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 군세리 오로라 모텔 (3)
현재 시청자 수 3817명.
확실히 다른 스트리머들과 합방을 하거나 미드나잇 게임을 할 때보다는 적은 시청자 수였지만 그래도 객관적으로 적은 숫자는 아니었다.
그만큼 채팅창도 쉬지 않고 뜨겁게 달아올랐다.
세정은 채팅창을 모니터링하면서 현수가 이상해지고 있음을 재차 감지했다.
- 오늘 캡틴님 왜 저럼????
- 혼자 막 날뛰는 거 같은데. 기분 탓인갘ㅋㅋㅋ
- 적진에 혼자 가서 뻘궁쓰는 느낌인데???
과도하게 흥분하고 있는 듯한 느낌.
하지만 방송을 멈출 수는 없었다.
세정은 현수의 등 뒤를 조용히 쫓아가며 촬영할 뿐이었다.
한편 현수는 2층으로 올라가며 머릿속에 이상한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악귀를 퇴치해야 한다.’
애초에 ‘퇴마’라는 것이 귀신, 악귀를 없애는 것이지만 지금까지 현수가 진행해왔던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종전과 다르게 파괴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악귀를 퇴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쩌저저저저적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 쪽에 ‘눈’이 드러나자 현수는 이를 악물고 솔트샷건을 쏘았다.
팡 팡 팡
여러 차례 방아쇠를 당기자 소금에 맞은 눈이 소멸되었다.
현수는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걸음을 옮겼다.
악귀는 죽여야지.
세상의 모든 귀신은 악귀야.
죽여. 죽여. 죽여.
누군가 현수에게 속삭이는 것처럼 머릿속에는 온갖 부정적이고 호전적인 문장들이 떠올랐다.
그럴수록 현수의 발걸음은 점점 더 빨라졌다.
2층으로 올라온 현수는 복도 끝에 아까 그 소년 귀신이 서있는 것을 포착했다.
현수는 심령카메라나 EMF 탐지기를 쓸 생각도 하지 않고 성큼성큼 귀신을 향해 달렸다.
덜컹 쿵-
복도 곳곳에 널려 있던 집기들을 옆으로 마구 치우며, 불도저처럼 이동했다.
확실히 지금까지 현수의 모습이 아니었다.
폐가, 흉가에서의 물건들은 함부로 만지거나 위치를 바꿔서는 안 됐다.
귀신이 붙을뿐더러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곳인 만큼 건물 자체가 낡아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수는 그런 모든 상식을 차치한 채 돌진하고 있었다.
사아아아아
그때, 복도 끝에 있던 소년 귀신이 자취를 감췄다.
현수는 인상을 팍 쓰며 2층 객실들을 거칠게 헤집고 다녔다.
세정은 이런 현수를 쫓아가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한참 2층을 수색하던 현수는 바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으로 향했다.
“캡틴님. 캡틴님. 지금 촬영이 잘 안 되고 있어요.”
세정이 현수를 쫓아가며 말했다.
그러자 현수는 카메라 앞으로 다가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멘트를 했다.
“지금 악귀가 있다고 하거든요? 악귀를 찾아 없애야 합니다. 모두 저를 따라오시죠.”
현수의 말에 시청자들의 반박이 이어졌다.
- 혼자만 나대지 말고 같이 좀 가요.
- 설명 좀 해주면서 이동하세요.
- 뭐 단단히 미쳤넼ㅋㅋㅋ
- 저녁 때 술 한 잔 했나??
- 혼자 뭐하는 거임???
시청자 수도 2000명대로 훅훅 떨어지고 있었다.
세정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현수를 보았다.
정신을 차리라는 눈짓을 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수는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고 돌아섰다.
“악귀야.”
그때 수정이 세정 옆에서 말했다.
“네?”
“악귀가 근처에서 속삭이고 있는 거라고. 감정적으로 행동하게.”
“악귀에 쓰인 건가요?”
“그것까진 아니고 그냥 속삭이는 거지. 지금 악귀가 속삭이는 소리와 자기 생각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을 거야.”
수정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 매니저는 누구랑 얘기하는 거임?
- 뭐 오늘 방송 미친 거 같은데.
- 오늘은 나갑니다.
- 1000원 파워챗
- 의리로 후원은 주고 나감.
- 오늘 방송 이상해.
