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스트리머 퇴마사-87화 (87/227)

제87화

87화 - 노로이노무라 (2)

한국이고 일본이고, 귀신은 도처에 깔려 있었다.

자신이 죽은지조차 모르는 귀신부터 일반인과 똑같은 모습의 귀신.

그리고 자신이 죽었을 때 모습으로 남아 있는 귀신.

현수는 그런 귀신들을 보면서 아는 척, 모르는 척 지내오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센노쿠라 산 근처에 온 이후로는 달랐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귀신들이 현수를 의식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통상적으로는 현수가 귀신을 발견해도 빤히 쳐다보고 있거나 아는 척하지 않는 이상에는 귀신들이 먼저 현수를 의식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귀신들이 먼저 현수를 알아보고 관심을 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는 건 이들에게 ‘용건’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 근처의 귀신들이 현수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것.

악귀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리가 노로이노무라를 찾는 걸 아나.’

현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과대와의 방송을 진행했다.

그렇게 과대의 먹방이 끝나고, 방송 종료를 하자 매니저들과 스트리머들이 인사를 하며 정리를 했다.

그 사이, 현수가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수정이 일본어로 현수에게 속삭이자 현수가 그대로 따라 물었다.

“어르신. 몇 가지 좀 묻겠습니다.”

현수가 말을 하자 정리를 하던 일행들이 모두 현수를 보았다.

“말하시게나.”

할아버지가 일본어로 대답하자 수정이 통역을 해주었다.

“저희는 여기 센노쿠라 산에 있는 ‘노로이노무라’를 찾으러 왔는데요. 혹시 아시는 게 있나요?”

현수가 묻자 할아버지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어젯밤에 죽은 아내가 꿈에 나타나서 오열 통곡을 하더만. 자네들이 이곳으로 오려고 해서 그랬던 거였군.”

“네?”

“노로이노무라는 없어. 괜히 그런 거 찾으려고 돌아다녀서 마을 들쑤시는 일이 없게 하게나.”

할아버지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휙 돌아섰다.

현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뭐래요? 노로이노무라에 대해 물어본 거 아니에요?”

방고리가 다가와 물었다.

“그렇긴 한데 알려줄 생각이 없네요.”

현수가 대답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노로이노무라’가 뭔지는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 무슨 저주라도 있는지, 굉장히 터부시 하고 있다는 것.

현수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센노쿠라 산에 오르기 전에 이 마을에서 최대한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식당에서 나온 현수는 세정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내일 센노쿠라 산에 올라가기 전에, 이 마을에서 노로이노무라를 찾는 장면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촬영하자는 것이었다.

도시 사람들이 노로이노무라에 대해 이 할아버지처럼 반응한다면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끌어올리기에 좋겠다는 판단이었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

세정은 길게 고민하지 않고 바로 수락했다.

“그래도 일본 왔는데! 다 같이 한잔 하죠?”

그 사이 방고리는 박수를 치며 말하고 있었다.

“전 피곤해서.”

과대는 또다시 낮아진 텐션으로 툭 받아치고는 자신의 매니저와 함께 호텔로 향했다.

방고리가 현수를 슥 보며 미소를 짓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간단히 한잔 하고 들어갑시다.”

현수의 말에 방고리는 신이 난 듯 엄지를 들었다.

“나도 갈게요.”

너도캠핑도 화답했다.

그렇게 저녁 회식을 한 후 숙소에 돌아온 방고리와 현수는 바로 잘 준비를 했다.

방고리가 먼저 씻은 뒤, 현수가 샤워실에 들어가 바로 샤워를 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을 때, 방고리는 침대에 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아.”

이어 방 한쪽에는 수정과 가부키 인형이 마주 앉아서 무어라 대화를 나누는 것이 보였다.

“왜요?”

방고리가 샤워실 앞에 서서 탄식을 내뱉는 현수에게 물었다.

“아뇨.”

현수는 수정을 빤히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TV 이거 보세요. 되게 웃겨요. 일본 말 못 알아듣는데도 웃기네.”

방고리는 TV를 보며 키득거렸다.

현수는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차갑게 식어 있는 수정의 표정.

현수는 그녀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 보았다.

그리고 바닥에 앉아 있는 가부키 인형을 들었다.

“이거 방고리 님이 여기 두셨어요?”

“아뇨? 언제부터 거기 있었지? 모르겠어요.”

방고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현수는 가부키 인형을 제 자리에 놓았다.

“내가 뭐라 할 수는 없는데 말이야. 네 수호신으로서 한 마디 해주면 촬영 여기서 중단하는 게 좋을 거 같아.”

뒤에서 수정이 말했다.

