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8화
# 당해고등학교 (6)
현재 시청자 139821명.
또 다시 10만 명 시청자를 훌쩍 넘기는 숫자.
시청자들 역시 흥분한 듯 쉴 새 없이 채팅을 썼다.
다다다다다다
“헉 헉 헉.”
마이크로 들려오는 현수와 방고리의 숨소리.
그리고 뜀박질 소리.
흔들리는 화면.
굉장히 긴박한 가운데 식탁이 쭉 펼쳐져 있는 급식실을 가로질렀다.
쾅!
이어 큰 문을 박차고 나가자 바닥에 라인이 그려진 체육관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또 다른 여학생 악귀가 서 있었다.
그녀는 머리의 1/4 정도가 함몰되어 두상이 뭉개져 있는 모습이었다.
여학생 악귀 앞으로는 실신한 교감이 쓰러져 있었다.
현수는 본능적으로 그 여학생이 이 체육관에서 사고로 죽은 학생이라는 것을 눈치 채고 고개를 들어보았다.
천장에 있는 조명 시설 위에 환신의 모습이 보였다.
“아저씨! 내려오세요!”
현수가 소리쳤다.
환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기 어떻게 올라가요?”
현수가 방고리를 보며 물었다.
조명을 관리하기 위한 철제 다리가 천장의 조명 설비를 따라 설치되어 있었다.
분명 여기서 저 다리로 올라가는 길이 있을 것이었다.
“이걸로 모든 것이 끝이다.”
환신이 커다란 자물쇠 절단기를 꺼내더니 달려 있는 조명의 와이어에 올려놓았다.
저걸 자르면 조명이 떨어지며 교감이 그대로 깔릴 판이었다.
“저 여학생 악귀가 조명이 떨어지면서 죽었던 모양이야.”
수정이 말했다.
승미 학생이 악귀가 되어 했던 복수 그대로, 환신이 교감을 죽이려는 것이었다.
“아저씨!”
현수가 소리쳤다.
“이게 될지 모르겠네!”
방고리는 고민을 하다 새총을 꺼내 천장의 환신을 조준했다.
고무줄이 엄청나게 길게 늘어지며 방고리의 팔이 파르르 떨렸다.
팡-
이어 새총이 발사되자 단단한 팥알이 환신에게 날아갔다.
깡-
단단한 팥알은 환신이 서 있는 철제 난간에 부딪혀 소리가 났다.
순간 환신이 위축된 듯 몸을 움츠렸다.
현수는 재빨리 교감에게 달려갔다.
머리가 함몰된 여학생 악귀와 그 발밑에 쓰러져 있는 교감.
그리고 달려가는 현수.
카메라는 현수의 뒷모습과 회색 형체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안 돼!”
환신이 인상을 쓰며 격렬하게 절단기를 조였다.
툭-
조명 시설을 지탱하고 있던 와이어가 끊어지며 커다란 크기의 조명이 수직 낙하하기 시작했다.
“박현수!”
수정의 외침.
“현수 형!”
다급해진 방고리의 외침.
콰아아아아아앙-
동시에 추락한 조명.
콰아아아앙-
귀를 때리는 듯한 소음과 함께 조명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방고리와 세정이 몸을 움츠렸다.
고오오오오-
피어나는 먼지 사이로 부서진 조명의 형체가 드러났다.
“캡틴님! 혀, 형!”
방고리가 부서진 조명으로 달려갔다.
세정도 입을 틀어막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 와중에도 카메라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삐이이이이-
귀에서 들리는 이명.
머리 바로 옆에 떨어져 있는 커다란 조명.
조명이 바로 옆에서 떨어지며 귀에 충격이 가해진 것이었다.
현수는 교감을 끌고 피하는 데에 성공했고, 간발의 차이로 조명을 피할 수 있었다.
주륵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파편이 튄 것이었다.
“형!”
그때 방고리가 다가와 현수를 발견했다.
현수는 괜찮다는 손짓을 하며 소매로 피를 닦았다.
방고리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 북 찢고는 이마의 상처에 덧대주었다.
“괘, 괜찮아요?”
세정이 달려와 물었다.
현수는 손을 내젓고는 교감의 상태를 살폈다.
완전히 기절한 상태였지만 큰 외상은 없어 보였다.
“경비 아저씨는?”
현수가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았다.
