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스트리머 퇴마사-84화 (84/227)

제84화

#폴란드 위즈소카 수용소 (9)

현재 시청자 수 148290명.

15만 명에 육박하는 시청자.

전 세계 언어들이 채팅창을 도배하고 있었다.

파워챗으로도 외국인들의 채팅이 올라올 정도였다.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방송에서 현수 일행이 하는 말은 모두 한국어라 외국인들은 실시간으로 자막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상황이 고스란히 전달이 되고 있는 것이었다.

이건 현재 촬영 지역이 유럽인 데다가 세계2차 대전, 그리고 ‘히틀러’, ‘홀로코스트’라는 키워드가 작용한 까닭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 보고 있는 화면은, 공포 영화의 클라이맥스처럼 다이나믹했다.

닫히고 있는 육중한 철문을 몸으로 버티는 방고리와 밀폐된 실내에 휘몰아치는 바람.

출연자들의 다급한 외침.

“여기 좀 도와줘요!”

방고리가 외치자 혜련과 하날하날이 달려가 함께 몸으로 문을 밀었다.

꾸구구구구궁

하지만 문은 천천히 닫히고 있었다.

너도캠핑은 빠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던 벽돌을 집어 들고는 문틈에 넣었다.

쿵!

문이 돌에 끼며 더 이상 닫히지 않았다.

순간 차가운 한기를 내뿜으며 공중으로 사그라졌던 귀신들이 문 쪽으로 날아갔다.

현수는 회색 연기들이 문으로 향하는 그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화아아아아악

회색 연기는 문을 휘감더니 갑작스럽게 괴상한 비명소리를 냈다.

끼야아아아악-

이어 문이 뽑히듯, 육중한 소리와 함께 튕겨나갔다.

쿵!

문이 열리자마자 수술복의 귀신이 눈을 크게 뜨고 비명을 지르다 사라졌다.

사아아아아아

방 안에 있던 수많은 회색 형체의 악귀들이 뽑힌 문 밖으로 날아갔다.

“이게 무슨 상황이죠?”

귀신을 보는 세정이 카메라를 들고 물었다.

“봉인되어 있던 문이 열리면서…… 간수 귀신들이 밖으로 나가고 있어요.”

현수는 귀신들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방송에서는 그냥 가스실 천장 허공을 응시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나갑시다!”

방고리가 현수의 팔을 붙잡고 외쳤다.

그때, 먼 곳에서 사이렌이 들리기 시작했다.

현수 일행은 허겁지겁 밖으로 나가 정문 밖을 보았다.

어두운 수풀 사이로 붉고 푸른 경광등 불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구조대가 도착한 것이었다.

현수 일행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산자락 너머로 새벽 태양이 조금씩 떠오르고 있었다.

어떻게 시간이 간지 모르게 하룻밤이 지나간 것이었다.

* * *

구조대가 도착해 랩터를 후송할 쯤에는 해가 떠올라 흉물스러운 위즈소카 수용소가 훤히 보였다.

앞마당까지 구조대 차량이 들어와 현수 일행을 케어했고, 일부 대원들은 주변으로 흩어져 도망친 스태프들을 찾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도 생방송은 계속 켜져 있었다.

현재 시청자 수 147261명.

15만 명을 넘기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방송 중 역대급 ‘성과’라고 보기에 충분했다.

구독자 또한 50만 명을 넘겨 소위 ‘대형 스트리머’ 반열에 올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현수의 몸은 피곤해져 있었다.

“우리 어제 밤에 여기 처음 올 때도 이랬나요?”

너도캠핑이 다가와 물었다.

“네?”

현수는 고개를 들어 그녀가 가리키고 있는 건물을 보았다.

불에 타 시커멓게 변한 모습이었다.

분명 어제 밤에는 안에 구조물도 있고 벨벳 카펫도 깔려 있었지만 이렇게 보니 본관도, 샤워실도 모두 시커먼 그을림이 가득한 폐허에 불과했다.

“정말 우리 모두 다 홀렸던 건가.”

현수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때 방고리가 음료수 캔을 들고 다가왔다.

“차가 여기 앞마당까지 들어올 수 있네. 그럼 우리가 타고 온 차도 여기까지 들어왔으면 편할 걸. 에이.”

“가이드가 내리자고 해서 내렸던 거잖아요. 그 가이드 정체가 의심되는 상황인데요, 뭐.”

