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화
# 741소초 (4)
“끄응-”
너도캠핑은 로프에 몸을 의지한 채 70도 경사의 절벽을 천천히 내려갔다.
그 모습은 마치 암벽 등반을 하는 하이커의 모습 같았다.
세정과 현아, 하날하날은 절벽 아래가 잘 내려다보이는 지대를 찾아 카메라로 촬영을 했다.
탓 탓 탓
너도캠핑은 불쑥 불쑥 튀어나온 바위와 나무를 디뎌 가며 조금씩 현수에게 다가갔다.
현수는 이승태의 군번줄을 주머니에 넣으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불빛을 켜고 내려오고 있는 너도캠핑과, 한참 위에서 조명과 함께 현수 쪽을 촬영 중인 다른 일행들이 눈에 들어왔다.
현수도 정확한 위치를 보여주기 위해 손전등을 크게 휘둘러 보였다.
그러다 중심이 살짝 틀어지자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몸이 기울어졌다.
“으어어어!”
현수가 부랴부랴 나무 밑동을 껴안고 버텼다.
“가만있어! 움직이지 마!”
너도캠핑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때 그녀의 발에 닿았던 나무가 부러지며 현수에게로 쏟아졌다.
아래에서 들리는 파도소리와 위에서 쏟아지는 나뭇가지들.
그리고 시시때때로 위태로워지는 무게중심.
흡사 재난영화의 한 장면 같은 모습이 연출되고 있었다.
세정은 이 장면을 측면에서, 확대해가며 촬영을 해나갔다.
실제 핸드헬드 기법의 영화 속 구조 장면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 1000원 파워챗
- 오오오오오오오
- 15000원 파워챗
- 영화값이 안 아까워서 보냄.
- 20000원 파워챗
- 파이팅!!!
- 10000원 파워챗
- 너도캠핑 진짜 걸크 쩐다.
- 1000원 파워챗
- 여기 너무 존잼이라는 부분.
- 50000원 파워챗
- 이거 너튜브각이네 완전 각이네.
- 5000원 파워챗
- 이래도 이거 다 구라라고 후라이 칠래??
파워챗 후원도 거침없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세정은 너도캠핑의 외침과 파도소리가 고스란히 마이크에 들어가 생동감 있는 장면이 연출 되도록 아무 멘트도 하지 않았다.
* * *
텁
현수의 바로 옆에 있는 나무 밑동으로 너도캠핑이 다가왔다.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네요. 다행이에요.”
너도캠핑이 현수를 보며 말했다.
“네. 저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움직일 수 있어요?”
“네, 네.”
“클라이밍 해봤어요?”
“클라이밍이요?”
“암벽등반. 뭐 실내에서든 야외에서든.”
“아뇨.”
“등산은 좋아해요?”
“아뇨.”
“어어-”
너도캠핑은 현수를 어떻게 구해야 할지 생각하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일단 내가 거기로 갈게요. 절대 움직이지 마요.”
그녀의 말에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캠핑은 로프를 붙잡고 능숙하게 현수가 버티고 있는 나무 밑동에 발을 디뎠다.
그러고는 현수의 허리에 카라비나와 로프를 결속했다.
“군대는 전역했죠?”
“네.”
“이 로프 잡고 저 위까지 올라가면 돼요. 움직일 수 있는 것 맞죠?”
“네.”
너도캠핑은 현수에게 먼저 올라가라는 손짓을 했다.
현수는 몸에 통증이 남아 있었지만 있는 힘껏 로프를 잡고 언덕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바위나 나무 밑동에 발을 대고 휴식을 취했다.
너도캠핑은 그의 뒤를 따라 올라가며 아래를 받쳐주었다.
“끄응. 헉. 헉.”
현수가 로프를 잡고 올라가다 옆을 보니 수정은 이 절벽을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마치 평지를 걷는 것처럼, 중력을 무시한 모습이었다.
‘하아. 진짜 얄밉네.’
현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절벽 위를 기어 올라갔다.
* * *
풀썩
떨어졌던 곳까지 올라온 현수가 그대로 넘어져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허억.”
그 사이 다른 위치에서 촬영하던 하날하날과 효진, 현아, 세정이 달려왔다.
“괜찮아요?”
이들은 조명과 카메라를 비추며 물었다.
