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6화
# 당해고등학교 (4)
현재 시청자 수 74611명.
경비원인 환신이 본관으로 끌려간 이후, 시청자는 엄청나게 빠르게 폭증했다.
시청자들은 진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물론 현수와 세정, 방고리는 그 어떤 때보다 긴장한 상태였다.
귀신의 수나 악귀의 힘을 봤을 땐 위즈소카 수용소나 노로이노무라에서의 악귀가 더욱 강력했지만 이번엔 겨우 세 명이서 움직이고 있는 만큼 괜스레 더 공포를 느끼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주변에 사람들이 많냐, 적냐가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뚜벅 뚜벅 뚜벅
현수와 방고리, 세정은 형광등 스위치가 보일 때마다 켜며 1층부터 수색해 올라갔다.
현수는 자신의 눈과 EMF 탐지기를 통해 귀신의 흔적을 찾았고, 방고리는 세정의 촬영 카메라를 함께 확인하며 살펴 나갔다.
까아앙- 까아앙-
1층 수색이 끝날 무렵, 위층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걸음을 옮기던 현수와 방고리가 멈추고 천장을 보았다.
까아앙- 가라랑-
쇠로 된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긁는 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현수는 불현 듯, 부산 장산에서 오함마로 위협을 했던 스태프 악귀를 떠올렸다.
그가 오함마를 들고 바닥을 끌 때 났던 소리와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현수는 올라가자는 손짓을 하며 솔트샷건을 꽉 쥐었다.
“파이팅.”
수정이 현수의 옆에서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이번에는 경고성 메시지를 던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생각보다 호전적인 악귀는 아닌 모양이었다.
물론 그것도 겪어봐야 알 수 있겠지만.
*
현수 일행이 2층으로 올라와 복도 형광등을 켰다.
그러자 캄캄했던 복도에 불이 들어오며 교실 창문들과 소화전 등이 보였다.
그리고 한쪽 복도 끝에는 구름다리와 연결이 되는 철문이 보였다.
아까 현수가 어깨로 밀어 쳐 열려 했던 바로 그 문이었다.
띠딩- 띵- 파밧-
그 철문 앞에 있는 형광등 하나가 요란하게 깜빡였다.
복도 천장에 균일한 간격으로 쭉 설치되어 있는 형광등 중 유독 그쪽 형광등만 깜박이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수의 눈에는 무언가 특이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전자기기들이 이상반응을 보이는 건 귀신의 흔적 중 하나인데.’
현수가 걸음을 옮기며 걸어가는 사이, 방고리가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그게 뭐에요?”
현수가 묻자 방고리는 손목 지지대가 있는 스테인리스 새총을 꺼냈다.
“캡틴 형님이 그 샷건으로 소금 쏘면서 귀신 잡는 거 보고 저도 뭐 좀 있어야겠다 싶어서요.”
“그걸로 뭘 쏘게요?”
“팥을 찐 다음에 가루를 내서 떡처럼 만든 다음 굳힌 거예요.”
방고리가 손가락 한 마디만한 갈색 구체를 꺼내 보였다.
“와. 딱딱하네요?”
“떡도 상온에 가만 놔두면 딱딱해지잖아요. 같은 원리죠.”
“이런 거 준비해 오신 걸 왜 이제 말씀하신대요? 하하.”
“서프라이즈로 멋있게 딱 꺼내려고 했는데 지금 너무 긴장 돼서 뭐라도 손에 쥐고 있어야겠어요.”
방고리가 새총을 장전하며 말했다.
“방고리님은 귀신을 보거나 하지 않으시니까 제가 가리킨 곳이나 제가 솔트샷건을 쏘는 곳에 새총을 쏘세요.”
“알겠어요.”
방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 찐 파티원이 되었다.
- 캡틴님이 딜러면 방고리님이 원딜인 건가?ㅋㅋㅋㅋㅋㅋ
- 새총이면 저격수 포지션인가 나름???ㅋㅋㅋㅋㅋ
- 아무래도 솔트샷건보다는 사거리가 길긴 할 것 같은데.
- 슬링샷 저거 의외로 되게 세요. 쇠구슬로 하면 캔 몇 개는 한 번에 뚫음.
- 슬링샷이 의외로 사거리는 짧음. 원형이라서.
- 그래도 솔트샷건보다는 멀리 갈 테니까.
