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화
# 미드나잇 게임 (5)
현수는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스태프의 이마에 댔다.
지혈을 하기 위해서였다.
쿠구르르르릉-
천둥번개가 치며 사방이 번쩍였다.
순간 현수는 방금 들어온 객실 문앞에 서 있는 귀신과 눈이 마주쳤다.
귀신은 번개로 주변이 환해지는 순간 보였다가 이내 사라졌다.
지금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과대님은 어디 가신 거야.”
하날하날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였다.
현수는 잠시 고민하다 김창수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모습은 계속 생방송으로 송출이 되었다.
“현수님. 스피커폰.”
이 와중에도 세정은 현수에게 사인을 주었다.
현수는 바로 스피커폰으로 변경한 후 통화했다.
[네. 캡틴님.]
“지금 방송 보고 계시죠?”
[네. 봤습니다.]
“아무래도 게임 중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부상자가 나왔어요.”
[아아-]
“지금 이거 가짜거나 연기자 심어두신 거 아니죠? 확실히 해주셔야 해요.”
[네. 아니에요. 그 스태프도 1년 넘게 과대님 매니저로 근무 중인 직원이고요. 따로 연기자를 심어두지 않았어요.]
“그럼 게임 중단하고 모두 철수시켜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다른 팀한테 이야기할게요.]
김창수 과장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러면 상금은 어떻게 되는 거죠?”
하날하날이 물었다.
“그건 모르죠. 어쨌든 선입금 부분은 보장 받겠죠. 주최 측에서 스톱한 거니까.”
“구급차를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하날하날이 물었다.
현수는 스태프의 상태를 유심히 보았다.
피가 나긴 했지만 구급차를 부를 정도로 위독해 보이지는 않았다.
더구나 모두 철수를 한다면 각자 타고 온 차를 타고 이곳을 빠져나갈 상황.
굳이 공권력을 부를 필요는 없어 보였다.
웅성 웅성-
우우웅 웅얼웅얼-
그때 복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일행은 서로를 한 번 돌아본 후 피칠갑의 스태프를 부축해 밖으로 나왔다.
“다들 어디 있는 거야?”
“위로 간 것 같은데요?”
계단 아래에서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 오셨어요.”
“다동은 어땠어요?”
“별거 없었어요.”
다른 동으로 갔던 스트리머들이 나동으로 모여든 것이었다.
현수와 하날하날은 서로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 뒤 1층으로 내려갔다.
* * *
“말자님이랑 눈갱님은 중도 포기해서 나갔고. 과대님은 실종 상태고. 과대님 촬영 스태프는 부상당했고.”
방고리가 1층 중앙현관 바닥에 앉아 중얼거렸다.
다들 심각한 표정으로 현재 상황에 대해 현수에게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이었다.
“조금 전에 라미로브 김창수 과장한테 문자 왔는데 지금 바로 다 철수하라고 하더라고요.”
피아노우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럼 우리 상금은?”
“맞아. 주기로 한 건 어떻게 되는 거지?”
와정과 쁘이로그가 번갈아 한 마디씩 했다.
“그거야 라미로브 측에서 게임 진행 취소 얘기가 나온 거니까 선입금은 보장을 해주지 않을까요?”
“그걸 확실하게 정리하고 취소니 뭐니 말해야지.”
“그러니까 말이에요.”
참가자들은 잔뜩 불만을 가진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하날하날이 말했다.
“아니, 지금 사람이 다치고 과대님이 사라졌는데 돈이 중요해요?”
그녀의 말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선입금이 어떻게 되든, 상금이 어떻게 되든 저는 상관없습니다.”
그때 현수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
현수는 참가 스트리머들을 쭉 둘러보며 말했다.
“저는 과대님을 찾아보고 갈게요. 다들 먼저 철수들 하세요.”
현수의 말에 모두가 시선을 집중시켰다.
“혼자 남겠다고요?”
“과대님을 찾아야죠. 지금 스태프가 이렇게 된 거 보면 과대님도 상태가 그리 좋지 않으실 거예요.”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건-”
“악귀에 쓰였을 수 있어요.”
