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화
#구희용 호텔 (5)
몇 분 전.
구희용 호텔 주변에 쳐진 회색 펜스 앞으로 경찰차가 한 대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경찰들은 굳게 닫힌 펜스와 밖에서 잠긴 자물쇠를 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X발. 또 장난전화입니까?”
자물쇠가 밖에서 걸려 있다는 건 누군가 외부에서 문을 잠갔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는 건 그 신고가 장난전화이거나, 아니면 누군가 외부에서 사람들을 가뒀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구희용 호텔을 대상으로 한 장난전화가 과거에 엄청 많았었기에 관련 허위 신고 내역이 잔뜩 쌓여 있는 상황이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 입장에선 장난전화일 가능성부터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선임 경찰은 한숨을 내쉬며 돌아서 무전기를 들었다.
“여기 해진동 순 열하나입니다. 구희용 호텔에 외부 잠금 장치가 시건 되어 있습니다. 신고자 확인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해진 순 열하나. 신고 접수 된 번호로 다시 연락해보겠습니다.]
이어 무전에서 회신이 들려왔다.
* * *
바로 지금.
112 센터에서 확인 차 하날하날에게 다시 전화를 건 것이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평소 같았으면 아주 작은 진동 소리였겠지만 숨을 죽이고 숨은 지금은 무척 크게 들렸다.
가라랑 가라랑- 뚝-
동시에 밖에서 나던 노인의 도끼소리도 멈췄다.
하날하날은 잔뜩 인상을 쓰며 전화를 끊었다.
일단 소리를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이었다.
* * *
[해진 순 열하나. 신고자와 전화 연결이 안 됩니다. 그 전화번호로 장난전화 접수된 이력은 없습니다. 신고자 위치도 해당 호텔로 보이고요.]
무전이 돌아오자 경찰들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기 펜스 쳐져 있으면 사유지 아닙니까? 막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데.”
“112 접수된 건은 영장 없이 수색이 가능해. 장난전화일 거 같긴 한데-”
선임 경찰은 고민이 되는 듯 잠시 펜스를 바라보다 경찰차에서 공구를 가져와 자물쇠를 뜯어냈다.
꽈득
자물쇠가 바닥에 떨어지자 후임 경찰이 눈을 크게 뜨고 보았다.
“만에 하나 진짜 신고면 어떡해. 확실히 확인해 보자고.”
선임 경찰이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후임 경찰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다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하지만 호텔의 정문 현관도 굳게 잠겨 있었다.
그리고 안에는 그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밤 12시가 다 되어 갑니다. 여기에 무슨 사이코 살인마가 있다는 거예요.”
후임 경찰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들어갈 곳을 찾아보자고.”
선임 경찰이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며 돌아섰다.
* * *
캉캉캉- 캉캉캉-
노인은 도끼로 객실 문고리를 살짝 쳤다.
부수려는 것이 아니고 일부러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공포심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하날하날과 너도캠핑, 세정, 효진, 현아 모두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현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건 실시간으로 방송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이것이 실제 상황인지 아직도 아리송해 하고 있었다.
귀신이 아닌 사람인 살인마에 다른 스트리머들까지 있으니 더욱 더 연출이라고 믿는 것이었다.
- 진짜 개무섭닼ㅋㅋㅋ
- 이런 콘텐츠 자주 해주세요8ㅋㅋㅋㅋㅋ
- 와. 이게 꿀잼이네. 귀신도 귀신인데 이건 진짜 완전 레알 공포영화다.
- 여름에 딱 맞는 방송.
- 100000원 파워챗
- 사이코살인마 : 5:5로 나누자. 누가 5 드실?
시청자들은 스릴 넘치는 영상에 무척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는 하날하날과 너도캠핑의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님들. 지금 실제상황이거든요? 진짜 경찰에 좀 신고해 주세요.”
하날하날이 현아가 든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 옛다. 신고 했다.ㅋㅋㅋㅋㅋㅋㄱㄹ
- 진짜 실감나욬ㅋㅋㅋㅋㅋ
- 근데 찐상황 아님???
- 찐 상황은 무슨ㅋㅋㅋㅋㅋㅋ 캡틴퇴마 주작인 건 우명한뎈ㅋㅋㅋㅋ
- 하날하날 혼자 있었으면 믿었는데 캡퇴 있어서 구라임.
