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화
# 하날 미스터리
“어우. 되게 지적인 외모세요. 약간- 장태오 느낌도 나고.”
하날하날이 웃으며 현수의 칭찬을 이어갔다.
“장태오라면- 그 배우 말씀이신 거죠? 아유! 과찬입니다. 하날하날님도 너무 아름다우세요.”
“어머나. 아름답다니. 그런 말은 또 처음 들어보네요.”
둘은 실없는 칭찬을 이어가다 미스터리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래서 언제쯤부터 귀신을 보신 거예요?”
하날하날이 물었다.
현수는 잠시 생각하는 듯 눈알을 굴리다 대답했다.
“언제인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아요. 그냥 되게 어렸을 때부터 귀신을 봤는데 처음에는 귀신하고 사람하고 구분을 못했었던 기억이 있어요.”
“어머, 진짜요?”
“네. 그래서 친구들한테 따돌림도 받았었죠. 애들 보기엔 허공에 대고 뭐라 수다를 떠는 것처럼 보였을 테니까요.”
“아. 귀신하고 대화도 같이 하셨던?”
“네, 맞습니다.”
둘은 마치 좌담회를 하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 저게 거짓말이라면 박현수는 연기계로 나가야 한다.
- 컨셉 제대로 잡았넼ㅋㅋㅋㅋㅋ
- 허언증 아님??? 그 사람들은 자기 거짓말이 진짜라고 믿는다잖아. 그럼 연기가 아니라 정말 진짜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거지.
- 진짜 그런가???
- 진짜일 가능성 있음.
하날하날의 스위치 생방송 채팅이 올라왔다.
현수와 하날하날은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도 프롬프터처럼 앞에 마련된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 채팅을 확인했다.
“그런데 진짜 조금 예민한? 기분이 안 좋으실 수도? 있는 질문인데요. 보면 캡틴님 생방 하실 때나 댓글로 조작 여론이 굉장히 많아요. 이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날하날이 물었다.
현수는 미소를 머금고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네에-”
“제가 귀신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증명할 길이 없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전 분명 눈에 보이고 소리가 들리는데 아무도 안 믿어줬어요. 그러니까 따돌림 당하고 그랬죠.”
“아아. 그랬군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보고 듣는 걸 최대한 증명하려고 이런저런 장비를 사용하긴 하는데 거짓이라는 댓글, 채팅은 끊임없이 따라붙죠. 당연해요.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듣는 것만 믿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방송을 하시게 된 계기가 뭘까요? 귀신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으셨던 것 같은데.”
“솔직한 말로 정말 ‘돈’이죠. 바이러스 때문에 회사에서도 잘리고 취직도 안 되고. 게임방송을 하던 중에 어떤 시청자 분이 제안해 주시더라고요. 귀신 보이면 퇴마 방송이나 해보라고.”
“아, 그러셨군요.”
“지금은 조작 논란이 계속 붙고 그러지만 크게 상처받지 않고 제 느낌, 제가 보는 것 그대로 방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여러 사람들을 도와주고도 있는 것 같고요.”
“맞아요. 그래서인지 벌써 퇴마 방송 컨셉 잡은 지 두 달 정도 되셨는데 구독자가 13만 명이 넘었더라고요.”
“감사할 따름이죠.”
현수가 카메라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가장 최근 촬영이 하평에 있는 ‘스마일라 펜션’이었죠?”
“아, 네, 맞습니다.”
“요새 거기 엄청 핫해졌더라고요. 방송 나가고 한 3일 만에 두 달 치 예약이 꽈악 찼다던데요?”
“진짜요? 하하.”
현수의 방송이 광고 효과를 톡톡히 보인 모양이었다.
“거기뿐만 아니라 그 펜션촌 전체에 예약이 늘었다고 하더라고요.”
“잘된 일이네요. 다시 귀신이 안 나타나야 할 텐데.”
현수가 본 그 할머니라면 이제 갑자기 길에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 할머니가 바란 건 사람들에게 해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덤에 있는 말뚝을 뽑아 달라는 것이었으니.
“언제 기회가 되면 같이 현장에 나갔으면 좋겠어요.”
“안 그래도 전에 그런 말씀을 해주셨었는데요. 그 부분이 조금 어려운 부분입니다.”
