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7화
107화 - 당해고등학교 (5)
“제발 우리를 좀 내버려 둬!”
환신이 소리쳤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환신의 것인지, 악귀의 것인지 헷갈렸다.
평소 같으면 악귀일 거라고 확신을 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악귀에 쓰여 회색 아우라를 내뿜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그의 눈빛과 음성은 처음 봤던 환신의 모습, 그대로기 때문이었다.
마치 악귀에 ‘반’만 쓰인 것 같았다.
가만히 그를 보던 현수가 물었다.
“이승미 학생과 무슨 관계죠?”
현수의 질문에 방고리와 세정이 고개를 갸웃했다.
“악귀에 쓰이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 보면 아저씨, 정신을 잃은 상태가 아닌 것 같아요. 한 마디로 악귀가 몸에 들어오는 걸 허락해 준 것 같거든요?”
현수가 자세를 살짝 낮추고 진정하라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방고리와 세정은 긴장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아까 별관 옥상에서. 일부러 제 인형을 밟으신 거죠? 제 퇴마를 막으려고요.”
“우리를 방해하지 마.”
현수의 질문에 환신이 이마를 붙잡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승미 학생과 무슨 관계입니까.”
현수가 다시 물었다.
그러자 환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승미는 내 딸이었습니다. 어려운 와중에도 공부로 이 학교까지 왔는데 저 애들 때문에 죽기까지 했어요. 저 애들을 영원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승미가 죽은 후로 온 가족이 다 흩어져 살고 있다고요!”
환신이 소리쳤다.
“승미 학생이 무사히 하늘로 올라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의뢰를 주신 분이 승미 학생 친 오빠인 건 아시나요?”
현수가 물었다.
그러자 환신이 미간을 찌푸렸다.
“물론 그 학생들이 왕따를 놓고 친구를 괴롭힌 건 천인공노할 짓일 수 있죠. 승미 학생이 가졌을 고통과 슬픔, 분노는 감히 제가 가늠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영원히 그 친구들을 괴롭히는 게 맞는 걸까요?”
“나한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내 딸이었어요. 수백 년 동안 걔네들을 죽이고 또 죽여고 시원찮을 겁니다.”
“과연 승미 학생이 그걸 바라고 있는 걸까요?”
현수가 물었다.
그러자 과학실 안에 찬 공기가 휙 휘몰아쳤다.
악귀의 기운이 점점 강해지는 것이었다.
현수는 그 기운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아마 승미 학생이 극단적 선택으로 악귀가 된 후에 복수를 하려고 그 세 친구들을 죽음으로 몰았을 수 있죠. 하지만 그 뒤로 계속 반복되고 있는 살인 때문에 그 친구들은 물론 승미 학생까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용서가 안 돼. 저 애들이.”
환신은 무릎을 꿇고 흐느꼈다.
“산 자의 영역과 죽은 자의 영역을 관통하는 건 바로 ‘사랑’과 ‘분노’라는 감정이에요. 승미 학생이 복수를 한 이후에도 떠나지 못하고 이곳에 남아 그 친구들의 영혼을 계속 죽이고 있는 건 결국 아저씨의 ‘복수심’과 ‘분노’, 그리고 승미 학생에 대한 ‘사랑’ 때문인 거죠.”
현수가 환신에게 한 걸음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그 감정이 거대한 철창이 되어서 되레 승미 학생과 그 세 친구들의 원혼을 이 학교에 구속시키고 있는 것이라고요.”
현수의 말에 환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물을 떨어트렸다.
“이제는 용서해 주세요. 그래야 승미 학생도 편한 곳으로 갈 수 있어요. 보셨잖아요. 승미 학생까지도 별관에서 계속 반복적으로 투신하고 있는 거.”
현수가 말했다.
“당신들은 아무도 몰라요. 우리가 얼마나 절망적인지. 얼마나 슬픈지. 얼마나 괴로운지.”
환신이 받아쳤다.
“모르죠. 하지만 이렇게 원혼들을 묶어두고 있는 건 아니에요. 아마 승미 학생이 사망한 후, 이 학교에 경비원으로 취직을 하셨겠죠. 진상을 파악하려고. 그렇죠?”
현수의 질문에 환신이 대답했다.
“우리 딸을 괴롭힌 애들은 아무도 처벌 받지 않았어요. 심지어 귀신이 된 우리 딸이 그 애들을 죽인 후에도,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교통사고라고만 알려졌죠. 우리 딸애만 억울하게.”