현수의 대답에 와정이 코웃음을 쳤다.
“하하. 악귀는 무슨.”
“지금 이분 상태를 보고도 그래요?”
와정의 태도를 본 하날하날이 스태프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직도 입가에 미소를 띤 채 피를 흘리며 웃고 있는 과대 스태프.
확실히 제정신은 아닌 듯 보였다.
“방송은 계속 켜실 예정이시고요?”
너도캠핑이 현수를 보며 물었다.
“네. 혹시나 생길 문제에 증거자료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라미로브도 모니터링 해야 하고.”
현수의 말에 와정이 손사래를 쳤다.
“혼자 방송 독식하겠다는 거네.”
“그런 의미는 아니고요.”
와정은 살짝 공격적인 투로 말했다.
아무래도 모두 방송을 철수하고 나면 현수 채널로 시청자가 몰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저는 여기서 철수할게요. 아무래도 소름끼치고 무섭네요. 여기.”
피아노우가 먼저 운을 띄었다.
“저도 빠질래요.”
쁘이로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난 남을래요. 같이 찾아요. 과대님.”
와정이 현수를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방송각을 더 잡겠다는 것이었다.
“나도 남죠.”
너도캠핑도 합류하기로 결정을 했다.
이 상황을 보던 방고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철수하겠습니다. 어그로도 어그로지만 더 있다가는 다치게 생겼네요.”
그러자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철수하시는 분들께서 여기 스태프 분 좀 병원에 보내주세요.”
“제가 모실게요.”
현수의 말에 방고리가 대답했다.
“그럼 수고들 하세요.”
피아노우와 쁘이로그가 먼저 앞서 주차장으로 나갔다.
그리고 방고리는 자신의 스태프와 함께 부상자를 부축하고 뒤늦게 출발했다.
“그럼 저희는 잠시 정비 좀 하고 과대님을 찾아보도록 하죠.”
현수는 남은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 * *
각자 장비와 방송 상황, 채팅창을 확인한 일행은 슬슬 이동할 준비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와정은 스마트폰과 손전등만 가진, 전형적인 야외 라이브 방송의 컨셉이었고, 너도캠핑은 복장부터 장비까지, 캠핑에서 쓸 만한 것들로 구비되어 있었다.
심지어 망치와 톱과 같은 것이 매달린 가방까지 차고 있었다.
반면 현수는 언제나 그렇듯 EMF 탐지기와 솔트샷건, 고스트사운드와 위자보드가 든 배낭을 메고 있었다.
그리고 하날하날은 손전등과 함께 현수가 맡긴 구형 스마트폰을 쥐고 있었다.
“준비됐으면 이동하죠.”
현수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주차장 쪽에서 헤드라이트 불빛이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이동하려던 일행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주차장을 보았다.
차량 한 대가 들어와 주차를 하더니 이내 누군가 내리고 있었다.
현수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차에서 하차한 사람들이 누군가를 업고 다시 나동 중앙현관으로 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내 유리문이 열리고, 흠뻑 젖은 방고리와 그의 스태프, 그리고 부상자의 모습이 보였다.
“어? 철수하신다고-”
와정이 묻자 방고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아. 여기서 나가는 길에 산사태가 나서 길이 막혔어요.”
방고리의 대답에 너도캠핑이 놀라 다시 물었다.
“어? 그럼 쁘이로그님하고 피아노우님은요?”
“두 분 지나가시고 나서 무너진 듯해요. 연락해 보니까 무사히 지나가셨더라고요.”
방고리의 말에 와정이 사색이 되며 말했다.
“헐. 그럼 우리 지금 여기 고립된 거예요?”
“지금 상황은 그런 거 같아요. 비도 이렇게 오고.”
방고리는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쏟아지는 비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진짜 구조대에 전화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스태프 중 한 명이 물었다.
그러자 와정이 격렬하게 손사래를 쳤다.
“방송 중인데 뭐 신고까지 해요. 지금 여기 침수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는 어떻게 해서든 방송을 이어나갈 생각인 듯했다.
