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 진솔병원 (1)
다음날.
아침에 일어난 현수는 이상하게 개운한 느낌에 몸이 가벼웠다.
“간만에 등산을 해서 그런가.”
현수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냉장고로 가 차가운 물을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보던 수정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숙면할 수 있도록 자신이 도와줬다는 걸 전혀 모르는 모양이었다.
“핸드폰에 무슨 알림이 이렇게 많이 와있어?”
현수는 물을 마시며 무심코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한참 알림 목록을 확인하던 현수는 깜짝 놀라며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구독자 수가 6만 명이나 늘어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구희용 호텔과 도래진 초등학교, 그리고 741초소 촬영 영상의 조회 수가 각각 200만, 300만 조회 수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것이었다.
“와우.”
덕분에 드디어 40만 구독자를 확보하는 데에 성공했다.
하날하날 채널까지 단 번에 따라잡은 것이었다.
이 소식은 밤새 세정과 하날하날에게도 전달이 되었는지 둘에게도 축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방고리와 너도캠핑에게도 메시지가 왔다.
현수는 답장을 해주었다.
‘과대는 답이 없네.’
괜스레 맘이 쓰이는 부분이었다.
물론 120만 스트리머인데다가 그때 큰일을 겪을 뻔했던 만큼 어느 정도 선을 긋는 거야 이해를 하지만 남들이 인사를 할 때 혼자 침묵하고 있는 건 현수와 척을 지겠다는 것으로 느껴졌다.
‘내가 신경 쓸 필요 없지.’
현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화장실로 가 씻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을 때, 세정에게 자료가 하나 도착해 있었다.
이번 주 토요일에 갈 ‘진솔병원’에 대한 히스토리가 담긴 자료였다.
현수는 머리에 수건을 얹은 채, 자료를 확인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 여기 정말 가실 거예요?
세정이 자료를 보내며 물어본 말이었다.
현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진솔병원에 대해 직접 검색을 해보았다.
* * *
강원도에 위치한 진솔병원.
위에서 언급했듯 이미 많은 스트리머나 공포 콘텐츠 블로거, 혹은 연예인들이 촬영을 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미스터리가 가득한 곳이기도 했다.
방문을 했던 스트리머 중 대부분 현재 활동을 중단했기 때문이었다.
그 방문자 중에는 수아도령도 있었다.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현재는 그곳에 방문한 모든 스트리머가 채널 운영을 멈추고 잠적한 상태였다.
블로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과거 잠깐 인기를 끌었던 ‘미스터리를 추적한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이곳을 방문해 촬영을 한 적이 있는데 관련 스태프 중 두 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한 명이 돌연사했으며, 패널로 출연한 연예인은 약물 과다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 모든 사망, 잠적 사건들과 진솔병원 방문은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었다.
하다못해 수아도령만 하더라도 방송을 멈춘 이유가 호장리 폐 수영장 때문이지, 진솔병원 때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고 당사자 모두가 그곳에 들른 이력이 있다는 점에서 미스터리한 부분이 있었다.
‘단순한 우연인가?’
유명한 폐가, 흉가가 한정되어 있는 만큼 어쩌면 교집합이 생기는 건 당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경우는 어떤 경우에요?”
현수가 수정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방구석에서 혼자 놀고 있던 수정이 다가와 모니터를 보았다.
“너도 충분히 알겠지만 귀신은 ‘부정’을 의미한다잖아. 산 자의 세상에 죽은 자가 있는 게 어떻게 순리에 맞는 일이겠어. 그런 존재와 마주했으니 당연히 생각도 부정적으로 변하겠지.”
수정이 자신의 머리를 톡톡 치며 말했다.
“귀신의 저주에라도 걸렸다는 말씀?”
“음. 저주라기보다는 그냥 갑자기 만사에 회의감이 드는 거지? 악귀가 계속 속삭이는 경우도 있지만 그냥 ‘죽음’이라는 것에 물들어 버리는 거지.”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는 거죠?”
