걸걸요????
- 창귀 같은 건가.
시청자들은 현수와 화진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채팅을 써 올렸다.
그 사이, 물가에 도착한 현수와 화진은 두리번거리며 아이를 찾았다.
하지만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벌써 물에 빠진 것인가 해서 손전등으로 물가를 비춰보았다.
굉장히 잔잔한 것이 누군가 물에 들어간 파동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의 뒤를 바싹 쫓아온 만큼, 아이가 물에 빠졌다면 아직 물이 출렁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없어졌으면 부모가 찾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화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벌써 자나.”
현수는 새삼 다시 시계를 확인해 보았다.
그때 손전등 불빛이 현수와 화진을 비췄다.
“거기. 누굽니까?”
화가 난 듯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현수와 화진이 손으로 빛을 막으며 인상을 썼다.
“여기 밤8시 이후에 출입금지인 거 몰라요?”
남자가 손전등을 내리며 호통을 쳤다.
캠핑장 주인이었다.
“아, 네. 그런데 웬 아이가 여기로 뛰어오는 게 보여서요.”
현수가 저수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이가 여기로 뛰어와요?”
“네. 저기 마운틴로드에 텐트 친 투숙객 중에 아이 데리고 온 집 없어요?”
화진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음. 가족단위가 있었던 것 같긴 한데.”
“그 부모한테 말부터 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현수가 묻자 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잠시만요.”
그는 다급하게 전화기를 들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여보. 마운틴로드에 가서 여자아이 잃어버린 손님 없는지 한 번 확인해 봐. 어, 어. 지금.”
그는 전화를 끊고 손전등으로 주변을 슥 비췄다.
악귀 구체를 머리에 달고 온 여자아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혹시 예전에 이곳에서 사람이 죽은 적이 있나요?”
현수가 저수지를 비추며 물었다.
“여기서요? 음.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캠핑장 인수 받은지 몇 년 안 돼서.”
“혹시 사람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진 않았고요?”
“산짐승이 있는지 동물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말은 들었어요.”
주인이 대답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수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주인장. 거짓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녀의 말에 현수와 화진이 그를 유심히 보았다.
주인은 시선을 돌리며 아이를 찾는 듯 몸을 돌리고 있었다.
그의 몸 주변에서는 악귀나 귀신의 흔적이 포착되지 않았다.
산 사람이고 빙의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다는 건 악귀가 붙을 정도로 악한 사람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죄를 지은 게 있나? 그런데 왜 거짓말을?’
현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부스럭
그 순간이었다.
뒤에서 풀잎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현수와 화진, 세정, 그리고 캠핑장 주인이 일제히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