시청자 수는 1000명 대로 급감해 있었다.
세정은 방송도, 현수도 이상해지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어디야! 나와!”
현수는 급기야 소리를 지르면서 3층 객실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세정은 방송을 중단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가정까지 하게 되었다.
그 사이, 현수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주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자극적인 걸 바란다고.
지금 네가 하는 방송으로 시청자들이 더 모일 거 같아?
격렬하게 싸워. 귀신과 혈투를 벌이는 장면을 보여주라고.
현수는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소년 귀신을 쫓아 부나방처럼 이동을 했다.
그러다 한 객실 안으로 들어간 현수는 이번에도 역시 ‘눈’으로 가득한 벽과 천장을 보며 솔트샷건을 마구 쏘았다.
하지만 ‘눈’은 사라졌다가 이내 금세 다시 그려졌다.
마치 현수를 놀리고 있는 것 같았다.
세정은 객실 문밖에서 이런 현수를 촬영하며 방송 종료 버튼을 누를까 말까 고민을 했다.
- 오늘 캡틴님 아무래도 이상함.
- 뭐에 홀린 거 같지 않음????
- 방송 노잼이다.
- 약간 소름이긴 하다.
시청자들 역시 호의적인 반응이 아니었다.
매니저로서 오늘 방송 촬영분은 쓰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현수가 객실 문밖에 있는 세정에게로 고개를 휙 돌렸다.
세정이 깜짝 놀라 현수를 보았다.
씨익-
순간 현수가 미소를 지어보였다.
세정은 그 미소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쉬익- 쾅-
동시에 객실 문이 닫혔다.
귀신이 닫은 것처럼 자동으로 세게 닫혀 버린 것이었다.
“어머!”
세정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 방금 뭐임?
- 캡틴 방 가운데 혼자 서있지 않았음?
- 갑자기 문이 왜 닫힘???
시청자들의 채팅을 보며, 세정은 다시 문을 열어보려 했지만 열리지 않았다.
“매, 매니저입니다. 지금 일단 방송을 중단하도록 하겠습니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자 세정이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그러자 아직 남아 있는 시청자들이 채팅을 올렸다.
- 아뇨, 어떻게 된 건지 계속 보여주세요.
- 캡틴님 어떻게 되는 건지 보여주세요.
- 방종 ㄴㄴㄴㄴㄴ
- 방종하지 마세욧!
- 잼난뎅ㅋㅋㅋㅋ
평소와 다른 흐름으로 진행이 되고는 있지만 그래도 현수를 걱정하거나, 방송에 재미를 느끼는 시청자들이 많이 있는 것이었다.
세정은 방송 종료 버튼을 누르려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촬영을 시작했다.
철컥 철컥 철컥
한편 현수는 가지고 있던 소금을 모두 소진할 때까지 솔트샷건을 마구 쓰고 있었다.
더 이상 소금이 나가지 않자 현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주변을 보았다.
“어이. 박현수.”
그때 방구석에서 수정이 다가왔다.
“그러게 악귀들을 적당히 건드려야지. 그 액막이 부적 하나 끼고 있다고 그렇게 악귀들을 들쑤시고 다니면 어떡해.”
“누나. 지금 무슨 악귀가 어디 있는 거예요? 이놈 빨리 처치해야 하는데. 안 보여요?”
“너 귀신 볼 수 있잖아. 왜 나한테 물어봐.”
“이 벽에 눈이 나타나는 거. 악귀 형상인데 정작 본체가 드러나질 않아요.”
“당연하지.”
수정이 어깨를 으쓱였다.
현수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갑자기 수정의 입에서 팔이 튀어나왔다.
쿠에에에엑-
입에서 튀어나온 팔이 수정의 몸을 양옆으로 찢어놓더니 또 다른 수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수가 눈을 크게 뜨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정신 차려, 이 멍청아!”
수정이 버럭 소리쳤다.
“악귀가 지금 네 주변에 있는 게 아니야! 네 귀에 걸터앉아 있지.”
그녀의 고함에 현수가 거울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호장리 폐 수영장에서 보았던 그 끔찍한 형상의 악귀 머리가 현수의 어깨에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으아아악!”
현수가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화장대 거울이 깨지며 파편이 앞으로 쏟아졌다.
