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0화
옆에 있는 고민카 역시 문이 잠겨 있지 않았다.
대문을 지나 들어가자 마당 한쪽에 놓인 일본식 우물과 ‘시시오도시’라 불리는 대나무 물레방아가 보였다.
하지만 모두 물이 말라 있는 상태였다.
사아아아아아아
우물 안에서 하얀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 올라오고 있었다.
현수는 긴장한 표정으로 우물을 가리켰다.
“지금 우물 안에서 귀신의 기운이 새어나오고 있어요.”
현수의 말에 방고리가 심령카메라를 들어보였다.
그는 말없이 촬영 카메라에 화면을 비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수의 말대로 귀신이 포착된다는 의미였다.
“이곳에는 알 수 없는 귀신들이 굉장히 많아요. 문화권이 달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뭐랄까. 조금 더 무서운 느낌입니다.”
현수가 카메라를 보며 말한 뒤 우물 쪽으로 다가갔다.
사아아아아
EMF 탐지기는 5개까지 불빛이 차올랐다.
동시에 강한 한기가 우물 안에서 뿜어져 나왔다.
현수는 아주 천천히 우물에 다가가 아래를 보았다.
화아아악
우물 안에서는 얼음 같은 공기가 뿜어져 올라왔다.
그리고, 마른 우물 안에는 기모노를 입은 귀신이 현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가부키 화장을 한 것처럼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뭐가 보여요?”
뒤에서 방고리가 물었다.
“네. 이 밑에 여자 귀신이 있어요.”
현수가 대답했다.
그 순간이었다.
우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우물 안에 가만히 서있던 귀신이 비디오 ‘빨리 감기’를 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기어 올라왔다.
“우악!”
깜짝 놀란 현수가 뒤로 자빠졌다.
그리고 놀라운 현상이 포착되었다.
우물 안에 있던 귀신이 튀어나오자, 세정을 비롯한 일행 모두가 이 귀신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것이었다.
심지어 촬영 카메라에도 이 귀신의 모습이 선명하게 잡혔다.
마치 산 사람이라 해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우물을 기어 올라온 모습과 기괴하게 뒤틀려 있던 팔과 다리, 목은 산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 헐????????????????????????????
- ??????????????????
- 귀신임?????
- 귀신 카메라에 안 잡힐 텐데????
- 뭐가 어떻게 된 거지???ㅋㅋㅋㅋ
- 귀신이에요????
- 팔 꺾인 것 봐.
시청자들도 난리가 났다.
우물에 올라온 귀신은 일행을 보면서 미소를 확 띠더니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현수가 쥐고 있던 EMF 탐지기 역시 2개까지 불빛이 내려앉았다.
“아니, 아니. 어떻게 된 거예요?”
너도캠핑도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그, 그러게요. 다들 귀신을 보신 거죠?”
현수가 일행들을 보며 물었다.
과대를 비롯해 일행 모두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들이었다.
“심령카메라로만 포착이 되는 거 아니, 아니에요?”
방고리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실제로 그런 경우들이 가끔 있기는 한데요. 귀신의 한이 너무 강할 경우에는 영적 능력이 없는 사람 눈에도 귀신이 보이는 경우가 있어요.”
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지금까지 현수님이 봤던 귀신들도 다 한이 센 귀신들 아니에요?”
“맞아요. 그래서 목격담이 꽤 많았던 케이스들이었죠.”
현수는 옷에 묻은 흙을 털며 말했다.
“이 세상에는 산 자의 영역과 죽은 자의 영역이 나뉘어져 있어요. 귀신은 그 중간에 머무는 거고요. 원칙적으로는 영역을 뛰어넘을 수 없지만 이승에 미련이나 한이 많은 귀신들은 산 자의 영역에 자신의 영향력을 보이고 싶어 하죠.”
“목소리나 모습을 드러내는 게 그런 경우군요.”
과대가 거들었다.
“네. 그리고 당연히 그 미련이나 한이 강하면 강할수록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는 더 강할 거고요.”
“그럼 여기 귀신들은-
“-그만큼 한이 강하다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우리가 봤던 그 어떤 귀신보다도.”
현수의 말에 모두 입을 꾹 다물었다.
