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3화
# 노로이노무라 (8)
현재 시청자 수 91823명.
스트리머들끼리 논쟁이 격화되며 시청자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에 따라 채팅창 역시 엄청나게 빠르게 올라왔다.
누구 말이 맞네, 틀리네 하며 서로 논쟁을 벌이는 것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자신의 의견을 더욱 강하게 어필하고 싶은 사람들은 파워챗 후원으로 채팅을 써 올리고 있었다.
그만큼 엄청난 금액의 후원금도 쌓이고 있었다.
현수는 과대와 방고리, 너도캠핑이 논쟁을 하는 것을 듣다 세정에게 고개를 돌렸다.
세정은 들어가야 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현수도 알고 있었다.
이 마을회관에 들어가야 조회 수가 나올 것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사람이 다칠 위험은 최소화해야 했다.
한참 논쟁을 하던 과대가 노파에게 성큼 다가가 일본어로 물었다.
“대체 저기 왜 들어가면 안 되는지 말씀을 해보세요.”
과대의 말에 노파는 과대의 얼굴을 빤히 보다 물었다.
“그런데 자네들은 여기 왜 있는 건가?”
목소리가 한 톤 낮아진 느낌이었다.
노파의 말을 듣자 과대가 미간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섰다.
“왜요?”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방고리가 물었다.
“여기 왜 온 거야?”
노파가 다시 물었다.
과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노파를 가리켰다.
“이 할머니. 치매네요. 이제 와서 우리보고 여기 왜 온 거냐고 또 물어보고 있어요.”
과대가 말하자 일행 모두 노파에게 고개를 돌렸다.
노파는 방금 전, 격앙되어 외칠 때와는 달리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처음 만났을 때 보였던 바로 그 태도였다.
“여기 무슨 일로 온 건가?”
노파가 다시 물었다.
“치매 할머니 이야기 듣고 저기 안 들어가는 건 바보 같은 짓이죠.”
과대가 고개를 가로젓고는 회관 입구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과대님!”
현수가 말리려 손을 뻗었다.
그 순간, 과대가 마을회관의 문을 확 열었다.
파사삭-
그러자 문과 창문에 붙어 있던 천과 곳곳에 둘러진 밧줄이 풀어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꼬오오오오오-!”
동시에 노파가 과대를 보며 기괴하게 비명을 질렀다.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다시 노파를 보았다.
“안 돼! 안 돼!”
노파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어두운 산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사아아아아
그러는 동안 열린 회관의 문 안에서는 건조하고 차가운 바람이 강하게 휘몰아쳐 나왔다.
“아아아-!”
현수가 탄식을 내뱉으며 과대를 보았다.
“시청자들이 궁금해하잖아요. 들어가야죠.”
과대가 당당하게 말했다.
현수는 입을 꾹 다물고 주변을 보았다.
‘어? 수정 누나?’
수정의 모습이 사라져 있었다.
‘나는 저 안에까지는 못 들어갈 듯해. 조심해.’
현수의 머릿속으로 수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는 건 저 회관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봉인이 굉장히 강력하다는 것이었다.
현수의 집에 부착해 놓은 부적에도 편하게 드나들었던 수정을 생각해보면, 저 회관의 봉인이 얼마나 강력한지 추측할 수 있었다.
“지금 뭐하는 짓이에요?”
너도캠핑이 물었다.
“됐어요. 이제 어쩔 수 없죠, 뭐. 이미 문 열었는데.”
현수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이제라도 돌아가면-”
방고리가 현수를 보며 물었다.
“소용없어요. 이미 봉인이 풀렸고, 저 안에 있는 게 뭐든 우리 존재를 알았을 거예요.”
현수는 과대가 서있는 출입문 앞에 서서 말을 이었다.
“거듭 다시 말씀드리지만 절대 떨어지면 안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확인해 주세요.”
현수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 과대가 한 건 했네.
- 그래 이렇게 들어가야지.ㅋㅋㅋㅋㅋㅋㅋㅋ
- 만약 뭔 일 나면 누구 책임임????
