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화
# 군세리 오로라 모텔 (4)
현수는 그대로 얼어붙은 듯 고개를 든 채 서 있었다.
세정도 카메라를 든 손이 파르르 떨릴 정도였다.
현수는 심령카메라 앱을 레이니 앱으로 다시 바꿔 비췄다.
그러자 거꾸로 매달린 악귀들의 이목구비가 모두 앱에 포착이 되었다.
소름끼치는 장면이었다.
프레임이 살짝 떨어지는 레이니 앱 화면으로 수십 개의 실선이 깜빡거리며 그려지는 것이었다.
그나마도 바로 이목구비를 포착하지 못하고 ‘허둥대는 듯’한 느낌이었다.
“도망쳐.”
수정이 말했다.
현수는 바로 카메라를 보며 소리쳤다.
“나가요! 여기서 당장!”
현수의 외침과 동시에 생방송 송출 중인 카메라에 노이즈가 심하게 끼기 시작했다.
끄그그그그그극-
이어 수도꼭지에 물이 막힌 것 같은 기괴한 소리가 마이크에 그대로 삽입되었다.
- 뭐야 뭐야
- 개무섭 쌉무섭
- 10000원 파워챗
- 일단 이거 받으시고.
현수와 세정은 채팅창을 확인해 볼 겨를도 없이 허겁지겁 도망쳤다.
다다다다다다다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게 잡혔다.
시청자들은 극도의 혼란스러운 이 장면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 50000원 파워챗
- 실감납니다.
- 1000원 파워챗
- 대박!!
- 100000원 파워챗
- 막판 클라이맥스!
- 5000원 파워챗
- 거긴 무슨 사연이 없나요????
3층에서 다시 1층까지 달려오는 사이 파워챗 후원이 연이어 터졌다.
긴장 상태에서 폭발적인 공포를 기대했던 시청자들이 파워챗을 계속 쏴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1층 로비를 지나 다시 밖으로 나온 현수와 세정은 숨을 몰아쉬며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건물의 모든 창문에 귀신의 얼굴이 도장처럼 찍혀 올라오기 시작했다.
현수는 뒷걸음질 치며 그 모습을 심령카메라에 담았다.
‘호장리 수영장.’
아무리 봐도 호장리 폐 수영장에서 봤던 그 악귀들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수정이 찾아온 것처럼 위자보드 후 악귀가 쫓아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태환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현장에 있었던 또 한 명의 인물.
태환은 지금 괜찮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 무슨 상황인 거죠?”
세정이 카메라를 들고 물었다.
“이곳에는 이상하게 어린아이 귀신이 많았는데요. 예전에 호장리 폐 수영장에서 봤던 그 악귀로 얼굴이 바뀌더니 저희 주위를 둘러싸기 시작했어요. 혹시 위험해질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 때문에 일단 밖으로 도망쳐 온 것입니다.”
현수가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 대체 그 악귀는 어떻게 생긴 거임??
- 궁금하긴 하다.
- 우리는 회색 형체로 밖에 안 보이니까.
채팅을 본 현수는 바로 다이어리를 꺼내 자신이 본 악귀의 얼굴을 그대로 그려주었다.
회색 피부에 사백안인 눈.
그림으로 봐서는 공포 웹툰에 나오는 살인마 얼굴 같았다.
하지만 이를 실제로 보는 현수에게는 무척 무서운 얼굴이 아닐 수 없었다.
- 호장리 수영장에서부터 쫓아다니면 진짜 위험한 거 아님???????
- 수아도령님 다치게 한 것도 그 악귀 아니에요???
- 음. 혹시 미드나잇 게임에서 나타난 악귀도??
채팅을 보던 현수는 입술을 매만졌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액막이 부적 말고도 뭔가 다른 조치가 필요했다.
“방법을 찾아보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내일은 낮에 추가적인 라이브 방송을 진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현수가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세정이 눈을 크게 뜨고 현수를 보았다.
일요일 점심 촬영은 매니저인 세정과 논의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방송을 종료하자마자 세정이 촬영 카메라를 정리하며 물었다.
“내일 낮에 라이브 방송을 하신다고요?”
그녀의 질문에 현수도 장비를 차에 넣으며 대답했다.
“네. 만나볼 사람이 있어요.”
“만나볼 사람이라면-”
“전에 같이 했던 이태환 군 어머니요. 내일 방송은 저 혼자서 할게요.”
