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화
# 미드나잇 게임 (1)
일요일 후기 방송도 무난히 지나간 후, 방송 스케줄은 조금 더 체계적으로 확정이 되었다.
기존 운용이 되던 대로 토요일과 일요일 21시에 야외 라이브 방송과 후기 방송이 진행되고 매주 수요일 20시에 ‘수요일의 괴담’이라는 제목으로 미스터리 콘텐츠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휴일과 주말 상관없이 3일에 한 번씩 클립 영상이 업로드 되고 일주일에 세 편씩 쇼츠 영상이 등록되었다.
상당히 빡빡한 스케줄이었지만 현수가 한 번 라이브 방송을 나갈 때 뽑아내는 분량이 3시간에서 4시간, 그리고 후기 방송 시간까지 하면 6시간이 훌쩍 넘다 보니 영상을 편집할 소스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야외 방송을 진행할 때 현수가 놀라거나, 귀신이 포착되는 장면들, 기현상이 나타나는 장소들이 많이 등장하다 보니 라이브 방송만 시청한다면 편집하는 것도 쉬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화려한 편집 기술이 필요 없는 만큼 한 편을 제작할 때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여러모로 현수 채널의 콘텐츠들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기 적절한 것이었다.
문제는 ‘수요일의 괴담’이었다.
여기서는 매주 이야기할 소스를 찾는 것도 문제였고, 그에 대한 자료와 영상, 사진을 구하는 시간이 제법 걸렸다.
평일 시간의 대부분을 이 콘텐츠 자료를 준비하는 데에 몰두해야 했다.
하지만 어차피 전업인 만큼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고, 크게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 * *
그렇게 시간이 빠르게 흘러 어느덧 초여름에 다다랐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극장가에는 공포영화들의 예고편들이 걸리기 시작했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슬슬 납량특집에 대한 논의들이 오가고 있었다.
바야흐로 드디어 현수 채널의 계절이 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현수는 여름을 맞아 라미로브와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었다.
그때 오랜만에 태환의 연락이 왔다.
“어! 태환아.”
[형님~ 잘 지내십니까.]
“잘 지내지.”
[요새 아무리 잘나가신다지만 너무 연락 없으신 거 아닙니까.]
“아유- 그거야-”
[-에헤이. 알아요. 알아. 엄마가 형님한테 얘기해서 그러신 거. 이해합니다. 군대 갔다올 때까지 형님 방송하시면 그땐 허락해주신대요.]
“잘 생각해. 어머님께서 네가 귀신하고 엮이지 않았음 좋겠다 하시는 말씀의 무게가 다른 부모님들이 생각하는 거하고는 달라. 당신 스스로가 그 힘든 걸 아셔서 그런 거니까.”
[압니다, 알아. 보니까 이번에 17만 찍으셨더라고요.]
“어. 그렇게 됐더라.”
[히야. 역시 라미로브 끗발은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아무튼, 무슨 일이야?”
[저 이제 갑니다. 군대.]
“오. 진짜? 어디로 간댔지?”
[106 보충대요.]
“고생하겠다.”
[고생은 뭘요. 자대 가면 연락드릴게요.]
“그래. 몸조심 하고.”
[넵! 그럼 잘 지내세요!]
“그래~”
현수가 전화를 끊으며 태환을 처음 봤던 그 스튜디오를 떠올렸다.
그 때 이후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했던 촬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났다.
아마 시청자들 중에도 태환을 기억하는 사람이 제법 있을 것이었다.
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옛날 생각에 잠겨 있다가 커뮤니티 탭에 글을 남겼다.
- 안녕하세요. 캡틴 퇴마 박현수입니다.
- 제 방송 초반에 저와 함께 다니며 도와주었던 우리 태환군이 드디어 입대를 한다고 합니다.
- 우리 캡처님들이 미필이라고 많이 놀리기도 하셨지만 그래도 귀여워 해주시고 아껴주셨던 태환이가 군대를 간다니, 알려드리는 것이 예의일 것 같아 올려드립니다.
- 이 커뮤니티 게시 글도 볼 테니 다들 격려의 댓글들 부탁드릴게요.