“계속 가죠.”
현수는 마당 지나 있는 고민카로 다가가며 말했다.
창문에 보였던 귀신은 보이지 않았다.
* * *
드르륵
문을 열자 방금 전에 들어갔던 고민카와 비슷한 느낌의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일행들은 저마다 손전등으로 이곳저곳을 비췄다.
“어머. 저건?”
너도캠핑이 한 쪽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을 비췄다.
일본의 전통 방식으로 그려진 듯한 일본 무사의 그림이었다.
무릎을 꿇고 있는 무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갑옷으로 칭칭 가려져 있었다.
그리고 액자에는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인지, 이 무사의 이름인지 모를 한자가 적혀 있었다.
“카가미 타다요시.”
과대가 액자에 적힌 이름을 보고 중얼거렸다.
“흉가에선 적혀 있는 이름을 함부로 읽으면 안 돼요.”
현수가 신신당부하듯 말했다.
과대는 찝찝한 듯 뒤로 물러서며 주변을 보았다.
- 카가미 타다요시. 고글 검색하니까 이름 뜨는데?
- 나도 검색해봄. 오케하자마 전쟁에서 공을 세운 오다 노부나가 부하였다고 함.
- 오다 노부나가 이름 많이 들어봤다.
- 아하아하아하
- 실존 인물을 기리고 있는 거네.
- 카가미 가문에 저런 사람이 있었던 건가 봐요.
채팅이 올라오자 세정이 현수에게 확인해보라는 손짓을 했다.
“음. 여기 적힌 이름이 실존 장수의 이름이라고 하네요. 검색해 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현수가 나지막이 말한 후 뒤로 물러서 그림을 유심히 보았다.
마치 영혼을 기리는 것처럼 주변에 밧줄과 천 조각들이 매달려 있었다.
“그러면 19세기에 이곳에 정착했던 그 귀족 말고 전에도 그 가문 사람이 있었다는 의미네요.”
방고리가 말했다.
그러자 현수가 생각을 하듯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받아쳤다.
“맞아요. 이곳에 대한 첫 소문이 전국시대 때의 학살이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오다 노부나가 부하였다던 이 사람과 그 학살이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죠.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카가미 료이치가 이곳에 정착하게 된 이유도 대충 추측할 수 있고요.”
현수의 말에 너도캠핑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 모습 역시 생방송으로 모두 송출이 되고 있었다.
“카가미 료이치가 아무 연고도 없는 산에 들어왔다가 노로이노무라를 찾았을 가능성은 적다고 봐요. 자기 선조의 기록을 보고, 그가 갔던 곳을 가는 게 더 합리적인 추측이죠.”
“카가미 타다요시가 전국시대 때 이곳에 들렀고, 수백 년이 지나 카가미 료이치가 사람들에게 쫓기자 자기 식솔을 데리고 이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방고리가 물었다.
현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규모로 봐서는 식솔뿐만 아니라 카가미 가문의 모든 사람들을 데리고 부락을 이룬 것 같긴 하지만요.”
현수가 나지막이 읊조리며 주변을 보았다.
“여기도 똑같은 TV가 있네요.”
너도캠핑이 거실 구석을 보며 말했다.
그곳에도 VTR 일체형 TV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심지어 모델도 같은 모델이었다.
“뭔가 일괄적으로 구매를 해준 느낌이 들죠?”
현수가 TV 쪽으로 다가갔다.
끼익 끼익 끼익-
순간 방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녹슨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 나쁜 소리였다.
일행 모두가 몸을 휙 돌려 방문을 비췄다.
끼익 끼익 끼익
소리는 계속해서 들렸다.
방고리와 너도캠핑, 과대가 현수를 보았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인 후 천천히 문으로 다가갔다.
세정의 카메라가 현수의 뒤를 쫓아가며 촬영을 이어갔다.
끼익 끼익 끼익
기분 나쁜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 조심해요!!
- 100000원 파워챗
- 박현수 파이팅!
- 무슨 소리지????
- 나무 맞물리는 소리 같지 않음????
- 무슨 소린지 모르겠음.