“왜요? 그 이제 스무살 친구도 같이 다니셨던 것 같은데.”
“그땐 저도 이 일의 위험성을 잘 몰랐을 때였는데요. 악귀나 원한이 많은 귀신을 만나면 해코지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더라고요. 게다가 귀신들은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에 대해서는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고요.”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에 대해 적극적으로 움직인다라면?”
“그렇잖아요. 귀신은 이승에 미련이 남아있는 존재인데 이승의 산 사람들은 귀신을 보지 못하죠. 그러니 귀신들은 자신이 가진 한을 어쩌지 못하고 그냥 떠돌아다닐 뿐인데 이승의 사람 중 누군가 자신을 알아본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흥분되겠어요.”
“그렇죠. 자기 한을 풀어줄 수 있을 것 같고.”
“네, 그렇죠.”
“저희가 소문으로 알고 있던 것들이 사실이었네요. 귀신하고 눈 마주치면 안 된다- 같은 이야기들.”
“네, 비슷한 맥락입니다.”
“그럼 방송할 때 포함해서 가장 무서웠던 때가 언제였어요?”
하날하날이 물었다.
“음. 너무 많아서 우열을 가리기 힘든데요.”
“귀신이 매일 보이는데도 무서워요?”
“그럼요. 적응하기 힘들어요. 하하. 물론 다른 사람들 보다는 낫겠지만요.”
“한 번 꼽아주세요. 언제가 무서웠는지.”
“흐음. 언젠가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현수가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가기 시작했다.
* * *
제가 초등학생이었을 때였네요.
그때도 전 학교에서 왕따였어요.
아무도 저랑 짝을 해주지 않았고, 쉬는 시간, 등하교 시간, 전 혼자였죠.
그땐 도시락을 챙겨가서 밥을 먹어야 했는데 같이 밥 먹어주는 친구도 없었어요.
근데 그때는 그게 슬프고 안 좋은 거라는 생각도 잘 못했던 것 같아요.
그냥 그게 당연한 거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인가, 학교에 갔는데 옆자리에 예쁜 여자아이가 앉아 있더라고요.
전 경계를 하면서 자리에 앉았죠.
아무도 저랑 안 앉으려고 하는데 옆에 있으니 얼마나 이상했겠어요.
그런데 저한테 말을 걸더라고요.
새로 전학 왔다고 친하게 지내자고요.
그때- 담임선생님이 그 친구를 소개해줬나 안 해줬었나 그런 생각은 안 했던 거 같아요.
그렇게 한 학기 동안 그 친구랑 수다도 떨고 숙제도 같이 하면서 지냈어요.
그때 처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꼈던 것 같아요.
하하. 사랑이 아니었을 수도 있죠.
그냥 그 당시의 순수한 호감?
초등학생 때니 그럴 수 있겠네요.
아무튼 한 학기가 지나고 나서 알았어요.
그 아이가 귀신이었다는 걸요.
제가 다닌 초등학교는 역사가 굉장히 길었는데, 30년 전에 학교 앞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여자 아이였다고 하더라고요.
방학 때 반마다 번갈아가면서 학교에 나와 환경미화를 했는데 그때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 아이가 있었다고요.
그리고 제가 그 아이하고 대화하는 것 같다고요.
반 년 동안 뭐에 홀린 듯 그 친구와 친하게 지냈던 것도 충격이었지만 그 다음이 더 무서웠어요.
그때부터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몇 년 동안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났었거든요.
제 교실이 3층이었는데 창밖을 보면 그 친구가 쳐다보고 있고, 집에서 씻을 때 거울 보면 뒤에 나타나 있고, 자려고 하면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서 절 보고 있고.
아마 절 친구로 생각하는데 제가 자기 정체를 알고 나서 거리를 두니까 다시 친해지고 싶어서 접근했던 거 같은데 아무래도 죽은 자의 접근이라는 게 상식적이지는 않잖아요.
그러다 보니 그렇게 시달렸죠.
* * *
“아아-”
이야기를 들은 하날하날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더니 이내 정신차리고 현수에게 물었다.
“그럼 언제 사라졌어요?”
“음. 그것까진 기억 안 나요. 그냥 어느 날부턴가 보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부모님은요? 부모님께서는 어떻게 조치 안 해주셨어요?”
