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1화
#공포 예능 야담 (6)
현재 시청자 수 1231명.
확실히 평소보다는 현저히 적은 숫자였다.
하지만 출력되고 있는 화면은 그 어떤 때보다 역동적이었다.
파사사 파사사
수풀과 나무를 헤치며 달리는 현수의 뒷모습과 쫓아가는 세정의 카메라.
그리고 흔들리는 앵글.
화면 한 쪽에 자리 잡은 심령카메라.
정신없이 흔들리는 조명.
다소 어지러운 느낌도 있었지만 색다른 ‘연출’에 시청자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헉 헉 헉.”
현수가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보았다.
사방에서 하얀 아지랑이가 피어 올라왔다.
철컥
현수는 솔트샷건의 펌프를 당겨 장전한 뒤 주변을 경계했다.
“하이에나처럼 주변에서 널 지켜보고 있어. 조심해.”
수정도 경계하는 눈빛으로 주변을 보며 말했다.
“으아아아악!”
그 순간, 나무 사이에서 모자를 쓴 현장 스태프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현수는 순간적으로 그의 주변에서 뿜어져 나오는 회색 아지랑이를 포착했다.
악귀에 쓰여 있는 것이었다.
팡!
현수는 뒤로 물러서며 솔트샷건을 쏘았다.
촤아아악
소금이 흩뿌려지자 스태프가 뒤로 날아가며 회색 아지랑이가 사라졌다.
풀썩
스태프는 바닥에 널브러졌다.
화아아아악
이어 다른 방향에서 또 다른 스태프가 달려들었다.
그에게서도 회색 아지랑이가 피어나고 있었다.
“큭!”
그는 순식간에 접근해 현수의 멱살을 잡고 함께 나뒹굴었다.
“현수님!”
세정이 소리쳤다.
- 오 액션영홬ㅋㅋㅋㅋㅋ
- 위험한 상황 아님????
- 이건 진짜 약간 주작냄새가 나는데.
- TTP랑 캡틴 채널 손잡고 이런 컨셉으로 방송하는 거 아님??? 저 사람들 다 배우고.
- 그럴 수도 있겠다.
- 에이 그건 아니겠지.
시청자들도 현재 상황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모양이었다.
“꺄악!”
세정의 비명도 그대로 방송에 송출되었다.
“죽어!! 죽어어!!”
악귀에 쓰인 스태프는 현수의 목을 조르며 소리쳤다.
“크극!”
현수는 스태프의 악력을 고스란히 느끼며 고통스러워했다.
“크그극!”
점점 숨이 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현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옆을 보았다.
솔트샷건까지는 손이 닿지 않았다.
“크윽!”
점점 시야가 흐릿해지는 가운데, 더듬거리는 손끝에 돌멩이가 잡혔다.
현수는 돌멩이를 잡고 있는 힘껏 휘둘렀다.
빠악
악귀 쓰인 스태프가 옆으로 나뒹굴었다.
현수는 목을 움켜쥐고 일어나 솔트샷건을 쥐어 들었다.
“키릭!”
옆으로 쓰러졌던 스태프는 고통을 못 느끼는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일어났다.
현수는 그런 스태프를 향해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팡!
소금이 날아가 스태프의 머리를 정확히 맞췄다.
촤악
스태프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회색 아지랑이가 숙 빠져나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머리에 피를 흘리는 스태프도 고개를 뒤로 확 젖히며 그대로 실신했다.
“키요옷!”
이번에는 다른 방향에서 헤드셋을 착용한 스태프가 덤벼들었다.
그 역시도 악귀에 쓰인 기운이 역력했다.
팡!
현수가 방아쇠를 당기자 스태프는 풀쩍 뛰어오르더니 나무 위에 매달렸다.
마치 메뚜기 같은 느낌이었다.
“현장 스태프가 50명은 넘어 보였는데. 다 이런 식으로 상대해야 하는 거야?”
수정이 중얼거렸다.
현수는 나무에 매달린 스태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 어디 한 번 담판을 지어보자.”
호장리 폐 수영장에서 보았던 사백안의 악귀.
현수의 주변을 내내 맴돌고 있다던 그 악귀 때문에 다른 촬영을 할 때에도 놀랐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렇게 악귀를 쫓아내는 데에 성공한다면 쓸데없이 놀라는 일도 줄어들뿐더러 ‘퇴마’라는 컨셉에 더 어울리게 될 것이었다.
사실 현수 방송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 중 하나기도 했다.
