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스트리머 퇴마사-38화 (38/227)

제38화

# 무연고자 공동묘지 (2)

시청자 수 821명.

처음 방송을 켜고 장비소개를 할 때까지만 해도 1500명까지 빠르게 올라갔지만 정작 ‘숙제’를 시작하자 금세 반 토막이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현수는 떨어지는 시청자 수를 최대한 의식하지 않으며 멘트를 이어간 후 바로 몸 곳곳에 장비를 착용했다.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현수는 라이트로 주변을 슥 비추며 말했다.

- 오 밝긴 밝다.

- 태환이가 손전등 들고 있을 때보다 실감은 난다.

- 맞음. 태환이 들었을 땐 다큐 느낌이었고 캡틴님이 들면 1인칭 공포 게임 같은 느낌.

- 개인적으론 이게 호임.

파워챗 후원이 올라오는 가운데 제품을 칭찬하는 채팅들도 눈에 띄었다.

현수는 한 걸음씩 앞으로 가며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아직까지는 귀신의 흔적이라고 할 만한 게 보이지는 않고 있습니다.”

확실히 현수의 눈으로도 아무것도 보이고 있지 않았지만 연출을 위해 심령카메라 화면을 슥 보여주었다.

그런 후 EMF 탐지기로 곳곳을 탐지하며 계속 걸음을 이어갔다.

“여기가 입구입니다.”

현수는 녹슨 철창 앞에 서서 말했다.

초록색으로 된 현판은 비바람에 삭아 굉장히 흉물스럽게 변해 있었다.

- 무연고자들은 한이 굉장히 세다고 들었는데.

- 살면서도 외로웠고, 죽어서도 외로운 거 아님??

- 10000원 파워챗

- 감사합니다.

- 뭔가 초반 영상 같은데 장비가 더 좋아진 것 같은ㅋㅋㅋㅋ

- 오오 맞아 맞아 퇴마 방송 초기 같음.

“후원 감사합니다. 자. 입구를 지났고요. 이제 올라가는 길입니다.”

현수는 시멘트로 된 오르막길을 한 걸음씩 오르며 말했다.

시멘트 사이로 잡초가 올라와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었다.

휘이이이잉-

바람이 불자 목덜미로 찬 공기가 스쳐 지나갔다.

“이제 봄인데도 겨울 같은 바람이 부네요.”

- 그건 산이라.

- 산이니깤ㅋㅋㅋㅋㅋㅋ

- 산이라서욬ㅋㅋㅋㅋ

현수의 말에 시청자들이 대답했다.

하지만 현수는 이 한기가 날씨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아아아아

갑자기 쎄한 기분이 든 현수가 옆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러자 나무 사이로 한 남성이 서있는 것이 보였다.

오래되어 보이는 청바지에 감색 난방을 입은 것이 옛날 TV에서 보던 패션이었다.

귀신이었다.

그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현수만을 또렷이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저기 귀신이 보이거든요?”

현수가 옆쪽으로 심령카메라를 돌렸다.

- 오오오오 하얀 거 하얀 거

- 하얀 게 귀신입니다.

- 보이네.

- 나무 사이에 서있는 것 같네요.

이제 시청자들도 제법 잘 알아보는 모양이었다.

“저기까지 다가가 보지는 않을게요. 공동묘지부터 확인해 봐야 하니까요.”

현수는 EMF 탐지기 반응을 확인하며 걸음을 옮겼다.

탐지기는 3개 불이 번쩍이고 있었다.

꾸꾸- 꼬꼬-

찌르르르르-

유난스럽게 새와 벌레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현수는 꿀꺽 침을 삼켰다.

아무리 자주 봐온 귀신이었지만, 퇴마 방송을 하며 흉가들을 다니고 있지만, 어두운 밤에 귀신을 보러 간다는 것은 늘 두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현수가 귀신을 볼 줄 알다 보니 귀신과 계속 눈이 마주치는 것은 썩 반갑지 않았다.

“저기가 화장실이네요.”

현수가 작고 네모난 콘크리트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화장실표시와 함께 페인트가 반쯤 벗겨진 회색 화장실은 호장리 폐 수영장에서 보았던 화장실보다도 허름했다.

심지어 문도 다 뜯어져 있는 것이 더욱 폐허처럼 보였다.

현수가 다가가 화장실 안쪽을 비춰보았다.

그러자 스테인리스로 된 커다란 소변기가 한쪽 벽 전체에 붙어 있었다.

최근에는 보기 힘든 구식 소변기였다.

