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5화
# 동원훈련장 (3)
현재 시청자 110900명.
이번에도 역시 10만 명이 넘는 시청자가 모여들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현수는 숫자에 감탄할 틈이 없었다.
시청자 수가 엄청나게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촬영 현장이 굉장히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다다다다다다
현수 일행은 안보교육관을 나와 허겁지겁 도망쳤다.
이들 모두 무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사방에서 몰려오는 악귀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에게 빙의되지 않은 악귀는 방고리와 너도캠핑, 혜련에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다 같이 합심해 전투를 벌이는 것도 불가능했다.
카메라에는 도망치는 일행들의 모습이 모두 잡혔다.
그리고 세정은 수시로 뒤로 카메라를 돌려 쫓아오는 악귀들의 형상을 촬영했다.
“헉 헉 헉 헉.”
일행들의 거친 숨소리가 그대로 마이크를 타고 전해졌다.
*
그렇게 정신없이 도망을 치다 한기가 사라질 쯤, 현수는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보았다.
[전천후 야외 강의장]
현수는 슬레이트 지붕이 어설프게 얹어져 있는 야외 강의장 스탠드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너도캠핑이 기둥을 붙잡은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요?”
현수가 물었다.
그제야 너도캠핑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세정과 방고리, 혜련 모두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너도캠핑이 소리를 쳐 일행을 부르려 했지만 현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곳에 있는 악귀들. 그 수가 엄청 많아요. 호장리 수영장에서 봤던 악귀보다 강한 것 같고. 소리를 내면 이곳으로 쫓아올 수 있어요.”
현수는 손사래를 치며 핸드폰을 들어 자기 생방송에 접속을 해보았다.
캡틴 퇴마 채널의 생방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세정과 방고리, 혜련 역시 휴식을 취하는 듯 수풀 사이에 서있었다.
[현수 님하고 캠핑 님 어디 가셨어요?]
[어? 진짜?]
이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저기요. 제 말 들려요?”
현수가 말했다.
만약 이 근처에 있는 것이라면 무선 마이크 신호가 잡힐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수의 목소리는 방송에서 잡히지 않았다.
무선 마이크 신호가 닿지 않는 거리에 있다는 증거였다.
[어떡해요? 현수 님 없으면 저희끼리 뭘 어떻게-]
[잠시만요. 이 근처에 계시겠죠. 분명 같이 도망쳤는데.]
이들은 패닉에 빠진 듯했다.
현수는 바로 방고리, 너도캠핑, 혜련, 세정을 묶은 그룹통화를 걸었다.
[현수 님!]
[현수 님이세요?]
“다들 괜찮으세요?”
이들의 통화 소리는 방송으로 그대로 전해졌다.
“일단 전화 끊지 마시고 계속 그룹콜로 소통하죠. 서로 찾을 때까지.”
[네, 네. 알겠습니다.]
현수의 생방송 속 방고리가 이어폰을 귀에 꽂으며 대답했다.
- 캡틴 없는 캡틴 방송ㅋㅋㅋㅋㅋㅋㅋ
- 홍철 없는 홍철팀이닼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현재 위치가 어떻게 되세요?”
현수는 채팅을 보며 물었다.
[어어- 잘 모르겠어요. 길은 나 있는데 주변이 온통 나무랑 바위뿐이네요.]
“어느 방향으로든 길 따라 쭉 이동하시면 훈련장이 하나 나올 거예요. 그쪽으로 이동한 다음 어느 훈련장인지 말씀해주세요. 저희 단톡방에 아까 촬영한 지도 좀 올려주시고.”
[네, 네. 알겠습니다.]
방고리가 앞장서서 산길을 헤쳐 걷기 시작했다.
그 사이 현수와 너도캠핑은 지도를 확인했다.
“전천후 강의장은 안보교육관하고 그리 먼 곳에 있는 게 아니에요. 정신없이 뛰느라 거리 가늠이 안 돼서 그렇지. 지도상으로는 가깝네요.”
현수와 너도캠핑이 머리를 맞대고 지도를 보았다.
손가락으로 전천후 강의장부터 이어진 산길을 쭉 짚었다.
“이 가까운 곳에 지뢰 매설 훈련장이 있고 그 다음 경계 훈련장, 구급법.”
“산길 하나를 쭉 타고 돌면서 코스가 쭉 이어지는 거네요.”
