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 진솔병원 (2)
그 주 토요일 오후 5시.
강원도 상대군 동제리.
현수와 세정이 마을 앞에 차를 세운 뒤 차창 밖을 슥 보았다.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와. 무슨 마을이 이래요?”
뒷좌석에서 방고리가 슥 고개를 내밀더니 물었다.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곳 같았다.
“대충 저녁 챙겨먹고 방송 준비 하죠.”
현수는 마을 입구의 비석을 바라보다 차에서 내렸다.
“후.”
세정도 한숨을 짧게 내쉬며 조수석에서 내렸다.
“그런데 방고리님. 정말 방송 안 하셔도 돼요?”
현수가 물었다.
그러자 방고리가 손을 내저었다.
“그때 그 군부대 근처에서 촬영한 거 보니까 그냥 게스트로만 뛰는 게 훨씬 각이 잘 나오더라고요.”
아마 방송을 끄고 진행했던 너도캠핑을 보며 벤치마킹하려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방고리의 매니저나 촬영 스태프는 참가하지 않아 게스트가 왔던 방송 중에선 가장 조촐하게 이동을 하게 되었다.
“여기 다른 사람들이 이주해 산다고 하더니. 완전 마을이 죽어 있네요.”
세정은 괜히 오싹한 지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들어가 보면 알게 되겠죠.”
현수는 마을 안쪽을 보면서 배낭을 꺼냈다.
그때, 마을 안쪽에 있는 집 창문에서 사람 얼굴이 슥 드러났다 사라지는 것을 포착했다.
“너도 느꼈겠지만 이 마을 안에 지금 산 사람 없다.”
수정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다가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현수와 세정은 고개를 끄덕인 후 모른 척 각자 짐을 챙겼다.
마을의 구조는 대충 이러했다.
마을 입구에 진솔병원과 함께 마을회관이 있고 그 안 쪽으로 몇 채 안 되는 시골 주택들이 늘어서 있었다.
총 해봐야 20가구도 안 될 것 같은 작은 마을.
완만한 언덕에 위치한 마을은 산속에 둘러싸여 굉장히 아늑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지만 왠지 모를 한기가 맴도는 것이 썩 좋은 기운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진솔병원이 아니라 ‘진솔의원’이네.”
방고리가 마을 입구에 있는 병원 입구를 보며 말했다.
인터넷상에서는 모두 ‘진솔병원’이라고 기재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의원’규모의 작은 의료 기관이었던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정보가 와전되기도 하니까요.”
현수가 간단하게 먹을 음식을 꺼내 건네며 말했다.
방고리와 세정은 음식을 받아 포장을 벗겼다.
“대충 먹고 마을을 한 번 확인해보죠.”
현수도 음식을 꺼내 입에 넣으며 말했다.
* * *
해가 지기 전.
마을회관과 문이 열린 시골집을 확인해 본 결과, 이 마을 전체가 모두 폐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집 안에 남아 있는 쓰레기들과 달력을 토대로 추측해보건대, 한센병 환자들이 모두 떠난 후 다른 사람들을 이주시켰지만 그리 오래되지 않아 이들 모두 이사를 간 듯했다.
그 뒤로 이곳은 버려졌고, 많은 부동산 업자들이 찾아와 땅을 매매하려 했지만 사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 모든 집에는 귀신들이 살고 있었다.
현수와 세정은 폐가에 들어갈 때마다 귀신의 기운을 느끼거나 형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방고리는 아무 기운도 눈치 채지 못하고 무심히 빈집을 휘젓고 다녔다.
“방고리님. 집 안에 있는 물건들 위치를 바꾸거나 이름 같은 거 읽으시면 안 돼요.”
현수가 신신당부하자 그 부분은 주의를 해주었지만 귀신을 보기는커녕 오싹한 한기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의 기가 센 것도 있지만 이곳에 있는 귀신들의 한이 그리 세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현수는 여기서 한 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분명 진솔의원을 다녀간 많은 사람들이 불행한 사고를 겪었다고 했다.
그것이 귀신의 부정 때문이라면 그 의원 안에 있는 귀신들은 굉장히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 정도 한이라면 방고리도 오싹한 기운 정도는 느꼈을 수 있다.
하다못해 ‘미드나잇 게임’에서도 악귀의 기운을 느끼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두 가지 중 하나였다.
진솔의원을 다녀간 사람들이 모두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 한낱 괴담에 불과하거나, 아니면 이 마을 내 시골집에 들어온 귀신들은 외부에서 왔거나.