한쪽 벽면에 크게 스테인리스 소변기가 통짜로 자리하고 있어서 모두 나란히 서서 소변을 보는 형태였다.

아마 여자 시청자들은 듣도 보도 못한 소변기라고 생각할 법했지만 나이가 조금 있는 남자들이라면 한 번씩은 경험해 봤을 소변기였다.

- 왘ㅋㅋㅋㅋㅋ저거 오랜만이다.

- 아직도 저런 화장실이 있구나.

- 아직 있는 게 아니죠. 저기 버려진 곳이잖아요.

- 아 맞네.

- 나 군대에서 저런 화장실 썼음.

- ㅋㅋㅋㅋㅋ난 동원훈련 때.

- 저 소변기 냄새 ㅈㄴ남ㅋㅋㅋㅋ

확실히 시청자들 중에도 저 소변기를 아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이 화장실에서도 뭔가 보이는 건 전혀 없네요.”

현수가 EMF 탐지기와 심령카메라로 슥 훑어보고는 말했다.

그때 누군가 파워챗을 올렸다.

-50000원 파워챗

-레이니 어플 얼굴인식 기능 한 번 써보세요.

채팅을 본 현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레이니 앱이라면 최근 젊은 세대들이 셀카를 찍을 때 사용하는 어플리케이션이었다.

이목구비를 키워준다든가, 얼굴에 다양한 효과를 넣는다든가, CG 효과를 덧입힐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카메라 안에 들어온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는 기능 역시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었다.

“레이니 어플을 써보라고요?”

현수가 심령카메라 앱을 끄고 레이니 앱을 검색해 설치했다.

- 해외 스트리머 중에는 그 앱으로 귀신 찾는 사람도 있음여.

-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얼굴 감지하면 그 자리에 귀신 있는 거래요.

일부 시청자들이 설명을 해주었다.

현수는 저 소문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었다.

퇴마 방송을 준비하며 여러 스트리머들의 공포 컨셉 영상들을 보는 와중에, 레이니 앱을 이용해 귀신을 찾는 영상을 보기는 했었다.

하지만 너무 벤치마킹을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일단 처음부터 쓰지는 않고 있었을 뿐이었다.

“말씀하신 레이니 어플 설치가 완료 되었거든요? 자, 구동을 해보면-”

현수가 레이니 앱을 작동시킨 뒤 화면을 생방송 카메라에 보여주었다.

얼굴을 인식하지 못한 레이니 앱이 살짝 끊기며 주변 풍경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앱이 얼굴을 인식하면 하얀 실선으로 눈코입이 맞춰지거든요.”

현수는 앱 화면을 보여주며 화장실 곳곳을 비췄다.

사아아아아

그때 세면대 쪽에서 무언가 오싹한 기운이 느껴졌다.

현수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세면대 앞 거울 쪽에 무언가 하얀 것이 스쳐 보였다.

“지금 저쪽에서 뭔가 느껴졌습니다.”

현수는 세면대 쪽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EMF 탐지기는 4개에서 5개 불빛을 깜빡이고 있었다.

이곳에서 무언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먼지 쌓인 화장실 바닥을 걷는 소리는 역시 을씨년스러웠다.

이어 세면대 앞에 도착하자 언제나 그렇듯 뿌연 거울이 보였다.

현수는 거울 앞에 서서 천천히 레이니 카메라를 대보았다.

그리고 그 레이니 앱 화면은 생방송 카메라로 전달이 되어 시청자들에게 전달이 되었다.

달각-

옆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현수는 곁눈질로 옆을 확인한 뒤 다시 거울에 집중했다.

그 순간이었다.

레이니 앱 화면에 이목구비 실선이 또렷하게 잡혔다.

동시에 현수는 뿌연 거울 너머로 하얀 형체가 확 드러나는 것을 보았다.

“우앗!”

깜짝 놀란 현수가 뒤로 물러났다.

당연하게도 생방송 화면 역시 격렬하게 흔들렸다.

- 헐!!!!!!!

- 심령카메라로 볼 때랑 또 다르게 무섭네.

- 뭔가 진짜 귀신 얼굴 본 느낌임

- 아 씨 깜짝이야

- 와 ㅈㄴ무섭닼ㅋㅋㅋㅋㅋㅋ

- 1000원 파워챗

- 고스트사운드 해주세요.

- 50000원 파워챗

- 그대의 용기에 박수를.

- 10000원 파워챗

- 태환이 용돈

현수는 뒤로 물러난 채 숨을 고르며 채팅을 보았다.

하얀 형체는 다시 거울 속으로 스윽 사라졌다.

