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화
# 공포 예능 야담 (7)
- 재밌네?
현재 상황이 방송되고 있던 중 채팅 하나가 올라왔다.
아이디 h2918401.
세정은 이 다급한 상황에서도 그 아이디를 보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허태훈일지도 모르는 아이디기 때문이었다.
악귀, 허태훈.
세정은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을 떠올리면서, 허태훈이 이 장면을 보고 있다면 어떻게 현수를 노릴지 분석했을 수 있다는 추측을 했다.
그 사이, 스태프는 각목을 치켜든 채 현수에게 다가갔다.
“키야아악!”
스태프가 각목을 높이 치켜들고 소리쳤다.
그 순간이었다.
빠각
뒤에서 누군가 스태프의 등을 각목으로 후려쳤다.
각목이 부러지며 날아갔고, 현수를 위협하던 스태프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세정과 현수가 놀라 고개를 돌려보았다.
다름 아닌 우재석이었다.
우재석은 부러진 각목을 들고 서있었고, 그 뒤에 혜련이 서있었다.
“재석님! 혜련님!”
현수가 소리쳤다.
“키야악!”
스태프가 벌떡 일어나 우재석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우재석은 굉장히 말랐지만, 운동으로 다져진 몸을 가지고 있었다.
덥석!
그는 스태프의 멱살을 잡고는 그대로 옆으로 밀쳤다.
그러자 스태프는 무게중심을 잃고 그대로 나뒹굴었다.
우당탕
그 사이 우재석이 현수를 일으켜 주었다.
“거기 계시라니까 왜 여기에 오셨어요!”
“지금 그곳에 있을 때가 아니었어요. 119에 신고했습니다. 곧 구급대원들이 올 거예요.”
“119에요?”
현수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그 흉가, 흉가에-”
혜련이 발을 동동 구르며 말을 하려는 순간, 다시 한번 스태프가 덤벼들었다.
우재석은 그런 스태프의 멱살을 다시 한번 잡고는 뒤로 넘겨 버렸다.
쿵!
스태프가 바닥에 쓰러지자 현수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액막이 부적을 스태프의 몸에 바싹 댔다.
그러고는 힙색에서 팥을 꺼내 비명을 지르는 스태프의 입에 들이부었다.
“커거걱! 커걱! 커걱! 커걱!”
스태프가 괴로운 듯 비명을 질렀다.
이내 코와 눈에서 피를 주르륵 흘리기 시작했다.
현수는 스태프가 팥을 뱉지 못하게 입을 틀어막고 부적을 가슴에 댔다.
스태프는 이내 격렬히 경련을 일으켰고, 숨진 것처럼 축 늘어졌다.
사아아아아
이어 회색 아지랑이도 바닥으로 스미어 들어갔다.
현수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았다.
귀신의 한기도, 악귀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사백안의 악귀가 소멸된 것인지, 도망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찌되었든 당장의 위협은 사라진 것이었다.
* * *
‘야담’의 녹화는 완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황PD를 비롯해 악귀에게 빙의가 되었던 사람들은 아무것도 기억을 하지 못했고, 스태프 중 한 명은 흉가에서 자살시도를 한 채 발견이 되었다.
우재석과 혜련이 현수와 헤어진 뒤 흉가에 들어가자마자 이걸 보고 119에 신고를 한 것이었다.
그리고 왕벌보살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의 무당집에 무사히 돌아갔다는 실장의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악귀에게 놀라 도망간 것에 대해 창피했던 모양이었다.
물론 본인은 신령님의 ‘계시’니 어쩌니 하며 입장발표를 회피했지만.
그리고 마지막에 악귀와 융화되었던 스태프는 가정폭력을 일삼던 악독한 남자였다.
의처증 때문에 아내를 때리고 아이들을 괴롭히는 후안무치였던 것이다.
여기에 그가 현수와 우재석을 폭행하고 위협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기면서, 현수와 우재석이 그를 공격했던 것은 정당방위로 무혐의 처분이 떨어졌다.
아울러 혜련뿐 아니라 우재석과의 친분도 쌓이는 결과를 낳았다.
우재석은 나중에 다른 프로그램을 하게 되면 꼭 초대를 해주겠다는 말을 하며 현수와 헤어졌다.
