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3화
#폴란드 위즈소카 수용소 (8)
몇 분 후.
꺄하하하하핫-
끄에에에엑-
문이 훤히 열린 본관 안에서는 아직도 괴상한 웃음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안에 고스트돌을 놓고 나왔지만 다시 가지러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현수는 앞마당에 서서 남아 있는 사람들의 상태를 보았다.
TTP의 스태프들과 코디, 매니저들은 모두 사라져 있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혼비백산하여 도망친 것이었다.
현수는 그 모습을 보고 말리려 했지만 이곳에 남아 있는 일행도 있는 상황에서 선뜻 쫓아갈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 구조대가 오고 있으니 그들이 오면 따로 수색 요청을 해야 할 판이었다.
덕분에 현재 앞마당에 남은 사람은 현수와 세정, 현아, 효진을 비롯한 고스트 크루 멤버들과 혜련, 그리고 정신을 잃은 랩터뿐이었다.
“이게 무슨 난리래요.”
공포에 찌든 모습이었지만 조금은 진정이 된 혜련이 말했다.
현수는 그녀의 마음을 진정시키려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혜련님은 너튜브 하세요?”
“네. 그냥 소일거리처럼 가끔 해요.”
“채널 이름이 어떻게 돼요?”
“‘혜련해염’이에요. 이제 8만 명인가.”
“아아. 그러시군요. 나중에 합방 한 번 같이 해요.”
현수의 말에 혜련이 손사래를 쳤다.
“현수님이 싫다는 건 아니지만 합방할 때마다 이런 거면 진 빠져서 못 할 것 같은데요.”
그녀의 말에 현수가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저기 밖으로 도망친 사람들은 어떡해요? 그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녀가 걱정스러운 듯 말을 이었다.
“네. 이 주변에 악귀들이 엄청 많아요. 밤에 저렇게 나가는 거 너무 위험한데 지금 여기 분들을 두고 저 분들을 쫓아갈 수도 없고. 어쩔 수가 없네요.”
“다치지는…… 않겠죠?”
“장담은 못하겠어요. 구조대가 올 때까지 살아계시기를 바라야죠.”
현수는 다른 스트리머 동료들의 상태를 보았다.
모두 겁에 질린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지만 크게 다친 사람들은 없었다.
“TTP 방송국 촬영은 완전 쫑났다고 봐야겠네요. 카메라까지 가지고 도망쳤으니.”
방고리가 바닥에 앉은 채 말했다.
“그러게요. 방송국 관계자들이 우리말을 믿어줄지.”
혜련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래도 지금 계속 생방 타고 있으니 혜련 님 이야기를 다 믿어줄 거예요.”
현수의 말에 혜련이 끄덕이다 벌떡 일어났다.
“아. 지금 계속 생방 돌리고 계신 거죠?”
“네, 네.”
“그럼 지금 방송을 통해서 구조대를 요청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미 구조 신호가 여러 번 들어갔다는데요?”
“그러니까요. 지금 현지 가이드가 없으니 어디에 구조요청을 했는지도 모르잖아요. 한 번 더 해보죠.”
혜련의 말에 현수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카메라를 보고 말했다.
“혹시 지금 폴란드에 거주하고 계신 분들, 이 방송 보고 계시면 이곳 위소즈카 수용소로 구조 요청 좀 해주세요.”
현수가 말하자 수정이 현수의 귀에 대고 외국어를 읊조렸다.
방금 한 말을 폴란드어로 통역한 것이었다.
현수는 수정이 말하는 발음 그대로 마이크에 대고 따라했다.
그러자 채팅이 하나 올라왔다.
- 1000원 파워챗
- 폴란드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입니다. 신고하니까 그쪽 수용소에서 신고 전화 온 건 있는데 이상한 칠판 긁는 소리만 나서 출동하지 않고 있었다고 합니다. 거기서 하도 그런 장난전화가 많이 왔다고 하네요.
채팅을 본 현수 일행이 서로를 보았다.
“분명 신고 했다고 했는데 갑자기 칠판 긁는 소리?”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순간 현수는 이곳에 올 때부터 모두가 귀신에 홀려 있는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런데요.”
