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화
91화 - 노로이노무라 (6)
현재 시청자 수 62871명.
생방송으로 송출 중인 화면은 여느 때와 같이 공포영화처럼 긴박하고 소름 끼치는 장면들로 보이고 있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의 흥미를 북돋았고, 또 다른 조작 논란에 채팅창은 시끄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논란에 대해 피드백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니, 채팅을 자세히 확인해 볼 수 있는 상황 자체가 아니었다.
슥
페이지를 한 장씩 넘겨보았다.
사진만 봐서는 평범한 가족 앨범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린 아이가 뛰놀고 있는 사진.
소꿉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와 아빠.
집 앞에서 해맑게 사진을 찍은 모습.
바로 이 일본식 전통 가옥, 고민카 앞에서 촬영된 것들이었다.
이 집의 주인들인 모양이었다.
“평화로운 가정이었나 봐요.”
현수는 앨범을 보며 말했다.
그 사이 카메라를 든 과대 매니저가 현수 옆으로 와 앨범 화면을 찍었다.
그렇게 평화로운 사진들이 쭉 이어지다 어느 순간부터는 사진들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낮에 촬영한 사진들이 있더니 점점 밤에 촬영한 것들로 변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해맑게 노는 아이들이 아니라 기모노를 입고 어딘가에 절을 하는 사진들로 바뀌었다.
이내 피인지 먹물인지 모를 것을 뒤집어 쓴 아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소름이 끼치고 있었다.
그러다 맨 마지막 장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항아리 사진이 꽂혀 있었다.
“이 항아리는 뭐죠? 왜 항아리를 찍은 거지?”
방고리가 물었다.
현수는 조금 전에 보았던 비디오의 집회 장면을 떠올렸다.
다다미가 깔려있는 넓은 방.
그리고 방구석에 쭉 쌓여 있던 항아리.
바로 그 항아리와 같은 모양인 듯했다.
“모르겠어요.”
아직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 저 항아리에 뭔가 비밀이 있을 듯.
- 궁금한데 알고 싶지 않은데 궁금하긴 한 묘한 느낌.
- 저 항아리를 찾아봐요.
시청자들도 항아리에 뭔가 비밀이 있다고 확신을 하는 모양새였다.
“뭔가 다른 흔적이 없을까요?”
현수가 사진을 톡톡 치면서 책장을 보았다.
그때, 옆에서 사진을 가만히 보고 있던 너도캠핑이 말했다.
“여기. 일반적인 이런 집은 아닌 거 같아요.”
그녀의 말에 현수가 다시 사진을 보았다.
“우리가 들른 집들은 벽도 나무로 되어 있었잖아요. 그런데 이 항아리가 찍힌 방은 보면 벽이 콘크리트로 되어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아예 생 벽. 시멘트 벽.”
바닥에는 다다미가 갈려 있었지만 벽은 재질이 다른 것이었다.
“음. 그러네요.”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다른 구조로 만들어진 건물에 이 항아리가 있는 것 같아요.”
너도캠핑이 덧붙였다.
“꽤 그럴 듯한 추리네.”
그때 수정이 뒤에서 말했다.
현수는 수정을 보며 무언가를 물어보려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차피 현수 일행이 직접 뭔가를 밝혀내기 전까지는 아무 말도 안 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현수는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일단 이곳에 대해서는 우리 예상대로 생각해선 안 될 것 같습니다. 19세기 이후로 발길이 끊긴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고요. 악귀보다는 우리한테 메시지를 주려는 귀신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현수의 설명에 구독자들의 채팅이 이어졌다.
- 인정.
- 맞는 것 같음. 그 뒤로도 사람이 살았는데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숨어 산 것 같은 느낌.
- 봤을 때 그 집회를 숨기기 위해 고립된 생활을 했던 거 아닐까 싶은데????
- 나도 그렇게 생각함.
현수가 정보를 하나씩 알아가는 만큼 시청자들도 현재까지의 정보들을 토대로 나름의 추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동시에 시청자들은 인터넷으로 자료 검색을 하며 현수를 서포트 해주었다.