환신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쿵-
그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칼을 든 환신이 서있었다.
“왜 그렇게까지 감싸는 겁니까. 그 애들은, 그자는 내 딸이 죽어가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왜! 왜! 우리한테만 이런 일이 발생해야 하는 겁니까!”
환신이 칼을 내밀고 소리쳤다.
그의 몸 주변에서는 회색 연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에요.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고요. 그런데 아저씨. 승미 학생이 지금 아저씨가 이러는 걸 바랄까요?”
현수가 물었다.
“뭐요?”
“아저씨 몸에는 악귀가 된 승미 학생이 깃들어 있어요. 악귀가 쓰였는데 아저씨는 지금 아저씨 의지대로 움직이고 계시잖아요.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아세요?”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이미 아저씨의 영혼 자체가 반 악귀처럼 되어 있다고요! 되레 승미 학생이 아저씨를 말리려고 아저씨 몸에 깃든 거라고요! 그런데 아저씨의 악한 마음이 더 강해서 아저씨 몸을 완전히 잠식하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헛소리하지 마!”
“스스로한테 물어보세요. 승미 학생이 정말 이런 복수를 바라는지. 아저씨 몸 안에 따님의 영혼이 있으니 답을 얻을 수 있으시겠죠.”
현수가 말했다.
그러자 잠시 우두커니 서 있던 환신은 칼을 떨어트리고 무릎을 꿇었다.
현수는 그 순간 달려가 환신의 머리에 부적을 붙였다.
“승미 학생이 바랐던 복수는 4년 전에 끝이 났어요. 아저씨가 하고 계신 건 복수가 아니라 광기에요. 이제 모든 걸 놓아주셔야 할 때에요.”
현수가 말했다.
“끼야아아아아악-!”
순간 환신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부적에 반응한 여학생 악귀가 몸에서 몸부림치는 것이었다.
현수는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한 환신의 입에 팥을 욱여넣었다.
그러고는 입을 틀어막은 채 입을 꾹 억눌렀다.
몸부림치는 환신과 현수의 힘 싸움.
“큭!”
확실히 엄청난 힘이었다.
황소 투우 게임기를 하듯 몸이 거세게 들썩였다.
현수는 이를 악물고 더욱 세게 환신을 짓눌렀다.
그의 입을 틀어막은 손 틈으로 거품이 새어 나왔다.
웨에에에에에엥-
그때, 밖에서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현수는 점점 눈이 풀린 채 의식을 잃어가는 환신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이번 당해고등학교에서의 촬영은 생방송 순간 시청자 최고 20만 명을 기록했다.
해외가 아닌 국내에서 촬영을 한 것으로는 최대치에 다다랐다.
그만큼 국내에서도 엄청난 이슈를 불러왔다.
대한민국 최고 명문 고등학교 중 한 곳에서 발생한 사건.
4년 전 발생했던 학교폭력과 자살사고.
그리고 교통사고로 소문이 났던 가해 학생들의 진상들.
교장과 교감, 그리고 당시 학폭위 관계자들은 모두 대기 발령이 떨어지거나 경질되었다.
또한 전국적으로 학교폭력을 다시금 단속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당해고등학교의 아웃풋이 엄청난 만큼 모든 것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환신은 살인미수로 기소되었지만 여러 요소에서 정상 참작되어 중형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승미 학생이 사망한 후, 환신은 아내와도 이혼하고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었다고 전해졌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환신은 결국 딸에 대한 복수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딸이 죽은 후 당해고등학교에 취직한 그는 교내에서 발생하는 학교폭력에 대한 정황과 정보를 모두 기록을 해두고 있었다.
이런 일이 또 발생하지 않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기도 한 것이었다.
또 하나.
허태훈은 발견되지 않았다.
교내 CCTV를 통해 그가 급식실 주방으로 진입한 것은 확실히 포착이 되었지만 경찰이 갔을 땐 그는 이미 도주한 후였다.
이번에도 놓치고 만 것이었다.
하지만 현수로선 어쩔 수 없었다.
교감의 비명이 들리는 와중에 그와 계속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론적으로 당해고등학교에서의 촬영은 씁쓸함만을 남긴 채 마무리가 되었다.
가해 학생들이 사망했던 사고도 재조사가 이루어졌지만 타살의 증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현상적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이 지나가게 된 것이었다.