‘캡틴 퇴마’라는 이름을 갖고 있고 많은 귀신들의 넋을 달래주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구상하는 ‘퇴마’를 수행한 적은 많지 않았다.
귀신들의 사연을 알아내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이렇게 전투적인 퇴마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역시도 방송에 도움이 될 것이었다.
물론 현수는 지금 이 순간엔, 폭발하는 아드레날린으로 이런 생각을 전혀 못한 채 전투에 임하고 있을 뿐이었다.
“캬악!”
나무에 매달려 있던 스태프가 현수를 향해 몸을 던졌다.
팡!
현수는 자신을 향해 떨어지고 있는 스태프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쑤우우욱
그러자 스태프의 몸에서 회색 악귀 형체가 빠져나오더니 다시 공중에 흩어졌다.
풍썩
스태프는 그대로 실신한 채 바닥에 쓰러졌다.
“주변에 있어. 돌고 있어. 계속.”
수정도 자세를 낮추고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세정 역시 현수와 주변을 돌아가며 촬영했다.
심령카메라에는 회색 아지랑이가 곳곳에 피어나고 있는 것이 포착되었다.
“크아아아악!”
그 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 붐마이크를 든 스태프가 달려들었다.
그는 고가의 붐마이크를 마치 창처럼 들고 있었다.
“큭!”
현수가 몸을 돌리며 방아쇠를 당기려 했지만 스태프가 훨씬 더 빠르게 접근했다.
콰악
현수와 스태프는 동시에 붐마이크의 봉을 잡고 힘겨루기를 했다.
하지만 악귀에 쓰인 스태프의 힘을 감당하기에는 어려웠다.
“이런 빌어먹을 새끼가.”
현수가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동시에 바닥에 떨어트린 솔트샷건을 보았다.
당장 주워 쏘고 싶었지만 여기서 힘을 빼면 그대로 균형이 깨지며 피습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당신!”
그 모습을 보던 수정이 세정을 보며 소리쳤다.
수정의 음성을 언뜻 듣기는 했지만, 처음으로 또렷하게 들은 세정이 깜짝 놀라 두리번거렸다.
“나는 소금이나 팥을 못 만져!”
수정이 덧붙였다.
세정은 빠르게 눈동자를 굴리다 떨어진 솔트샷건을 들고는 스태프의 머리에 총구를 조준했다.
팡!
방아쇠를 당기자 스태프의 머리에서 회색 아지랑이가 숙 빠져나왔다.
툭
풀썩
스태프와 붐마이크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세정은 놀란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 방금 FPS게임 같았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와 존잼탱이넼ㅋㅋㅋㅋ
- 이게 연출이 아니라고????
- 구라인 듯 구라 같은 구라 아닌 너.
세정이 어리둥절하게 서있자 현수가 솔트샷건을 건네받으며 묵례를 했다.
고맙다는 인사였다.
“약간 멀어졌어.”
수정이 말했다.
“어느 방향이죠?”
“저쪽!”
수정이 한쪽 산길을 가리켰다.
현수는 목을 움켜쥔 채 수정이 가리킨 곳으로 달려갔다.
‘이번엔 진짜 죽을 뻔했어.’
지금까지 겪었던 것보다 확실히 위험한 순간이었다.
* * *
스슥
나뭇가지와 수풀을 헤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자 커다란 창고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삼준공업]
창고 앞에는 페인트로 상호명이 적혀 있었다.
현수는 간판을 손전등으로 비추며 천천히 창고 문으로 다가갔다.
“산속에 이런 창고들이 많네요. 한국에.”
- 땅값이 싸니까 그런가.
- 저기 차가 올라가는 길은 있음????
- 있었는데 없어지지 않았을까.
- 진짜 오래 돼 보인다.
시청자들의 채팅이 올라왔다.
현수는 창고 앞쪽으로 낮게 자란 잡초들을 비췄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어 풀이 무성하게 올라왔지만 길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길목은 찾을 수 있었다.
“창고 문이 열려 있어요.”
현수는 부서진 자물쇠와 열린 철문을 가리켰다.
사아아아아
그리고 언뜻 손전등 불빛이 새어 들어가는 내부에서는 회색 연기가 눈에 띄었다.
악귀의 흔적이었다.
현수는 솔트샷건에 소금을 채운 뒤 안으로 들어갔다.
가라랑- 가라랑- 가라랑-
안에서 쇳소리가 들렸다.