하날하날의 시청자들도 현수의 조작 논란을 들은 적이 있는지 아무도 믿지 않는 눈치였다.
너도캠핑 역시 같은 상황.
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에 있는 물품들을 보았다.
“하날님하고 캠핑님. 양쪽에서 이불을 들고 계시다가 놈이 들어오면 확 덮고 나가세요. 제가 시선을 끌고 있을게요.”
“예?”
“놈은 다른 사람들이 여기 있는지 몰라요. 제가 먼저 보이면 저만 보고 달려들 거예요.”
현수는 화장대에 있는 화장품들을 집어 들었다.
철커덕-
그 순간, 문이 열리더니 도끼를 든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수는 화장품을 하나 집어 바로 노인에게 던졌다.
챙강-
노인의 바로 옆 벽에 부딪치며 화장품 병이 깨졌다.
이어 다른 화장품을 들어 던지자 노인의 머리에 적중했다.
“크하하핫!”
노인은 현수를 향해 거세게 돌진했다.
순간 하날하날과 너도캠핑이 이불을 들고 옆에서 나타나 노인을 덮었다.
“어엇!”
갑작스러운 이불에 시야가 가려진 노인이 도끼를 마구 휘둘렀지만, 이불에 뒤덮여 있어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하날하날과 너도캠핑, 효진, 현아는 엉거주춤 서 있다가 겁에 질린 모습으로 밖으로 나갔다.
현수 역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이불에 뒤덮인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으아아압!”
현수가 텀블링하듯 몸을 던져 노인을 쓰러트렸다.
우당탕탕-
노인은 이불과 현수의 몸에 눌린 채 발버둥을 쳤다.
그 사이 하날하날과 너도캠핑은 8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쌓인 책상과 의자를 끌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현아와 효진은 더 이상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방송을 종료하고 둘을 도와 함께 힘을 모아 길을 트기 시작했다.
갑자기 둘의 방송이 중단되자 놀란 시청자들이 현수의 생방송으로 몰려 들어왔다.
덕분에 이번에도 현수 방송의 시청자는 5만 명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죽여버릴 거야!”
이불 안에서 노인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가만히 좀 있어라!”
현수는 이불을 꽉 누르며 문밖을 보았다.
책상과 의자가 비상계단 통로에서 쏟아지는 요란한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부욱
그때 이불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키히히히히힛!”
노인이 찢어진 이불로 머리를 내밀며 기괴하게 웃었다.
현수는 그 모습에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을 느꼈다.
이 모습을 촬영하던 세정은 방송을 유지한 채로, 구석에 있던 드라이기를 가져와 노인의 머리를 후려쳤다.
다행히 세정의 움직임 때문에 타격하는 그 순간은 카메라 앵글에 잡히지 않았다.
빠각-
드라이기가 박살이 나며 노인 역시 쓰러졌다.
잠시 기절을 한 모양이었다.
- 아무래도 진짜 실제 상황인 것 같은데.
- ㄱㅎㅇ호텔이 구희용 호텔 맞음?
- ㅇㅇㅇㅇㅇ
- 나 지금 신고함.
- 나도 신고했음.
- ㅅㅂ 이거 진짜였어??????
하날하날과 너도캠핑의 방송이 끊기고, 사람 머리를 친 드라이기가 부서진 채 등장하자 시청자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가격하는 순간의 장면이 촬영된 것은 아니었지만 너튜브 업로드를 위해서는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이동, 이동하죠.”
현수와 세정이 비상계단 쪽으로 달려갔다.
그 사이, 몇 초 간 기절했던 노인은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만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것들이.”
그는 화가 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 * *
쿠르르르릉-
비상계단에 쌓여 있던 계단과 의자들이 무너지며 8층으로 내려갈 수 있게 되었다.
하날하날과 너도캠핑, 그리고 현아와 효진은 꾸역꾸역 쓰러진 책상 사이를 디뎌가며 계단을 내려갔다.
그때 현수와 세정도 비상계단 통로에 모습을 드러냈다.
“내려가요! 내려가!”
현수의 다급한 외침에 넷은 더욱 서둘러 8층으로 내려갔다.
현수와 세정도 이들을 따라 허겁지겁 계단을 내려갔다.
