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3화
# 동원훈련장 (1)
후기 방송을 끝낸 현수는 심란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그러자 수정이 건들거리며 다가와 현수의 어깨를 툭 쳤다.
“오오올. 100만! 이거 대단한 거지? 나도 이제 그 정도 통밥은 알아.”
“대단하죠. 이제 골드버튼 올 거예요.”
현수는 후기 방송 시작 전에 신청한 골드버튼을 떠올렸다.
“그나저나 100만까지 찍어놓고 왜 그렇게 심란해 보이냐?”
“네? 아.”
“왜. 뭐 문제 있어?”
“아뇨. 뭐, 별거는 아니고요. 이번 평지역 악귀들은 뭔가 좀 이상했던 것 같아서요.”
“뭐가?”
“꼭 악귀들의 ‘세력’을 만들려고 한 거 같지 않아요? 그룹처럼.”
“아아. 그거 때문에 그래?”
수정은 되레 별 거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너무 의미두지 마. 다 그냥 끼리끼리 모이는 것뿐이야.”
“네?”
“생각해 봐. 너 해외에 혼자 나갔어. 그런데 거기서 한국인 만나. 말이 통해. 얼마나 반갑겠어. 안 그래?”
“그야- 당연히 그렇죠?”
“똑같은 거야. 말했듯이 죽은 자의 영역과 산 자의 영역은 나뉘어 있어. 그런데 귀신이나 악귀는 ‘산 자의 영역’에 남은 ‘죽은 자’잖아. 그러니 저들끼리 만나면 얼마나 반갑겠어. 수다도 떨고 싶고 그러겠지!”
“정말 그게 다라는 말씀이세요?”
현수가 물었다.
“내가 보기엔 그래. 그냥 사탄 숭배하고 그러니까 거기에 악귀들이 모여들었는데, 지들도 다 누군가한테 빙의를 하고 싶었던 거지. 그냥 그런 거 같은데.”
“흠.”
수정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양주열 학생의 악귀를 잡자마자 노숙자 악귀들이 너무 순식간에 다 흩어져 도망갔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마치 명령체계를 가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너무 의미 두지 마. 악귀들은 그렇게 조직적인 애들이 아니야.”
수정이 손사래를 쳤다.
현수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나저나 전처럼 그렇게 악귀들한테 둘러싸였을 때 필요한 무기가 좀 더 있지 않겠어? 이번에 고생 좀 했는데.”
“아! 맞다! 그거!”
현수는 손가락을 딱 튕기고는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검색을 해보았다.
* * *
그렇게 현수가 새로 구비한 아이템은 스프링텐션 수류탄이었다.
이 아이템은 에어소프트건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주로 보유하는 레저용품으로 수류탄과 동일하게 생긴 ‘장난감’이었다.
안에 BB탄을 잔뜩 채운 뒤 전방에 던져 충격을 주면 내부에 있던 스프링이 펼쳐지면서 안에 있던 BB탄이 사방으로 퍼지는 시스템이었다.
여기에 소금이나 팥을 넣으면 주변에 악귀들이 모여 있을 때 쓰기 편하겠다는 판단이었다.
가격도 굉장히 저렴했다.
개당 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으로 대량구매 하기에도 부담이 없었다.
이제 월 수익이 5000만 원에서 1억 원이 넘는 수준의 현수로서는 얼마든지 소화할 수 있었다.
며칠 후.
현수의 집으로 커다란 박스가 도착했다.
안에는 스프링텐션 수류탄이 잔뜩 들어있었다.
아예 도매로 구매를 해버린 것이었다.
플라스틱이라 내구성은 약했지만 어차피 일회용이라고 생각하면 그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후 현수는 효율적인 수류탄을 만들기 위해 몇 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그 중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 것은 바로 팥이었다.
팥을 건조시킨 뒤 가루를 내 수류탄 안에 잔뜩 넣어둔 뒤 던지자 ‘탁’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팥가루가 확 퍼져나갔다.
못해도 주변 직경 5m 정도는 갈색 팥가루로 뿌옇게 변하게 하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이 효과를 직접 본 현수는 며칠 동안 방송과 운동, 그리고 수류탄 제작에만 온 시간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다음 퇴마 지역에 대한 물색도 진행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번에 역시 라미로브를 통해 새로운 의뢰가 들어왔다.