- 태환아. 군대 잘 갔다 오고, 전역하면 또 보자.
- 휴가 때 연락해도 되고.^^
현수가 글을 남기자 댓글들이 빠르게 달렸다.
- 조심히 갔다오세요!!!!
- 캡틴 퇴마 채널의 마스코트 태환군. 잘 다녀와요.
- 군대 별거 없어요. 하라는 거 하고 하지 말라는 거 안 하면 됩니다.
- 절대 아프지 마세요. 아프면 진짜 서러워요.
- 덕분에 즐거웠어요. 휴가 때라도 꼭 방송에 출연해주세요.
- 군대가 뭐 대수라고 다들 이렇게 요란이셈? 난 UDT인데.
- └네가 UDT면 난 네이비씰이다.
- 조심히 갔다 와~~~ 우리 태화니.
현수는 댓글들을 확인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때 실시간으로 태환이 대댓글을 다는 것이 보였다.
‘귀여운 녀석.’
태환은 응원 댓글이든, 인신공격을 하는 댓글이든, 모든 댓글에 감사하다는 대댓글을 달아주고 있었다.
그것도 복사 붙여넣기가 아닌 정성스럽게 매번 내용이 다르게 적어주었다.
“그래. 이런 거 하나하나가 정성이지. 사람들한테는.”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다 핸드폰을 보았다.
전화가 오고 있었다.
김세정 매니저였다.
“네, 매니저님.”
[현수님! 지금 통화되시죠?]
“네, 말씀하세요.”
[이번에 김창수 과장님께서 한 가지 제안을 주셔서요. 현수님 의견을 여쭤보려고요.]
“네. 어떤 거죠?”
[대형 프로젝트로 기획이 되고 있는데요. 유명 스트리머들이 팀을 이뤄서 ‘폐가에서의 하룻밤’을 보내는 거거든요.]
“아.”
[예전에 혹시 ‘버닝게임’이라는 웹툰 보셨나요? 웹예능으로도 나왔었는데.]
“네. 알고 있죠. 상금 주는 거. 일주일 버티면.”
[그것처럼 폐가에서 포기하지 않고 하루를 버티면 상금을 주는 거죠.]
“그런 비슷한 영화가 있었던 것 같네요. 귀신 나오는 저택에서 하루 버티면 상금 준다는 그거.”
[네, 네. 어떻게 생각하세요?]
“뭐, 예능이라고 생각하면 좋긴 한데요. 흐음.”
[뭐 걸리시는 거라도 있으세요?]
“정말 조작 없이 한다면 사람들 안전 문제는 어떻게 할지.”
[함정 같은 걸 만들거나 하진 않을 거예요. 해도 귀신 아르바이트나 음향효과 정도나 넣겠죠. 귀신의 집처럼요.]
현수는 ‘귀신의 집’에 귀신이 많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만약 저런 예능을 만든다면 정말 귀신들이 꼬일 수가 있었고, 그러면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었다.
실제 귀신들이 소통을 하고 퇴마를 수차례 해오고 있는 현수 입장에서는 걱정이 되는 요소일 수밖에 없었다.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전화 통화로는 설명이 어려울 이야기였다.
* * *
라미로브 대회의실에 앉은 현수는 김창수 매니저, 그리고 김세정 매니저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유. 김창수 매니저님. 과장 진급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하하.”
“앞으로 과장님으로 불러야겠네.”
“편하신 대로 해주세요. 일단 일정이 급하니까 빨리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김창수 과장이 현수 앞에 사진을 몇 장 건넸다.
“혹시 여기 어딘지 아세요?”
“음. 라이브 장소 서칭하다가 본 적이 있는 곳 같은데요.”
“강원도 홍전시에 위치한 청소년 수련원 건물입니다.”
“아, 맞아. 네, 네. 홍전시 청소년 수련원.”
“총 3층짜리 건물 총 4개 동이 있어요. 가동, 나동, 다동, 라동, 해서요.”
“규모가 상당하네요.”
“이걸 예전에 하장건설에서 수주를 받아 공사를 진행했는데 하장건설이 IMF 때 직격탄을 맞으면서 공사가 중단 되었다고 합니다.”