환신의 말에 모두가 숙연해졌다.
- ㄷㅎㄱ 교장이 개개끼네.
- 저 아저씨도 안타깝다.
- 근데 엄밀히 따지면 사람을 다치게 한 건 한 번도 없는 거잖아. 저 아저씨 처벌은 안 받겠네.
- 진짜 슬프겠다.
- 학교폭력은 진짜 근절되어야 함.
- 내가 저 상황이었어도 내 딸 괴롭힌 애들은 수천 번이고 죽이고 싶을 듯.
- 이해된다.
채팅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올라왔다.
환신에 대한 옹호 여론이 더 커지고 있었다.
그때 창 밖에서 빛이 한 번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방고리가 창가로 다가가 밖을 보았다.
교문으로 차가 한 대 들어오고 있었다.
끼익
차는 운동장 한 가운데 서더니 50대 후반 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내렸다.
당해고등학교의 교감이었다.
“촬영을 중지시키려고 오는 것 같아요.”
방고리가 현수를 보며 말했다.
“아니, 뭐한다고 교감까지 행차를 하신대?”
“젊은 선생을 보내기엔 꿀리는 게 많은가보죠. 학생들 죽음의 원인을 다른 걸로 소문낸 것도 있으니.”
현수가 환신을 보았다.
어느새 그는 일어나 있었고, 한 쪽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다.
“잘 됐네. 이 애들을 모두 용서하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게 기도할게요. 대신 상황이 이렇게 되도록 방치한 이 학교 교직원들. 그 자들을 대표해서 교감은 내 손으로 끝장낼게요.”
환신의 어깨 위에서 회색 아지랑이가 격렬하게 피어올랐다.
“안 돼요!”
현수가 솔트샷건을 들어 겨누는 순간, 환신은 과학실 창문을 깨고 밑으로 몸을 던졌다.
챙그랑-
“아저씨!”
현수와 방고리가 창문으로 다가가 아래를 보았다.
역시 악귀에 쓰인 사람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환신은 1층 화단에 착지를 한 후 운동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교감 선생님! 도망치세요! 도망쳐요!”
현수가 운동장에 대고 소리쳤다.
그러자 본관으로 걸어오던 교감이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환신이 뛰기 시작하자 교감은 화들짝 놀라더니 체육관, 급식실이 있는 건물로 달렸다.
본관과 별관은 같은 방향에 위치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도망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차를 타자니 시동을 걸고 출발하기 전에 환신이 도착할 것 같았다.
그런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운동장 너머에 있는 체육관뿐인 것이었다.
환신은 그런 교감을 따라 체육관으로 냅다 달렸다.
“우리도 저쪽으로 가죠!”
현수가 소리쳤다.
* * *
쾅 쾅 쾅 쾅
환신은 굳게 닫힌 체육관 문을 거세게 두드렸다.
하지만 먼저 안에 들어간 교감이 문을 잠갔는지 열리지 않았다.
환신은 발로 문을 뻥 걷어찬 후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건물 옆쪽으로 돌아갔다.
다른 문을 찾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본 현수 일행은 체육관 앞에 도착해 문을 열어보았다.
당연하게도 잠겨 있었다.
“선생님! 박현수입니다!”
현수가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지만 안에서는 아무 반응도 넘어오지 않았다.
교감은 이미 문을 잠근 뒤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아까 경비아저씨가 저쪽 모퉁이로 돌아갔는데.”
방고리가 건물 옆쪽을 보며 말했다.
- 거기로 돌아가면 급식실 주방으로 들어가는 문 있어요.
- 급식실로 들어가면 체육관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당해고등학교 학생들로 보이는 시청자들이 안내를 해주었다.
“가죠.”
현수가 앞장서서 건물 옆쪽으로 냅다 뛰었다.
- 그 모퉁이 돌면 애들 몰래 식후땡 하는 작은 공터 있어요. 거기 끼고 돌면 급식실 주방 문 있음여. 배식 아줌마들 출퇴근 하는 문.
- 아 맞아 맞아 그거 있다.
세정은 수시로 채팅을 확인하며 현수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어디로 가면 될지 빠르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마치 게임 방송을 하는 동안 시청자들이 공략이나 동선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게 시청자들에게는 새로운 ‘재미’가 되기도 했다.
- 거기, 거기.
- 거기요!
현수 일행은 채팅을 보면서 체육관 건물을 뺑 돌았다.
그러자 건물 뒤편에 있는, 열려 있는 문을 발견했다.
