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7화
97화 - 공포 예능 야담 (2)
현수는 여느 때와 같이 쭉 방송을 이어가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사이 한 번 더 휴가를 나온 태환과 연락을 주고받기도 했고, 하날하날과 간단하게 합방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렇게 ‘야담’의 촬영 날.
세정은 야담의 작가로부터 촬영장소 주소를 전달 받고 현수와 함께 이동했다.
부산광역시 장산 인근.
현수의 차량은 장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멈춰 섰다.
주변에는 이미 촬영을 위한 트럭과 버스, 승합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스태프들은 일찌감치 도착해 현장을 세팅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제 17시인데, 다들 부지런하네요.”
세정이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어머! 현수님!”
그때 뒤에서 혜련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안녕하세요.”
현수가 돌아서 반갑게 인사하자 혜련이 단걸음에 달려와 악수를 했다.
“회의실에서는 너무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도 못했네요. 일본 촬영 잘 봤어요. 완전 스릴 넘쳤어요.”
혜련이 두 엄지를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하하.”
그렇게 현수와 혜련, 세정과 혜련의 매니저는 다른 스태프들이 짐을 옮기는 길을 따라 올라갔다.
“그런데 왜 하필 부산 장산이래요? 이 멀리까지.”
세정이 물었다.
“장산범 전설 때문인 것 같아요.”
혜련이 대답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산을 오르는 사이, 나무 사이에 앉아 있는 괴상한 귀신을 발견했다.
하얀 무명옷을 입고 앉은 긴 머리의 남자.
그는 희번덕하게 흰자를 부릅뜨고 현수를 보고 있었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는데, ‘장산범’이란 건 없다.”
그때 수정이 현수의 뒤에서 속삭였다.
현수가 돌아보자 수정이 이어 말했다.
“나도 예전에 책에서 봤어. 1980년대 기록된 부산 전설, 신화, 민담 모음집에는 장산범 이야기가 없다더라.”
“그럼 저 귀신은 뭐예요?”
“쟤? 창귀.”
수정이 속삭였다.
현수가 입을 삐쭉 내밀고 다시 귀신이 있던 곳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 ‘창귀’는 사라져 있었다.
‘창귀라…….’
창귀는 옛날, 호랑이에게 죽었던 사람들의 영혼을 일컫는 말이었다.
호랑이에게 죽을 경우 그 귀신이 산속에 남게 되고, 다른 사람을 불러들여 호랑이에게 물려 죽게 해야 성불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한 마디로 ‘물귀신’과 비슷한 개념이었다.
‘호랑이가 없는 시대, 호랑이가 없는 장소의 창귀라. 그럼 영원히 이 산을 못 벗어나고 있다는 말이겠네.’
현수는 혼자 생각하며 계속 산을 올랐다.
* * *
촬영장소는 굉장히 허름한 흉가였다.
1970년대 많이 지어졌던 단독주택 같은 느낌에 깨진 유리창, 그리고 무성한 잡초와 넝쿨이 음산한 분위기를 더했다.
물론 그 주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보이고 있고, 여기저기 조명이 설치되면서 그 음산함은 많이 상쇄가 되고 있었다.
그 사이로 굉장히 뚱뚱한 몸집에 원색 한복을 입은 무당이 뒷짐을 지고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인터넷으로 검색했을 때 확인했던 ‘왕벌보살’이었다.
“조명은 최대한 빼세요! 조명이 있으면 사람들이 안 무서워한다니까!”
그녀는 까랑까랑하면서도 허스키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아유, 보살님. 그래도 조명이 있어야 카메라에 잡히는데.”
“훤히 밝은 흉가가 무슨 흉가야. 그냥 어지럽혀진 방이지. 조명 다 치워. 다 모여서 이야기 나눌 곳에만 조명 설치해!”
“음.”
“그리고 카메라는 이쪽 코너에 하나 설치해두고 작은방 천장 쪽에 하나 설치해두고.”
그녀는 스태프들 사이를 다니면서 이것저것 간섭을 해대고 있었다.
황PD는 이런 왕벌보살에게 짜증이 났는지 한숨을 푹푹 쉬면서도 뭐라 따지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저 사람, 원래 저렇게 ‘활발’해요?”
세정이 혜련에게 속삭여 물었다.
“네. 말이 많은데 이쪽 분야에서는 그래도 잘 알려진 사람이다보니까 말을 듣게 될 수밖에 없나 보더라고요.”