[현수 님! 이번에도 저희 회사 쪽으로 의뢰가 들어왔어요! 아무래도 양주열 학생 퇴마 방송을 본 것 때문인 것 같아요. 하루에도 몇 십 통씩 메일이 와요.]
세정이 전화로 말했다.
경찰도 해결 못한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귀신 탐정’ 역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그래요? 어떤 건데요?”
[다른 건 다 시답잖은 건데요. 이거는 한 번 가보면 어떨까 싶던데. 지금 메일 보내드렸거든요? 지금 한 번 확인해 보세요.]
현수는 세정의 말을 들으며 메일함에 들어가 보았다.
세정의 메일을 확인해 보니, 전라도 무상군에 위치한 군 동원훈련장 귀신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메일보고 계세요?]
“네, 말씀하세요.”
[거기가 1980년대까지 예비군 동원훈련장으로 쓰였대요. 그런데 부대 개편이 진행되면서 훈련장도 안 쓰이게 됐는데 거기서 자꾸 귀신이 나온대요.]
“그래요? 지금은 뭐로 쓰인대요?”
[주인 없는 땅으로 그냥 마을 사람들이 편하게 가서 이것저것 심고 수확했었는데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나온 후로는 발길이 끊겼대요.]
“무슨 귀신이 나온다는대요?”
[몰라요. 그런데 뭐 가끔 정신을 잃는 사람도 있나 봐요.]
“음. 훈련장에 귀신이라니.”
[한번 가보실래요?]
“그림이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요? 한 번 가보죠.”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누구랑 가실 거예요?]
“음. 한 번 물어봐야죠. 보고 결정되는 대로 말씀드릴게요.”
현수가 대답했다.
* * *
부우우우웅
어둠을 뚫고, 차량이 깊은 시골길을 가로질러 들어갔다.
운전석에는 현수, 조수석에는 세정, 그리고 뒤에는 수정이 타고 있었다.
부우우우웅
차량이 조금 더 들어가자 녹슨 철제 구조물이 보였다.
[환영합니다. 불길대대 예비군 훈련장]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페인팅 된 철제 구조물에는 80년대 군부대 문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투박한 글씨가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작은 공터가 있었다.
이미 몇 대의 차량이 정차되어 있었다.
오늘 함께 촬영하기로 한 고스트 크루 멤버들인 듯했다.
현수가 차에서 내리자 다들 주변에 모여들었다.
방고리와 너도캠핑, 그리고 혜련이었다.
“안녕하세요!”
현수가 차에서 내려 인사하자 모두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아유. 혜련 님이 함께하시리라고는 예상 못했어요.”
현수가 말하자 혜련이 미소를 지었다.
“조금 힘들긴 해도 현수 님 방송에 출연하면 구독자가 늘어난다고 하기에요. 하하하.”
아마 방고리가 그렇게 귀띔을 한 듯했다.
“여기에 대한 이야기는 메일로 한 번 훑어보셨죠?”
현수가 장비들을 챙기며 말했다.
“물론이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그런데 현수 님. 우리 다 무기 하나씩 있는데 혜련 님은 어쩌죠? 아무것도 없으신데.”
너도캠핑이 다가와 말했다.
현수는 힙색과 배낭을 뒤적거리다 액막이 부적을 한 움큼 꺼내 건넸다.
“귀신 들린 사람이 달려오면 이걸 그 사람 몸에 붙여요. 혜련 님 몸에도 직접 지니고 계시고. 그러면 귀신이 쫓아오다 도망갈 거예요.”
현수의 말에 혜련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적을 받았다.
“촬영 준비는 됐죠?”
현수가 세정을 보며 물었다.
세정이 손가락으로 OK사인을 보냈다.
“이곳 위치가 어딘지는 명확하게 말하지 않도록 조심해주세요. 바리게이트가 없는 만큼 시청자들이 방송 중에 여길 찾아올 수 있으니까요.”
현수가 말했다.
“지역을 말하지 말라는 거죠?”
“네, 네. 검색해 보니까 ‘불길대대’라는 부대명은 아예 검색이 안 되더라고요. 그건 나와도 되는데 여기 주소나 자세한 지명은 말씀하지 않는 걸로요.”
