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화
# 노로이노무라 (7)
현재 시청자 45555명.
마을회관 건물에 들어가는 것을 보류한 직후 하락하기 시작한 시청자 수는 4만 명대까지 떨어졌다.
그러자 다음 고민카로 이동하고 있던 현수에게 세정이 다가갔다.
“캡틴님. 지금 시청사 수가 빠르게 떨어지고 있어요. 그냥 저기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세정의 말에 시청자들의 채팅이 이어졌다.
- 이런 대화까지 들린다고?ㅋㅋㅋㅋㅋ
- 날것 그대로의 방송ㅋㅋㅋ
- 역시 매니저가 방송을 아넼ㅋㅋ
- 후원을 받았으면 들어가야지.
- 그런데 진짜 위험하긴 하잖음. 캡틴님 말 안 들어서 다친 사람들 생방송으로 봤으면서.
- 그러니까요.
- 그거야 다들 자기들 돈 벌라고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거 아님?????
- 어어어엄
- 캡틴님이 이 콘텐츠 계속 하려면 다치지 않으셔야지.
- 위험한 거 같아요.
- 위험해도 후원 받으면 하는 게 스트리머지.
- 캡틴은 딱히 리액션도 없잖음.
- 나락 각인가.
- 나
- 락
- 나
- 락
세정이 안 좋아진 채팅 여론을 현수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현수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지금 저 회관에 걸려 있는 봉인지를 뜯고 들어가는 건 확실히 위험할 것 같아요. 하지만 이 마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 단서가 저기에 있다는 게 확실하다면 들어갈 것도 고려해 볼 수 있겠죠.”
현수가 카메라를 보며 말을 이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무조건 들어가지 않겠다는 건 아닙니다. 조금 더 확실한 단서가 나오고 나면 그때 들어가겠다는 겁니다.”
현수가 말하는 사이, 방고리와 너도캠핑은 다음 고민카 앞에 도착해 있었다.
방고리는 현수가 가리키지 않아도 능동적으로 심령카메라를 이곳저곳에 대보고 있었다.
- 캡틴님 말씀은 알지만 저기 진짜 궁금하긴 함.
- 고기 냄새만 풍기고 고기 안 주는 것도 고문임.
- 들어가면 떡상각ㅋㅋㅋㅋㅋㅋㅋ
- 가즈아!!!!!
채팅 여론도 조금은 누그러든 느낌이었다.
물론 아직도 마을회관 진입을 요구하는 시청자들이 더 많은 상태기는 했다.
“캡틴님. 여기 좀 봐주실래요?”
그때 고민카 앞에 있던 방고리가 손을 흔들었다.
“왜요?”
현수가 세정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고는 고민카 앞으로 이동했다.
“이게, 이게 왜 여기 있죠?”
방고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의 손끝은 고민카 앞마당에 굴러다니고 있는 가부키 인형을 가리키고 있었다.
심지어 머리가 잘려 나간 것이, 조금 전 고민카에서 보았던 바로 그 가부키 인형인 것 같았다.
“이거 아까 저 집에 있던 물건 아니에요? 아니, 이게 왜 여기에-”
방고리는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그 사이 너도캠핑은 가부키 인형 앞에 쪼그려 앉아 손전등으로 이리저리 비춰보았다.
목이 잘린 가부키 인형과 그 몸통 옆에 놓인 머리.
옷차림과 인형 생김새로 봐선 확실히 좀 전에 보았던 것과 같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짧은 시간에 일행이 이동한 동선을 참고해보면, 거기 있던 인형이 여기에 있을 리는 없었다.
“그 할머니가 놓고 갔나?”
방고리는 여러 추측을 하고 있었다.
“똑같은 인형이 여러 개일 수도 있죠. 그 TV처럼 모두 같은 걸 ‘보급’해준 거라면.”
너도캠핑은 나뭇가지로 인형을 슥 뒤집어 보았다.
역시 목이 잘린 것 말고 특이한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귀신 보여요?”
방고리가 현수에게 물었다.
인형에게서는 그 어떤 귀신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일행 앞에 있는 고민카에서 강한 한기가 전해지고 있을 뿐이었다.
현수는 대답 대신 고민카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드르르륵
그러자 이곳에도 거실에 커다란 사무라이 그림이 걸려 있었다.