- 이거 책임자가 캡틴이니까 캡틴이 책임 져야지.ㅋㅋㅋㅋ
- 나도 캡처지만 다들 너무한다. 억지로 떠밀어놓고 사고나면 본인 책임이라고...
- 원래 방송이 다 그런 거 아님?????
- 그렇게 해서 본인들이 가져가는 돈이 얼만데.
- 지금 이 방송 중에 쌓인 파워챗 돈만 봐도 벌써 300만 원이 넘었음. 감수해야지.
시청자들의 채팅이 이어졌다.
현수는 숨을 크게 들이쉰 후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섰다.
오싹-
차가운 한기와 함께 향냄새가 진동을 했다.
누군가 향을 피워놓은 것 같았다.
심지어 실내가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봉인되어 있던 곳에 누가 향을 피운 거지?’
현수는 손전등으로 주변을 슥 비춰보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향불은 보이지 않았다.
연기 또한 회색 연기였다.
‘악귀의 흔적’인 것이었다.
자가자가자가자가자가
쥐와 같은 소동물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일행들이 놀라 여기저기 손전등을 비추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스윽
이내 그 소리는 조금씩 멎어 들어갔다.
현수와 너도캠핑을 필두로 천천히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마을사람들이 함께 모여 찍은 단체 사진.
함께 마을 행사를 하는 사진.
노인들이 짝지어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는 사진.
사진 벽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다양한 사진들이 한쪽 벽에 가득 걸려 있었다.
소름끼치는 것은, 모든 사진 속 얼굴의 눈에 취소선이 그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느낌의 마을회관이네요.”
구석에 위치한 부엌과 TV.
책장과 서랍장.
각종 소형 가전제품들.
현수 일행은 천천히 내부를 살펴보았다.
“여기 봐요.”
방고리가 방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수십 개의 가부키 인형이 가지런히 앉아 있었다.
여기 있는 인형들은 목이 잘리지 않은 상태였다.
“괜히 기분 나쁘네.”
방고리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현수는 귀신이 있는지 계속 두리번거리며 EMF 탐지기를 확인해 보고 있었다.
어디를 탐지하든 다섯 개 불빛이 모두 깜빡거리고 있었다.
“여기가 마지막 남은 건물인데, 그 집회 영상이 찍힌 장소는 없는 것 같죠?”
너도캠핑이 팔을 축 떨어트리며 말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천장을 보았다.
회색 연기와 악귀의 이목구비가 사방에서 그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공격은 하지 않았지만 분명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이 마을에서 찍힌 게 아닌가.”
방고리도 여기저기 방과 화장실을 뒤져보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스트사운드를 한 번 써보죠. 위자보드나.”
그때 과대가 말했다.
“위자보드는 안 가지고 왔어요. 위자보드 쓸 때마다 악귀가 붙어서요.”
현수의 대답에 과대는 못마땅해 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시청자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아이템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불만이었다.
현수와의 합방은 최대한 피하려는 모습이었지만 정작 합방을 하자 어떻게든 시청자를 끌어 모으려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이고 있었다.
현수는 그런 과대를 보며 ‘역시 120만 스트리머인가.’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고스트사운드는 해보죠.”
현수가 배낭에서 고스트사운드를 꺼내며 말했다.
그러고는 회관 건물 가운데 고스트사운드를 설치했다.
휘이이이잉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창문에 걸려 있는 흰색 천이 펄럭였다.
부적처럼 붙여놓은 것들이었다.
현수는 스피커까지 모두 연결한 후 일행 모두에게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볼륨을 올렸다.
구오오오오옹
스피커에서는 동굴 속 메아리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현수는 천장과 벽에 어른거리는 회색 형체들을 보며 천천히 질문을 했다.
“당신은 지금 이곳에 계십니까?”
현수가 묻자 채팅이 올라왔다.
- 일본어로 물어봐야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일본어로 물어보세욬ㅋㅋ
- ㅋㅋㅋㅋㅋ한국어로 되겠냨ㅋㅋㅋ
채팅이 이어지자 세정이 채팅창을 가리켰다.
일본어로 물어보라는 수신호였다.
수정의 말에 의하면 귀신들에게는 언어의 장벽이 없다고 했다.
