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화
# 진솔병원 (5)
현재 시청자 수 12844명.
전처럼 역동적인 장면이 연출되지는 않았지만 야간 촬영 카메라와 고스트돌, 그리고 방고리의 입담, 폐 병동이라는 여러 키워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만 명이 넘는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었다.
또한 한센병 환자들이 받았던 차별에 대한 입장을 수시로 전달하며 호감도가 급상승했다.
덕분에 구독자 역시 42만 명으로 껑충 뛰어 올라 있었다.
세정은 실시간으로 몰려오는 시청자들과 새로운 구독자 알림을 확인하며 또 한 번, 현수가 떡상하고 있다는 걸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그 사이, 방고리는 심령카메라로 귀신의 형체를 정확히 확인했다.
현수는 입원실이 있는 2층을 돌아다니면서 귀신이 있는 곳을 짚어주었다.
신기하게도 현수가 알려준 곳에서만 하얀 형체가 포착되고 있었다.
“여러분. 진짜 진짜 저 반신반의 했었거든요. 약간 조작이 있지 않을까- 의심하고 그랬는데 진짜 레알 찐이에요. 찐. 찐탱.”
방고리가 카메라 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눈은 공포에 파르르 떨리고 있었고 이마와 볼에는 땀이 가득했다.
- 진짠가봐.
- 방고리 저런 표정 처음 봄.
- 랭겜에서 졌을 때보다 더 당황한 얼굴인뎈ㅋㅋㅋㅋ
- 정말 신기한 게 캡틴 채널에 한 번 출연하고 나면 귀신 믿게 되는 것 같음.
시청자들 역시 방고리의 반응에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수는 2층에 있는 귀신들을 보면서도 특이한 점을 한 가지 발견할 수 있었다.
이 귀신들 모두 가만히 서서 현수를 바라보고 있을 뿐, 다른 해코지를 전혀 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까처럼 발목을 붙잡는 귀신은 있었지만 그 역시도 위협을 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끼히히히히히히
1층에 놓아둔 고스트돌의 웃음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이동하죠.”
현수는 방고리의 어깨에 손을 턱 올리고 말했다.
방고리는 고개를 끄덕인 후 현수, 세정과 함께 진솔의원 밖으로 걸음을 이동했다.
* * *
진솔의원에서의 촬영은 드라마틱하게 강렬한 장면 없이 마무리가 되었다.
귀신이 직접적인 해를 끼치거나 일행을 놀라게 하지도 않았다.
다만 새로운 장비인 고스트돌이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극대화 시켜주고, 방고리의 리액션이 흥미로운 덕분에 시청자들이 제법 재미를 느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귀신 탐정’이라는 별명이 더욱 고착화 되며 인지도가 또 한 번 확 뛰어 올랐다.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것에 이어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다는 이미지까지 더해진 것이었다.
그리고 이 파급력은 상당했다.
진솔의원 방송 촬영 이후, 편집본과 쇼츠 영상이 올라갔고 조회 수가 200만 명을 훌쩍 넘기며 엄청난 이슈몰이를 한 것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잔재와 시신 집단 암매장.
그리고 점점 잊혀져가던 한센병에 대한 이야기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지며 온갖 다큐멘터리와 뉴스에서도 해당 이야기를 다루기 시작한 것이었다.
심지어 뉴스에서는 현수의 영상이 자료화면으로 쓰이면서 ‘캡틴 퇴마 박현수 너튜브 채널 영상’이라는 안내 텍스트가 박혔고, 현수의 영상은 또 한 번 구독자 몰이를 해 47만 명을 기록했다.
이뿐만 아니었다.
지금까지 현수가 취재하거나 촬영했던 모든 이야기들이 재조명되면서 현수의 인지도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공행진을 하기 시작했다.
방고리 역시 진솔의원 이후로 2만 명의 구독자를 더 확보하면서 바야흐로 현수의 ‘파티원’라인에 포함이 되었다.
시청자들은 현수를 필두로 한 방고리, 하날하날, 너도캠핑을 묶어 ‘고스트 크루’라고 명명하였고, 현수도 이 명칭을 그대로 사용해 이들과의 관계를 더욱 강조했다.