“괜찮아요. 허우.”
현수가 손을 휘저었다.
- 거기서 떨어졌는데 저렇게 밖에 안 다쳤다고????????
- ㅋㅋㅋㅋㅋㅋㅋ진짜 이건 연출 개티난닼ㅋㅋㅋㅋㅋ
- 저기서 떨어졌으면 최소 골절이지.
- 아아아아 드디어 님은 갔습니다. 주작한 님은 갔습니다.
- 멀리 안 나간다~~~~
- 1000원 파워챗
- 크게 안 다쳐서 다행이에요!!!
현수의 상태를 본 시청자들이 분탕치는 모습이 보였다.
세정은 현수가 떨어졌던 절벽을 다시 한번 카메라에 담은 뒤 현수를 담았다.
“괜찮은 거예요? 별로 안 다쳤네요. 다행이에요.”
세정은 현수가 직접 해명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했다.
“운이 좋았어요. 어우. 그래도 온 몸이 아프긴 아파요.”
현수가 나무를 붙잡고 일어나며 말했다.
그때 너도캠핑도 절벽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효진이 달려가 그녀의 손을 붙잡고 함께 당겨 주었다.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하날하날이 자신의 카메라와 일행들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거기까지 접근한 건 너무 위험했어요.”
세정도 한 마디 했다.
“그러게요. 그래도 귀신에 대한 단서는 찾았습니다.”
현수가 군번줄을 들어보였다.
그러자 효진이 심령카메라로 군번줄을 찍어 보았다.
사아아아아
심령카메라 속 군번줄에서 하얀 연기가 포착되었다.
“어머.”
효진은 자신이 찍어놓고도 신기한지 몇 번이고 확인을 했다.
“군인들한테는 이런 이야기가 있거든요. 전쟁터에서 죽었는데 군번줄을 못 챙기면 집으로 못 돌아간다고요.”
실제로 군대에서는 옛날부터 돌던 ‘괴담’과 같은 것이었다.
작전 중에 사망했을 때 전우들이 군번줄을 챙기지 못하면 죽은 영혼이 작전지에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속설이었다.
이는 굉장히 혼란스러운 전장에서 행정적으로 생사를 확인해야 하는 유일한 수단이 군번줄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긴 이야기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괴담을 생각한다면, 그 군인 귀신이 자신이 군번줄을 찾아달라는 의미로 현수를 절벽으로 불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분명 여기에 군번줄이 있었으니 이 군부대에서 복무를 했던 사람일 거예요.”
현수는 군번줄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여기서 조회가 될까요? 20년이나 지난 건데.”
하지만 세정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도 알아는 봐야죠. 대신 군 병력 신상에 대한 문제니 촬영이 가능하진 않을 겁니다. 제가 직접 알아볼 수도 없을 거고요. 이 부분은 태환이에게 부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수가 내려가자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사아아아아
그때 오싹한 한기가 다시 한번 전해졌다.
현수는 일행들과 내려가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 보았던 군인 귀신이 우두커니 서서 현수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현수는 그런 군인 귀신을 바라보다 몸을 돌려 가던 길을 재촉했다.
* * *
다음날.
현수는 오전에 바로 태환에게 면회 신청을 했다.
일요일인지라 태환은 바로 면회실로 달려왔다.
현수는 태환에게 군번줄을 건네며 어제 겪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그러자 태환은 면회를 마친 뒤 군번줄을 들고 부대 행정보급관에게 찾아갔다.
원사 계급장을 단 노년의 군인은 군번줄을 받아들자마자 얼굴이 사색이 되며 물었다.
“이거. 어디서 났냐?”
“이병 이태환. 저희 741초소 쪽에 철책 너머 절벽 있잖습니까. 거기서 발견했다고 합니다.”
“누가?”
“캡틴 퇴마 박현수라고, 너튜브에서 방송하는 스트리머 형입니다. 저 입대 전에 같이 다녔기도 했습니다.”
“그 사람이 왜 여기 와서 이걸 찾아?”
“아- 저. 얼마 전에 저랑 김호길 병장이 거기서 근무 서다가 한 번 시끄러웠던 적 있잖습니까. 그때 저희 어머니가 무당이라 와서 보시고 귀신이 있는 것 같다고, 그쪽에 의뢰를 하셨던 것 같습니다.”