그리고 우재석이 출연한 장면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써도 된다는 허락까지 맡았다.
생방송 영상뿐 아니라 클립이나 쇼츠로 업로드를 해도 좋다는 의미였다.
단, 우재석의 이미지에 타격이 갈만한 편집을 해서 올릴 경우에는 제재를 할 것이라는 첨언도 받았다.
현수는 애초에 우재석과 척을 질 생각이 없기에 생기지 않을 문제였다.
아무튼 방송 종료 이후, 생방송 실황 영상에는 수천 개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고 조회 수도 엄청난 폭등을 보였다.
우재석이 등장하는 것은 물론 지금까지와는 다른 격렬한 퇴마 장면.
거기에 바른 이미지인 우재석의 ‘액션’이 담긴 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구독자 수가 10만 명을 훌쩍 넘게 추가되어 무려 90만 스트리머 등극에 올라서게 되었다.
생방송 시청자 수는 평균 천 명에 불과했지만 영상이 업로드 된 후의 파급효과가 엄청났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후 현수는 몸에 난 멍과 상처를 보고 몸을 키워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악귀를 대하며 솔트샷건을 사용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육탄전을 해야 할 경우가 생길 수 있었다.
현수는 어떤 운동을 할까 고민하다 유도와 주짓수 쪽으로 결정을 했다.
아무래도 타격기보다는 상대를 빠르게 눕혀 제압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었다.
여기에 헬스 PT까지 끊어 본격적인 근력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 * *
여러 방송에 이어 운동 일정까지 추가된 현수는 그 어떤 때보다 바쁘게 일상을 보냈다.
또한 태환의 모친에게 부탁해 액막이 부적을 대량으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후, 태환의 모친에게 전화를 받은 현수는 수원으로 가 직접 만나 부적을 받았다.
그리고 부산에서 촬영되었던 영상을 보여주었다.
“악귀에 제대로 쓰인 경우네요.”
태환의 모친이 삼준공업에서의 스태프 악귀를 보며 말했다.
“역시 그렇죠?”
“네. 액막이 부적에 팥을 입에 물리는 것까지. 즉흥적으로 아이디어를 낸 것치고는 꽤 좋았어요. 많이 위험했지만.”
“아무래도 효과가 있는 것 같아서 이렇게 부적을 요청드리게 됐죠.”
현수가 부적이 잔뜩 든 박스를 퉁퉁 치며 대답했다.
“‘빙의’가 된다는 건 영혼이 산 사람의 몸을 그릇 삼아서 들어가는 거라고 보시면 돼요.”
태환의 모친이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악귀뿐 아니라 평범한 귀신들도 자신과 파장이 맞는 몸에 들어갔다가는 스스로 나가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죠. 아마 저 스태프는 악귀 같은 마인드로 살아와서 악귀의 마음에 들었던 것도 있겠지만 영혼의 파장도 잘 맞아서 저렇게 융화가 되었던 것 같네요.”
“아아. 그래서 소금에 맞아도 악귀가 빠져나오지 못했던 거군요.”
“네. 그래 보여요. 귀신이나 악귀에게 있어 액막이 부적이나 팥, 소금 같은 건 ‘불’이라고 보시면 돼요. 불이 근처에 있으면 뜨거우니까 피하게 되잖아요.”
“네, 그렇죠.”
“귀신과 악귀 역시 그런 액막이 용품들이 있으면 뜨거운 걸 피하듯 도망치는 건데 ‘그릇’ 안에 너무 세게 들어가게 되면, 즉 ‘빙의’를 넘어서 ‘융화’가 되어버리면 도망치고 싶어도 못 치게 되니까 꼼짝없이 당하게 되는 거예요.”
태환의 모친이 말했다.
그녀의 말을 정리하자면 이러했다.
소금과 액막이 부적, 팥 같은 퇴마 용품을 접했을 때 악귀가 적당히 도망쳐야 하는데 스태프의 몸에 악귀가 너무 세게 담겨 버리니 스스로도 탈출 못 하고 그 안에서 타들어 갔다는 말이었다.
“그럼 악귀를 효과적으로 잡기 위해서는 먼저 악귀를 누군가의 몸에 융화시켜야 하는 걸 수 있겠네요.”