“네. 맞아요. 이 옆에 있는 산길을 타고 쭉 돌면서 훈련장을 모두 지나면 아까 통제실 옆쪽 산길로 나오는 거예요. 한 마디로 산을 한 바퀴 도는 거죠.”
“여름에 하면 진짜 빡세겠네요.”
너도캠핑이 중얼거렸다.
- 한여름 예비군 죽이고 싶짘ㅋㅋㅋㅋㅋㅋ
- 아예 혹서기 때는 훈련 안 잡히지 않음????
- 6월 9월에 해도 더움.
- 이등병 조교 수통에 물 채우라 해야짘ㅋㅋㅋㅋ
- 그 수통에 물마시고 싶음??
군필 시청자들의 수다가 이어졌다.
현수는 방송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다른 쪽 일행들과의 통화를 계속했다.
“아직 아무것도 안 보여요?”
[네. 아직 아무것도 안 보여요. 길이 꽤 험하네요.]
세정이 촬영 중인 화면에는 방고리와 혜련의 뒷모습이 보였다.
산길은 오랫동안 관리가 되지 않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이대로라면 길을 잃을 가능성도 커보였다.
“너무 섣불리 앞으로 가지 마시고 근처에 이정표를 잘 찾아가면서 이동하세요. 제가 방송으로 화면 확인하고 있으니까 잘 따라가시고.”
[알겠습니다.]
방고리가 카메라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우리도 길 따라 이동해보죠.”
현수와 너도캠핑이 전천후 강의장 옆쪽에 난 산길로 걸음을 옮겼다.
*
몇십 분 동안 산행이 이어지는 동안 귀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방고리와 혜련은 방송 중이라는 걸 의식했는지 쉬지 않고 계속 멘트를 이어갔지만 귀신이 나오지 않는 와중에 현수까지도 앵글 밖에 벗어나 있자 시청자들이 급속도로 빠지고 있었다.
시청자 수 89891명.
물론 아직도 상당한 수기는 했지만 인원은 계속해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현수는 걱정스럽게 생방송을 모니터링 하며 산길을 쭉 걸어갔다.
“저기, 지뢰 매설 훈련장이에요.”
너도캠핑이 철제 이정표를 가리키며 말했다.
녹이 잔뜩 슨 이정표에는 빨간 페인트로 쓰인 글자가 투박하게 박혀 있었다.
“우리가 도망갔던 시간이나 상황을 봐선, 저쪽에서 방향을 잘 잡았으면 지금쯤 마주쳐야 할 것 같은데.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네요.”
현수가 말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세정의 스마트폰 스피커폰을 통해 생방송에 전달이 되었다.
그러자 열심히 걸어가던 방고리와 혜련이 걸음을 멈췄다.
[지금 같은 방향으로 돌고 있다고요? 그럼 여기서 저희가 거꾸로 가면 마주칠 수 있는 건가요?]
방고리와 혜련은 카메라와 세정, 그리고 주변을 보며 물었다.
“어어어어어- 아뇨! 아뇨. 아직 확실하지 않아요. 훈련장이 하나라도 보이면 그때 결정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괜히 방향 틀었다가 더 엇갈릴 수도 있으니까요.”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너무 다급하게 도망을 치느라 시간이 제대로 가늠이 되지 않고, 또 방고리와 혜련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달렸는지 모르기 때문에 같은 방향으로 도느라 마주치지 못하는지, 아니면 조금 더 가야 마주치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바스락 바스락]
그때 생방송 중인 화면에 이상한 소리가 잡혔다.
현수가 걸음을 멈추고 생방송 화면을 유심히 보았다.
방고리와 혜련의 뒤를 촬영하고 있는 화면.
그리고 우측 하단에 보이는 심령카메라 화면.
생방송 카메라에는 둘의 등만 보였지만 심령카메라로 뭔가 훅 지나가는 것이 포착되었다.
- 어어어어어어어어 앞앞앞앞앞앞앞
- 앞 좀 보세요!!!
- 뭐가 지나갔음!!
- 뭐 지나갔어요!
- 방고리 님!
- 방고리 뭐하냐!!!!
- 채팅 좀 보세요!!
- 앞에 지나갔어요!
시청자들도 난리가 났다.
“잠깐요! 그 팀 스톱! 지금 심령카메라에 뭐 잡혔어요!”
현수가 말했다.
[뭐가 잡혀요?]
[뭐가요? 뭐가요?]
방고리와 혜련이 카메라 앞으로 다가와 심령카메라를 확인해 보는 듯했다.