현수가 손전등을 비추자 모자를 거꾸로 쓴 남자가 오함마를 바닥에 질질 끌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의 어깨에서도 회색 아지랑이가 피어나고 있었다.
“쟤 많이 위험해 보인다.”
수정이 말했다.
“오늘 진짜 날 잡았네요.”
현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창고 내부는 텅텅 비어 있었다.
아무 쓸모 없는 잡동사니들만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가라랑- 가라랑-
오함마를 끄는 소리가 온 창고에 메아리쳤다.
그것이 꽤나 섬뜩하게 전해져 왔다.
“와라.”
현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자 스태프는 오함마의 목 부분과 끝을 양손으로 잡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부우웅-
스태프의 오함마가 공중을 휘갈랐다.
육중한 쇳덩이기에 속도는 느렸지만 굉장히 육중했다.
꾸웅-
오함마바가 바닥을 찍자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저 정도면 손목이나 팔꿈치에 크게 무리가 가겠는데.’
현수는 솔트샷건으로 응사를 하며 생각했다.
부우웅 부우웅 부우웅
스태프는 마치 대검을 휘두르는 전사처럼 몸을 크게 돌리며 공격을 이어갔다.
팡-
그러다 소금이 스태프의 얼굴에 정확히 맞았다.
촤아아아악
현수는 지금까지 봤던 것처럼 이 스태프의 몸에서 악귀가 빠져 나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스태프는 괴로운 듯 얼굴을 움켜쥐고 몸을 부르르 떨다 고개를 들었다.
스태프의 얼굴은 사백안의 악귀 이목구비로 바뀌어 있었다.
그 모습이 끔찍하리만큼 기괴했다.
“완전히 ‘융화’ 된 모양인데?”
수정이 말했다.
악귀가 사람의 몸에 들 때는 보통 그 사람의 양심, 혹은 선한 마음이 반발심을 일으켜서 악귀의 기운을 약하게 상쇄시켰다.
하지만 악귀가 깃든 사람이 악한 마음을 많이 품고 있거나 악업을 많이 쌓았으면 악귀의 기운과 일치가 되어 하나의 존재처럼 융화가 되었다.
끔찍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흉악범들이나 현수를 노리는 ‘허태훈’이 바로 그런 존재였다.
지금 현수의 앞에 있는 이 스태프도 마찬가지였다.
스태프에게 어떤 과거가 있고 어떤 마인드로 살아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악귀의 마음에 쏙 드는 ‘몸’이었던 것이다.
“끼히히히힛!”
스태프는 위협적으로 오함마를 휘둘러댔다.
현수는 이리저리 피하며 빈틈을 노렸다.
팡 팡 팡 팡
스태프는 솔트샷건을 아무리 맞아도 쓰러지지 않았다.
“저런 놈은 어떻게 상대해야 해요? 누나 제 수호신이라며요!”
현수가 수정을 보며 소리쳐 물었다.
“악귀가 사람 몸에 저렇게 찰싹 붙는 경우는 악한 업이 많거나 신가물인 경우인데- 뭐가 됐든 소금으로는 효과가 없을 거야. 차라리 너도 무기를 들지 그래?”
수정이 대답했다.
“아예 싸우라고요?”
“내가 보니까 저 사람 신가물은 아닌 것 같고. 아마 문제가 있는 사람일 것 같은데 싸워서 기절시킨다고 별 일 있을 것 같진 않아. 게다가 정당방위잖아?”
수정이 엄지로 세정의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증거가 수집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현수는 카메라와 스태프를 번갈아 보았다.
“키햐아아악!”
스태프가 오함마를 높이 치켜들며 괴상한 소리를 냈다.
현수는 바닥에 있는 벽돌을 집어 들어 냅다 던졌다.
빠아아악
정확히 머리에 벽돌을 맞은 스태프가 주춤거렸다.
통증을 느낀다기보다는 갑자기 정신이 없는 느낌이었다.
현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던져 태클을 걸었다.
꽈당!
현수와 스태프가 뒤엉킨 채 쓰러졌다.
뚱겅-
들고 있던 오함마도 바닥에 떨어졌다.
퍽 퍽 퍽
스태프는 격렬하게 주먹질을 해댔다.
하지만 그의 몸 위에 올라타 있는 현수가 조금 더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크악!”
스태프가 온 몸을 들썩이자 현수가 튀어나갔다.
확실히 인간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우당탕탕
현수가 잡동사니들과 뒤엉키며 나뒹굴었다.
그 사이 스태프가 벌떡 일어나 바닥에 있던 각목을 집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