파창-
그제야 현수는 자신의 머릿속에 들던 부정적인 생각들이 이상한 여성의 목소리로 바뀌어 들리기 시작했다.
악귀의 목소리와 자신의 생각을 분류해낸 것이었다.
텁
수정이 현수 어깨 위에 있던 악귀 머리를 붙잡고 쭉 잡아 당겼다.
그러자 검고 끈적한 액체들이 머리에서 주르륵 흘러내리며 악귀가 떨어져 나갔다.
사아아아아아아
이어 호전적이던 현수의 표정이 조금씩 온화해졌다.
“이제 좀 정신이 들어?”
수정이 물었다.
“아, 누나.”
현수는 분명 기억을 잃거나 빙의가 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갑자기 자신이 왜 그렇게 흥분을 했었는지는 이상하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아직도 벽과 천장에는 눈들이 가득한 상황.
EMF 탐지기를 들어보니 불빛이 다섯 개까지 올라가 있었다.
“네가 귀신을 보고 들을 수는 있어도 산 사람이니까 만질 수는 없잖아. 만약 너한테 액막이 부적이나 내가 없었으면 넌 벌써 미쳤을 거야.”
수정이 주변을 보며 말했다.
“세정 님!”
현수는 그제야 매니저를 떠올리고 객실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겁에 질린 표정으로 서 있는 세정의 모습이 보였다.
“세정 님. 괜찮으세요?”
“현수 님은 괜찮으신 거예요?”
현수의 질문에 세정이 되물었다.
“아, 네. 네. 괜찮습니다.”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정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수정에게 고개를 돌렸다.
수정은 괜찮다는 듯 윙크를 해 보였다.
“이동하죠.”
현수는 카메라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EMF 카메라와 구형 스마트폰을 들었다.
호전적이던 방금전까지의 모습과는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 이제 원래 캡틴님으로 돌아온 듯????
- 연기 잘한당ㅋㅋㅋ
-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당체 모르겠네.
- 그냥 즐기세요.
채팅은 아까보다 한참 느리게 올라왔다.
아무래도 시청자가 대폭 빠진 것 때문인 듯했다.
‘815명.’
심지어 천 명 대도 빠져 세 자리 숫자를 보이고 있었다.
최근 생방송 중 가장 낮은 수였다.
하지만 여기서 방송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
현수는 복도를 가로질러 이동했다.
천천히 심령카메라와 EMF 탐지기의 반응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쩌저적-
그렇게 3층을 수색하던 도중, 천장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현수의 눈과 손전등이 바로 천장으로 향했다.
“헉!”
소년 귀신이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지금 저기 천장에 어린 남자아이가 거꾸로 매달려 있어요.”
현수는 카메라에 대고 속삭인 후 심령카메라로 천장을 촬영해 보였다.
그러자 타원형의 하얀 형체가 물방울처럼 매달려 있는 것이 화면에 담겼다.
이어 현수가 레이니 앱으로 전환하자 남자 아이의 얼굴에 맞춰, 이목구비가 거꾸로 포착되었다.
거꾸로 매달려 있는 눈, 코, 입을 그대로 잡아낸 것이었다.
- 헐. 눈코입이 거꾸로 잡힘.
- 귀신이 거꾸로 매달려 있다며. 그것 때문에 그런 거 아님?????
- 진짜 개 신기하다
- 헐???!!!!!
- 거꾸로 매달려서 얼굴도 거꾸로 잡힌????
- 이런데 어떻게 조작이냐고!!!!!
- 와 ㅅㅂ 말도 안 된다, 진짜.
시청자들이 흥분해서 채팅을 썼다.
그 순간이었다.
남자 아이 귀신 주변으로 수십 명의 아이 귀신들이 거꾸로 매달린 모습이 드러났다.
그 모습은 마치 박쥐 같았다.
현수는 아이 귀신들을 똑바로 응시하며 심령카메라를 들었다.
- 저거 뭐야?????
시청자들의 반응은 모두 같았다.
심령카메라로는 천장에 하얀 무언가가 가득 들어차 있는 것으로 보였다.
현수는 귀신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끼기기기기긱-
이어 칠판 긁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의 얼굴이 호장리 폐 수영장에서 보았던 악귀의 모습으로 일제히 바뀌었다.
현수는 온몸의 신경이 차갑게 식어 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또 다른 공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