“바, 방금 전에 거울에서 귀신이 나타났었어요. 보니까 저희를 해코지 하려는 귀신 같지는 않은데 무섭긴 하네요.”

현수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안 쓰는 스마트폰을 하나 더 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레이니 어플이랑 심령카메라를 같이 켜고 다니는 게 여러분들게 귀신을 보여드리기 더 좋을 것 같아요.”

현수는 레이니 앱 화면을 보며 말했다.

다시 이목구비가 식별되지 않자 앱은 프레임 드랍으로 화면이 뚝뚝 끊기고 있었다.

“어쨌든 계속 이동하겠습니다.”

현수는 화장실을 등 뒤로 하고 공동묘지로 이동했다.

* * *

무연고자 공동묘지.

넓게 펼쳐진 언덕 곳곳으로 나무들이 불규칙하게 자라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는 커다란 잡초 더미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 잡초 더미가 ‘무덤’이라는 것을 아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비석 없이 아무렇게나 놓인 무덤 위로 잡초가 자라면서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그 봉분 위에 귀신이 앉아 있지 않았다면, ‘무덤’이라는 걸 알아내는 데에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현수의 눈에는 무덤마다 귀신이 앉아 있는 것이 훤히 보였다.

그리고 그건 무척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수백 기가 넘는 무덤의 귀신들이 일제히 현수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현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심령카메라를 들어 보였다.

“보시면 각 무덤마다 하얀 형체가 보이시죠. 무덤 위에 귀신이 앉아 있는 형상입니다.”

- 진짜 보인다.

- 무덤 위에 하얀 거 뭐예요???

- 귀신입니다.

- 귀신이요.

- 귀신 귀신

- 귀신입니다요.

새로 온 시청자들의 질문이 올라왔다.

현수는 긴장한 표정으로 시멘트 길을 계속 이동했다.

그 사이 시청자 수는 5000명을 넘기고 있었다.

그만큼 채팅과 파워챗 후원도 폭발적으로 이어졌다.

“굉장히 멀리 있는 무덤도 확인이 되시죠? 그쪽의 귀신도요.”

현수는 ‘숙제’를 해결하기 위한 멘트도 잊지 않았다.

택티컬 라이트로 멀리 있는 무덤을 비추며 말했다.

- 좋긴 좋넼ㅋㅋㅋㅋㅋ

- 구매 링크 점

- 성능이 좋긴 하네욬ㅋㅋㅋㅋㅋ

- 캡틴님 숙제하신닼ㅋㅋㅋㅋㅋ

- 그거 뭐라고 검색하면 나와요?

시청자의 질문에 현수가 택티컬 라이트를 카메라에 보여주며 말했다.

“굿라이트에서 나온 택티컬 라이트고요. 인터넷에서 제품명을 검색하면 아앗-!”

현수는 일부러 미끄러진 척 손전등을 떨어트렸다.

- 헐 숙제할 물건 떨어트렸닼ㅋㅋㅋㅋㅋ

- 계약 파기각ㅋㅋㅋㅋㅋ

일부 시청자들이 말했지만 현수는 바로 라이트를 다시 들어 카메라에 보여주었다.

“방금 꽤 세게 떨어트렸는데 조명이 꺼지지도 않고 기스 하나 안 났네요.”

현수는 스크래치조차 나지 않은 손전등에 엄지를 들어보이며 말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숙제 제대로 하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자낳괴다 자낳괴

- 근데 그런 거 치고 물건이 좋아보이긴 하는데.

시청자들은 이게 다 숙제라는 걸 눈치 채고 있었다.

하지만 현수는 모른 척하고 계속 걸음을 이어갔다.

쉬이이이이잉-

히이이이잉-

그때 한 자락 바람이 불어오며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리기 시작했다.

현수는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옆을 보았다.

봉분 위에 앉아 있던 귀신들이 모두 봉분을 밟고 올라 서있었다.

마치 차렷 자세로 서있는 마네킹들처럼, 귀신들은 꼿꼿이 선 채 고개만 돌려 현수를 보고 있었다.

더욱 소름끼치는 것은 등을 보이고 있는 귀신들도 얼굴은 정확히 현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목이 거꾸로 돌아가 있는 것이었다!

사실 이런 곳에 왔을 때에는 뚜렷한 목적이 있지 않았다.

그저 이 공간에 대해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유일한 목표가 될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되레 이런 ‘방문’에서는 조금 더 구석구석 현장을 돌아다닐 필요가 있었다.

현수는 너무 소름끼쳤지만 꾹 참고 계속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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