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화
#미드나잇 게임 (7)
“다가오지 마!”
과대의 까랑까랑한 목소리에 모두가 놀라 움찔했다.
현수는 그녀의 몸 주위로 회색 형체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그녀 주변에 악귀가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빙의가 되어 있지는 않은 듯했다.
“거기 있으면 위험해요. 내려오세요.”
하날하날이 소리쳤다.
그러는 사이 일행 모두 비에 흠뻑 젖고 있었다.
“너무 힘들어. 방송하는 것도, 먹는 것도.”
그녀가 울먹이듯 소리쳤다.
비가 쏟아지고 있어 눈물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슬픈 음성이었다.
“다른 거 하고 싶어서 하면 조회 수는 떨어지고. 매니저는 계속 먹으라고 하고. 몸은 안 좋아지고. 이렇게 살아서 뭐해.”
과대가 소리쳤다.
“그래도 여기서 이러시는 건 아니죠.”
너도캠핑이 맞받아쳤다.
“아무도 이해 못해.”
과대는 금방이라도 몸을 던질 것처럼 난간 쪽으로 몸을 돌렸다.
순간, 현수는 과대 옆에 있는 회색 형체가 어린 소녀로 변하는 것을 포착했다.
‘악귀가 속삭이고 있는 거야.’
분명 과대는 자신의 일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겠지만 그걸 부추겨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것은 악귀일 것이었다.
“아뇨!”
현수가 소리쳤다.
그러자 난간 위로 올라가려던 과대가 몸을 돌렸다.
“아무도 과대님을 이해할 수 없을진 몰라도, 과대님이 다치셔야 할 이유는 없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과대가 물었다.
“사람들이 과대님을 이해 못한다 하더라도 지금 이러실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거죠.”
“네가 뭘 알아?”
“모르죠. 하지만 아직도 과대님을 걱정하는 시청자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건 알죠.”
“그런 말이 설득력 있을 것 같아?”
“네.”
현수가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하날하날과 너도캠핑, 방고리 모두 현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뭐?”
“사람들의 관심을 바란 건 과대님이잖아요. 그렇게 100만이 넘는 구독자를 확보하셨고요. 그리고 과대님 방송이 끊겼을 때, 얼마나 많은 시청자들이 제 방송으로 와서 과대님 찾아달라고 부탁했는데요.”
“잘 됐네. 그럼 날 더 잘 기억할 테니까.”
그녀는 다시 난간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귀에서 누가 속삭이죠?”
현수가 한 걸음 다가가며 소리쳤다.
“그만해.”
“귀에서 자꾸 안 좋은 말을 하죠? 다 필요 없다느니, 무의미하다느니.”
현수가 또 한 걸음 다가갔다.
“99명의 선플을 받아도 한 명의 악플에 힘들어하는 게 우리들이잖아요.”
현수의 발이 또 한 걸음 과대에게 향했다.
“됐어. 이제 다 필요 없어.”
과대가 하늘을 보며 말한 뒤 난간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일촉즉발의 순간, 현수가 몸을 날리듯 달려가 과대의 팔을 붙잡았다.
“어어어-!”
동시에 방고리도 달려와 과대의 몸을 같이 붙잡았다.
“꽉 잡아요!”
현수가 소리쳤다.
과대는 현수와 과대에게 팔이 잡힌 채 난간 아래 매달려 있었다.
“끌어 올려!”
이번에는 방고리가 소리쳤다.
그러자 너도캠핑과 하날하날도 달려와 현수, 방고리의 팔을 붙잡고 과대를 끌어올렸다.
“으아아아-!”
현수가 신음을 흘리며 과대를 겨우겨우 난간 안 쪽으로 당기는데 성공했다.
풀썩
과대가 바닥에 쓰러지자 현수와 방고리도 순간 힘을 써 놀랐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괜찮아요?”
하날하날이 쓰러져 울고 있는 과대 옆에서 등을 토닥이며 물었다.
현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옥상 구석을 보았다.
회색 피부에 회색 아우라를 풍기고 있는 소녀 악귀가 구석에 서서 현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현수는 바닥에 떨어진 솔트샷건으로 시선을 돌렸다.
쏟아지는 비에 소금이 녹아 ‘탄창’이 텅텅 비어 있었다.
“후.”
현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악귀를 노려보았다.
이내 악귀는 회색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포기한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해코지를 준비하는 것인지는 당장 알 수 없었다.