“IMF 때면- 지금 거의 20년, 25년이 지난 거네요?”
“그렇죠. 그때부터 시에서도 방치해두고 있고 하장건설에서도 책임자가 없으니 그냥 저렇게 버려져 있는데 여기에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많더라고요.”
“네, 저도 봤습니다.”
“워낙 산속에 있다 보니까 여길 어떻게 처리해달라는 민원도 별로 안 들어오는 거 같고요.”
“음. 여기서 그 스트리머들 라이브를 진행하겠다는 거죠?”
“네. 한 10명 정도 진행을 하고 이곳을 탐색하는 거죠.”
“음.”
현수는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 이 프로젝트가 오픈되면 구독자나 조회 수는 확실히 보장이 될 거예요. 각 스트리머 별로 따로 생방송을 할 거기 때문에 시청자들 시너지 효과도 상당할 거고요.”
“프로젝트는 좋은데요. 그러면 촬영스태프까지-”
“-지금 구상으로는 스트리머 10명에 각 스트리머별 촬영 인원 1인씩 해서 총 20명 정도가 되는 것이겠죠.”
“만약 악귀라도 있으면 어떡하시려고요?”
“악귀요? 하하하.”
김창수 과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현수의 방송을 모니터링 해봤음에도 악귀의 존재를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렇다는 건 현수가 귀신을 본다는 것 자체도 아직 의심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어차피 현수 역시 그 사실을 크게 개의치 않고 있었지만 스무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인솔해 폐허로 간다는 건 이야기가 달랐다.
“이런 말씀 드리면 믿기 힘드시다는 거 잘 알지만 악귀는 진짜 무서운 존재입니다. 쉽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정말 별일 없을 수 있지만 만에 하나-라는 걸 생각해 주시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뭐, 그렇긴 한데 공식적으로 홍전 청소년 수련원에서 무슨 사건이 있어서 폐관한 것도 아니고요. 그냥 건설 회사가 문 닫으면서 방치가 된 건데 문제가 있겠습니까?”
“모르죠. 어떤 범죄자가 거기 숨어들었을지. 도래진 초등학교 촬영 영상 보셨죠?”
“보긴 했습니다만, 흠. 그게 크게 문제가 될까 싶군요. 이미 일부 스트리머들은 거기를 다녀오기도 했고요. 저희는 그냥 저희 나름대로 약간의 세팅을 해두고 스트리머들이 공포체험을 하면서 중도포기 안 하면 상금을 주는 서바이벌 게임을 하려는 것뿐입니다.”
“네, 네. 그렇죠.”
“이미 왔다간 스트리머들도 있는 곳인데 거기서 더 문제가 될 것도 아닌 것 같고요.”
김창수 과장은 이미 마음의 결정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 부분은 호장리 폐 수영장 때와 마찬가지 상황으로 볼 수 있었다.
그곳에 있던 악귀들은 수아도령을 비롯해 다른 스트리머들이 갔을 때에는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수가 가자 자신을 알아본다는 것 때문에 흥분한 것인지 악귀들이 심하게 난리를 쳤었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진행하게 되면 아무래도 현수님이 주체가 되셔야 하니까 저희가 선입금으로 2000만 원을 지급해 드리려고 합니다. 각 채널에서 나오는 수익들은 기존 계약대로 진행하고요. ‘폐가에서의 하룻밤’의 프로그램 판권을 저희가 소유하는 조건입니다.”
“2000만 원이요.”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현수의 걱정은 기우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2000만 원의 떡밥을 물지 않기는 쉽지 않았다.
심지어 선금으로 지급을 해주고 채널에서 나오는 개별 수익은 기존 계약대로 지급이 된다니.
현수 입장에서는 상당히 괜찮은 조건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진행하죠. 그럼 이거 파일럿 프로그램인가요?”
“네. 이번에 보고 반응이 좋으면 2기, 3기 진행을 할 예정입니다.”
“제목은 ‘폐가에서의 하룻밤’이고요?”
“아. 그건 가제고요. 여러 후보군 중에서 골라보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기획하겠습니다. 아마 현수님께서 당분간 방문 하실 일이 좀 있으실 거예요.”
“알겠습니다.”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