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화
# 노로이노무라 (4)
현재 시청자 수 18301명.
현수 일행은 센노쿠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 오늘 콘텐츠는 등산임?????
- 심령카메라에 계속 뭐가 잡히긴 하네.
- 오늘 콘텐츠 등산ㅋㅋㅋㅋㅋ
- 너도캠핑 있으니까 진짜 등산 콘텐츠 같닼ㅋㅋㅋㅋㅋ
- 트래킹 느낌ㅋㅋㅋㅋ
- 일본 산 진짜 험하닼ㅋㅋ
- 근데 나만 산이 어둡게 느껴짐????
- 그림자가 유독 많이 지는 거 같긴 함.
- 나무가 더 큰가??
- 그림자가 많음.
- 센노쿠라 산 가봤는데 진짜 어두움. 무서움 저기.
얼마 오르지 않아 일행들의 얼굴과 몸에는 땀이 나기 시작했다.
현수도 처음에는 이런저런 멘트를 치며 오디오가 비지 않게 했지만 어느 정도 올라가자 숨이 턱턱 막혀왔다.
“지금도 목 잘린 귀신들 보여요?”
뒤에 쫓아오던 너도캠핑이 물었다.
“네. 계속 있네요.”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과 옆을 보았다.
목이 잘린 귀신들이 한 명씩 보였다.
산장 주변에서 보았던 것보다는 적은 수였지만 충분히 눈에 띌 정도로 곳곳에 포진되어 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위치는 행사장을 안내하는 안내요원들처럼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었다.
‘선택 받은 자만 찾을 수 있다는 노로이노무라.’
현수는 문득 사람들이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 모두가 퍼질 무렵, 나무 사이로 비석 하나가 보였다.
“엇. 저기.”
과대가 비석을 보며 말했다.
세정의 카메라를 비롯해 일행 모두의 눈이 비석에 꽂혔다.
“카가미무라. 카가미의 마을이라는 뜻이에요.”
과대가 말했다.
“카가미. 카가미 료이치.”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비석 뒤쪽으로 보이는 건물들을 보았다.
옛날 일본식 목조 주택 ‘고민카’부터 근대식 건물들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딱 봐도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는지 멀리서 보기에도 무척 흉물스러웠다.
“여기 비석 밑에 글귀가 써 있어요.”
과대가 돌로 비석 아래 이끼를 긁어내며 말을 이었다.
“이 마을에 들어오는 자. 모두 저주를 받으리라.”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가운 바람이 일행 모두를 훑고 지나갔다.
“전형적인 공포영화 클리셰인데요.”
방고리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 ㅋㅋㅋㅋㅋㅋ방고리 촌철살인ㅋㅋㅋㅋ
- 전형적이긴 하닼ㅋㅋㅋㅋ
- 보통 저걸 무시하고 들어갔다가 다들 난리가 나지.
- 저때 돌아가야 하는데 안 돌아가는 게 국룰임ㅋㅋㅋㅋ
- 언능 들어가봅시다!
- 1000원 파워챗
- 들어가즈아!
- 저기가 노로이노무라인가봐요.
현수는 채팅을 확인하고는 수정을 보았다.
수정은 심각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갈 순 없죠.”
현수가 앞장서서 마을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행들은 찝찝해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카메라에 엄지를 척 들어보이고는 따라갔다.
그러자 산길 곳곳에 포진해 있던 목 잘린 귀신들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현수는 그 현상을 확인하고는 목 잘린 귀신들이 안내해준 것이 맞다고 확신했다.
* * *
본격적으로 시작된 폐허촌의 수색과 체험.
현수는 카메라를 보면서 멘트를 했다.
“이 마을의 이름은 ‘카가미무라’라고 합니다. 입구 비석에 쓰여 있었어요. 여기가 ‘노로이노무라’일 가능성이 꽤 커 보입니다. 노로이노무라의 마지막 주인이 카가미 가문이었다고 하니까요.”
현수는 진지한 표정으로 멘트를 하고는 바로 뒤에 있던 고민카에 들어갔다.
활짝 열린 미닫이문들과 바닥의 다다미.
곰팡이가 슨 것인지 거뭇하게 변질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커다란 거미와 거미줄도 곳곳에 보였다.
하지만 귀신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텔레비전이 있네요?”