“마주쳤던 귀신이 너무 슬퍼하고 원통해 했으면 그 슬픔이 전염될 수 있는 거야.”
“그렇군요.”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다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아? 이런 건 잘 알려주시네요?”
“이건 다르잖아. 특정 귀신에 대해 규정하는 이야기가 아니잖아. 크게 보면 이런 경우도 있다~ 이런 거지.”
수정이 손을 휘휘 내저으며 돌아섰다.
‘어째 자기 마음대로인 것 같은 기분.’
현수는 입을 씰룩이며 생각했다.
“거기에 어떤 역사가 있는지 잘 살펴봐. 어떤 귀신이 있기에 그렇게 안 좋은 일들이 연달아 생기는지.”
“아, 맞다.”
수정의 말에 현수가 다시 모니터를 보았다.
한센병.
가슴 아픈 역사를 가진 병.
현대 젊은 세대들은 이 병에 대해서 잘 모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병, 혹은 문둥병이라고 하면 알만큼 꽤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병이었다.
현재는 발병률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과거에는 발병 원인과 치료법에 대해 전무했기 때문에 굉장히 두려운 병으로 취급되었으며, 병변이 다른 병에 비해 끔찍했기 때문에 환자들은 지금으로썬 상상 못할 차별을 받아왔다.
그런 이유로 과거부터 환자들은 마을, 혹은 섬에 격리 되었으며 현재까지도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곳들이 있었다.
옛날에 비해서는 병에 대한 인식이 많이 완화되었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내면에는 아직도 차별의식이 남아 있어 환자들은 대부분 세상에 나오기보다 숨어 지내는 쪽을 택하고 있었다.
진솔병원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강원도 상대군 동제리는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었다.
그리고 진솔병원은 마을 내 환자들을 돌봐주던 ‘작은 종합병원’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인근 시설로 이주해 가며 이 마을은 버려졌고,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마을 구석에 있던 이 진솔병원 만큼은 누구도 손을 대지 않고 수십 년 째 방치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역사가 되게 오래됐네요. 1924년에 개원해서 2003년까지.”
“그러게.”
현수의 말에 수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일제도 한센병 환자에 대해서는 탄압이 심했다던데.”
“음. 어떻게 된 건지 몰라도 슬퍼하는 귀신들이 많긴 하겠네.”
“네?”
“생각을 해 봐.”
수정이 현수를 보며 말하고는 돌아섰다.
‘슬퍼하는 귀신이 많다.’
현수는 그녀가 한 말을 곱씹으며 진솔병원의 허름한 외관 사진을 바라보았다.
지상2층에 지하1층이 있는 작은 건물.
예전 ‘소화원’보다는 훨씬 큰 규모였다.
대지 규모나 외관 시설로도 훨씬 현대화되어 있는 곳인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오래 방치되어 있는 만큼 넝쿨과 변색된 창문, 금간 콘크리트.
무척 지저분한 모습이었다.
한참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던 현수의 핸드폰이 울렸다.
게임 스트리머 ‘방고리’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캡틴 형님!]
“어어. 오랜만이에요.”
현수는 방고리가 자기보다 어리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스트리머들에게 반말을 하는 것이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요새 방송 잘 돼가세요? 보니까 지난주에 하날 누나, 캠핑 누나랑 같이 속초 가셨더만.]
“네, 네. 그렇게 됐어요.”
[저하고도 한 번 가시죠. 하하하하.]
방고리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언제요?”
[이번 주 토요일 야방 안 하세요? 그때 같이 가도 되나?]
“이번 주 토요일이요?”
현수가 놀라 되물었다.
[네, 네. 방송 보니까 준비할 거 없이 편하게 가도 될 것 같은데.]
“아- 어- 아.”
현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이번에 가는 곳은 좀 다른 의미의 괴담이 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귀신이 나온다, 악귀가 있는 것 같다-는 괴담이 아닌 방문한 사람들이 모두 사고를 당했다는 괴담이었다.