- 들어 본 것 같은데 무슨 소리인지 모를 이상한 느낌ㅋㅋㅋㅋ
- 맞아 바로 그거얔ㅋㅋ
그 소리는 마이크를 타고 시청자들에게도 전해졌다.
현수는 천천히 방문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물밀듯 들어가는 손전등 불빛.
이내 보이는 것은 목이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는 가부키 인형들이었다.
성인 남자의 팔뚝만 한 가부키 인형들이 책장에 쭉 앉아 있었고, 모두 360도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기이하고 섬뜩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저, 저, 저거 우리 호텔 방에 있던 인형 아니에요?”
방고리가 물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종류인 것 같아요.”
현수의 대답에 방고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카메라에 대고 말했다.
“어제 캡틴님하고 같은 방을 썼는데 그 방에 있던 인형이랑 똑같이 생겼어요.”
- 가부키 인형은 원래 다 비슷하게 생김ㅋㅋㅋㅋ
- 어지간해서 다 비슷해욬ㅋㅋㅋ
- 공장에서 뽑는 인형들이 다 비슷하지 그럼.
이 사실에 대해 시청자들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하지만 현수는 호텔 방에 있던 가부키 인형이 어땠는지, 직접 겪었기 때문에 이 인형들과 관계가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현수의 눈에는 더 소름끼치는 것이 보이고 있었다.
어린 아이 귀신들이 책장에 앉아 인형의 목을 잡고 돌리고 있었다.
현수의 눈에는 이 모습까지 훤히 보이고 있었다.
방고리가 든 심령카메라에는 하얀 형체가 주변에 어른거리고 있는 정도로만 포착이 되었다.
“으으.”
하지만 세정도 현수가 보는 것처럼 어린 아이의 귀신을 흐릿하게나마 보고 있었다.
그녀는 겁에 질렸는지 손을 떨고 있었고, 그대로 방송에 전달이 되었다.
- 화면이 왤캐 흔들림.
- 어지러워요.
- 화면 흔들려요.
시청자들의 항의가 쇄도하자 세정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과대 매니저에게 카메라를 넘겼다.
“잠깐 좀 부탁드릴게요.”
세정의 부탁에 과대 매니저는 카메라를 받아들고 촬영을 이어갔다.
“매니저님. 괜찮아요?”
현수가 묻자 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캠핑님. 죄송한데 저희 매니저님 좀 부탁드릴게요.”
현수의 말에 너도캠핑이 세정에게 다가가 달래주듯 어깨를 토닥였다.
까드득
그 순간이었다.
360도로 계속 목이 돌아가던 가부키 인형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툭-
인형의 목이 분리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현수 일행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바닥에는 가부키 인형들의 머리가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풀썩
이어 책장에 앉아 있던 가부키 인형들도 바닥에 떨어졌다.
귀신들의 모습도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이, 뭐, 뭐죠? 뭐죠?”
방고리가 다급하게 주위를 보며 물었다.
“귀신들의 모습이 사라졌어요.”
현수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가부키 인형을 보며 대답했다.
머리와 몸이 분리된 가부키 인형들.
현수는 문득 귀신들이 뭔가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하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스쳤다.
산장에서부터 목 잘린 귀신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
벽난로에 거꾸로 매달려 얼굴만 내놓고 있던 귀신.
그리고 그 귀신이 보인 고민카 창문.
사람 목을 자르는 의식 집행 영상.
그리고 인형의 목을 돌려 빼는 아이 귀신들.
그들이 보이는 곳으로 이동할 때마다 하나씩 단서가 나타나고 있었다.
카가미 료이치에서 전국시대 장수였던 카가미 타다요시의 흔적.
노로이노무라에 내려오는 전설.
어쩌면 이곳에서 벌어졌던 일은 인터넷에 돌고 있는 것보다 더 끔찍할 수도 있었다.
그때, 귀신들이 앉아 있던 책장에 오래된 책들이 꽂혀 있는 걸 발견했다.
그 중에는 사진 앨범도 있었다.
현수는 조심스럽게 팔을 뻗어 앨범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펼쳐보자, 안에는 수십 년은 된 듯한 오래된 컬러의 사진들이 꽂혀 있었다.
이 마을에서 촬영된 듯한 사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