가부키 인형에 깃든 귀신과 무어라 이야기를 나눈 모양이었다.

그게 뭔지, 수정은 말해주지 않을 것이었다.

“이 마을. 모든 게 뒤틀려 있어. 어떤 맥락에선 위즈소카 수용소보다도 더 심해.”

수정이 말을 이었다.

현수는 그런 수정을 힐끔 보고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계속해서 현수를 쳐다보고 있는 가부키 인형과 끊임없이 경고하는 수정의 목소리.

쉬기 위해 들어온 호텔 방이었지만 현수의 정신은 계속 번잡스러웠다.

* * *

다음날 아침.

촬영을 위해 호텔 앞에 모인 일행들은 각자 옷차림과 장비들을 점검했다.

너도캠핑은 와일드한 모험가 느낌의 패션이었고 과대는 귀여운 대학생 느낌이었다.

방고리는 평범한 셔츠에 청바지로 무난한 옷차림이었다.

“시작할게요.”

세정이 손을 흔든 뒤 방송시작 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캡틴 퇴마 박현수입니다! 긴급 라이브 방송! 시작하겠습니다!”

현수의 인사말에 채팅이 올라왔다.

- 어???? 긴급 라이브??

- 오늘 저녁 방송 아님???

- 안녕하세요!!

- 캡하!!

- 캡하 캡하!

공지 없이 시작된 라이브에는 500여 명 정도만 바로 유입이 되었다.

물론 실시간으로 조금씩 늘어나긴 했지만 정규 라이브 방송 때보다는 현저히 적은 숫자였다.

“이곳은 오늘 촬영을 진행할 센노쿠라 산 근처 시골입니다. 저희가 찾아야 하는 ‘노로이노무라’에 대한 정보를 미리 찾아보려고 하는데요. 그 과정을 우리 캡처님들과 함께 공유를 하려 합니다. 오늘은 과대님과 방고리님, 너도캠핑님과 함께합니다. 지금부터 따라오시죠!”

현수가 웃으면서 카메라에 대고 손짓했다.

- 날이 갈수록 방송이 늘엌ㅋㅋㅋㅋㅋㅋ

- 그러게욬ㅋㅋㅋㅋ

- 10000원 파워챗

- 인터뷰 방송 형식일 것 같네요. 파이팅.

- 1000원 파워챗

- 여성분 인터뷰 ㄱㄱㄱ

세정이 든 카메라는 조모코겐 역 근처의 아름답고 조용한 풍경을 슥 둘러 촬영했다.

흡사 한국의 시골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곳곳에 있는 일본어 표시판이 이곳이 일본임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노로이노무라는 전국시대 때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마을이었던 거 같아요. 그곳에서 대규모 학살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갔고요. 그때부터 사람들이 자꾸 실종되는 문제들이 발생했던 것 같습니다.”

현수는 수시로 카메라를 보며 멘트를 했다.

그리고 센노쿠라 산을 가리켰다.

“저기가 센노쿠라 산입니다. 저기 어딘가에 노로이노무라가 있다고 하는데 그 위치를 아는 사람이 없대요. 30년 전에 사진을 찍었던 사람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하더라고요.”

“정말요?”

“네. 그래서 노로이노무라는 선택받은 자만 찾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돈대요.”

“무슨 선택이요?”

“그것까진 잘 모르겠어요. 좋은 선택이 아닐 것 같긴 한데.”

과대는 현수가 자연스럽게 멘트를 이어갈 수 있도록 받아주었다.

확실히 그녀는 방송의 흐름이 끊기지 않게 하는 법을 몸으로 익혀놓은 듯했다.

“선택받은 자라. 무슨 게임 퀘스트 템 얻으러 가는 느낌이네요. 하하.”

방고리가 끼어들어 한마디 했다.

“그렇게 좋은 거면 좋겠어요. 그런데 귀신 이야기가 있고 그러다 보니까 과연 좋은 의미일지는-”

현수가 말끝을 흐렸다.

“제가 듣기로 ‘카가미 료이치’라는 귀족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고요?”

과대가 현수에게 물었다.

“네. 19세기 귀족으로 유신지사들에게 쫓겨 센노쿠라 산에 숨어들었다가 노로이노무라에 정착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함께 들어갔던 모든 가문 사람들이 실종 됐다고 합니다.”

“소름끼치는 이야기네요.”

“네, 네. 그렇죠.”

현수 일행은 계속 질의응답을 해가며 주변에 보이는 슈퍼마켓으로 다가갔다.

슈퍼마켓 앞에 있는 평상 위에는 노파가 부채를 들고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과대가 반갑게 일본어로 인사를 했다.