현수가 가는 것이야 공포 콘텐츠를 진행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방고리의 참여는 이야기가 달랐다.
하지만 방고리는 단호했다.
[에이. 여캠들은 받아주고 전 안 받아주는 거임? 에이 형님!]
방고리가 말했다.
그런 오해까지 사고 싶지 않았던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알겠어. 그럼 토요일 날 아침에 저희 집으로 보세요. 주소 찍어 드릴게요.”
[오케이! 네, 네.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려주세요!]
“네.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그리고 합방하는 건 사전 공지해도 되는데 목적지는 구독자들한테 비밀로 부탁드려요.”
[예얍! 땡큐 감사!]
방고리가 신이 나서 전화를 끊었다.
현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현수의 구독자 수가 갑자기 5만 명 이상 늘어난 것과 더불어 하날하날과 너도캠핑이 현수와 합방 이후 구독자 수가 늘어나는 것을 보고 자신도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같이 단톡방까지 있는 마당에 이렇게 요청해오는 것을 단칼에 거절하기는 어려운 부분이었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미드나잇 게임’ 때 방고리는 꽤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상황을 타개해 나갔었다.
어쩌면 더 순조로운 촬영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현수는 계속 자료 조사를 해나갔다.
* * *
현수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 아이템을 더 구비했다.
일단 위자보드를 계속 사용하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정말 위자보드 때문에 호장리 폐 수영장에서부터 악귀가 쫓기 시작했고, 수정이 현수 곁에 찰싹 달라붙게 된 것이라면 더 이상 쓰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이었다.
그리고 사실상 귀신과 대화를 할 수 있는 현수는 귀신의 의지만 있다면 어떤 식으로는 소통이 가능했다.
그걸 보여주기 위해 위자보드가 필요했던 것이지만 이는 고스트사운드로 대체하는 편이 낫다는 결론이 섰다.
그래서 위자보드는 빼두고 심령현상을 감지한다는 인형들을 구매했다.
오로라 모텔에서 보았던 어린 아이의 귀신.
원래 평범한 아이 귀신이었으나 현수가 등장하면서 현수를 쫓는 악귀에 의해 모습이 변한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도래진 초등학교에서도 어린 아이의 귀신들을 보았었다.
이런 걸 봤을 때 어린 아이의 귀신 출연 빈도가 높다고 판단이 되었다.
그렇다면 어린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아이템을 이용하면 조금 더 효과적으로 아이 귀신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고스트돌’이라 불리는 작은 곰 인형은 평소 때엔 가만히 있다가 심령현상이 감지되면 눈에 불이 들어오며 웃음소리를 냈다.
아마 EMF 탐지기와 비슷한 것을 감지해내는 것이 아닐까-하는 추측이 들었다.
현수는 이 고스트돌을 수정 앞에 놓아보았다.
그러자 인형의 눈에서 붉은 LED 불빛이 깜빡거리며 ‘키키키키키’하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야. 이거 이렇게 소름 끼치는 빨간 눈에 이따위 웃음소리로 세팅이 되어야 하는 거냐?”
수정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현수는 다시 인형을 거두며 어깨를 으쓱였다.
확실히 고스트돌은 귀신에 반응을 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손전등이 없이도 촬영이 가능한 나이트비전 카메라도 추가 구매했다.
현재는 손전등 불빛에만 의지해서 촬영을 해야 했다.
하지만 나이트비전이 있다면 손전등 불빛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촬영을 할 수 있었다.
현수는 물건을 받자마자 바로 작동을 시켜보았다.
그러자 영화, 혹은 게임 속에서 보았던 초록색 화면이 출력되었다.
불을 끄고 확인을 해보자 그 성능이 훨씬 도드라졌다.
“이 정도면 조금 다른 장면들도 포착할 수 있겠지?”
현수는 장비들을 확인하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