“말씀드려도 믿지를 않으시니 얘기를 안 하게 되더라고요. 뭐가 보여도.”
현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덤덤하게 대답했다.
- 뭔가 안쓰럽다.
- 진짜 귀신이 보이면 저런 상황에 처하게 될 듯.
- 아니면 정말 무당 찾아가서 신 내림이라도 받아야 하나 고민할 듯.
- 근데 뭐 신은 아무나 받나.
- 고생 많았겠다.
- 주작러 아니라 진짜면 좀 불쌍하긴 하다.
채팅창이 올라왔다.
하날하날은 채팅창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물었다.
“그 외에는 다른 건 없었어요? 무서웠던 이야기.”
“음. 무섭다기 보다는 조금 난감했던 적이 있었죠?”
“그래요?”
“네, 네. 그때는- 제가 군대에 있을 때였네요.”
다시 현수의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 *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군대에서는 불친번이 있어요.
보통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씩 교대로 근무를 서게 되는데요.
근무자는 정해진 시간에 내무실, 아, 생활관이죠. 생활관을 돌면서 인원 체크를 해요.
그런데 제가 이등병 때, 누워서 자려는데 문이 열리더니 불침번이 들어와 인원 체크를 하더라고요.
늘상 있는 일이니까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 다음날 아침 점호 시간에 당직사관이 그러는 거예요.
어제 불침번 근무자가 졸고 있어서 인원 체크가 안 되는 불상사가 있었다고요.
그래서 어제 인원 점검을 누락한 불침번 근무자들을 군기 교육대에 보낸다고요.
근데 그 근무자들의 근무 시간을 보니까 제가 불침번 근무자를 봤던 그 시간이었어요.
다시 말해서 제가 본 불침번 근무자가, 실제 근무자가 아니었던 거죠.
분명 전투모에 불침번용 단독군장까지 차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제가 자다 깨다 하면서 착각한 건가 생각했는데 그 뒤로도 매일 같은 시간에 그 근무자가 들어오더라고요.
뭐지, 뭐지, 하다가 제가 불침번 근무를 서는 날.
항상 같은 시간에 저희 생활관 들어오던 그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려고 대기하다가 뒷모습을 발견하고 딱 쫓아갔는데요.
세상에.
돌아보는 순간 흰자 없이 검은 눈에 피범벅이 된 남자가 절 돌아보는 것 아니겠어요.
저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면서 뒤로 물러났는데 그것 때문에 선임들이 잠에서 깨서 정말 어지간히 얻어맞았었죠.
근데 그러고 며칠 안 있다가 탄약고 쪽에서 거수자가 발견 됐다면서 비상이 울렸는데요.
전 병력이 이틀 밤을 새면서 흔적을 찾았는데 아무것도 못 찾았죠.
* * *
이야기를 들은 하날하날은 카메라와 채팅창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군대 얘기다 보니까 제가 이해 못한 부분이 조금 있는데요. 그래서 귀신의 정체는 찾았나요?”
“아뇨. 못 찾았죠. 그렇게 시간 지나서 저는 전역했고요. 그런데 제가 이등병이고 그러다 보니까 안 그래도 제 말을 안 믿어줘서 귀신 이야기를 안 꺼내는데 더 말할 수가 없었죠.”
“그 귀신도 현수님을 막 해코지 하고 그랬어요?”
“네. 근무 서고 있는데 뒤에 서있고 그러더라고요.”
현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정말 많은 사연이 있겠어요.”
“이거 말고도 많기는 많죠. 다만 무서웠던 사연이 뭐냐고 여쭤보시기에 바로 기억나는 걸 말씀드린 거죠.”
“어머- 저 같으면 정말 제 정신에 못 살았을 것 같아요. 아이고.”
하날하날은 머리를 슥 넘기며 멘트를 이어갔다.
그때 생방송 시청자 수가 잠시 20000명을 넘었다가 다시 내려갔다.
“지금 생방송 시청자 분들, 2만 명이 넘었네요. 어머, 대박. 감사드려요. 감사드립니다. 캡틴님이 와주셔서 더 홍보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그녀는 인사치레 하듯이 말을 하고는 바로 다음 화제로 넘어갔다.
현수는 그녀가 비록 스위치, 너튜브에서 활동하는 스트리머지만 확실히 프로 같은 면모로 부드럽게 진행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