문을 부쉈는지 문고리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현수 일행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손전등을 비추면 우리 위치가 드러나니까 끄고 갈게요. 카메라 야간 모드로 바꾸시고.”
현수가 속삭였다.
그러자 일행 모두 손전등을 껐다.
그리고 동시에 생방송 중인 화면은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현수와 방고리는 눈이 야간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잠시 서 있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일행은 발자국 소리를 최대한 내지 않게 조심히 이동을 했다.
급식실 주방에 들어서자 음식 냄새가 뒤섞인 특유의 주방 냄새가 확 풍겨왔다.
현수 일행은 스테인리스로 된 싱크대와 각종 주방기기들 사이로 계속 걸음을 옮겼다.
- 거기서 주방 밖으로 나가면 애들 밥 먹는 데 나오고 거기 지나면 바로 체육관임.
- 그 길 따라 쭉 가시면 됨.
당해고등학교 시청자들이 계속해서 길을 알려주었다.
그 순간이었다.
끼잉- 쾅-
방금 들어왔던 문이 세게 닫혔다.
현수 일행이 화들짝 놀라 뒤를 보았다.
누군가 문을 닫은 것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이어 주방 전체에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일행들은 환신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야간시로 보이는 발자국 소리의 정체는, 환신과 덩치 차이가 있었다.
조금 더 왜소한 듯한 느낌이었다.
현수는 순간 운동장에서 스치듯 보았던, ‘허태훈’으로 추정되는 악귀를 떠올렸다.
어쨌든 중요한 건 환신은 체육관 쪽으로 갔고, 앞에 또 다른 악귀가 있다는 것.
기도비닉이 중요한 상황이 아닌 듯했다.
“준비해요.”
현수가 말하자 방고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순간, 현수가 손전등을 확 켰다.
팍
갑자기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자 모자를 쓴 남자가 얼굴을 가렸다.
확실히 허태훈이었다.
현수는 바로 솔트샷건을 마구 쏘았다.
촤악 촤악 촤악-
소금이 튀며 스테인리스 주방기기에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확실히 전보다 더욱 강력해진 압력이었다.
“크극! 큭! 큭!”
소금에 맞을 때마다 허태훈이 괴로운 듯 몸부림을 쳤다.
- 허태훈이다!!!
- 신고 해! 신고 해!
- 저기 어디에요???
- 신고 해요!
- 허태훈 확실함!!
시청자들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사이, 소금을 견디던 허태훈이 옆에 있던 프라이팬을 집어 던졌다.
“악!”
현수가 프라이팬에 맞고 뒤로 주춤거렸다.
순간 허태훈은 품에서 장도리를 꺼내 높이 치켜들었다.
현수의 머리를 후려치려는 것이었다.
빠각-
그때 방고리의 팥알이 허태훈의 관자놀이에 날아가 맞았다.
강한 충격을 받은 허태훈의 머리 옆으로 회색 형체가 불쑥 튀어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
마치 탄성을 가진 물체 같았다.
“이것들이-!”
허태훈이 소리쳤다.
- 신고 했음여.
- 나도 신고했는데.
- 신고했어요!!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이 신고를 해주었다.
당해 고등학교 급식실 주방.
위치 또한 아주 명확했다.
“키야아악!”
허태훈이 방고리를 향해 덤벼들었다.
우당탕탕
허태훈과 방고리가 서로 멱살을 잡고 뒤엉켰다.
“죽어어!!”
허태훈이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현수는 바로 덤벼들어 소리치고 있는 허태훈의 입에 팥을 한 움큼 욱여넣었다.
“쿠에에엑!”
그러자 허태훈이 토를 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현수는 거침없이 총구를 들고 바로 방아쇠를 쏘았다.
파아아아앙
이번에 쏟아져 나온 소금은 바로 허태훈의 가슴에 명중했다.
그러자 허태훈이 뒤로 쭉 날아가며 커다란 냉장고에 부딪혔다.
콰당-
충격을 받은 허태훈이 바닥에 쓰러졌다.
“으아아아악-!”
그때, 체육관 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현수는 쓰러진 허태훈과 주방 출구를 번갈아 보았다.
교감의 비명이 틀림없었다.
“젠장.”
지금은 도리가 없었다.
경찰에 신고가 들어갔다고 하니 허태훈을 잡는 것은 경찰에게 맡기고 현수는 교감을 빨리 구해야 했다.
현수가 손전등을 밝게 켜고 달렸다.
그 뒤로 방고리와 세정도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