혜련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 사람이 세팅하라는 대로 세팅하면 확실히 분위기가 음산하게 잘 나오기도 한다 하고요.”
그녀가 설명을 해주는 사이 황PD가 현수 일행을 발견하고 성큼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수고 많으시네요.”
현수도 황PD에게 화답을 해주었다.
“아직 촬영 전까지 시간이 꽤 남았으니 현장 한 번 둘러보시겠어요? 밥차는 한 20시쯤 도착할 거 같으니 그때까지도 시간이 있거든요.”
“네, 한 번 보겠습니다.”
현수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촬영 타임테이블 좀 확인해볼게요.”
세정은 혜련과 함께 촬영 스태프 쪽으로 이동하며 말했다.
현수가 손을 흔들어 대답한 뒤, 황PD와 함께 흉가 안으로 들어갔다.
“누가 여기다 카메라 설치했어! 이 각도가 아니라니까! 이 각도가!”
왕벌보살은 한쪽 벽에 설치된 카메라를 보더니 버럭 화를 내고 있었다.
그녀의 고함에 젊은 스태프가 달려와 카메라를 떼어냈다.
“귀신이 저쪽 방향에 있으니까 저기를 비춰야 뭐가 제대로 보일 거 아니야? 어? 생각이 없어? 귀가 없어?”
그녀는 젊은 스태프에게 계속 면박을 주었다.
현수는 왕벌보살이 가리킨 곳을 지긋이 보았다.
귀신은커녕 벌레도 보이지 않았다.
‘하하, 참나.’
심지어 그녀의 어깨에 앉아 있는 동자 귀신도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물론 수아도령에게 붙어 있던 잡신보다는 영험해 보였지만 저렇게 자신 있게 소리칠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보살님. 여기 캡틴 퇴마 채널에 박현수 씨 오셨어요.”
황PD가 다가가며 인사를 하자 왕벌보살은 마치 아랫사람을 보듯 현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옆에 귀신이 하나 붙었네? 악귀들도 줄줄이 쫓아다니고 있고.”
왕벌보살은 현수를 보자마자 말했다.
“야. 지지 마, 지지 마.”
수정이 속삭였다.
“보살님도 어깨에 동자신이 붙어 계시네요. 잘 생겼네요.”
현수도 그대로 받아쳤다.
“크흠. 인터넷 좀 검색해 봤나 보네.”
왕벌보살은 비웃으며 대답했다.
“그나저나 세팅이 마음에 안 드시나요?”
황PD가 묻자 왕벌보살은 거칠게 손사래를 쳤다.
“이번에 새로 온 스태프들은 왜 이렇게 센스가 없지? 귀신이 있다는 쪽이 잘 나오게 앵글을 잡아주고 조명도 적절히 거시기 하고 그래야지. 나 참 원.”
왕벌보살이 방과 거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현수 씨가 보시기엔 어때요?”
황PD가 현수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왕벌보살이 현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요? 아유, 제가 뭘 아나요.”
왕벌보살의 성격을 봤을 때 현수가 괜히 입을 열었다가는 이런저런 시비가 붙을 수 있었다.
현수는 손을 내저으며 대답하기를 거부했다.
“왜? 얘기 들어보니까 그쪽도 귀신 좀 본다드만. 구독자 얼마? 80만?”
“아아, 네.”
“내가 이제 30만인데. 대단하네. 한 번 이야기 해봐.”
왕벌보살은 반말로 틱 던지듯 말했다.
아무래도 현수를 사기꾼 정도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너튜브 구독자는 현수가 한참 높지만 다른 방송 및 무당 경력은 왕벌보살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었다.
“아이, 참.”
현수는 머리를 긁적였다.
“고민하지 말고 질러.”
그때 수정이 속삭였다.
현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이 집 곳곳에 귀신의 흔적이 있기는 한데 이곳에 머물고 있는 귀신은 없어요. 그런데 무서운 이야기, 귀신 이야기를 하면 자기들 이야기를 한다고 몰려올 테니 이따 촬영 시작하고 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죠.”
현수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자 왕벌보살이 비웃으며 물었다.
“그런 말은 누가 못해? 이거 완전 사짜 아냐?”
그녀의 말에 현수가 받아쳤다.
“어디어디에 귀신이 있단 말은 누가 못해요?”
현수의 말에 왕벌보살의 눈이 번뜩였다.
현수가 반박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를 견제하고 있네.’
현수는 왕벌보살이 오랫동안 공포 인플루언서로 구축한 이미지를 지키려 한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자, 보살님께서 말씀해주신 곳 위주로 카메라 설치할게요.”