“X발. 거기 다시 폐쇄하든가 해야지. 시청에서 하도 뭐라 해갖고 출입금지 간판을 떼어 놨더니.”
행보관이 볼 멘 소리를 했다.
“그 스트리머 형님 말로는 그 군번줄 주인이 741초소에서 보이는 귀신인 것 같다고 합니다.”
“이승태. 내가 기억하는 놈이야. 내가 고성에서 근무하기 전에도 이 부대에서 잠깐 있었는데, 그때 사고가 한 번 있었거든.”
행보관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담배를 꺼내 물더니 이야기를 풀어가기 시작했다.
* * *
그날 저녁.
세정을 비롯한 일행 모두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현수 역시 속초에서 복귀한 후 집에서 홀로 후기 방송을 준비하며 촬영한 자료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우우우웅-
033-XXX-XXXX
지역번호를 보니 속초에서 온 전화였다.
“여보세요?”
현수가 전화를 받자 태환의 목소리가 잠시 이어지더니, 이내 콜렉트콜로 연결되었다.
“어, 그래. 태환아.”
[형님! 행보관 님께 여쭤봤어요.]
“진짜? 되게 빠르네.”
[형님 오늘 후기 방송하실 거 아니에요. 그전에는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바로 물어봤죠. 행보관 님한테.]
“그래, 고맙다. 뭐래?”
[03년도에 거기서 작업하던 인원이 실족사 하는 사건이 있긴 있었대요. 시신은 한 보름 지나서 그 절벽 아래 바위틈에서 찾았다고 하고요.]
“보름이나 못 찾았었대?”
[네.]
“군번줄은?”
[시신에서는 군번줄을 못 찾았었대요. 특이하게도.]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절벽으로 추락해 바위에 부딪쳤다면 즉사였을 가능성이 큰데 군번줄은 절벽 중간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는 것.
상식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이었다.
[행보관 님이 그 ‘이승태’인가 하는 분을 기억하더라고요.]
“음.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는 없고?”
[거기 작업하다가 사람이 죽은 이후로 통제구역으로 두려고 출입금지를 시켰었대요. 그런데 시청하고 해수욕장 관리실 측에서 거긴 군사지역도 아닌데 왜 막냐면서 항의하니까 행보관 님이 안내 표지판을 빼버렸다고 하더라고요.]
“그랬었구먼.”
[제가 들은 이야기는 거기까지에요.]
“그래. 고마워. 휴가 나오면 연락해. 맛있는 거 사줄게.”
[알겠습니다!]
현수는 태환과의 전화를 끊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정황상 납득이 되지 않았다.
순간 현수는 자신이 굴러떨어졌던 때를 떠올렸다.
격렬하게 떨어지다가 중간에 나무에 걸렸던 것.
그리고 손을 뻗으면 군번줄이 닿는 위치였다는 것.
“네가 군인 귀신을 발견하고 이쪽으로 왔는데 이렇게 굴러떨어졌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야.”
그리고 수정이 했던 이야기.
“설마.”
현수는 방구석에서 혼자 흥얼거리며 놀고 있는 수정에게 고개를 돌렸다.
“설마 그 귀신. 나뭇가지에 걸쳐진 채로 살아 있다가 구조 못 받고 죽은 거예요?”
현수의 질문에 수정이 어깨를 으쓱였다.
“난 맞다 아니다 말은 못 해. 하지만 귀신이 될 정도라면 뭔가 억울한 게 있긴 하겠지.”
“으잇!”
현수는 답답한 마음에 이종리 해수욕장 사진들을 쭉 검색해 보았다.
그러다 바로 어젯밤, 현수 일행이 올랐던 절벽 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으로 보니까 그렇게 높지는 않았네.”
물론 사람이 떨어지면 즉사할 정도의 높이기는 했지만 어젯밤 느꼈던 까마득한 절벽의 수준은 아니었다.
현수는 포탈 사이트에서 이미지 검색을 하다가 불현듯 연관 사이트에 기사 하나가 뜬 것을 발견했다.
2004년에 올라온 오래된 인터넷 기사였다.
[제초작업 중 사망한 장병 유족 측, 진상규명 요구 소송]
기사 제목을 본 현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내용을 읽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