후기 방송까지 진행한 이후, 일부 학부모들이 방송을 내려달라고 요청하였다.
학교의 명예가 실추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들의 요청을 들어줄 그 어떤 법적 이유는 없었고, 현수는 생방송 영상과 후기 방송, 그리고 클립과 쇼츠를 계획대로 업로드, 유지하였다.
* * *
현수가 영상을 올리고 다른 촬영을 하며 일주일의 시간이 흐른 후.
현수는 당해고등학교에 다시 찾아갔다.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는 풍경.
정겨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는 학교에 가는 것이 어찌나 싫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현수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피식 미소를 지었다.
“저기.”
현수 옆에 있는 수정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현수가 고개를 들어보자, 학교 앞 도로 가운데에 한 여학생 악귀가 서있었다.
그녀는 얼굴에 피가 잔뜩 묻어 있는 모습이었다.
“그 가해자 학생 중에 학교 앞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그 학생 맞죠? 승미 학생이 떠나고 아저씨가 그만 두면서 저 가해 학생들도 다 성불했을 줄 알았는데 왜?”
현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여학생 악귀에게 다가갔다.
여학생 악귀는 무표정하게 현수를 응시하고 있었다.
“승미 학생의 복수도 끝났고, 이환신 씨도 이곳을 떠났는데 왜 여기 있죠?”
현수가 물었다.
그러자 여학생 악귀는 입을 꾹 다물고 눈물을 흘렸다.
‘내가 사고가 났을 때, 나를 보고도 구해주지 않은 사람이 그 경비였어.’
여학생 악귀의 음성이 현수의 머릿속에 들려왔다.
“아.”
다른 두 학생은 악귀가 된 승미 학생의 복수로만 죽었던 것이지만 이 학생은 승미 학생의 복수로 사고를 당한 다음, 환신에게 목격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복수심에 불탔던 환신은 피 흘리며 죽어가는 이 학생을 보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기에 이 여학생 악귀는 승미 학생뿐만 아니라 환신에게도 원한이 깊게 박혀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승미 학생이 사라진 지금도, 이곳에 있는 것이었다.
“이래저래 가슴 아픈 사연이지만 여기 이렇게 남아 있는다고 달라질 것도, 나아질 것도 없어요.”
현수가 고개를 숙이고 나지막이 말했다.
슥
그러고는 가방에서 밀짚인형을 꺼냈다.
키야아아아아아악
여학생 악귀는 눈을 크게 뜨고 비명을 지르며 부적이 붙은 밀짚인형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현수는 재빨리 액막이 부적을 덧붙이고는 가방에 집어넣었다.
빙글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서 학교에서 멀어졌다.
악귀의 비명소리는 현수와 수정을 제외한 누구도 듣지 못했다.
“애초에 누군가의 원한 살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다 좋았을걸.”
현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 *
툭
공터로 온 현수는 방금 악귀를 붙잡은 밀짚인형을 불에 태웠다.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드는 가운데, 밀짚인형은 연기를 뿜어내며 활활 타올랐다.
그리고 이어 이번 퇴마 때 사용했던 부적들도 한 장씩 꺼내 불 속에 집어넣었다.
뜨거운 불길과 함께 열기가 느껴졌다.
사연 없는 죽음은 없는 만큼 매번 현장을 나갈 때마다 씁쓸한 마음이 한 편에 자리 잡았지만 이번에는 선한 자도, 악한 자도 없는 미묘한 마무리가 된 것 같아 더욱 마음이 불편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위즈소카 수용소에서와 비슷한 상황 같기도 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며 서로가 서로의 영혼을 옭아매고 저주하는 것.
당해고등학교에서는 딸에 대한 사랑이 한 층 더 얹어져 발생한 슬픈 일이었다.
우우우우우웅
한창 불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현수에게 전화가 왔다.
현수가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현수님! 저예요.]
“아. 매니저님.”
[이번에 저희 회사 쪽으로 의뢰가 한 건 들어왔는데요.]
“의뢰요?”
회사로 퇴마 의뢰가 들어오기는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달라진 퇴마 방식에 흥미를 보인 시청자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쪽에서 미팅을 하자고 하는데 언제 시간이 괜찮으세요?]
세정이 물었다.
현수는 타오르는 불길을 가만히 보며 대답했다.
“잡아주시면 거기 맞출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