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화
# 진솔병원 (4)
현재 시청자 수 6121명.
방고리가 현수의 발목을 잡고 당기자 현수를 붙잡고 있던 귀신의 팔들이 찢겨나가듯 딸려오다 증발이 되어 사라졌다.
다시 자유의 몸이 된 현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 고마워요.”
현수가 방고리를 보며 말했다.
“앞으로 구라라고 안 그럴게요.”
방고리는 현수의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며 말했다.
“방금 뭐였어요?”
세정이 물었다.
“내가 진료실 밖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누가 내 발목을 잡았어요.”
방고리가 먼저 대답하자 이어 현수가 말을 이었다.
“이곳 바닥에서 귀신의 팔이 마치 ‘꽃’처럼 올라오더라고요. 그래서 잡아보려고 손을 뻗었는데 절 잡더니 바닥으로 확 끌어내렸어요. 그러고는 안 놔주려고 하더라고요.”
현수의 말에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 진짜????????
- 공포영화에서 나온 그거 그거
- 저승으로 데려가려는 건가??????
- 아.....
- 실제 그래????
- 헐!!!
현수는 배낭과 장비들을 대충 확인해 보며 수정에게 고개를 돌렸다.
“지금 밑에서 나타난 귀신들. 위험한 거 아니죠?”
“널 데려가려고 했으면 벌써 데려갔을걸?”
수정이 대답했다.
“어딜 보고 말하는 거예요?”
방고리가 당황한 듯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다시 나가 볼게요.”
현수는 방고리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진료실 밖으로 발을 디뎠다.
귀신의 팔을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
“2층은 입원실이 있고 지하에는 장례식장이 있는 것 같아요.”
현수는 계단 앞에 서서 표지판들을 보며 말했다.
“장례식장? 허, 헐.”
방고리는 긴장한 목소리로 몸을 움츠렸다.
“바닥에서 팔이 올라와 당긴 걸로 봐선 장례식장에서 우리를 부르고 있는 것 같거든요?”
현수의 말에 방고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귀신이 부른다고 가면 위험한 거 아니에요? 그, 그, 그러면 안 될 거 같은데.”
방고리의 말에 현수가 세정과 수정을 보았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MF 탐지기는 계속 다섯 개 불빛을 모두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여자 울음소리 같은 바람소리 역시 계속 나고 있었다.
모든 분위기가 점점 더 음산해지고 있는 것이었다.
현수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래로 내려가 보겠습니다.”
그는 천천히 계단 아래로 발을 내딛었다.
그때, 고장 나 있던 손전등에 다시 불빛이 들어왔다.
그러자 야간 모드로 되어 있던 카메라가 잠시 먹통이 되었다.
- 으악!! 눈갱!!!!!!
- 눈갱 눈갱
- 화면 안 보여요.
- 화면ㄴㄴㄴㄴㄴㄴㄴ
“잠시만요.”
지금 상황을 파악한 세정이 현수를 불러 세운 뒤 카메라 세팅을 다시 했다.
“됐어요.”
세정이 OK사인을 보내자 현수가 다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하에는 2개 호실이 있는 조촐한 장례식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발인을 위한 커다란 철문도 보였다.
“지하인데 저기가 어디로 통하는 거죠?”
“건물 외관하고 마을 구조로 봤을 땐 저 문이 마을 쪽으로 바로 나가는 문일 거예요.”
“아.”
둘은 대화를 하며 천천히 복도를 가로질러 걸었다.
사아아아아아
장례식장 곳곳에 우두커니 서있는 귀신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장을 입은 귀신부터 한복을 입은 귀신.
아이 귀신. 처녀 귀신.
하지만 이들 모두 손가락과 얼굴 형태가 이상하게 뭉개져 있었다.
모두 한센병 환자들이었다.
이들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현수를 가만히 쳐다볼 뿐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현수가 걸음을 멈추자 방고리가 물었다.
“왜, 왜요. 또 뭐가 보여요?”
방고리가 심령카메라로 주변을 비추자 1호실과 2호실 안에 귀신들이 듬성듬성 서있는 것이 포착되었다.
그는 입을 틀어막고 숨을 죽였다.