조금 전 보았던 ‘카가미 토도야시’였다.
“이 마을에서는 저 사람을 모셨나 봐요.”
뒤에서 과대가 말했다.
현수를 비롯한 일행 모두가 과대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렸을 때 저희 마을에서도 저런 게 있었어요. 마을을 위해 죽은 분을 기리기 위해서 집에 위패나 저런 그림을 모셔놓는.”
그녀가 말을 잇자 방고리가 물었다.
“과대님 고향이 어딘데요?”
“저 밀양이요.”
과대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과대님 말씀이 맞다면 우리 추측이 맞아 떨어지는 걸 거예요. 카가미 료이치가 이곳에 와 터를 잡았던 건 우연이 아니라 전국시대 카가미 타다요시가 머물렀던 곳에 찾아왔다는 것.”
현수가 집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그런데 그거랑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는 기현상들이랑 무슨 상관이죠?”
“여러 가지를 가정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카가미 타다요시가 사람들을 학살했던 장군이라면 여러 가지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겠죠.”
현수는 다다미가 깔린 방을 슥 둘러보았다.
이곳도 집안 집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다른 고민카와 같은 TV와 가구들.
흡사 복사, 붙여넣기를 한 듯한 집이었다.
“이 그림에는 다른 문구가 적혀 있어요.”
그때 과대가 카가미 타다요시의 그림 앞에 서서 말했다.
“뭐라고 적혀 있어요?”
“저주를 풀기 위해 우리는 어쩔 수 없었다.”
과대는 그림 하단부에 쓰인 붓글씨를 손으로 짚어가며 말했다.
“저주를 풀기 위해 우리는 어쩔 수 없었다고요?”
현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전국시대 때 학살당한 사람들.
그 이후로 계속 발생되는 이 마을의 불행.
현수는 나름대로 이 마을에 얽힌 가닥을 하나씩 맞춰가 보고 있었다.
그렇게 마을의 건물들을 하나씩 들어가 보면서 현수는 나름의 추리에 확신을 가졌다.
집마다 카가미 타다요시의 그림이 있었고, 그 그림에는 한 마디씩 적혀 있었다.
선조의 업보.
조상 때문에 우리는 살인을 한다.
더 이상 집회를 할 수 없다.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
남은 것은 ‘우리’ 뿐이다.
붓으로 투박하게 쓰인 문장들은 하나씩 발견이 될수록 점점 더 소름 끼치는 내용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진입한 건물 중 한 곳에서는 아까 보았던 ‘할머니’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앨범에서 발견된 사진 속에 그 할머니도 있었다.
옷차림과 소품으로 보아 이 마을의 무당, 혹은 주술사로 보였다.
이 모습을 본 현수가 일행과 카메라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 할머니가 저 회관을 봉인시킨 분이 아닐까 싶어요.”
“네?”
현수의 말에 방고리와 너도캠핑이 놀라 되물었다.
과대는 말없이 현수를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할머니가 무당이었던 것 같은데 그 분이 혼자 남아 있고, 회관에 귀신을 막는 부적이 걸려 있다면 회관을 봉인했을 것으로 가장 유력한 사람은 할머니죠.”
“그럼 할머니를 찾아야겠네요.”
방고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현수는 앨범 속 할머니를 빤히 보다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할머니가 사라졌던 고민카로 다시 들어가 보았다.
그곳 문을 열자마자 아까는 느껴지지 않던 것이 느껴졌다.
“향냄새.”
분명 먼지 냄새가 가득했던 폐 고민카 안에 향냄새가 가득했다.
심지어 방금 불을 붙였는지 집 곳곳에 하얀 연기가 자욱했다.
‘이렇게 해두면 귀신하고 연기가 구분되지 않는데.’
현수는 새삼 무당집이나 제사상에 향을 피우는 이유를 상기했다.
“할머니 어디 가신 거죠?”
“이 향은 뭐고.”
다들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꺄아아아악!”
그 순간이었다.
밖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현수 일행은 허겁지겁 밖으로 나가 보았다.
“꺄아아악!”
비명이 이어 들렸다.
“저기예요!”
방고리가 앞장서서 마을회관 쪽으로 달려갔다.
비명은 그 안에서 들리고 있었다.
“이 안이에요!”