- 나도 솔트샷건 저렇게 개조해보고 싶다.
시청자들은 방고리의 ‘무장’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깜빡- 깜빡-
현수 일행은 그 사이 철문 쪽으로 조금씩 다가갔다.
거리가 좁혀질수록 형광등은 더욱 격렬하게 깜빡거렸다.
그러다 문득, 깜빡거리는 어둠 사이로 여학생 악귀의 모습이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귀신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여기 왜 이러는 거예요? 괜히 재수 없게.”
방고리가 물었다.
“귀신의 기운이에요.”
현수가 대답했다.
그 사이 ‘가라랑’하는 소리가 또 들려왔다.
“위에서 난 소리 같아요.”
현수가 말했다.
그때, 채팅창을 본 세정이 잠시 멈추라는 손짓을 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현수가 다가가 채팅창을 함께 보았다.
- ㄷㅎㄱ 재학생입니다. 예전에 본관 3층 과학실에서 어떤 선배가 창문에서 떨어져서 죽었다는 소문이 있어요. 자살이냐 아니냐 말은 많았는데.
- 자살 아니에요. 창틀에 걸터앉아 있는 게 습관이었는데 실수로 떨어졌음.
- 일진이었넼ㅋㅋㅋㅋㅋㅋㅋㅋ
- 그 엄마가 엄청 부자라 죽고나서 학교에서 굿했다던뎈ㅋㅋㅋㅋ
- 그 학교 졸업생입니다. 과학실 귀신은 자살한 귀신 아니에요.
시청자들의 채팅을 본 현수는 ‘최정아’라는 학생이 과학실에서 죽었다는 걸 눈치 챌 수 있었다.
“과학실로 가보긴 해야 할 것 같네요.”
현수가 방고리를 보며 말했다.
방고리는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깜빡 깜빡-
형광등은 여전히 깜빡이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현수가 들고 있는 EMF 탐지기의 LED 불빛이 빠르게 올라갔다.
“어?”
현수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방고리의 뒤로 여학생 악귀가 다시 나타났다.
“뒤!”
현수의 외침과 동시에 방고리가 허리를 숙였고, 현수가 솔트샷건을 들어 쏘았다.
팡-
하지만 여학생 악귀는 풀쩍 뛰어올라 천장에 거꾸로 매달렸다.
그러고는 네 발로 천장을 기어 반대편 복도로 빠르게 기어갔다.
여학생 악귀가 지나갈 때마다 형광등은 도미노처럼 순차적으로 깜빡거렸다.
“천장. 천장. 형광등이 깜빡거리는 곳!”
현수가 여학생 악귀를 쫓아가며 소리쳤다.
다다다다다다
셋은 복도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팡 팡 팡 팡
솔트샷건의 소금이 계속 뿜어졌지만 간발의 차로 여학생 악귀에게 닿지 않았다.
방고리는 현수가 솔트샷건을 쏘는 방향을 유심히 보며 새총의 고무줄을 당겼다.
그는 귀신을 볼 수 없었다.
현수의 말대로, 순차적으로 깜빡거리고 있는 형광등을 조준할 뿐이었다.
타닷
열심히 달리던 방고리가 뜀박질을 멈추고 조준에 집중했다.
그러고는 바로 고무줄을 놓았다.
파앗-
‘팥알’이 빠르게 날아갔다.
현수의 귀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고는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네발로 기어가고 있던 여학생 악귀의 등에 정확히 맞았다.
파캉-
날아갔던 팥알은 여학생 악귀를 관통하고 형광등을 깨부쉈다.
동시에 팥에 맞은 여학생 악귀가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방고리가 보기에는 새총으로 형광등만 깬 것 같았다.
“마, 맞은 거예요?”
방고리가 물었다.
“네. 제대로 맞췄어요.”
현수가 허겁지겁 밀짚인형을 꺼내며 대답했다.
방고리는 기쁜 듯 웃으며 카메라에 대고 엄지를 들었다.
- 오 나이스샷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스나이퍼넼ㅋㅋㅋㅋㅋ
되레 심령카메라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는 시청자들이 이 광경을 더 정확히 파악했다.
회색 형체가 천장에서 이동하고 있다 방고리의 슬링샷에 맞자마자 떨어지는 걸 봤기 때문이었다.
깡- 가라랑-
위층에서 또다시 쇳소리가 들렸다.