끼기기기기긱 끼히히히히히-
순간 위에서 괴상한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으헛!”
방고리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르며 움츠렸다.
“고스트돌 소리에요.”
현수가 방금 내려온 계단 쪽을 돌아보며 읊조렸다.
소파와 프런트에 올려둔 고스트돌이 반응한 것이었다.
“저기……, 그런데 갑자기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나네요.”
방고리는 몸을 움츠린 채 장례식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갑자기요?”
“몰라요. 구조가 비슷해서 그런가.”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슬픔 전염.’
드디어 기가 센 방고리에게까지 귀신들의 슬픔이 전이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장례식장의 귀신들은 미동도 없었다.
끼히히히히히히
위에서 고스트돌의 웃음소리는 계속 들렸다.
- 저 소리 좀 꺼라ㅠㅠㅠㅠㅠㅠㅠ
- 소리 극혐
- 저 소리 좀 어케 안 됨?????
- 아 제발
시청자들의 요청이 이어졌지만 지금의 페이스를 끊고 갈 수는 없었다.
이렇게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계속될수록 시청자 수는 더 올라가고 있었다.
8525명.
다시 만 명의 고지에 올라갈 순간이 머지않은 상황이었다.
그때, 땅에서 귀신의 팔이 또 올라와 현수의 발목을 붙잡았다.
“히익!”
깜짝 놀란 현수가 아래를 보았다.
허여멀건한 손이 발목을 견고하게 붙들고 있었다.
이내 바닥으로 사람의 이목구비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레이니, 레이니.”
현수는 방고리를 보며 바닥을 가리켰다.
그러자 방고리가 레이니 앱을 켜 현수 앞의 바닥을 찍어보았다.
“우, 우오. 말도 안 돼!”
현수가 보는 바로 그 바닥에 정확히 이목구비가 잡히는 것이었다.
방고리는 자신의 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화강암 바닥에 사람 얼굴이 잡히자 놀라 까무러칠 듯 물러섰다.
- 대박 저거 뭐야.
- 귀신이 바닥에 있는 거??????
이 장면을 본 시청자들도 잔뜩 흥분했다.
“여긴 지하2층이 없을 텐데. 또 지하로 우리를 부르는 것 같아요. 대체 무슨 상황이지.”
현수가 혼잣말을 하며 주변을 보았다.
그때 ‘진솔 장례식장 사무실’이라 쓰인 작은 방을 발견했다.
현수는 세정에게 그곳을 가리킨 뒤 천천히 걸음을 떼려 했다.
그러자 발목을 잡았던 귀신이 자연스럽게 발을 놓아주었다.
현수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손전등으로 쭉 주변을 비췄다.
동시에 EMF 탐지기로 이곳저곳을 탐지해 귀신의 흔적을 찾았다.
이곳에서는 탐지기 불빛이 3개 정도까지만 켜지고 있었다.
바깥쪽 장례식장보다는 귀신의 기운을 덜 감지하는 것이었다.
끼히히히히-
그때 고스트돌의 웃음소리가 조금 더 가까워진 것을 느꼈다.
현수가 사무실 밖으로 살짝 고개를 내밀어 보았다.
그러자 소름 끼치는 현상을 하나 발견했다.
분명 1층 프런트와 소파에 두었던 고스트돌 중 하나가 계단 가운데에 놓여 있는 것이었다.
“저, 저, 저, 저게 왜 저기 있어요?”
방고리가 흥분해 물었다.
현수는 그걸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뭐, 뭐야. 그냥 둬요?”
“지금 옮겨봐야 아무 소용없어요.”
“저 소리라도 어떻게 하고 싶은데.”
방고리가 볼멘소리를 하듯 이야기했지만 현수는 이곳을 수색하기에 바빴다.
“귀신이 저기다 저걸 옮겨놨으면 옮겨놓은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는 서랍장과 책상을 뒤적거리며 뭔가를 찾았다.
“뭘 찾는 거죠?”
세정이 물었다.
“장례식장 일지 같은 거요. 분명 수기로 작성된 오래된 자료가 있을 것 같은데.”
잠시 뒤적거리던 현수는 드디어 책자를 하나 발견했다.