현수는 맨 뒤에서 모두가 다 내려가는 걸 지켜보며 수시로 뒤를 돌아 노인이 쫓아오는지 확인했다.
- 개쫄
- 지금 쫓아오는 거죠????
- 네네 살인마가 쫓아오고 있어요.
- 허태훈!!
- 허태훈이라는 할아버지임.
시청자들의 채팅이 폭발적으로 올라왔다.
그들이 보고 있는 화면은 지금 현재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 정도였다.
계단을 뛰어 내려가느라 화면이 엄청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은 물론, 현수를 제대로 비추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더 현실감 넘치게 시청자들에게 전해졌다.
“야이 새끼들아-!”
쩌렁쩌렁한 살인마 허태훈의 목소리가 비상계단 통로에 메아리쳤다.
“어디 계속 도망가 봐! 크하하하!”
그는 우렁차게 소리쳤다.
“계속 가요! 계속!”
현수는 맨 뒤에서 일행들을 살피며 외쳤다.
일행 모두 계단을 쉴 새 없이 뛰어 내려갔다.
“경찰에는 신고 했어요?”
“했는데 잘 접수 됐는지 모르겠어요!”
“위치 추적해서 잘 오겠죠!”
누가 말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이 안 되는 와중에, 이들은 어느새 3층까지 내려와 있었다.
하지만 하날하날이 지쳤는지 난간을 붙잡고 숨을 몰아쉬었다.
“괜찮아요?”
현아와 세정이 하날하날을 부축하며 말했다.
“조금 더 버텨요. 조금만 더.”
현수가 말했다.
다다다다다다
하지만 뒤에서 쫓아오는 허태훈의 뜀박질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날하날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위를 보았다.
“젠장.”
너도캠핑은 자신의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금속으로 된 새총을 꺼냈다.
레이저 사이트에 손목 보호대까지 탑재 되어 있는 레저용 새총이었다.
그녀는 10mm 쇠구슬을 꺼내 고무줄에 걸친 후 고무줄을 쭉 늘렸다.
순간 허태훈이 계단 위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너도캠핑은 바로 쇠구슬을 발사했다.
빠악-
쇠구슬이 살인마 허태훈의 머리에 맞았다.
“으악!”
강한 통증에 허태훈이 몸을 움츠렸다.
“일단 3층으로 빠지죠.”
현수는 3층 복도 문을 열고 일행들을 안내했다.
* * *
“헉. 헉. 헉.”
일행들은 306호에 숨어 숨을 고르고 있었다.
현수는 출입문에서 살인마 허태훈이 쫓아오는지 소리를 조용히 들어보다 일행에게 다가왔다.
쇠구슬을 맞은 뒤, 위협을 느꼈는지 조심하는 모양이었다.
“새총 엄청 잘 쏘시네요?”
하날하날이 속삭여 물었다.
“캠핑 콘텐츠를 하다 보니까 가끔 사냥을 보여줘야 할 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연습 좀 했죠.”
너도캠핑이 대답했다.
그 사이, 효진은 객실 창문을 열고 밖을 보았다.
“경찰이 와 있어요.”
그녀는 반가운 마음에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행들이 모두 창밖을 보자, 경찰차 한 대가 경광등을 번쩍인 채 정차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경찰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소리를 질-”
“-지르면 저 살인마부터 여길 올 거예요.”
하날하날이 말하자 바로 현수가 막았다.
- 새총으로 막으면 되잖아.
- 새총으로 죽여!
- 눈깔 맞추면ㅋㅋㅋ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의 채팅이 이어졌다.
세정은 말하는 대신 채팅창을 너도캠핑에게 보여주었다.
“새총으로 뭘 맞추는 게 쉬운 게 아니에요. 움직이면서는 더 어렵고요.”
그녀가 카메라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언제까지 여기 갇혀 있을 수는 없어요. 놈이 저흴 못 찾는다는 건 경찰도 저희를 못 찾는다는 거예요.”
현수는 턱을 만지며 말을 이었다.
“1층까지만 내려가면 경찰차까지 갈 수 있을 거예요. 그 주변으로 가면 경찰들도 우릴 찾겠죠.”
경찰들이 주변 순찰을 하고 있다고 해도 경찰차 주변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숨 좀 골랐어요?”
현수가 하날하날을 보며 물었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