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화
# 구희용 호텔 (7)
“자!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구독과 좋아요, 눌러주지 않으신 분들 한 번씩 부탁드리고요. 그럼 수요일, 미스터리 이야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충성!”
현수가 앉아서 캠을 향해 거수경례를 한 후 방송 종료를 했다.
“후아.”
현수는 길게 한숨을 내뱉은 뒤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아무렇지 않은 척 방송을 하긴 했지만 연쇄살인마에게 쫓긴지 하루도 안 된 상태라 마음 진정이 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심지어 후기 방송을 하며 그때 영상을 다시 훑어보니 그때의 그 다급했던 상황들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어우. 피곤하다.”
현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이게 지금 뭐하는 거야?”
그때 현수의 귀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뜨어잇!”
깜짝 놀란 현수가 벌떡 일어나며 뒤를 보았다.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지? 잠깐 졸았나.”
현수는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순간 문 위와 창문에 붙인 부적이 살짝 찢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어? 벌레가 지나갔나?”
현수는 까치발을 들고 부적을 다시 붙이려 했다.
하지만 제대로 붙지 않았다.
“뭐야. 왜 이래.”
현수가 본드를 가져와 다시 제대로 붙이려 돌아서는 순간, 긴 생머리에 청바지를 입은 여자가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으엇!”
현수는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가만히 귀신의 얼굴을 보던 현수는 구희용 호텔에서 보았던 그 여자 귀신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현수는 긴장한 표정으로 부적을 가리켰다.
그러자 귀신은 어깨를 으쓱였다.
“저건 악귀를 막는 거지, 귀신을 막아주는 게 아니야. 뭐, 그렇다고 우리가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여, 여긴 왜 오신 거예요?”
“왜 오긴. 네가 불렀잖아.”
현수는 순간 위자보드를 떠올렸다.
위자보드를 끝낼 때엔 마치겠다는 공언을 한 후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룰이 있었다.
그걸 어길 시에는 불렀던 귀신이 따라 붙는다고 전해졌다.
구희용 호텔 908호에서 위자보드를 할 때 갑자기 허태훈이 들이닥치며 제대로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허겁지겁 끝냈던 것이 떠올랐다.
“아, 설마 그때.”
“응. 네가 날 불렀잖아.”
“그렇게 되는 건가요. 음?”
순간 현수는 위자보드로 악귀와 대화를 나눴던 호장리 폐 수영장을 떠올렸다.
이때도 끝내려는 걸 악귀가 못 끝내게 막으려 했지만 임의로 마무리를 지어버렸었다.
“잠깐만. 전에는 이렇게 안 따라붙었는데?”
“그땐 악귀였나 보지. 여기저기 악귀 퇴치하는 부적을 붙이고 있는데 걔네들이 쉽게 괴롭힐 수 있겠어?”
그녀는 집 곳곳에 붙은 부적들을 가리켰다.
“그러면 혹시-”
현수는 호장리 폐 수영장 이후로 비슷한 형태의 악귀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떠올렸다.
“아마 맞을 거야. 악귀들은 널 쫓아다니고 있어. 저 액막이 부적들이 보호하고 있는 거지. 저거 몸에도 지니고 있지?”
“네, 네.”
“안 그랬으면 벌써 뭔 일을 당해도 당했겠지.”
귀신은 뒷짐을 지고 집 곳곳을 기웃거리며 구경했다.
“그런데 여기서 뭐하시는 거예요?”
“말했잖아. 네가 불렀잖아.”
“아니, 제가 부르긴 했는데요. 그 살인마가 잡혔으니 이제 한 푸신 거 아니에요? 이제 올라가셔야죠.”
“올라가긴 뭘 올라가. 난 이승에 있다가 그 새끼 죽으면 그 새끼 멱살 잡고 같이 저승으로 갈 거야.”
“그게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거였나요?”
“1년이니, 49제니, 3년이니, 그딴 거 없어. 악귀일 놈은 악귀인 거고 나 같은 영가도 있는 거고.”
그녀는 뒷짐을 지고 휙 고개를 돌려 현수를 보았다.