“근대식 건물을 들러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때 너도캠핑이 다가와 물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고민카라 불리는 목조 가옥은 마을 주민들이 머물렀던 곳이라면 근대식 건물은 마을 회관, 혹은 ‘높은 사람’이 머물고 있던 건물일 수 있었다.
“한 번 이동해보죠.”
현수는 목이 떨어져 나간 가부키 인형들을 보며 뒷걸음질 쳤다.
끼익 끼익
바닥에 떨어져 있는 가부키 인형의 팔이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현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돌아섰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네요.”
방고리 역시 무서운 듯 중얼거렸다.
“침착하게 이동합시다.”
현수는 방고리의 등을 토닥여주고는 마당으로 나왔다.
사아아아
마당에는 허리가 굽은 노파가 서있었다.
흡사 돈카츠 가게에서 봤던 노파와 비슷해 보였지만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에 차이가 있었다.
현수는 그녀가 귀신이라고 생각했지만 방고리와 너도캠핑, 과대도 노파를 본 듯 주춤거렸다.
- 깜짝이야!!!
- 저 할머니 뭐야???????
생방송 카메라에도 노파가 잡힌 모양이었다.
현수는 가만히 손전등을 비춰보았다.
노파의 발밑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귀신이 아닌 것 같아요.”
현수는 노파의 주변에 하얀 연기나 형체가 없는 것까지 확인한 후 말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그때 과대가 앞장서서 일본어로 물었다.
그러자 노파는 말없이 과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할머니. 여기 사시는 분이세요?”
과대가 다시 물었다.
“왜 남의 집에 그렇게 들락거리우?”
노파가 인상을 쓰며 되물었다.
“죄송합니다. 뭐 좀 알아보고 있어서요.”
과대가 대답했다.
- 뭐라 하고 있는 거임?????
- 누가 번역 좀.
- 그냥 여기 사냐. 미안하다. 잠깐 들어갔다. 뭐 알아본다. 이런 이야기임.
시청자들 중 일부가 일본어를 번역해 채팅창에 올렸다.
“뭘 알아 봐?”
“이 마을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같은 거요.”
“무슨 일이 일어나? 일어나긴?”
“네?”
노파는 입을 씰룩이면서 대답한 후 돌아서 어딘가로 향했다.
현수 일행은 서로를 한 번 본 뒤 노파를 따라갔다.
“할머니. 몇 마디 더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과대가 쫓아가며 말했지만 노파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노파는 작은 고민카 안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할머니.”
과대가 성큼 고민카로 따라 들어갔다.
“과, 과대님! 그렇게까지 쫓아 들어가시는 건-”
다른 현수 일행도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모두 얼어붙고 말았다.
분명 방금 노파가 들어간 고민카 역시 다른 고민카들처럼 허름한 폐허였다.
뿐만 아니라 불과 몇 초 전에 들어갔던 노파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할머니, 할머니 어디 갔어요?”
“그 할머니 어디 가셨어?”
방고리와 너도캠핑이 놀라 고민카의 방 곳곳을 뒤져보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할머니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사람이 살았던 곳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현수는 이런 일행들을 보며 위즈소카 수용소 때 함께 했던 현지 가이드를 떠올렸다.
‘또 우리가 홀려가고 있는 건가.’
현수는 고개를 가로젓다가 거실 구석을 보았다.
그곳에는 사람이 지냈던 것 같은 이부자리와 함께 식량으로 사용한 듯한 풀들이 놓여 있었다.
“아까 그 할머니요. 귀신은 아니긴 했던 것 같아요.”
현수는 이부자리를 빤히 보다가 말했다.
“그럼 그 할머니가 지금 어디로-”
“그것까진 모르겠지만 최소한 우리를 해치지는 않을 것 같아요.”
현수는 뒤로 물러섰다.
“아까 이야기 나눈 대로 근대식 건물로 가보죠.”
그의 말에 일행들 모두 함께 고민카 밖으로 나갔다.
“이렇게 그냥 간다고요?”
방고리가 당황한 듯 두리번거리다 다른 일행들이 나가는 것을 보고 따라 나왔다.
“캡틴님. 그 할머니하고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눠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그냥 포기하는 게 맞나요?”
방고리는 현수의 뒤에 따라 붙으며 말했다.