“그러게요. 그 가이드, 여기 사람이었죠?”

“한국인하고 폴란드인 혼혈이라고 했어요.”

“골 때리네. 참나. 대체 어디 있는 거지.”

방고리는 수색 중인 대원들을 힐끔 보았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자 도망쳤던 스태프들이 하나씩 발견 되었다.

모두 수풀에서 반쯤 미친 채 떨고 있었다고 했다.

술에 완전 취해 수전증이 온 사람처럼 나무 밑동이나 굴속에 숨어 있었지만 키득거리는 소리를 크게 내고 있어 생각보다 찾기 쉬웠다고 전해졌다.

그들은 구조대에 발견이 되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의식을 잃었다.

그들은 도망친 후 악귀에 홀려 숲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헤맨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가이드는 찾지 못했다.

TTP 방송국에서 섭외한 것도, 라미로브에서 섭외한 것도 아니었던 그 가이드.

왜 참여자 모두 그 가이드를 자연스럽게 일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걸까.

모든 것은 의문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사아아아아아

아침이 되자 현수 눈에 보이던 수많은 귀신과 악귀들의 모습이 흐릿해졌다.

현수는 본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두고 나온 고스트돌을 챙겼다.

복도와 계단, 앞마당에 포진해 있던 ‘마네킹 같은 악귀’들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수술복의 악귀들은 여전히 지하 계단 앞에 서서 현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또 악귀 심기를 심하게 건드렸네.”

수정이 현수 옆에 나타나 말했다.

“그래요?”

“응. 저 악귀들은 간수들에 대한 복수가 곧 정의이고 그들에 대한 분노가 존재 이유인데 그걸 네가 날린 거잖아.”

“어쩔 수 없죠.”

“네 말처럼 이곳에서 죽은 모두가 악귀와 같은 모습이었어. 수감자도, 간수도. 하지만 삐뚤어진 복수심과 참혹한 살인 때문에 모두가 이곳에 묶여 있던 거지.”

“네.”

“간수들이 모두 풀려났으니 이곳에 있던 대부분의 수감자 악귀들도 풀려날 거야. 저 수술복 악귀들은 여기에 계속 남든가, 널 쫓아다니든가 하겠지. 목적이 사라졌으니.”

“에휴.”

현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흉가 쫓아다니면서 악귀, 귀신들 건드리니 어쩔 수 없다니까. 내가 없었으면 넌 벌써 갈려나갔어.”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그놈의 자랑은.”

현수가 노려보고 있는 수술복 악귀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출입문으로 향했다.

“그런데 누나. 누나는 여기 들어올 때부터 이곳 사연 다 알고 있었죠?”

“그렇지. 귀신들이 하는 소리를 다 들으니까. 네가 귀신 소리를 듣는 것과는 또 다른 소리들이 있어. 죽은 자들끼리만 들리는.”

“그래요?”

“응. 산 자와 죽은 자의 세상은 달라. 당연히 소통 방식도 다르고. 귀신과 악귀는 그 중간 지대에 있는 존재인 거야. 그래서 산 자들의 소리도, 죽은 자들의 소리도 다 낼 수 있는 거지. 너는 귀신이 산 자들에게 하는 소리만 잘 들을 뿐이야.”

둘은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출입문을 나가며 대화를 계속 이어갔다.

“우리가 그렇게 위험해지고 그러는데 귀띔 좀 해주면 덧나셨나요?”

“말했잖아. 나는 죽은 자의 영역에 있는 사람이라고. 내가 일일이 알려줄 수 없어. 모든 선택과 책임은 네가 져야지. 난 네가 질 책임에 대해 약간의 서포트만 해주는 거고.”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건 말씀해주실 수 있죠? 간수들을 저렇게 다 학살하고 나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현수가 물었다.

아직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중 하나였다.

수용소에서 많은 수감자와 간수들이 죽임을 당해 이곳에 악귀와 귀신들이 넘실대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간수들이 모두 죽었다면 일부 수감자들은 이곳에서 탈출하는 데에 성공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즈소카 수용소를 겪어본 사람도, 어떤 곳인지 아는 사람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간수들을 죽였던 수감자들 또한 이곳에서 모두 죽었다는 의미였다.

“폭동 속의 폭동.”

수정이 말했다.

“네?”