“그런데 그것도 그거대로 굉장히 위험해요. 악귀에게 쓰이면 보통 사람의 근력으로는 대처하지 못할 테니까요. 더구나 도망을 못 치는 악귀는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고요.”
태환의 모친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융화되지 않은 악귀를 잡을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현실적으로 융화되지 않은 악귀까지 잡을 필요는 없을 수도 있어요. 방송 때문이라면 몰라도.”
태환의 모친이 말했다.
현수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태환의 집에서 나온 현수는 하늘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융화되지 않은 악귀까지 잡을 필요는 없을 수도 있어요.’
이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왜 그렇게 심각해?”
가게 앞에 서 있던 수정이 다가와 물었다.
무당인 태환의 모친이 운용하는 가게인 만큼, 가게 곳곳에 액막이 용품들이 놓여 있었고, 수정이 들어가기 힘들었던 것이다.
“음. 융화되지 않은 악귀를 잡을 필요가 없다는 태환이 어머님 말씀이 맴돌아서요.”
현수가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맞는 말이지. 사실 사람 몸에 들지 않는 이상 직접적인 피해가 큰 편은 아니니까.”
수정이 말했다.
“그런데 제가 흉가를 다니면서 귀신이나 악귀를 들쑤시고 다니는 거잖아요.”
“그것도 맞는 말이지. 그런데 어쩔 수 없어. 지금 너한테 떨어진 ‘운명’이 그건데?”
“운명이라뇨?”
“귀신들의 억울한 사연을 들어주고 성불시켜주는 거? 악귀도 마찬가지지, 뭐. 말 안 듣고 날뛰는 귀신이 악귀인 건데 걔네들도 성불시켜줘야지.”
“그거- 어떻게 아셨어요?”
현수가 수정을 보며 물었다.
“어? 뭘?”
“귀신들의 억울한 사연을 들어주는 거요. 그게 제 운명이라고.”
현수는 문득 자신이 구해줬던 할머니와 구형 스마트폰에 심령카메라를 설치했던 IT회사 프로그래머 출신 총각 귀신의 얼굴을 떠올렸다.
“에? 아냐, 아냐. 신경 쓰지 마.”
수정은 손사래를 치고는 뒷짐을 지고 흥얼거리며 앞서 걸었다.
현수는 고개를 갸웃하고 그녀의 뒷모습을 빤히 보았다.
뭔가 현수에게 말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는 것만 같았다.
물론 ‘죽은 자’와 ‘산 자’라는 차이 때문에 그녀가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이 많기야 하겠지만 현수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버릴 수 없었다.
“운동이나 가야겠다.”
현수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어차피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 * *
그 뒤로 며칠 동안 평소와 같이 일상을 보내는 현수.
신체 단련을 하면서 액막이 부적까지 모은 현수는 ‘융화되지 않은 악귀’도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고심해 보았다.
천도재와 같은 무속신앙.
혹은 만화에서처럼 호리병에 담는 것 등등에 대한 정보들이 노출되었다.
그리고 어떤 영화에서는 악마를 거울에 가두는 장면이 등장했다.
한참 자료 조사를 하던 현수는 한 가지 방법에 눈길이 갔다.
바로 인형에 악귀를 담는 것이었다.
이는 이미 수많은 미디어 매체에서도 공포 소재로 다뤘던 것이었다.
사람 모양의 인형에 악마나 악귀를 담아 소멸시키는 방법이었다.
이런 방법은 과거 실제로 많이 자행되었던 것이었다.
누군가를 저주할 때 밀짚인형에 못을 박는 등의 행위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해 볼 수도 있었다.
현수는 이 방법에 대해 태환의 모친에게 문의를 해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한 가지 팁을 알려주었다.
[귀신을 부르는 소리가 있어요. 그걸 인형에 달아놓고 던지면 본능적으로 그쪽에 들어가겠죠. 원한이 강한 악귀라면 금방 빠져나올 수 있겠지만 타이밍만 잘 잡으면 인형 안에 악귀를 봉인시키는 게 가능할 거예요.]
그녀의 말에 현수는 태환의 모친에게 악귀를 부르는 부적을 요청함과 동시에 밀짚인형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