현수가 짐을 대충 넣자마자 바로 차에 올라탔다.
‘차도 한 대 새로 사든가 해야지.’
현수는 렌트카 앱에 이용 시간을 늘려 추가 결제를 한 후 차에 올라탔다.
* * *
다음날 오후, 수원.
현수는 태환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식당으로 향했다.
수정은 그런 현수를 졸졸 쫓아가며 주변 풍경 감상에 여념이 없었다.
“와, 세상 진짜 많이 변했다.”
그녀는 계속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현수는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현수가 인사를 하며 안으로 들어가자 태환의 부친과 모친은 현수를 알아보았다.
“어? 현수 씨네요?”
태환의 부모가 현수 앞으로 다가오자 현수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다시 한번 인사를 했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놓고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된 촬영.
현수는 바로 어제 겪었던 일들에 대해 태환 어머니께 의견을 여쭈었다.
그러자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태환 어머니가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악귀가 붙은 게 맞아요.”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무속인으로서 ‘위자보드’인가 뭔가 하는 걸 믿을 수는 없지만, 그것 때문에 악령이 따라 붙는다는 속설이 있다면 그런 케이스가 존재한다는 거죠.”
“아아. 네, 네.”
“제가 호장리 폐 수영장에 갔을 때 악령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악귀라고 볼 만한 존재는 직접 확인하지 못했어요.”
“악귀가 이미 그 자리를 떠났던 건가요?”
“수영장 숙소 건물에 봉인되어 있던 악귀가 풀려났다면 어디로든 갔을 수 있죠. 물론 그 봉인을 푼 사람한테 붙었을 수 있고요. 갈 곳이 몇 군데 없었으리라 생각이 되네요.”
그녀의 말인즉, 봉인에서 풀려난 악귀들이 갈 곳이라고는 자신의 고향, 혹은 지인, 혹은 자신을 부른 사람들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 악귀가 저한테 붙은 게 맞는 거죠?”
“거기서부터 쫓아다닌 악귀인진 몰라도 분명 현수 씨 근처에 악귀가 있긴 한 것 같네요. 그 외에 여자 귀신 한 명이 보이기도 하고.”
태환의 모친은 현수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수정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 여자 귀신은 ‘수호신’ 역할을 해주고 있네요. 악귀가 들러붙는 걸 막아주고 있어요.”
덧붙인 말에 현수는 수정이 악귀의 머리를 떼어주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런데 호장리 폐 수영장 이후로 꽤 여러 현장을 다녔는데 왜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이번에 모습을 드러내는 거죠?”
“‘귀신’이란 존재는 악동 같은 면이 많아요. 하지 말라면 더 하고, 보면 더 나타나려고 하고, 들리면 더 소리를 내려고 하죠.”
“네?”
“‘귀신의 집’에 귀신이 더 많고, 귀신 이야기를 하면 귀신이 더 엮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귀신을 볼 수 있으면 귀신들이 더 많이 꼬이는 건 당연한데요.”
“네, 네.”
“악귀와 마주치고 위자보드로 악귀와 대화도 나눴지만 악귀가 달라붙었다는 걸 몰랐으니까 악귀도 쫓아다니면서 해코지를 하진 않았던 건데, ‘수호신’이 생기면서 악귀가 쫓아다닌다는 걸 파악하게 되니까 악귀가 더 요란하게 심술을 부리는 거죠.”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악귀가 현수 씨를 졸졸 쫓아다니고 있었는데 수호신이 붙으니까 더 심술을 부리고 있는 거라는 이야기에요.”
“어어. 그럼 수호신이 붙었던 게 저한테는 악재인 거네요?”
“그렇다고만은 볼 수 없어요. 어찌 되었든 악귀는 막아내고 떨쳐내야 하는 존재거든요.”
태환 모친이 말했다.
그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수정이 슬쩍 현수의 눈치를 보았다.
“아마 그 악귀는 계속 현수 씨를 쫓아다니다가 마음이 약해지거나 감정적으로 흔들릴 때면 계속 부정적인 말들을 속삭일 거예요. 그러면 자살을 하든, 살인을 하든, 범죄에 빠질 확률이 커지게 되겠죠. 수호신이 그걸 막아준다면, 호재일 수 있죠.”
현수는 이번 오로라 모텔에서 자신이 악귀를 잡겠다고 뛰어다녔던 순간을 떠올렸다.