방고리가 거실 한 쪽에 놓인 전자제품을 보며 말했다.
“TV가 있다고요?”
현수가 놀라 고개를 돌렸다.
확실히 작은 TV장과 TV가 놓여 있었다.
심지어 옛날 비디오테이프를 돌릴 수 있는 VTR과 일체형인 모델이었다.
“카가미 료이치하고 그 가문 사람들, 19세기에 들어와서 다 실종 됐다고 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이런 물건이 있는 거죠?”
너도캠핑이 물었다.
“그러게요.”
현수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꽤 최근까지도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의미였다.
과대는 TV장을 빤히 바라보다 쪼그려 앉았다.
“비디오테이프가 있어요. 1995년 5월 8일. 792차 집회 영상. 1995년 5월 15일, 793차 집회 영상.”
검은색 비디오테이프에는 빨간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그 위에는 날짜와 넘버링이 되어 있었다.
“가장 최신이 언제예요?”
“95년 7월 24일이요.”
과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매주 월요일마다 ‘집회’라는 걸 했나보네요.”
방고리가 스마트폰으로 1995년 달력을 확인해보고 말했다.
“저 테이프를 재생시켜보면 여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수가 TV를 가만히 보며 중얼거렸다.
- 뭔가 끔찍한 영상이 있을 것 같음.
- 정상적인 행사 영상은 아닐 삘.
- 지금 상황상 그럼. 목이 잘린 귀신이 나온다 하고 사람들은 실종되어 있고.
- ㅈㄴ궁금하긴 하닼ㅋㅋㅋ
시청자들 역시 궁금한 모양이었다.
“해가 지고 있어요.”
그때 너도캠핑이 열린 미닫이문 밖을 보며 말했다.
몇 시간 동안 산행을 해서인지 어느덧 해가 지려 어두워지고 있었다.
기분 탓인가, 괜스레 더 빨리 어두워지는 느낌이었다.
“손전등 켭시다.”
현수가 손전등을 켜며 말했다.
그러자 일행들 모두 손전등을 켰다.
세정 역시 손전등을 켜 촬영 카메라 옆에 부착했다.
불빛이 강해져서인가, 손전등 불빛이 닿지 않는 곳은 더 어두워진 느낌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팟-
치이이이이이익-
TV가 갑자기 켜지며 회색 노이즈 화면이 잡음과 함께 나오기 시작했다.
“으억!”
일행 모두가 놀라 거실 구석까지 뒷걸음질 쳤다.
치이이이익
노이즈는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저, 저, 전기가 있는 건가?”
방고리가 거실 조명 스위치를 켜보았다.
하지만 불이 켜지지 않았다.
“전기가 없이 켜질 수가 있나?”
방고리는 의아한 표정으로 현수를 보았다.
현수는 방고리의 말에 무어라 대답을 할 수 없었다.
- 와 개깜놀!!!!!!!!
- 헐 완전 놀랐음.
- 미쳤다.
- 아 ㅅㅂ 물 먹다 뿜었음.
- 와 장난 아니다....
시청자들 역시 난리가 났다.
현수는 방고리와 과대, 너도캠핑을 번갈아 보고는 TV 쪽으로 다가갔다.
사아아아아
TV 주변에서 하얀 아지랑이가 어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귀신이 서려 있다는 뜻이었다.
현수는 방고리에게 심령카메라로 TV를 가리키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자 방고리가 TV로 심령카메라를 들이밀었다.
TV 주변으로 하얀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저기, 저거 보이세요?”
방고리가 세정의 카메라에 심령카메라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 TV에 귀신 들렸다.
- TV에서 귀신 나오는 거임????ㅋㅋㅋㅋㅋㅋ
- 일본 공포 영화 그거!!!!ㅋㅋㅋㅋㅋ
- 귀신이 TV에서 기어나오는 거????
- ㅎㅎㅎㅎㅎㅎ
- ㄹㅇㅋㅋ
시청자들이 신나게 채팅을 올렸다.
현수는 TV 앞에서 EMF 탐지기를 대보았다.
그러자 당연하게도 다섯 개 불빛이 모두 깜빡거렸다.
TV의 전자기파 때문인지, 귀신 때문인지는 불분명했다.
현수는 비디오테이프를 들어 삽입을 해보았다.