방고리의 말에 현수가 일행들을 살펴보았다.
혹시 낙오된 사람이 있는지 확인을 해보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멤버들은 한 명 빠짐없이 모두 함께 있었다.
“그럼 이 비명소리가 할머니인가요?”
지금까지 본 ‘산 사람’ 중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은 노파뿐이었다.
너도캠핑이 묻자 현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기운 없어 보이는 할머니가 이렇게 크게 비명을 지를 수 있다고요?”
현수는 선뜻 믿을 수 없었다.
“꺄아아아악! 살려줘!”
안에서 또 한 번 일본어 비명이 들렸다.
“들어가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방고리가 외쳤다.
그러자 과대가 다급하게 현수와 입구를 번갈아 보았다.
“안 돼! 들어가면 안 돼!”
그때 뒤에서 노파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수 일행이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노파는 지팡이를 짚은 채 서서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절대 들어가면 안 돼!”
“하지만 안에서 비명 소리가-!”
“-안 돼! 들어가면 안 돼!”
노파가 호통쳤다.
- 갑자기 무슨 상황이래???
- 저 할머니 아무래도 수상함.
- 의심됩니다.
- 저 할머니 귀신 아냐????
노파의 정체에 대해, 채팅에서도 갑론을박 의견이 맞붙었다.
“살려줘! 끄흑! 살려줘!”
안에서는 계속해서 일본어 비명이 새어나왔다.
방고리와 과대가 회관 쪽으로 몸을 돌리자 현수가 외쳤다.
“움직이지 마요!”
현수가 크게 외쳤다.
그러자 방고리와 과대가 흠칫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왜 들어가면 안 되죠?”
과대 매니저가 일본어로 물었다.
“열면 다 죽어! 다 죽는다고!”
노파가 울부짖는 목소리로 말했다.
“꺄아아아악-”
그 사이에도 비명소리가 계속 들렸다.
“들어가야 해요. 지금 여기 안 들어가면 시청자 다 빠진다고요.”
과대가 현수의 어깨를 움켜쥐며 말했다.
현수는 눈을 크게 뜨고 과대를 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절박함도 느껴졌다.
반면 방고리와 너도캠핑은 이런 과대와 현수를 번갈아 볼 뿐이었다.
둘은 현수와 함께 야외 방송을 많이 다니며 현수의 경고를 선뜻 무시할 수 없었다.
“과대님. 전에 악귀 때문에 위험하셨잖아요. 겪어보셨잖아요. 저 봉인이 악귀를 막고 있는 거라면 정말 또 위험해질 수 있어요.”
“여기서 빠지면 우리 생업이 위험해질 수 있어요. 제가 중도포기 하자고 여기까지 합방 따라온 줄 아세요?”
과대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사뭇 격앙되어 있었다.
돈카츠 먹방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내내 텐션이 낮았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혹시 또 악귀에게 쓰인 것이 아닌가 보았지만 그녀 주변에는 귀신이나 악귀의 기운이 서려 있지 않았다.
순수하게 자신의 기분, 자신의 생각에서 하는 말이었다.
“악귀에 홀린 거 아니야. 방송에 미친 거지.”
수정이 현수 뒤에서 속삭였다.
“들어가면 안 돼! 카가미 가문의 저주가 풀려난단 말이야!”
노파가 일본어로 절규하듯 말했다.
“지금 채팅창 안 보여요?”
과대는 현수에게 실시간 채팅창을 들이밀었다.
- 들어가자.
- 그만 뜸들여!!!!
- 노잼
- 쫄 거 같으면 이런 방송을 하질 말아야지.
- 캡틴 실망.
여러 채팅 사이사이로 회관 진입을 요구하는 시청자들의 글귀가 보였다.
“잠깐. 과대님. 지금까지 내내 조용하시다가 갑자기 왜 이렇게 급발진을 하세요?”
너도캠핑이 중재하려는 듯 두 팔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급발진이 아니에요. 지금 여기 계신 분들 다 아시잖아요. 어차피 여기 안 들어가면 조회 수도 안 나와요.”
과대는 어깨를 으쓱이고 말했다.
“저 정도 배포는 있어야 120만 스트리머가 되는 건가.”
방고리는 그런 과대를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들어가면 안 돼!”
그 사이에 노파는 일본어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