현수가 목소리를 잔뜩 깔고 일행들에게 몸을 돌리며 물었다.
“그 현지 가이드요. TTP 스태프 분들께서 고용하신 거죠?”
현수의 질문에 혜련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 그거 캡틴 채널에서 고용하신 분 아니었어요?”
혜련의 대답에 하날하날과 너도캠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아니. 네?”
당황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승합차를 타고 내려 여기까지 올 때까지 내내 함께 했던 현지 가이드는 누구도 고용하지 않은 사람인 것이었다.
아니, 사람인지 귀신인지 조차 분간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분명 카메라에는 제대로 잡혀 사람으로 봐야 할 상황임에도 쉬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 어우. 나 소름.
- 그럼 같이 다녔던 그 사람은 정체가 뭐인 거임???????
- 캡틴 방송 본 사람은 알겠지만 카메라에 잡히면 귀신 아닌 건데.
- 진짜 뭐야????
채팅창도 난리가 났다.
“그럼 그 사람이 신고를 했다는 이야기도 거짓말인 건가?”
방고리가 혼잣말처럼 물었다.
“칠판 긁는 소리는 귀신들이 내는 소리 중 하나에요. 이곳에서 신고가 접수 됐는데 그 소리가 났다면 신고를 했던 그 가이드가 귀신일 가능성이 있죠.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휴우.”
현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반 카메라에 잡히는 귀신이 있을 수 있나.’
일행들이 이렇게 고민을 하는 동안에도 수정은 아무말 않고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어? 잠깐.”
너도캠핑이 손가락을 치켜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이곳에서 칠판 긁는 소리로 장난전화가 많이 왔었다고? 그럼 전에도 누군가 왔을 때 그런 전화가 많이 걸려 왔다는 거 아니에요?”
너도캠핑의 말에 하날하날이 무릎을 탁 쳤다.
“맞아. 그럼 혹시 예전에 왔던 사람들도 그 가이드 귀신이 다 안내를 해주고 같은 상황에 처해져서 가이드가 구조요청을 했던 거 아니에요?”
“그러면 말 앞뒤가 맞긴 하는데…….”
하날하날과 너도캠핑의 추리가 합리적이기는 했다.
하지만 일반 카메라에 귀신이 잡힌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무튼 구조 요청은 제대로 들어갔대요. 그런데 하도 외지고 산길이라 시간이 좀 걸릴 거래요. 우리 시청자 분이 그쪽 구조대 쪽에 여기 생방송 링크를 보내줬다니까 아마 현 상황은 모니터링 할 것 같아요.”
세정이 새로 올라온 채팅을 보며 말했다.
“그럼 구조대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면 되는 거겠네.”
방고리가 말했다.
하지만 현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구조대가 이곳까지 무사히 온다는 보장이 없어요. 이곳 주변으로 악귀가 득실거린다니까요. 여기 바깥에 있던 매니저랑 코디가 차 부숴먹고 여기 온 거 보세요.”
현수는 샤워실 쪽을 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하던 걸 계속 해야 해요.”
현수가 말했다.
다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로의 눈치를 보았지만 무어라 반박을 할 수는 없었다.
이곳에서 발생한 기이한 일들.
그리고 밖에서 부서진 차량과 뭔가에 쫓기듯 들어왔던 매니저들.
구조대가 오는 것만큼이나 이곳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다.
“저는 샤워실에 가볼게요.”
현수가 샤워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냥 여기서 기다리는 게 어때요?”
“저 건물에서 너무 무서웠는데. 위험한 거 아니에요?”
“그냥 여기 있자고 하죠?”
방고리와 혜련, 하날하날이 세정을 보며 한 마디씩 던졌다.
세정은 난처해 하며 채팅창을 확인했다.
- 여윽시 우리 캡틴!!!!
- 방송을 안 다니깤ㅋㅋㅋㅋ
- 샤워실에 뭐가 있을 것 같음. 확실히.
- 캡틴 파이팅!!!!