잘가닥-
테이프가 부드럽게 VTR 안으로 들어가더니 노이즈 화면이 검게 변했다.
그러고는 캠코터로 촬영한 듯한 UI가 등장하며 정체모를 공간이 나왔다.
다다미로 된 바닥과 양 끝에 쭉 나열되어 놓인 수많은 항아리들. 그리고 그 방 가운데 모여 있는 남녀노소의 사람들.
일본 전통 의상을 입은 이들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박으며 무어라 외치고 있었다.
현수가 과대를 돌아보았지만 과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들이 외치는 소리가 워낙 웅얼거리는 통에 번역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웅얼웅얼웅얼
TV에서는 계속 이상한 소리만 들렸다.
화면 속 카메라는 절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로질러 맨 앞으로 향했다.
그러자 맨 앞에 놓인 제단 위에는 한 남자가 무릎 꿇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고대 일본 장군의 갑옷을 입은 남자가 일본도를 들고 서있었다.
“설마.”
현수와 방고리가 자세를 낮추고 화면에 집중했다.
갑옷을 입은 남자는 일본도를 높이 들었다.
그리고는 주저 없이 남자의 목을 내리쳤다.
퉁
남자의 목이 잘려 떨어지자 절을 하던 사람들이 양팔을 들고 더욱 크게 기도를 했다.
“우욱!”
과대가 입을 막고 헛구역질을 했다.
그녀가 보기에 굉장히 끔찍한 장면인 것이었다.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던 거죠?”
너도캠핑도 충격을 받은 듯 말했다.
순간 이상한 현상이 발생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남자의 머리가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현수 일행과 눈이 마주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X발. 기분 나쁘네.”
방고리가 인상을 쓰며 뒤로 물러섰다.
이어 TV 속 화면도 뒤로 물러나며 다시 절을 하고 있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갔다.
그때, 절을 하던 사람들 역시 카메라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들도 현수 일행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저 집회 장소가 이 마을 어딘가에 있겠네요. 저기가 키포인트겠어요.”
현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저기가 어디일까요?”
“이 마을 어딘가인 것 같긴 해요.”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TV 속 사람들은 카메라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일행 모두 소름이 쫙 끼쳤다.
- 아 다들 미친 것 같아.
- 화면 돌려주세요.
- 이거 미쳤어.
- 진짜 아니에요, 이거.
- 나 무서워.
- 미쳐가는 거 같음.
이 장면을 보는 시청자들도 현수 일행과 같은 기분인 듯했다.
현수가 성큼 다가가 바로 TV 전원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꺼지지 않았다.
끼히히힛 히히히히힛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TV 속 사람들이 현수 일행을 비웃듯 소리를 냈다.
“아이 씨.”
방고리가 인상을 확 쓰며 나가려 했다.
“혼자 움직이지 마세요!”
그러자 현수가 방고리의 손목을 낚아챘다.
방고리는 인상을 쓰며 현수와 TV를 번갈아 보았다.
“무조건 같이 움직입니다. 절대 혼자 떨어지지 마세요.”
“아, 알겠어요. 빠, 빨리 나가죠. 너무 기분 나쁜데.”
방고리가 일행들을 보며 말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인 후 앞장서서 집 밖으로 나갔다.
어느새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마당에 나온 현수는 바로 일행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혹시 사라진 사람은 없는지 몇 번이고 인원을 체크했다.
“옆집으로 가보죠.”
그 옆에는 조금 더 오래 되어 보이는 고민카가 서있었다.
현수는 고민카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때, 오래된 창문 안으로 새하얀 얼굴의 귀신이 보였다.
산장 벽난로에서 보았던 바로 그 귀신이었다.
그 귀신은 창문에 얼굴만 빼꼼 내민 채 현수를 보고 있었다.
뚝-
방 안에서 들리던 TV 소리도 갑자기 끊겼다.
“아, 진짜 너무 무섭다.”
방고리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확실히 위즈소카 수용소에서 촬영을 할 때와는 격이 달랐다.
현재 시청자 수 35456명.
이번에도 역시 수만 명의 시청자를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같은 방송분량 대비 위즈소카 때보다 적은 숫자였지만 지역 알고리즘으로 일본 네티즌들에게 노출이 되며 나름 빠르게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