그리고 거기서 소름끼치는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아카찬 아쿠마는 의사 신분으로 이곳에 오기는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의 임무를 한센병에 걸린 조선인들을 통제하고 ‘처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건물은 그들을 ‘합법적’으로 처리하는 공간이었다.
그렇게 죽은 환자들은 앞 공터에 매장되었으며 그 수는 정확히 기록되지 않았다.
전국의 한센병 환자들 중 일부가 이곳으로 격리되었으나 그 명단 역시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아카찬 아쿠마가 사망하면서 이곳은 치료를 위한 공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독립 후, 조선인 의사가 이곳을 책임지며 이 진솔의원과 마을은 ‘미묘한 공간’으로 바뀌어 나갔다.
사람들의 후원과 봉사가 끊이지 않고 들어옴과 동시에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차별과 멸시가 공존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후원금이 누적이 되고 국가에서도 지원이 들어오며 이곳은 몇 번의 리모델링을 거쳐 확장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환자들이 매장되어 있는 공터까지 건물이 확장된 것이었다.
결국 이 병원 건물 중 일부는 시신들이 집단 매장당한 곳 위에 지어진 것이었다!
현수는 오래된 책자에 적힌 내용을 방송에서 쭉 읊어주며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현수의 말을 듣던 방고리는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그럼 우리 발밑에 집단 무덤이 있단 뜻이에요?”
방고리의 질문에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황으로 봐선 그렇죠.”
“맙소사.”
방고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심령카메라로 이곳저곳을 찍었다.
“만약 저게 사실이라면 여기 있는 귀신들의 한은 지금 우리가 여기서 당장 풀어줄 수 없어요.”
현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끼히히히히히히히
그 사이, 고스트돌의 웃음소리는 더 가까워져 있었다.
방고리가 방문 밖으로 슬쩍 확인을 해보자 고스트돌은 붉은 LED 눈을 깜빡이며 사무실 앞에까지 와있었다.
방고리는 완전히 겁에 질린 표정으로 현수를 보았다.
끼히히히히-
그 소리는 괜스레 더욱 크게 들려왔다.
“아무래도 여기는 나가서 민원을 넣어야 할 것 같아요. 철거하고 매장된 시신들을 발굴해 넋을 달래도록요.”
현수가 카메라와 수정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수정은 살짝 미소를 띤 채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현수의 의견이 옳다, 그르다라는 말은 하고 있지 않았다.
다만 흐뭇한 표정을 지어보임으로써 나름의 의사 표시를 하고 있었다.
“나가죠.”
현수는 세정과 함께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아까보다 더 많은 귀신들이 우두커니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귀신들은 흉측한 얼굴로 현수 일행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얼굴이 무너져 있었지만 굉장히 슬퍼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챌 수 있었다.
현수는 사무실 앞에 있던 고스트돌을 챙긴 후 위로 올라왔다.
히이이이히잉-
바람소리와 함께 여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2층 입원실 쪽이었다.
- 그런데 밑에서 귀신 손이 올라와 잡아 당겼다면 천장에 귀신 형체는 왜 나타났던 거임?
- 맞아 아까 천장에 하얀 거 막 끼어있지 않았음?
- 맞아 그랬음.
- 2층 ㄱㄱㄱㄱ
- 50000원 파워챗
- 입원실도 들러봅시다.
- 위로 가주세요.
2층도 들러달라는 채팅이 봇물 터지듯 올라오자 세정이 계단 쪽을 가리켰다.
그러자 현수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2층도 한 번 들러보겠습니다.”
현수는 고스트돌을 다시 프런트에 놔둔 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발을 올렸다.
이 계단에는 병원용 침대의 철제 프레임이 나뒹굴고 있었다.
현수와 방고리는 조심스럽게 철제 프레임을 옆으로 치워 길을 낸 후 2층 입원실 쪽으로 올라갔다.
이곳 역시 오싹한 한기가 가득했다.
현수는 EMF 탐지기로 주변을 슥 비췄다.
그때 복도 한 쪽에 귀신이 쪼그려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방고리님. 지금 저 복도 끝에 귀신이 앉아 있거든요. 한 번 촬영해 보시겠어요?”
현수의 말에 방고리가 심령카메라를 들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