“할머니 반응을 봐서는 아무리 이야기를 나누려고 해도 소용없을 것 같아요. 더구나 어떤 분인지 잘 모르니 모험은 하지 말죠.”
현수는 근대식 건물 쪽으로 걸어가며 대답했다.
- 캡틴 말이 맞음.
- 어떻게 생각하면 할머니 사는 집에 무단 침입한 거잖아.
- 근데 거기 뭐 집이라고 불릴만 한가.
- 완전 폐허던데?????
- 그 할머니 사람 맞긴 함??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현수는 그런 의견들을 뒤로 하고 일행들과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근대식 건물로 이동했다.
저벅 저벅 저벅
흙길을 밟을 때마다 여러 소리가 들렸다.
“저 건물. 봉인되어 있다.”
수정이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굉장히 오래된 듯한 2층짜리 시멘트 건물.
예전에 들렀던 ‘소화원’과 비슷한 외관이었다.
하지만 입구와 창문에 덕지덕지 하얀 천이 붙어 있었다.
심지어 그 천에는 마치 피로 쓰여 있는 듯한 붉은 일본어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으. 이게 뭐죠?”
너도캠핑이 물었다.
“봉인이에요. 귀신이나 악귀를 막아놓으려는.”
현수가 일본어를 빤히 보며 대답했다.
“이거 뜯고 지나가도 되는 거예요? 제 기억에 수아도령 때도 이랬다가 문제가 됐던 것 같은데.”
과대가 나지막이 말했다.
문득 현수는 호장리 폐 수영장의 숙소 건물을 떠올렸다.
그곳에 포진해 있던 악귀들과 태환과 함께 했던 위자보드.
그리고 그곳에서 발생했던 수아도령의 사고.
현수는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빠졌다.
“결정은 네가 하는 거지만 잘 생각해. 목이 잘린 귀신들부터 이 폐허촌에 나타나는 영가들. 이곳과 관련이 있을 수 있어.”
수정이 현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 들어갑시다. 고민 ㄴㄴㄴㄴㄴㄴ
- 들어가요.
-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음. 그냥 고고
- ㅋㅋㅋㅋㅋ중도포기하면 주작인 거임. 저기는 세팅을 못해놓은 거짘ㅋㅋㅋ
시청자들의 의견도 이어졌다.
그러는 중에도 들어가자는 의견과 들어가지 말라는 의견을 기재한 파워챗 후원이 물 밀듯 들어왔다.
그 사이, 과대 매니저가 들고 있던 촬영 카메라를 다시 세정이 들고 있었다.
현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집이 몇 개 더 있으니까 거기부터 한 번 수색을 해보도록 하죠. 여기는 맨 마지막에 생각을 해봅시다.”
결국 한발 물러서기로 한 것이었다.
방고리와 너도캠핑, 과대 모두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시청자들 중 일부는 화가 난 듯한 반응을 보였다.
- 지금 장난?????
- 위험할 것 같다고 안 하면 그게 인방임????
- 후원금 환불해라.
- 일단 끝까지 지켜본다. 안 들어가면 환불 ㄱㄱㄱ
- 난 나갈란다.
몇몇 시청자들은 방송 시청을 포기하고 나가기까지 했다.
그래서 시청자 수는 다시 5만 명대로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청자들의 의견만 듣고 저 부적을 떼어 버릴 수는 없었다.
아직도 조작 논란이 이어지는 와중에,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이 장면을 보는 것과 현장에서 겪는 것은 달랐다.
뿐만 아니라 수아도령과 과대, 랩터 등, 귀신 때문에 다쳤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함부로 행동해서도 안 됐다.
현수에게는 무척 고마운 시청자들이지만 결국 그들은 ‘방관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큰 후원을 한다 하더라도 ‘갑을’관계가 될 수는 없었다.
목숨이 걸려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정은 채팅과 실시간 시청자 수를 확인하며 초조해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본인 역시 귀신 때문에 놀라긴 했었지만 자신이 담당하는 방송의 시청자가 줄어드는 것에는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저쪽으로 가봅시다.”
현수는 반대쪽에 있는 고민카로 걸어갔다.
일행들이 쫓아가는 것을 촬영하는 세정의 발걸음이 괜스레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