* * *
새벽 2시.
청소년 수련원 입구에서 사이렌 불빛이 보이더니 구급차가 들어왔다.
나동 1층 중앙현관 안 쪽에 모여 있던 일행들은 하나 둘 일어나 주차장 쪽을 보았다.
삐- 뽀- 삐- 뽀-
구급차에서는 119대원들이 내리더니 나동 건물로 뛰어 들어왔다.
현수가 대원들에게 다가가자 그들은 우의를 쓴 채로 사람들을 슥 살폈다.
“오는 길에 산사태가 발생해서 다소 지연되었습니다. 지금 길이 정리되었으니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대원들이 현수와 방고리, 하날하날, 너도캠핑을 보며 말한 후 부상자를 후송하기 시작했다.
이어 구급차 뒤로 승용차 한 대가 따라 들어왔다.
김창수 과장의 차량이었다.
“저 사람 얼굴 보면 한 대 칠 거 같은데.”
방고리가 눈을 가늘게 뜨고 중얼거렸다.
그때, 비가 조금씩 그치기 시작했다.
“휴.”
현수는 아직도 나동에 가득한 한기를 느끼며 현관 밖으로 나가 김창수 과장을 맞았다.
“송구스럽게 됐습니다.”
김창수 과장이 말했다.
“119대원들을 조금 더 일찍 보내주시지 그러셨어요.”
현수가 말하자 김창수 과장은 어깨를 으쓱였다.
“제 입장에서도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모르겠어서.”
“그걸 말이라고 해요?”
하날하날이 공격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미안하게 됐어요.”
김창수 과장이 말했다.
현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세정이 들고 있는 카메라로 몸을 돌렸다.
“‘미드나잇 게임’은 중도 취소가 되었으니 승자는 따로 없게 되겠습니다. 게임 취소 선언이 있기 전 중도 포기 하신 분들은 계약대로 선입금을 반환하여 주시고 남은 분들은 선입금 지급에 변동사항 없습니다. 또한 캡틴님과 너도캠핑님은 지금 이 순간까지 방송 룰을 지켜주셨으니 추가 상금 지급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창수 과장이 현수의 뒤에서 말했다.
현수는 고개를 살짝 가로젓고는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들 후기 방송에서 찾아뵙겠습니다.”
현수가 방송을 종료하자마자 김창수 과장을 돌아보았다.
“축하드립니다. 뭐, 아침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30분 룰부터 방송 유지까지. 캡틴님, 너도캠핑님, 수고하셨어요.”
김창수 과장이 박수를 치며 말했다.
“진짜 죽탱이 마렵네.”
방고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순간 시청자 수가 캡틴님 채널에서만 15만 명까지 올라갔었어요. 구독자도 5만 명이나 올라서 25만 명이 됐고요. 이렇게 오르면 누가 제일 좋은 건지 아시죠?”
김창수 과장이 현수를 보며 윙크를 찡끗 하고 돌아섰다.
“쓰레기는 쓰레기인데 돈 벌어다 주는 쓰레기네. 어휴.”
방고리는 아주 작게 속삭였지만 현수는 그 소리를 훤히 들을 수 있었다.
* * *
방송이 마무리 된 후, 현수를 비롯한 모두의 구독자는 크게 올라 있었다.
방고리는 50만 명을 돌파하게 되었고 하날하날은 34만 명, 그리고 너도캠핑은 45만 명의 구독자를 둔 스트리머가 되었다.
그리고 과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했던 장면 때문이었는지 여러 동정표까지 얻어 무려 120만 스트리머로 급성장하게 되었다.
논란과 문제가 많았던 콘텐츠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끝까지 남은 다섯 명의 스트리머 모두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 준 셈이었다.
이 ‘미드나잇 게임’은 다시 2기가 방영이 될지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인터넷 뉴스와 너튜브에서는 굉장히 큰 주목을 끌었다.
여기저기 불법적으로 영상을 편집에 공유되는 사례가 늘어나기도 하고 또 각종 밈들이 재탄생하면서 사람들의 흥미를 북돋았다.
그리고 각 스트리머가 올린 편집 영상은 순식간에 10만 조회수를 훌쩍 넘는 동영상이 되어 있었다.
거기서 나오는 장기적인 수익은 가히 엄청날 것이었다.
라미로브가 출연진들에게 선입금을 주고 상금을 모두 뿌린다 하더라도 남는 장사인 셈이었다.