스타일은 1990년대 젊은이들의 스타일이었지만 외모는 무척 예쁜 편이었다.
“거의 20년 동안 그 호텔에 있다가 이렇게 밖에 나오니까 신기하다. 세상이 진짜 많이 바뀌었네.”
“네, 뭐. 그렇죠.”
“아까는 뭐하고 있던 거야? 보니까 호텔에서도 카메라 들고 뭐 하더만.”
“어- 인터넷 방송이요. 너튜브라고 거기서 방송해요.”
“방송? 너 연예인이야?”
“음. 연예인하고는 조금 달라요.”
“그럼 그게 뭐야. 인터넷? 뭐 라이텔 같은 건가?”
라이텔은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인 1990년대에 쓰였던 PC통신 브랜드였다.
그녀의 문명도 1997년도에 멈춰 있는 듯했다.
“어어- 설명하자면 조금 긴데.”
현수의 말에 귀신이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 나중에 알려줘. 어차피 들을 기회는 많을 테니까.”
“네? 들을 기회가 많다니요?”
“난 이제 네 옆에 붙어 있을 건데?”
“네?”
현수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왜 놀라? 네가 날 불렀잖아.”
그녀는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니, 한을 푸셨- 아 그 허태훈이 죽어야 한다고. 아니 그래도 전 산 사람인데.”
“나도 산 사람이었어.”
“아니요. 아 참.”
현수가 머리를 긁적였다.
“무당 불러서 천도재 하겠다고 까불기만 해봐. 내가 허태훈 그 새끼한테서 도망 못 친 게 한이라 도망 하나는 무지 잘 치거든? 도망쳤다가 돌아와서 너 죽을 때까지 괴롭힐 줄 알아.”
귀신이 검지로 현수의 얼굴을 가리키며 으름장을 놓듯 말했다.
현수는 난감한 표정으로 구석에 놓인 솔트샷건을 보았다.
“저거 쓰게? 그렇게 해서 물러나게 하면 뭐해. 다시 올 건데. 그냥 받아들여.”
귀신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현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 그쪽이- 아니다. 이러든 저러든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네. 이름이 어떻게 돼요?”
“이수정. 74년생.”
그녀의 대답에 현수가 눈을 크게 떴다.
“74년생이요? 아.”
생각해보면 그녀가 사망할 당시에는 겨우 23살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외모 역시 23살에 멈춰있을 뿐이었다.
“이모뻘이-”
“뒤진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아무튼 저하고는 못 지내요. 귀신을 쫓아다니고 있지만 귀신 붙는 걸 바라진 않는다고요.”
현수가 손사래를 치며 의자에 앉았다.
“그건 네 의사와는 관계없이 평생 그렇게 지내온 거 아니야? 보니까 애초부터 귀신을 보드만.”
“아, 네.”
“그럼 그냥 받아들이고 살아.”
“그래도-”
“내가 네 옆에 있으면 네 몸 노리고 오는 귀신들은 그래도 막을 수 있을 걸? 뭐, 이러든 저러든 어쨌든 네가 날 불렀으니 난 다른 데 못 가.”
귀신 수정이 말했다.
현수는 이마를 붙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수정을 다른 곳에 보내줄 땐 보내주더라도 일단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어쩔 도리가 없어 보였다.
“좋아요. 대신에 몇 가지 조건이 있어요.”
“무슨 조건?”
“아무리 귀신이어도 저 씻을 땐 훔쳐보지 않기. 그리고 잘 때 놀라게 하지 않기.”
“그래? 그럼 나도 조건이 하나 있어.”
“무슨 조건인데요?”
현수가 되물었다.
* * *
다음날 점심.
을지로 번화가에서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자 허름한 간판의 백반집이 보였다.
현수는 슬그머니 가게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몇 분이세요?”
“혼자입니다.”
“뭐 드릴까요?”
앞치마를 한 할머니가 나오더니 메뉴판을 가리켰다.
“김치찌개 주세요.”
현수의 대답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 후 주방으로 들어갔다.
현수는 자리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며 카운터에 있는 사진을 보았다.