채팅창에서는 현수를 응원하는 글귀와 함께 엄청나게 많은 후원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심지어 시청자 수는 10만 명 가까이 올라가 있었다.
세정은 일행과 현수의 뒷모습을 번갈아 보다가 현수 쪽으로 총총 쫓아갔다.
“하아. 아이참.”
방고리는 머리를 긁적이며 현수를 쫓아갔다.
이어 하날하날도 찝찝해 하는 표정으로 뒤를 따랐다.
“같이 가죠. 혼자 계신 것보다는 나을 거예요.”
너도캠핑과 효진, 현아가 혜련을 챙기며 말했다.
* * *
샤워실 앞에는 옷을 갈아입는 곳인 탈의실과 찬장이 있었다.
현수가 그곳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마치 배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철문과 운전대처럼 생긴 커다란 핸들이 보였다.
“이 안을 완전히 밀폐시키는 거야.”
수정이 현수의 옆에서 중얼거렸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인 후 핸들을 잡고 돌렸다.
꾸르릉 꾸르릉 꾸르릉
녹슨 쇳소리가 사방에 메아리쳤다.
꿍- 끼이이잉-
핸들을 끝까지 돌린 후 당기자 문이 열렸다.
그리고 보인 풍경은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떤 장면보다도 끔찍했다.
세정은 재빨리 카메라를 돌려 다른 곳을 비추었다.
“예상대로에요.”
현수가 샤워실 안으로 들어가며 중얼거렸다.
이 안에는 백골이 된 시신들이 가득했다.
시신들은 모두 독일 군복, 혹은 제복을 입고 있었다.
사아아아아
그리고 회색과 흰색 아우라를 흘리고 있는 귀신들이 우두커니 서있는 모습 역시 보였다.
죄수복이 아닌 군복을 입고 있는 귀신들이었다.
“폭동으로 이곳을 점령한 수감자들이 독일군과 간수들을 이곳에 넣고 가스로 학살했던 거예요.”
현수가 말했다.
결국 학살의 광기가 또 다른 학살의 광기로 변질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복수가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간수들 귀신이 있네요.”
현수의 말에 방고리와 하날하날이 심령카메라와 레이니 앱으로 이곳을 촬영했다.
확실히 이들의 화면에도 귀신의 모습이 포착되었고, 둘은 화면을 생방송 카메라에 비춰주며 시청자들에게 전달해 주었다.
“어? 여기.”
하날하날이 문 안쪽과 창문, 그리고 벽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을 가리켰다.
“네?”
현수가 하날하날에게 다가가 손전등으로 그림을 비춰보았다.
사탄을 상징하는 별 그림에 십자가가 기묘하게 섞여있는 페인팅이었다.
“이 그림. 예전에 미스터리 콘텐츠 할 때 본 적 있어요. 유럽이나 북미 쪽에서 귀신을 막을 때 쓰는 거라고 해요.”
하날하날이 말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표식 밑에 쓰인 문구를 읽어보았다.
Niech tu mieszkają duchy demonicznych Niemców.
폴란드어였다.
수정은 역시 현수의 귀에 대고 번역을 해주었다.
“악마와 같은 독일 놈들의 영혼이 이곳에 머물게 하소서.”
현수가 수정의 말을 들으며 읊조리자 모두가 입을 틀어막았다.
수감자들은 간수들을 이곳에 가둔 뒤, 이들이 죽어서도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봉인표식을 새긴 뒤 가스로 학살을 한 것이었다.
결국 이곳은 더럽고 지저분한 역사의 뒤안길에 남아 있는 아픈 상처가 곪아 있는 곳이었던 것이다.
꾸우우우웅-
그 순간, 샤워실의 두터운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안 돼!”
현수가 돌아서며 외치자 방고리가 쏜살같이 달려가 몸으로 철문을 막았다.
끼히히히힛-
그러자 닫히고 있는 철문 옆으로 수술복에 마스크를 쓴 악귀가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방고리는 그 악귀의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젠장!”
현수가 솔트샷건을 앞세워 달려가는 순간, 샤워실 안에 있던 귀신들의 형체가 사라지며 차가운 한기가 휘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