그 말인즉슨 현수가 한글로 물어도 귀신들은 알아듣고 반응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때 너도캠핑이 다가와 현수에게 속삭였다.
“그게 생방송 그림으로도 좋을 것 같긴 해요.”
그녀의 대답에 현수는 과대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과대가 현수가 했던 질문을 일본어로 했다.
꾸오오오오오오
고스트사운드 스피커에서는 계속 들려오던 것과 다른 패턴의 소리가 들려왔다.
과대가 다음 질문을 하라는 눈빛을 현수에게 보냈다.
“당신은 화가 난 상태입니까?”
현수의 질문에 과대가 일본어로 말했다.
그러자 또 한 번 ‘꾸오오오’하는 메아리가 들려왔다.
“어디로 가면 당신을 찾을 수 있는지 한 번 물어볼까요?”
과대가 현수에게 물었다.
그러자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대는 바로 일본어로 질문했다.
그러자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동굴소리 사이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 거죠?”
너도캠핑이 스피커에 귀를 기울이며 물었다.
방고리 역시 자세를 낮추고 인상을 찌푸렸다.
집중하고 있는 것이었다.
“무슨 소리가 들려요?”
“분명 잡음 사이로 무슨 단어가 들린 것 같은데.”
너도캠핑이 한쪽 귀를 막고 온 정신을 집중시켰다.
“볼륨을 높여볼게요.”
현수가 스피커의 볼륨을 천천히 올렸다.
구오오오오오오오옹-
동굴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그리고 그 사이로 아주 작게 다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시타
같은 단어만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소리만으로도 굉장히 기괴한 느낌을 자아냈다.
“시타시타시타? 그게 뭐죠?”
방고리가 과대를 보며 물었다.
과대는 생각하는 듯 인상을 쓰다 ‘딱’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시타! ‘아래’라는 뜻이에요!”
그녀의 말에 모두가 바닥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래?”
그리고는 일제히 같은 단어를 입에 담았다.
* * *
사아아아아
회색 연기가 곳곳에 피어나고 있는 음산한 회관 거실.
가운데 놓인 고스트사운드와 주변 실내를 수색하고 있는 현수 일행.
하지만 고스트사운드에서 포착한 ‘아래’가 어디인지에 대한 단서는 전혀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자정이 넘어가는 시각.
방송이 약간 지루해지고 있다는 의견들이 올라왔다.
생방송으로 보기에는 하얀 연기도 보이지 않을뿐더러, 좁은 공간에서 사람들이 무언가 계속 뒤지고 있는 것만 나오기 때문이었다.
딱히 놀라거나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저 ‘시타’라는 단어요. 뭔가 말이 아니라 그냥 기계 결함 같은 거 아니에요? 전기가 합선되면서 나오는 소리거나.”
방고리가 허탈한 듯 팔을 축 늘어뜨리고 물었다.
“그러기에는 ‘시타’라는 단어가 꽤 명확하게 들렸던 것 같아요.”
과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기계 결함 같지는 않아요.”
너도캠핑도 한 마디 거들었다.
현수는 한참 수색을 하다 지루한 듯 한숨을 푹 내쉬고 고스트사운드를 정리하려 했다.
“이곳에 악귀의 흔적이 많이 흘러나오기는 하는데 다른 게 더 나오지 않으면 굳이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 잔뜩 긴장 빤 거 치고는 뭐 없넼ㅋㅋㅋㅋㅋㅋ
- 캡틴 방송도 이제 슬슬 단물 빠지나보다.
- 요란 떤 거 치고 너무 싱거운뎅ㅋㅋㅋㅋ
채팅에서도 볼멘소리가 올라왔다.
그때, 현수가 실수로 스피커를 떨어트렸다.
투우웅
그때 바닥에 부딪치며 나는 소리가 뭔가 이상했다.
속이 빈 나무 상자에 부딪쳐 나는 소리처럼 울린 것이었다.
현수가 멈칫하자 방고리가 다가왔다.
“왜요?”
“여기 바닥이 좀 이상한데요?”
현수가 고스트사운드를 분해해 치운 후 다다미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손잡이가 달린 나무 ‘뚜껑’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