- 와정 발암ㅋㅋㅋㅋㅋㅋㅋ
- 방송 계속 하면 좋긴 한데 좀 짜증나는 캐릭터다.
- 와정 저런 사람이었음???
- 겜방할 땐 재밌었는데 저런데 가니까 좀 재수없다.
와정에 대한 평판이 안 좋아지고 있었다.
“부상자 분은 잠드신 거예요?”
현수가 묻자 방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상자를 데리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한 두 명 정도 남아서 부상자를 지켜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현수의 말에 방고리가 대답했다.
“우리는 방송을 종료했으니까 우리 스태프가 남을게요. 저는 여러분들하고 가고요.”
그 역시도 방송각을 재고는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 현아 매니저도 여기 스태프들이랑 남아 있어. 다들 아는 사람들이잖아.”
하날하날이 현아를 보며 말했다.
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방송 끄지 말고 있어. 30분 안에 돌아올 테니까.”
하날하날이 말했다.
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네.”
너도캠핑이 말했다.
“과대님 찾으면 다 같이 철수하자고요.”
현수는 비장한 표정으로 복도 쪽을 보며 말했다.
* * *
- 50000원 파워챗
- 오늘은 진짜 장편 영화 몇 편을 연달아 보고 있는 것 같네요.
- 조금 지치긴 한다. 지겨운 게 아니고 지치는 느낌.
- 맞음.
- 너무 몰입이 되니까ㅠㅠㅠㅠㅠ
- 근데 이게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가짜인지 모르겠음.
- 오늘 ㄹㅈㄷ각이다.
- 와 시청자 수 봐라.
- 팔만 명 넘었네.
후원과 채팅은 쉬지 않고 터져 올라왔다.
그러는 사이 현수 방송의 시청자는 8만 명에 육박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방송을 멈출수록 현수에게 집중이 되는 것이었다.
심지어 하날하날의 매니저인 현아가 부상자 곁을 지키면서 방송 화면이 고정되자 그 시청자들까지 고스란히 현수에게 들어왔다.
김창수 과장은 현수의 방송을 보면서 씩 미소를 지었다.
어찌 되었든 방송 자체는 큰 성공을 거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변수였다.
누군가 다치거나 고립이 되는 그림은 김창수 과장이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진짜 귀신이 나타나는 그림 역시 예상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것이, 만약 이들이 무사히 탈출하는데 성공하기만 한다면 이 콘텐츠는 엄청난 대박을 하게 될 것이었다.
물론 누군가 더 크게 다치게 될 경우 모든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결국 컴퓨터 앞에 앉아 생방송을 보고 있는 김창수 과장 역시도 배수진을 친 셈이었다.
현수는 김창수 과장이 이 모든 방송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그가 바라는 건 소속 크리에이터들의 시청자와 구독자 확충일 뿐. 누가 뜨든 그는 상관없다. 그냥 누군가 뜨면 될 뿐이다.’
그리고 그의 속내 역시 추측할 수 있었다.
‘그 타깃으로 캡틴 퇴마 채널을 골랐고, 나름대로 목적대로 움직이고 있기는 하겠지.’
하지만 문제는 참가 스트리머들 모두 너무 극한의 상황에까지 몰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쿠구궁-
천둥소리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최대한 흩어지지 않도록 해요.”
현수가 쫓아오고 있는 스트리머와 스태프들에게 이어 말했다.
“흩어져서 찾는 게 더 빨리 찾을 수 있지 않나요?”
와정이 물었다.
“악귀들이 꼭 사람들을 흩어지게 한 다음에 해코지를 하더라고요.”
현수의 대답에 와정이 손사래를 쳤다.
“그놈의 악귀, 악귀. 난 그런 거 모르니까 2층부터 찾아볼게요.”
와정이 계단을 올라가다 말고 2층 복도 쪽으로 몸을 돌렸다.
“와정님. 지금 캡틴님이 같이 이동해야 한다고 한 이야기 못 들었어요?”
그때 방고리가 말하자 와정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 X발. 솔직한 말로 캡틴이라고 뭐 진짜 캡틴이에요? 효율적으로 찾아야죠. 사람을.”
그는 화가 난 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