* * *
그렇게 광고와 파워챗 후원 등 다양한 방면에서 큰 수익이 물밀 듯 들어오자 현수는 드디어 원룸 자취방에서 벗어나 아파트로 이사를 갈 수 있었다.
수도권 30평 아파트로 이사 온 현수는 스튜디오처럼 활용할 방을 골라 방음부스를 설치하고 컴퓨터와 음향장비, 조명들을 새로 세팅했다.
뿐만 아니라 태환 어머님께 연락해 새로 부적을 받아 집 곳곳에 부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거금을 쓰는 김에 현수가 타고 다닐 SUV 차량도 한 대 구입했다.
사실 현수는 차를 구매하는 그 순간까지도 크게 고민을 했었다.
자칫 흉기가 될 수 있는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것이 과연 현명한 것인가.
귀신들과 계속 마주치고 악귀들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에서 자동차는 현수에게 ‘칼’이 될 수 있었다.
그러기에 가급적 렌트카를 이용해 귀신들의 눈에 안 띄려 했지만 정작 퇴마를 거듭할수록 렌트카 비용이 무시 못 할 수준이 되고 있었다.
또한 렌트카를 몰고 다닌다 하더라도 도로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귀신과 악귀들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현수는 자동차를 구매하되, 집에 부착한 것처럼 차에도 부적을 붙여 악귀를 최대한 막는 수준으로 이용해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이제 현수의 옆에는 매니저 세정과 수호신 수정.
그리고 방송을 함께 하는 ‘고스트 크루’와 집, 자동차까지 갖춘 크리에이터가 되었다.
물품 광고도 쉬지 않고 들어왔다.
주로 조명과 카메라 같은 캠핑, 레저 용품들에 대한 광고가 많이 들어왔고, 라미로브 측에서 조율해 광고를 집행했다.
물론 거절할 광고도 제법 되었다.
방송을 할 때 제품을 소개하기 위해 작위적인 장면을 넣어야 하는 광고는 현수가 모두 거절을 해버렸다.
이에 대해 라미로브 측에서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광고를 받는 것이 사측 매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라미로브는 현수 방송과 어울리지 않는 제품일 경우, 아예 광고 시간을 책정해 본격적인 콘텐츠에 돌입하기 전에 제품 광고 영상을 삽입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현수는 이조차도 거부했다.
콘텐츠에 활용될 수 있는 장비.
즉, 조명이나 카메라, 음향장비, 혹은 의류 같은 것이 아니라면 광고 집행을 거부했다.
라미로브 입장에서는 채널 주인의 입장이 저리 강경하니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최대한 그 카테고리에 맞는 광고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고는 제법 많이 들어왔다.
생방송만 평균 만 명이 넘게 시청을 하고, 편집 영상들은 50만에서 100만 조회 수, 많게는 500만 조회 수까지도 터져 나오니 광고주들 입장에서도 현수 채널에 광고를 넣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일본과 유럽 쪽에서 현수의 채널이 잡히기 시작하면서 전체적인 총 조회 수, 동영상 시청 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바야흐로 공포 스트리머 중에서는 국내 1위가 된 것이었다.
태환이 휴가를 나와 현수를 방문했던 것도 이쯤이었다.
첫 휴가 때는 현수를 만나지 못하고, 두 번째 휴가를 나와서야 현수 집에 찾아온 것이었다.
“벌써 일병이야? 세월 빠르다.”
현수가 거실에 앉아 있는 태환에게 맥주를 건네며 말했다.
“그러게요. 방송은 수시로 보고 있어요. 점점 더 전문가 같으시던데요?”
태환이 엄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하하. 고맙다. 날 추워지는데 군 생활은 할 만 하고?”
“이제 대충 적응했죠. 아. 오랜만에 합방하고 싶은데 안 되죠?”
“음. 군인 신분에 방송 나와도 괜찮은가? 괜히 분란 만들지는 말자.”
현수가 웃으며 말했다.