후기 방송을 진행하면서 현수는 촬영된 영상들을 쭉 정리해 나갔다.
편집 영상이나 쇼츠로 제작이 될 영상들은 세정과 편집자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기 때문에 예전보다 크게 분류 작업할 필요는 없었다.
현수는 시청자들과 함께 촬영된 영상들을 빠르게 훑어보며 당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솔직히 끝까지 짜고 치는 건 줄 알았음여.
- 이번에 진짜 역대급으로 재밌긴 했는데 너무 힘들었음. 무서운 게 너무 기니까.
- 25만 명 축하드립니다.
- 100000원 파워챗
- 덕분에 심심한 토요일밤 재밌게 보냈습니다.
- 심장이 열두 개라도 부족했을 듯.
채팅과 후원이 줄지어 들어왔다.
현수는 파워챗에 화답을 해주며 영상들을 보았다.
“나중에 얘기 들었는데 라미로브 쪽에서는 귀신 역을 할 아르바이트를 따로 배치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 헐???
- 그럼 우리가 본 기현상들 다 진짜 귀신이었던 거????
“음. 아뇨. 음향효과라든가 물건이 툭 떨어지는 정도의 장치들은 마련을 해뒀는데 귀신을 준비한다든가 사람을 다치게 할 만한 건 전혀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현수가 채팅에 대답을 해주었다.
- 그럼 뭐였던 거예요??
“방송에서 말씀드렸듯이 악귀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됩니다. 어떻게 유입이 됐는지는 몰라도 그곳에 상주하면서 사람들을 계속 해코지 하는.”
현수가 대답했다.
- 1000원 파워챗
- 거기 사람들 막 가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후원 감사드립니다. 안 그래도 관련해서 라미로브 측에서, 시청에 연락해서 그곳에 사람들 접근 금지 조치를 내릴 거라고 하더라고요. 행여나 어기고 들어갔다가 벌금 낼 수도 있다고 하니까 다들 주의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현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쭉 촬영본을 확인하는 중간중간, 하날하날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아무래도 처음 라동에 갈 때부터 함께 있었던 터라 카메라에 더 많이 잡힌 것이었다.
- 하날하날하고 잘 됐으면 좋겠어요.
- 스캔들각
- 둘이 안 사귐????
- 썸띵라이끄뚜잇??
그 모습을 본 시청자들의 반응도 제법 많았다.
“아유. 하날하날님하고는 별 거 없습니다. 촬영 이후로 따로 연락 주고받지도 않았는걸요.”
현수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 둘이 잘 어울리긴 하는데.
- 잘해보세요.
- 이 연애 나는 응원할셐ㅋㅋㅋㅋㅋㅋㅋㅋ
“아유. 이상한 말씀들 하지 마시고. 하날님 방송가서도 이상한 말 하지 마세요.”
현수가 말했다.
- 이미 그쪽도 난리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거긴 여기보다 더 심함ㅋㅋㅋㅋㅋ
채팅을 본 현수는 눈을 껌뻑이다 급히 하날하날의 스위치 방송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러자 하날하날이 예쁜 옷을 입고 캠 앞에서 소통 방송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캡틴 퇴마 박현수님하고요? 만약 사귀면 어떡하시려고요? 현수님 멋있죠. 지적이고.]
그녀는 ‘사귀지 않는다.’라는 말도 ‘현수는 별로다.’라는 말도 하지 않고 애매모호하게 대응을 하고 있었다.
현수는 이것이 그녀 나름대로 시청자들의 질투를 유발하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진짜 숨겨둔 애인이 있다거나 사실 유부녀라든가- 하는 부분들은 시청자들의 원성을 살 수 있었지만 이렇게 질투심을 유발하며 애간장을 녹이는 것은 나름의 스킬인 모양이었다.
- 지금 캡틴님 방송 들어옴ㅋㅋㅋㅋㅋ
- 여기 방송에 캡틴님 있음ㅋㅋㅋㅋㅋ
그때 현수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이 채팅을 올렸다.
[어머. 캡틴님 지금 방송 보고 계세요? 안녕, 캡틴님.]
하날하날이 캠을 보며 요염하게 손짓을 했다.
‘음. 여캠 방송할 때랑 청소년 수련원에서 모습이랑 미스터리 방송할 때랑 진짜 느낌이 딴판이네.’
정말 여러 개의 자아를 가진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