이 질문에 대답을 해줄 수 있는 건 수정이었다.
“누나. 이건 누나가 대답할 수 있는 범주일 것 같아서 여쭙는데요.”
현수가 조금 떨어져서 따라오고 있는 방고리의 눈치를 슬쩍 보고 나지막이 물었다.
“뭐 어떤 거? 저 귀신들 사연은 말 못 해준다.”
“네. 그거 말고요. 폐가에 귀신이 드는 이유는 어떤 게 있나요?”
“뭐, 그 집에 사연이 많을 수도 있고. 그냥 ‘빈집’이라 오는 경우도 있고.”
“아.”
“귀신도 사람이었잖아. ‘집’이라는 공간은 휴식을 취하는 개인적인 곳이고. 귀신도 집을 갖고 싶은데 어떻게 가질 수 없잖아. 그렇게 떠돌다 빈집이 보이면 들어가 사는 거지.”
“그런 귀신들은 그래도 한이 좀 약한가요?”
“개인적인 한이 있을진 몰라도 특정 대상이나 공간에 대한 한은 없지. 그러니까 빈집에서 조용히 지내지.”
수정이 대답했다.
“그럼 지금 들렀던 폐가들은 다 그런 귀신들인 거죠?”
“노코멘트.”
현수의 질문에 수정이 고개를 휙 돌렸다.
그렇게 대화를 하는 사이 하늘을 보니 조금씩 노을이 지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마치 CG처럼 진솔의원의 창문에서 하얀 형체들이 어른거리는 것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다른 폐가들과 달리 진솔의원 안에 있는 귀신들은 상대적으로 강한 한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슬슬 방송 켜죠.”
현수가 세정을 보며 말했다.
* * *
저녁 9시.
진솔의원 앞에 선 현수와 방고리 앞으로 세정이 손을 흔들었다.
방송이 시작되었다는 의미였다.
“안녕하세요! 캡틴 퇴마 채널! 박현수입니다. 오늘 함께 해주실 게스트 분 먼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게임 스트리머 방고리님이십니다!”
현수가 해맑게 인사하자 방고리가 양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방고리입니다.”
방고리가 인사하자 시청자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 안녕하세요.
- 미드나잇 게임 참가자들하고 다 깐부 먹었나봨ㅋㅋㅋㅋㅋㅋㅋ
- 아 그런듯ㅋㅋㅋㅋㅋㅋ
- 근데 그때 하날하날이랑 과대 합방으로 먹방한 거 속초에서 하지 않았음? 그러고 캡틴 채널에 하날하날오고. 과대는 안 친한가??????
- 언젠간 하겠짘ㅋㅋㅋㅋ
- 구독자랑 조회 수 걸리면 다 햌ㅋㅋㅋㅋ
- 안녕하세요~~~~
시청자들의 채팅이 올라오자 현수는 바로 멘트를 이어갔다.
“오늘 촬영할 곳은 강원도에 위치한 폐 병원입니다. 의원 급으로 규모는 작은데요. 과거에 한센병 환자 분들을 치료하고 관리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현수가 진솔의원의 외관을 보여주며 말했다.
- 그럼 저 마을 격리지역이었던 데 아님????
- 격리까진 아님.
- 그냥 모여 살았던 거지.
- 한센병이 뭐임?????
- 문둥병.
- 그 단어는 실례래요. 쓰지 말래요.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왔다.
현수는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하게 말했다.
“한센병은 정확한 감염 경로가 밝혀지지는 않았는데요. 상처를 통해 균이 침입해 생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말초신경에서부터 병변이 시작 돼서 감각에 문제가 생기고 심해지면 감염 부위가 내려앉거나 떨어져 나가는 병입니다.”
현수의 말에 방고리가 눈을 크게 뜨고 보았다.
그 정도 정보까지는 모르고 합류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환자 분들이 사람들에게 차별 받았던 아픈 역사가 있는 병인데요. 이 마을과 병원이 그 환자 분들을 돌봐줬던 곳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에 들렀던 많은 분들이 불행한 사고를 겼었다는 이야기를 확인해서, 직접 찾아와 봤습니다.”
- 성경에서도 그 병에 대한 언급이 나옴.
- 한의학에도 있을 걸???????
- 뭐 악마의 병이니 뭐니 말이 많았었음.
- 그 사람들 입장에선 억울하지.
- 무지가 편견을 낫는 법.