세정이 들고 있는 카메라도 이내 바닥을 향했다.
두 카메라가 모두 한 거치대에 장착되어 있어 화면을 보여주려면 기울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뭐가 보였다는 거죠?]
[지금 아래를 찍고 있어요.]
[앞으로, 앞으로.]
이들은 계속 부스럭거리며 다시 앵글을 앞으로 잡았다.
그 순간이었다.
심령카메라로 회색 이목구비가 크게 들이닥쳤다.
화아아아아악
하지만 생방송 카메라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꺄아아아아악!”
이어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어두운 산속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약 2초, 3초의 딜레이 후, 방송에서 비명이 들렸다.
[꺄아아아아악!]
“저기에요!”
비명을 들은 현수와 너도캠핑이 산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덜그락
이어 카메라도 바닥에 떨어졌고, 도망치는 일행들의 다리와 발목이 스쳐 지나갔다.
생방송 카메라와 심령카메라가 동시에 송출이 되고 있는 것으로 봐서, 땅에 떨어트렸지만 거치대에서 분리가 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현수는 비명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열심히 산길을 달렸다.
굉장히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어 잡초와 온갖 풀이 무성했지만 그래도 길과 길이 아닌 곳이 어느 정도는 분간이 되었다.
현수와 너도캠핑은 굉장히 빠른 걸음으로 풀을 해치고 달렸다.
이내 몇 분이 지나자 경계 훈련장이 나왔다.
초소에서 근무하는 방법과 함께 비행기나 적을 식별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주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 역시 풀이 무성하게 자라 훈련장이라 보기 힘들 정도였다.
예비군들이 앉아 강의를 듣는 곳 역시 식별이 되지 않았고, 교관이 서서 말하는 작은 시멘트 강단조차 반쯤 파묻혀 있었다.
“이 근처였던 것 같은데.”
현수가 다급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현수가 폰에 대고 말했다.
그러자 방송에서 현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세정이 자신의 스마트폰도 카메라 옆에 떨어트린 모양이었다.
[현수 님! 현수 님!]
혜련의 답변이 들려왔다.
이 소리 역시 생방송으로 전달이 되었다.
화면은 바닥에 떨어진 채였지만 일행들의 통화는 방송을 통해 송출이 되는 것이었다.
- 긴박감을 온 몸으로 전해주는 캡틴방송ㅋㅋㅋㅋㅋ
- 이거 신박하넼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심각한 상황인데 왜 웃기냨ㅋㅋㅋㅋ
현수는 방송을 보면서 말했다.
“지금 다들 어디 계세요. 무슨 일이에요?”
[몰라요. 갑자기 세정 님이 비명을 질러서-]
[악귀가 제 얼굴로 달려들었어요.]
혜련의 목소리와 함께 세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같이 있어요?”
[세정 님은 저랑 있는데 방고리 님은 모르겠어요.]
“방고리 님. 지금 제 목소리 들리세요?”
[헉, 헉, 헉. 저 여기 있어요. 여기 어디지.]
방고리도 무사하긴 한 모양이었다.
“상황이 안 좋네요. 또 일행이 쪼개지다니.”
현수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까 촬영하던 곳. 어딘지 정확히 파악 안 되죠?”
[네, 네. 그런데 제가 언덕 같은 둔덕을 봤어요. 거기만 나무가 없던데.]
“아, 그래요?”
현수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주변을 보았다.
“그게 왜요?”
너도캠핑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런 산에 나무가 없는 둔덕이 있다면 군인들이 나무를 베고 터를 닦았단 뜻이에요. 아마 훈련이나 휴식처로 만들어 둔 걸 걸요.”
현수는 훈련장 지도를 다시 확인해 보았다.
그러자 현재 있는 경계 훈련장 옆쪽으로 작은 공터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현수와 너도캠핑은 바로 그곳으로 이동해 보았다.
생방송 중인 화면에 현수와 너도캠핑의 음성이 잡히기 시작했다.
무선 마이크 신호에 잡히는 범위에 들어온 것이었다.
이내, 바닥에 떨어져 있던 거치대와 카메라들, 그리고 세정의 핸드폰을 발견했다.
그런데 무척 소름끼치는 것을 발견했다.
세정은 거치대와 카메라 옆에 기절해 있었다.
너도캠핑과 현수는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잠깐. 그, 그럼 혜련 님 옆에 있는 그, 그, 그, 세정 님은요?”
너도캠핑이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