오래된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예쁜 옷을 입고 있는 수정의 모습도 있었다.
“우리 엄마 아빠는 평생 여기서 식당일을 하고 계셔. 아직도 하고 계신지는 몰랐네. 이제 쉬셔도 될 텐데.”
순간 현수의 맞은편에 수정이 나타나더니 턱을 괴고 말했다.
“쉬실 때 되면 쉬시겠죠.”
현수는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아주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너 친구 없지?”
수정은 현수의 반응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나지막이 물었다.
잠시 뒤 할머니가 현수의 앞에 김치찌개와 반찬, 공깃밥을 놓아주었다.
“어머님. 저기 저 사진은 가족사진인가요?”
현수가 묻자 할머니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현수는 더 묻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순간적으로 할머니의 표정에서 슬픔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결혼 앞두고 남자친구랑 여행 갔던 건데. 물론 엄마한텐 친구랑 간다고 거짓말 했지.”
“아셨겠네요. 다.”
“그럼. 당연하지. 헤헤.”
수정은 턱을 괴고 추억을 회상하듯 말했다.
현수는 식사를 하며 작게 물었다.
“그럼 조건 들어드린 거죠? 어머님 아버님 뵈게 해드린다고.”
현수는 주방 쪽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노부부를 가리켰다.
“한 군데만 더 찾아보자.”
수정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현수가 빡 인상을 썼다.
* * *
수정은 1997년 사망한 이후로 구희용 호텔에서 나온 적이 없었다.
그런 만큼 그녀는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던 것이다.
부모님만큼이나 궁금한, 그때 남자친구였다.
하지만 20년도 지난 지금, 이름 석 자와 당시 직업 정보만 갖고 사람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발품을 팔아가며 수소문한 끝에, 그가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수는 현대적으로 인테리어 된 카페 앞에서 커다란 통유리 안을 들여다보았다.
중년 남자가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고, 뒤에 있는 중년 여성이 바쁘게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카운터 옆에는 어린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현수는 옆에 서있는 수정을 슬쩍 보았다.
그녀는 미묘한 표정으로 유리 안을 가만히 보고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 저 남자가 그때 그 남자친구고, 20년 사이 다른 여자와 결혼해 아이를 키우고 있는 그림일 것이었다.
“가자.”
수정이 돌아서며 말했다.
현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아마 복잡한 심경이긴 할 것 같았다.
자신은 1997년에 멈춘 채 어두운 폐가 속에서 20년을 보냈지만 산 사람들의 시간은 계속 흐르고 삶도 지속이 될 뿐이었다.
‘슬픈 납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어쩌면- 귀신들은 모순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삶에 미련과 한이 남아 이승에 있지만 그럴수록 세상과는 점점 더 멀어지는.
자신이 사랑했던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아무튼 조건은 성사가 되었고, 귀신인 수정과의 위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 * *
수요일의 괴담 생방송 당일.
현수는 카메라 앞에서 세정이 보내준 콘텐츠를 읊으며 여러 자료들을 보여주었다.
수정은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서서 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과연, 그 날의 교통사고로 이후 그녀가 겪고 있는 가위눌림은 뭐였을까요.”
현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긴장감을 조성하는 말투로 말했다.
큰 교통사고의 유일한 생존자가 매일 가위에 눌리고 있는 사연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에 시청자들은 흥미로운 듯 채팅을 올렸다.
- 나 가위 자주 눌리는데.
- 난 잠자리 바뀌기만 하면 가위눌림.
- 그 느낌 개 싫어. 딱 가위 눌리기 직전에 ‘나 가위 눌린다.’라는 게 느껴지는 데 못 멈춤ㅋㅋㅋㅋㅋㅋ
여러 사람들이 동조를 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가위 눌릴 때마다 사고 당시 죽은 동승자들의 모습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현수가 말하자 옆에서 수정이 피식 하는 소리가 들렸다.
현수는 방송의 흐름이 깨지지 않게 하려고 모른 척 계속 멘트를 이어갔다.
“쇼하고 있네. 그거 아니야, 인마.”
이야기를 듣던 수정이 말했다.
순간 현수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