그러자 과대의 매니저가 카메라 옆에서 동시통역을 해주었다.

“어디서들 오셨나? 한국?”

“네, 한국에서 왔습니다.”

과대의 일본어는 무척 유창했다.

“여긴 관광객들 잘 안 오는데 신기하네. 뭐가 궁금한가?”

“혹시 저 센노쿠라 산의 전설에 대해 뭐 아시는 게 있나요?”

“센노쿠라 산의 전설? 뭐 산마다 전설이야 다 있지. 목이 잘린 귀신들이 센노쿠라 산에 자주 나타난다고 해.”

“목이 잘린 귀신이요?”

“저 산에서 참수형을 많이 집행했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밤에 저기 들어갔다가는 목이 잘려 죽을 거라는 소문이 많았어.”

노파는 센노쿠라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 와! 목 잘린 귀신!

- 어째 이번에도 소름각이다.

- 이따 밤 때까지 못 기다릴 거 같은뎈ㅋㅋㅋㅋㅋ

- 완전 재밌을 거 같음!!ㅋㅋㅋㅋ

- 이따 몇 시에 본방해요?

시청자들의 채팅을 본 현수가 대답했다.

“원래 방송은 21시에 진행하는데 센노쿠라 산에서 촬영은 아무래도 산행이 필요하다 보니까 낮부터 진행을 할 예정입니다. 커뮤니티 탭 보시면 14시부터 시작이라고 메모해 두었어요.”

- 아!! 이따 낮에 약속 있는데.

- 밤에 해요!

- 밤에 하면 안 돼요? 원래 하던 대로.

“저도 그렇게 해드리고 싶은데 아무래도 야간 산행은 안전 문제가 있어서요. 그런데 상황에 따라선 그 시간대에도 산에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현수가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그럼 할머니. 혹시 ‘노로이노무라’라는 곳을 아시나요?”

그 사이 과대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노파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거기는 왜 찾나?”

“인터넷을 보다 보니까 그곳에 귀신이 많다고 해서요.”

“노로이노무라에 귀신? 내가 알기론 귀신이 아니라 무슨 이상한 사람들이 산다던데.”

“네?”

“귀신이 아니야. 귀신은 눈에 안 보이는 영혼이잖아. 근데 노로이노무라는 아니야. 거기엔 진짜 사람이 있다고 들었어.”

“사람이 있다고요?”

“그래. 사람. 그것도 살인자들. 목 잘린 귀신들하고 관련이 있을 걸?”

노파는 과대와 현수를 번갈아보며 대답했다.

현재로썬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 * *

또 다른 노인과의 인터뷰.

그 할아버지는 자신의 집 앞 담벼락 앞에서 자전거를 수리하고 있었다.

과대가 다가가 아까처럼 똑같이 질문을 했다.

“노로이노무라? 내 들어는 봤지. 어렸을 때 동네 형들이 거길 찾겠다고 센노쿠라에 들어갔다가 다 실종 됐어. 그런데 어른들이 형들을 찾으러 나서질 않더라고. 카가미 가문의 노비로 끌려간 거라고.”

그러자 아까와는 약간 다른 답변이 돌아왔다.

“카가미 가문의 노비요?”

과대가 고개를 갸웃하며 현수를 보았다.

* * *

다음 노파와의 인터뷰.

생선가게에서 생선을 다듬고 있던 할머니였다.

“노로이노무라는 없어. 일본 열도에 폐허촌이 한두 개도 아니고. 만약 그런 마을이 있다 해도 특별할 게 없네.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없어진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지. 가는 길이 위험하다든지, 위험한 짐승이 있다든지, 무슨 저주라도 걸렸더라든지.”

노파의 대답에 과대가 물었다.

“그 센노쿠라 산의 폐허촌이 어디인지는 아시나요?”

“모르지. 들어간 사람은 있어도 나온 사람은 없으니.”

노파가 대답했다.

.

.

.

여러 명과 인터뷰를 마친 현수는 노로이노무라에 대한 현지 정보를 정리해 보았다.

역시 예상대로 노로이노무라의 위치에 대해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단, 한 가지 공통된 의견이 있다면, 노로이노무라에 무언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또한 ‘노로이노무라’라는 마을의 실존 여부에 대해 말이 많지만 폐허촌이 있으며 그곳에 들어갔다가 못 나온 사람들이 많다는 것.

현수가 정리한 정보를 핸드폰에 메모해두는 사이, 과대는 센노쿠라 산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예약한 차가 오네요.”

그때 세정이 도로로 나서며 승합차를 가리켰다.

센노쿠라 산까지 태워다 줄 차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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