황PD는 상황을 중재하려는 듯 다른 스태프들에게 손짓을 보내고는 현수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 * *
잠시 후, MC와 게스트들이 하나둘 도착했고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첫 촬영은 일행들과 흉가를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현수와 왕벌보살이 앞장서서 흉가를 슥 둘러본 후 거실에 마련된 조명 앞에서 토크를 진행하면 되는 것이었다.
“레디- 큐!”
황PD의 사인에 카메라 감독과 조명 감독, 음향 감독 모두 본격적인 ‘촬영모드’에 돌입했다.
“안녕하세요. 이 세상의 모든 공포를 다루는 야담. 오늘은 부산 장산에 위치한 한 흉가에 왔습니다.”
국민MC 우재석은 카메라를 보며 능숙하게 게스트들을 소개해 나갔다.
그렇게 흉가 앞에 서서 잠시 토크를 이어간 후, 본격적인 흉가 진입 장면이 이어졌다.
이때는 우재석과 혜련이 서브로 멘트를 하고 현수와 왕벌보살이 메인 멘트를 진행해 나가는 형식이었다.
미리 받아본 대본에는 현수가 왕벌보살의 말에 맞다고 호응해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진짜 귀신을 보는 현수의 의견보다는 왕벌보살의 ‘공포 연출’에 초점을 둔 것이었다.
“이곳은 장산범의 저주가 서려 있는 흉가입니다. 장산범 들어보셨죠?”
왕벌보살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
이어 따라오는 조명 감독의 조명은 흡사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현수가 촬영할 때보다 더 전문적인 무빙이었다.
그렇게 왕벌보살은 집 곳곳을 가리키며 귀신이 있는 곳을 짚어주었다.
“저 방구석에 곰팡이 핀 곳 있죠? 유독 저곳이 저렇다는 건 음기가 강해 그림자지고 습하다는 의미입니다. 즉, 귀신이 저기 머물고 있다는 거죠.”
“거울 보이시나요? 거울은 영혼을 비춰주는 도구입니다. 거울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귀신은 물과 가까워요. 그래서 화장실에서도 귀신이 많이 나오는 거죠.”
왕벌보살은 집 구석구석을 가리키고 말했다.
그녀의 멘트가 계속 이어지고 있자 우재석이 현수에게 몸을 돌렸다.
국민MC인 만큼 분량을 분산시키기 위해 마이크를 넘기는 셈이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현수님은 뭐 보이는 게 없나요?”
그의 질문에 현수는 볼을 긁적이다 대답했다.
“지지 마. 만약 여기로 귀신 몰려오면 네가 모든 상황을 통제해야 할 수도 있어.”
수정이 현수의 귀에 대고 말했다.
“곰팡이 핀 곳은 그냥 곰팡이가 생긴 거고요. 화장실에 귀신이 많은 이유는 아무래도 개인 공간이다 보니까 사람들이 공포심을 느껴서 생긴 말이고요.”
현수의 말에 우재석을 비롯해 황PD, 왕벌보살 모두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대본과 다르게 대답한 것이었다.
“뭐?”
왕벌보살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동시에 우재석이 황PD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NG로 끊을 것인지 물어보려는 것이었다.
“이곳 자체에 귀신의 기운이 있는 건 맞지만 특정 지역에 지박령처럼 머물고 있지는 않아요. 아마 저희가 있으면 직접 모습을 드러낼 거예요.”
현수가 덧붙여 말했다.
그러자 황PD는 NG로 끊으려는 수신호를 보내려다 계속 가라는 손짓을 했다.
“젊은 친구가 뭐 잘 모르네.”
왕벌보살은 미간을 찌푸리며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그때, 왕벌보살의 등 뒤 벽으로 귀신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뒤 조심하세요.”
현수가 턱으로 벽을 틱 가리키며 말했다.
“에?”
왕벌보살이 고개를 갸웃하며 돌아보았다.
“아악!”
순간 그녀는 뒤로 물러서며 비명을 질렀다.
“뭐, 뭐예요!”
게스트들이 놀라 물었다.
“아, 아, 아, 아뇨.”
왕벌보살은 놀란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그녀 역시 귀신을 본 것이었지만 현수가 말해준 타이밍, 지적한 곳에 귀신이 나왔다는 사실을 제 입으로 말하기는 싫은 것이었다.
“어디까지 잘난 척하나 보라지.”
수정이 현수 옆에서 웃으며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