모두 알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물론 이런 현수의 요청에는 허태훈을 의식한 것도 있었다.
이번 평지역 촬영 때도 결국 허태훈이 찾아왔었다.
당해고등학교에 이어 평지역까지.
허태훈은 슬슬 현수의 촬영장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동원훈련장이라면 야산 전체 크기의 상당한 규모일 것이었다.
여기서 허태훈이 나타난다면 대응이 힘들어질 수 있었다.
이곳의 위치는 최대한 숨기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이었다.
“방송 시작할게요!”
세정이 손을 흔들며 말하자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캡틴 퇴마 박현수입니다. 오늘의 야외 라이브 퇴마 방송도 본격적으로 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수는 카메라에 대고 손 인사를 하면서 방고리와 너도캠핑, 그리고 특별 게스트 같은 포지션의 혜련까지 간단히 소개를 해주었다.
- 방고리, 너도캠핑은 이제 고정 멤버인듯ㅋㅋㅋㅋㅋㅋㅋ
- 둘도 이제 퇴마 아이템 가지고 있엌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영피스 유솝하고 라미임????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유솝 라밐ㅋㅋㅋㅋㅋㅋ
- 오늘도 꿀잼각?
채팅이 빠르게 올라왔다.
“오늘은 예비군 동원훈련장인데요. 약 40년 전쯤에 폐쇄가 되고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오늘은 이곳에 나타나는 귀신을 한 번 추적해보겠습니다.”
현수는 훈련장 입구 구조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두운 가운데 손전등 불빛으로 보이는 ‘불길대대’ 글씨는 무척 을씨년스러웠다.
“자세한 주소는 비밀로 하겠습니다. 혹시 불길대대를 아시는 시청자 분들이라도 주소 노출은 가급적 자제 부탁드립니다. 저희 채팅 관리 스태프님들. 주소 뜨면 바로 삭제하고 업로드 하신 분 차단 부탁드릴게요.”
현수가 말했다.
주소 노출에 대해 상당히 강경한 태도를 보인 것이었다.
말했듯 이곳에 허태훈이 뜨게 되면 꽤 위험한 상황이 닥쳐 올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 군대 귀신이 꿀잼이짘ㅋㅋㅋㅋㅋ
- 그때 속초 부대 촬영은 솔찌 좀 별로였음.
- 맞아. 무섭다기 보다는 정의구현 느낌이었음.
- 버려진 훈련장이라. 꿀잼 각인딩.ㅋㅋㅋㅋㅋㅋ
- 기대합니다.
시청자들의 응원과 함께 파워챗 후원이 이어졌다.
현수 일행은 부대 입구를 나타내는 철제 구조물 밑을 지나 일직선으로 쭉 뻗은 시멘트 길을 걸어갔다.
양옆으로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있었고, 길 가장자리에는 흙이 살포시 쌓여 있었다.
오랜 시간 빗자루질과 제초작업을 하지 않아 지저분해진 것이었다.
현수 일행은 사방으로 손전등을 비추며 안쪽으로 쭉 걸어 들어갔다.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알겠지만 이렇게 안쪽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게 훈련 통제실 같은 건물과 안보교육관, 연병장, 사열대가 먼저 보이고, 그리고 전천후 강의장, 이제 옆쪽으로 사격장이 있죠. 사격장은 조금 떨어져 있는 경우도 많고.”
현수는 카메라를 보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그런 건물 옆쪽으로 이제 여러 훈련장으로 올라가는 산길이 있습니다. 구급법이라든지, 지뢰 매설법, 경계법 같은. 아마 비슷한 구조가 아닐까 싶습니다.”
현수가 멘트를 하는 사이 방고리가 현수의 등을 톡톡 쳤다.
“저기.”
그가 가리킨 곳에는 잡초가 허리까지 올라온 넓은 연병장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잡초 위로 하얀색, 회색 구체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지금 심령카메라로 잡히죠? 이곳에 귀신이 엄청 많은 것 같은데요.”
현수가 연병장을 보고 말하자 방고리와 너도캠핑, 혜련이 세정의 카메라 옆으로 와 심령카메라 화면을 확인했다.
“어우.”
공중에 떠 있는 귀신의 형체에 이들은 탄식을 금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