“간수들을 끔찍하게 실험하고 가스실 학살하면서부터 수감자들끼리 패가 갈렸던 거지. 그렇게 폭동 속의 폭동이 일어나고 결국 대형 화재가 나면서 다 죽었던 거야.”

“이상하네요. 그렇게 대형 화재가 났는데 건물 내부 문헌들은 모두 무사하다니.”

“그러게. 여기 귀신들이 어떻게 해서든 이곳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알리고 싶었나.”

수정의 말을 들으며 현수는 밖으로 나와 건물을 다시 올려보았다.

“아. 저기 캡틴님 나오시네요.”

세정이 구조대원과 다른 스트리머를 촬영하다 현수를 보고 달려왔다.

현수는 카메라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이제 방종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방송 굉장히 길었네요. 후기 방송은 3일 뒤 밤 9시에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후원해 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리고요. 지금까지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수가 거수경례를 하며 인사를 했다.

그러자 세정이 방송종료 버튼을 눌렀다.

“후아!”

촬영을 종료한 세정도 진이 빠졌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수고하셨어요. 오늘 큰일 날 뻔 했네.”

“그러게요. 하하.”

스트리머들 모두 허탈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하게 소주 한 잔 하고 싶네. 아우.”

“한국 가면 한 잔 합시다. 저도 좀 껴주시고.”

방고리가 기지개를 켜며 말하자 혜련이 말했다.

“아유. 연예인이 저희랑 술자리 해주시면 감지덕지죠.”

방고리가 반쯤 드러누운 채 엄지를 들어보였다.

“한국 갈 때까지 기다릴 필요 있어요? 한국행 비행기는 모레인데. 오늘 저녁에 한 잔 하죠. 스태프들이 정신 차릴 때까지 할 것도 없고.”

너도캠핑이 현수를 보며 말했다.

“네, 괜찮을 것 같네요.”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랩터는 위즈소카 수용소에서 탈출한 후 반나절 후에 의식을 되찾았다.

그는 한국에서 추가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깁스를 한 채 다시 호텔로 복귀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이어진 회식 자리에서 그는 충격 받은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왜 뛰어내렸는지 기억이 안 나요.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해서 촬영이고 뭐고 베이스캠프로 돌아가려고 한 건 기억이 나는데.”

“악귀에 홀렸던 거예요. 그곳에는 여러 악귀가 있었는데 그 중에 사람들을 해치려고 하는 악귀도 있었거든요.”

현수가 말했다.

랩터는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무어라 반박할 수 없었다.

어찌되었든 자신도 기현상을 당했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TTP 스태프들도 하나 둘 정신을 차렸다고 해요. 아마 내일 오전엔 다 여기로 올 거예요.”

혜련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나저나 그 현지 가이드는 아직도 못 찾았다죠?”

방고리가 물었다.

다들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구조대 측 얘기를 들어봤는데요. 예전에도 이상한 신고가 접수가 됐었대요. 칠판 긁는 소리가 나는. 그리고 그 위치는 위즈소카 수용소 쪽이고요. 몇 번 출동했는데 장난전화로 판명이 되어서 이제 그런 전화에는 출동을 안 한 대요.”

“아아. 시청자 분이 말씀해주시더라고요.”

“몇 번은 출동했는데 근처에 폐가 체험하러 온 사람들 발견했다고 하고.”

혜련은 심각한 표정으로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마지막에 들어갔던 가스실이요. 거기서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신들도 나왔대요. 5년 쯤 된 시신도 있고 20년 된 시신도 있고. 마구 뒤엉켜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몇몇은 실종신고가 들어와 있는 사람이래요.”

그녀의 말에 침묵이 흘렀다.

그곳에 방문했던 사람들 중 일부가 그 가스실에 갇혀 ‘실종’된 것이었다.

자칫하면 현수 일행 역시 그 가스실에서 죽임을 당할 뻔했다는 것.

그곳을 수색했던 모두가 같은 루트로 움직였고 결국 가스실에서 사망했다는 이야기였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 가이드요. 사람들을 그곳에 가게 하는 ‘미끼’ 아니었을까 싶어요. 오래 전부터 ‘가이드’로서.”

현수가 술잔에 담긴 술을 가만히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다시 침묵이 흐른 뒤 방고리가 팔을 북북 긁었다.

“어우, 소름. 다른 이야기 하죠.”

그의 말에 사람들은 표정을 애써 밝게 하며 사담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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