‘잠깐만. 별관에서 봤던 이 여학생 악귀가 내는 소리가 아니었나?’
현수가 문득 멈칫했다.
여학생 악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다시 도망가기 시작했다.
화아아아아아
찬 공기가 휘몰아치며 모든 교실 문이 활짝 열렸다.
현수와 방고리, 세정 모두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른 방향에서 귀신이 튀어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 여학생 악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왜 갑자기 주저한 거예요?”
방고리가 물었다.
“위에서 소리를 내는 무언가가 또 있는 것 같아서요. 그 소리를 듣고 놀라서 그만.”
현수는 손등으로 입을 훔치며 계단으로 향했다.
* * *
3층으로 올라와 스위치를 켜보았다.
달각 달각
하지만 3층 스위치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현수와 방고리, 세정은 서로를 보았다.
분명 바로 어제까지도 사용했을 스위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그다지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현수가 EMF 탐지기를 꺼내 작동시켜 보았다.
LED 불빛이 끝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깡- 가라랑-
3층에 올라오니 쇳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그리고 그 방향은 분명 과학실 쪽이었다.
현수와 방고리가 서로 눈빛을 교환한 후 과학실 쪽 복도로 이동했다.
깡- 가라랑-
주기적으로 쇳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깡- 가라랑-
확실히 과학실 앞에서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현수가 창문으로 슥 안을 보았다.
창틀에 여학생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여학생 역시 회색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는 것이 악귀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얼굴도 별관에서 보았던 이승미처럼 얼굴이 뭉개져 있었다.
언뜻 보면 이승미 학생과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비슷하게 ‘망가져’ 있는 것이었다.
현수가 창틀 쪽을 가리키자 세정이 카메라로 그 창문을 비췄다.
그러자 회색 형체가 아른거리는 장면이 포착 되었다.
- 맞아. 저 창문이야.
- 저기 맞아요.
- 저기가 귀신 나온다는 자리임.
당해고등학교 학생들로 보이는 시청자들의 채팅이 이어졌다.
아마 학교 내부적으로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이 방송을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현수는 과학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창틀에 앉아 있던 악귀가 현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최정아’ 실명을 불러볼까 했지만 그녀의 실명을 불러도 된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기에 부를 수 없었다.
“거기서 사고를 당한 학생이 맞죠?”
현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학생 악귀는 창틀에 앉아 가만히 현수를 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또 다른 여학생 악귀가 나타나 창틀에 앉은 악귀를 확 밀쳤다.
그러자 창틀에 앉아 있던 악귀가 창밖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어 악귀는 다시 올라와 창틀에 앉았다.
별관 옥상에서 봤던 것처럼, 그때 그 사고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것이었다.
“일종의 저주에요. 워낙 원한이 강해서 그때 그 죽음이 계속 되풀이 되고 있는 거예요.”
현수가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어?”
그때 방고리가 과학실 구석을 가리켰다.
인체 모형도 마네킹 옆에 서 있는 환신이 보였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현수가 물었다.
그러자 환신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어깨에 스멀스멀 피어나는 회색 연기.
악귀에 쓰인 상태였다.
“우리를 방해하지 마.”
환신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우리를- 방해하지 말라뇨?”
현수가 되물었다.
“우리를 방해하지 마. 저것들은 ‘영원히 죽어야’ 해.”
환신이 대답했다.
‘영원히 죽어야 한다?’
그 말을 들은 현수는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지금 환신의 몸에 깃든 악귀가 이승미라면, 그녀는 자신을 죽음으로 내몬 3명의 학생을 영원히 반복해서 죽이고 있는 것이었다.
귀신이 되어서도, 귀신이 된 그녀들을 죽이고 또 죽이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를 방해하지 마. 안 그러면 너희도 죽일 거야.”
환신이 말했다.
- 심령카메라 보셈. 저 아저씨 몸에서 회색 형체가 보이잖음. 악귀에 쓰인 거임.
- 또????
- 진짜 지긋지긋하겠다.
- 무서워ㅠㅠㅠㅠ
“방해하려는 게 아니에요.”
현수가 솔트샷건의 총구를 살짝 위로 들며 말했다.
지금 이 악귀와는 대화가 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승미, 그녀는 자신을 괴롭혔던 학생들에 대한 복수로 똘똘 뭉쳐 있을 뿐이었다.
아울러 지금까지 겪었던 악귀와는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