태환은 아쉽다는 듯 입을 삐쭉거렸다.
“어이. 박현수. 아침에 컵에 떠다 놓으라고 했던 물. 그거 다 마셨어?”
그때 수정이 부엌에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아.”
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컵에 물을 받은 뒤 식탁 위에 올려놨다.
“까먹지 좀 말라니까!”
“네, 네. 알겠어요.”
수정의 볼멘소리에 현수가 대답했다.
이 모습을 가만히 보던 태환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혼자 뭐하세요?”
“아. 전에 말했잖아. 수호신이 붙었다고. 목마를 때 물 마셔야 한다고 저렇게 컵에 물 받아달래.”
“어우. 저 어렸을 때 엄마가 그러는 거 본 적 있는데.”
“그래?”
태환이 소름끼친다는 듯 몸을 움츠렸다.
“그럼 여기 귀신이 있는 거예요? 근데 왜 한기가 안 느껴지죠?”
태환의 질문에 현수가 어깨를 으쓱였다.
“글세. 여기 환경이 좋아서 그럴 수도 있고. 한이 세지 않을 수도 있고.”
“음. 그런가.”
“가라고 해도 안 가는데 어떡해.”
현수는 부엌에 서 있는 수정을 보며 말했다.
그때, 틀어져 있는 TV에서 뉴스 속보가 나왔다.
[긴급 속보입니다. 오늘 오전, 청주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연쇄살인범 허태훈 씨가 이감되던 도중 탈옥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경찰에서는 공개수사로 진행을 하며 범인의 인상착의에 대해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뉴스 소리를 들은 수정이 천천히 거실로 걸어 나와 TV를 보았다.
[허태훈은 과거 연쇄 살인을 저질렀던 흉악범으로 현재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었습니다.]
현수 역시 뉴스에 온 정신이 팔릴 수밖에 없었다.
“허태훈 저 사람이 왜요? 저 사람이- 아! 아아! 기억났다. 구희용 호텔!”
태환이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이게 무슨 일이냐.”
현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 *
허태훈의 탈옥 속보가 올라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경찰에게 전화가 왔다.
허태훈은 수감생활을 하면서도 수시로 현수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고, 언젠가 복수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계속 했었다는 것이다.
탈옥한 허태훈이 현수를 찾아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주의하라는 경고를 주었다.
아울러 현수 집 주변에 경찰 병력을 배치해 주겠다는 말도 해주었다.
현수는 전화를 끊으며 심각한 표정으로 수정을 보았다.
“그 또라이 같은 인간. 진짜 몹쓸 놈이네.”
수정도 질력이 났는지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정말 저를 찾아올까요?”
현수의 질문에 수정은 끄덕였다.
“내가 아는 허태훈이라면 찾아오고도 남아. 문제는 놈이 이 집을 찾을 수 있느냐, 없느냐겠지. 아마 그 부분이 어려울 거야.”
수정이 말을 이었다.
“원래 공인들일수록 집 주소 같은 개인정보는 더 꽁꽁 숨기니까 말이야. 예전에 연예인 쫓아다녀 봐서 잘 알지.”
그녀는 벽에 기대고 서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흠. 야외 방송할 때가 걱정이네요.”
“이젠 어디 간다, 하는 것도 확실하게 숨겨. 전에도 잘 숨긴 것 같긴 한데 미리 예고하거나 그러지는 마.”
“그래야죠.”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수정이 예상했던 대로, 허태훈은 현수의 집을 찾지 못하는 듯했다.
완벽하게 종적을 감춘 상태임에도 현수의 집, 혹은 차, 야외 방송을 하는 현장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부터 이상한 채팅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 h2918401 : 지켜보고 있다.
h2918401이라는 아이디의 유저가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쓰는 채팅이었다.
‘잘 보고 있다.’ 정도의 응원 채팅이야 자주 올라오는 편이었지만 딱 저 문장만 한 번씩 치는 것이 이상했다.
처음에는 파워챗 후원이 아니라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 때문에 묻혀서 보이지 않았지만 주기적으로 보이다보니 이제 저 아이디를 신경 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