- 지식이 편견을 낫기도 함ㅋㅋㅋㅋㅋㅋㅋㅋ그냥 사람들의 인식 문젴ㅋㅋㅋ
- 오늘은 뭔가 슬픈 이야기가 될 것 같음.
- 10000원 파워챗
- 그분들 한을 꼭 풀어주세요.
- 오늘도 기대된다.
채팅을 확인한 현수가 말했다.
“제가 감히 그 분들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 온 사람들이 왜 사고를 당하는지 알아보고 또 차별 속에서 세상을 떠난 분들을 기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수는 배낭에서 새 장비들을 꺼내 소개를 해주었다.
“이번 촬영부터는 새 아이템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간단히 소개해 드릴게요.”
현수는 고스트돌과 야간 촬영 카메라를 소개해 주었다.
- 오오오 장비 업그레이드!!
- 저 곰돌이 인형은 마냥 귀여운데???
- 저런 아이템들이 실제로 있구나.
- 검색해보니까 팔고 있음ㅋㅋㅋㅋ신기.
“특히 이 야간 촬영 카메라는 우리 매니저님께서 사용을 해주실 건데요. 이걸 지금 현재 카메라에 설치해 주신 다음에 케이블만 연결하시면-”
현수와 세정이 어두워진 진솔의원을 비춘 채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시청자들이 보고 있는 생방송 화면이 초록색 화면으로 바뀌며 손전등 없이도 진솔의원의 외곽이 잡혔다.
- 오!!! 게임에서 나이트비전 켠 것 같다!!
- 와 대박이다.
- 더 재밌어지겠닼ㅋㅋㅋㅋㅋㅋ
- 굳굳 우리 후원금은 이런데 쓰라규
- 잘 보입니다. 흐릿하지만.
- 흐릿해서 더 쫄깃할 듯!!!!
시청자들에게도 정상적으로 화면이 잘 송출되는 모양이었다.
급하게 배송이 오는 바람에 실제 송출 테스트는 처음 해보는 것인데 다행히도 잘 작동이 되고 있었다.
“매니저님께서는 잘 촬영해 주시다가 손전등 불빛이 없는 곳에선 나이트비전으로 바꿔주시면 됩니다.”
“네, 알겠어요.”
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들어가 보도록 하죠.”
현수가 앞장서서 진솔의원 앞으로 걸어 나갔다.
방고리는 그런 현수의 뒤에 바싹 붙어 천천히 쫓아갔다.
아까보다 훨씬 조심스러운 걸음이었다.
아무래도 밤이 되자 엄습해 오는 어둠이 무서운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진솔의원은 밤이 된 이후부터 고양이 울음소리 같은 이상한 소리를 계속 흘리고 있었다.
흡사 바람 소리 같기에 누구도 그 바람의 정체를 묻지 않았지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내기엔 충분했다.
끼이이이익
진솔의원의 문을 열자 언제나 그렇듯, 녹슨 철문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리고 이어 오래된 병원의 프런트가 한눈에 들어왔다.
손으로 쓴 듯한 안내문들과 소파, 바닥에 널려져 있는 온갖 집기들.
어디서 부서진 것인지 확인할 수 없는 건축 자재들이 기둥과 벽에 세워져 있었다.
우우우우우웅-
휘이이잉-
바람소리와 함께 여자 흐느끼는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다.
방고리가 눈을 크게 뜨고 현수의 등을 두드렸다.
“이 소리. 나만 들리는 거예요?”
결국 겁에 질린 방고리가 물었다.
“어디 바람이 지나가면서 나는 소리일 수도 있고, 귀신 소리일 수도 있어요. 이런 데 오면 항상 들려요. 방풍이 제대로 안 돼서.”
현수는 괜찮다는 듯 방고리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귀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현수는 방고리에게 구형 스마트폰을 건네주며 심령카메라와 레이니 앱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제가 방송할 때 쓰는 심령카메라인데요. 이거는 오늘 방고리님께 맡기겠습니다. 방고리님께서 심령카메라나 레이니 앱 화면을 저 촬영 카메라에 수시로 보여주면서 서포트 해주시면 돼요.”
“알겠어요.”
방고리가 고개를 끄덕인 후 심령카메라를 켜 촬영 카메라에 보여주었다.
“오늘은 제가 캡틴님을 도와서 귀신을 포착해 보여드리겠습니다.”
방고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당당하게 말했다.
사아아아아아
그때 날카로운 한기가 현수와 방고리, 세정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귀신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