“부적은 효과가 없는 거예요?”
“전에 제가 준 액막이 부적이요? 빙의는 막아주지만 악귀가 쫓아다니는 건 못 막죠.”
“방법이 없나요?”
“당장은 방법이 없을 거예요. 하지만 악귀가 현수 씨를 쫓아다닌다면 분명 언젠가는 악귀와 대적하게 될 날이 올 거예요. 그때 확실하게 처단을 해야 할 거예요.”
“악귀와 대적-한다고요?”
“악귀가 쫓아다니는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그 사람의 신체를 갖는 것이니까요.”
“아아.”
“그리고 다른 악귀들과 협력할 수 있으니 혹시나 악귀에 들린 사람이 근처에 있는지 주의하시고.”
태환 모친의 말이 끝나자마자 수정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허태훈.”
그녀의 말에 현수가 수정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뭐가 있군요.”
현수의 눈짓을 본 태환 모친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현수는 부산 구희용 호텔에서 만났던 연쇄살인범 허태훈과 귀신 수정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조언을 들은 현수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태환이는 요새 어떻게 지낸대요?”
현수의 질문에 태환 모친이 대답했다.
“안 그래도 태환이 관련해서 이야기 좀 해보려고 했어요.”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 * *
인터뷰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현수는 셀카모드로 자신을 촬영하며 멘트를 이어갔다.
“방금 뵌 분은 예전에 절 도와주었던 ‘이태환’군 어머니 되시는데요. 무속인으로 귀신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계신 분이에요. 그 분께 여러 조언을 좀 들었습니다.”
현수는 식당 앞거리를 걸어 차량으로 향하며 말했다.
“저를 쫓아다니는 귀신이 둘이 있는데요. 하나는 악귀고 하나는 그냥 귀신. 악귀는 호장리 폐 수영장에서 위자보드를 했다가 붙은 것 같고요. 수호신처럼 붙은 귀신은 이번에 구희용 호텔에서 죽은 20대 여대생 귀신이고요.”
현수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채팅이 올라왔다.
이제 500명 정도 되는 적은 시청자였지만 제법 빠른 속도로 올라왔다.
현수 방송의 골수팬들이 고착화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 위자보드 할 때 마무리 제대로 안 하면 귀신 붙는다 했잖음.
- 어쩐지 뭔가 깨름칙 했어.
- 괜찮은 거예요????
- 천도재라도 지내야 하는 거 아님?
- 악귀에 귀신에. 아유. 저것도 못할 짓이네요.
채팅을 보며 현수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태환군 관련해서- 방송을 계속 보신 분들은 들으셨겠지만, 태환군이 자대 배치 받은 해안가에 귀신이 나타난다고 해서요. 이번 주에는 태환군이 근무하는 부대 근처 해수욕장으로 갈 예정입니다.”
현수가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 오!!! 태환군 오랜만에 볼 수 있는 건가????
- 개꿀잼 예약ㅋㅋㅋㅋㅋㅋㅋ
- 안 그래도 태환이 궁금했는뎈ㅋㅋㅋㅋ
- 좋아요!!!!!
- 20000원 파워챗
- 면회 갈 때 치킨 한 마리 사주세욬ㅋㅋㅋ
“후원 감사드립니다. 밤에 현장 가기 전에 태환이 만날 거니까 그때 방송 켤 수 있으면 켜겠습니다. 군부대라서 면회장 촬영이 어려울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현수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태환이? 태환이가 누군데 이렇게 다들 태환, 태환 그러는 거야?”
수정이 옆에서 물었다.
현수는 수정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방송을 마무리 지었다.
“자! 그러면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고 오늘 밤에 ‘오로라 모텔’ 후기 방송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이따 인사드릴게요!”
현수가 방송을 종료하고 바로 수정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
“퇴마 방송 시작하고 얼마 안 돼서 만났던 친구에요. 얼마 전에 입대했고요.”
“입대? 아유. 고생하겠네. 2년 2개월 동안.”
“요샌 복무기간 1년 반쯤 돼요.”
“어? 진짜?”
“네, 네.”
“와. 그렇게 짧아졌어? 그래도 괜찮대? 통일이라도 됐나.”
“아뇨.”
현수는 그녀가 1997년도에 시간이 멈춰 있다는 걸 새삼 깨달으며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태환 모친이 했던, 태환의 복무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