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
# 무연고자 공동묘지 (1)
며칠 동안 매일 같이 드나들던 태환이 집에 없자 현수는 괜스레 공허함을 느꼈다.
물론 태환과 사이가 틀어진 것은 아닌 만큼 연락은 계속 오고 있었다.
- 형님.
- 왜 톡 안 보세요.
- 저 가도 돼요?????
- 형님?? 뭐 화나심?
핸드폰 진동이 수시로 울렸지만 현수는 최대한 답을 안 하려 미루고 있었다.
아무래도 태환 모친의 부탁을 거절하기는 힘들기 때문이었다.
이해 못할 부탁이 아닐뿐더러, 확실히 이번에는 위험하기도 했다.
‘캡틴 퇴마’ 채널이 현수 것인 만큼 현수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감수해야 했지만 태환이 다치게 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현수는 계속 울리는 핸드폰 알람을 가만히 듣다 답장을 보냈다.
- 태환아. 몸조리 잘 하고 있다가 군대 잘 갔다 와. 이제 몇 달 안 남았잖아.
현수가 문자를 보내자마자 바로 답장이 왔다.
- 엄마가 형한테 뭐라고 한 거죠? 괜찮으니까 일정 말씀해 주세요. 저 집에서 자숙하는 척 하다 슥 나가면 되니까.
태환의 답을 본 현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지금 말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허락 없이 찾아올 애는 아니지.”
현수는 지금까지 겪은 태환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난처할 상황을 태환이 직접 만들지는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나저나 이제 태환이가 없으면- 예전처럼 카메라를 세팅해야 하나.”
현수는 방에 널려 있는 거치대와 배낭, 고스트사운드, EMF 탐지기 등등 여러 장비들을 보며 생각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어후.”
현수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다음 목적지를 서칭해보기 시작했다.
* * *
흉가체험, 퇴마의 방향이 확 바뀐 느낌이었다.
예전에는 심령카메라를 통해서만 악귀, 혹은 귀신의 존재를 촬영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것 없이도, 생방송 카메라를 통해 귀신의 흔적이 송출되었다.
수아도령tv의 그 ‘실장’은 분명 아무 기억이 없다고 강조했다.
화장실에 들어가 숨은 이후로 현수가 발견할 때까지 어둠 속에만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같은 시각 현수와 함께 했던 ‘실장’의 존재.
악귀일 가능성이 컸지만 누가, 어떻게, 왜 그렇게 함께 하고 있었는지는 미스터리였다.
중요한 사실은, 그런 악귀가 어디서든 또 나타날 수 있다는 것.
새로운 방문 지역을 찾아보는데 한 편으로 마음이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지금까지 겪지 못했던 귀신을 겪은 후 찾아온 새로운 ‘공포’였다.
구독자 100911명.
구독자는 눈에 띄게 늘고 있었고, 각종 영상 댓글에는 상서로 터널의 영상과 호장리 폐 수영장 영상을 올려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인터넷상에 떠도는 생방송 영상 짤들을 보고 현수 채널에 찾아왔다가 구독을 눌러주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구독자는 늘어나고 있었지만 그만큼 항의 댓글도 많았다.
물론 현수의 방송을 꾸준히 보고 있는 사람들은 항의 댓글에 본인들이 커버를 쳐주면서 어느 정도 큰 ‘분쟁’으로까지 확대되지는 않고 있었다.
“흠.”
확실히 문제는 문제였다.
생방송 통 영상이 두 번이나 업로드 되지 못하고 있으니 내심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평범한 거 없나?”
현수는 턱을 괴고 댓글과 인터넷 게시판들을 뒤져보았다.
그러던 중 흥미로운 것을 하나 발견했다.
[님들. 무연고자 무덤터 가봄?]
무연고자 공동묘지.
사람이 죽었지만 시신을 인계할 친인척이 없어 국가, 혹은 단체에서 임의로 매장한 사람들의 공동묘지였다.
가끔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시신들일 경우도 있어 비석이 없이 봉분만 남아 있는 형태도 부지기수였다.
최근에는 보통 화장을 했지만 수 년 전까지만 해도 무연고자 공동묘지는 인적이 드문 산골 깊숙한 곳에 하나씩 발견이 되곤 했다.
그리고 그곳은 이상하리만치 습한 경우가 많았다.
우리 동네 뒷산에 무연고자 공동묘지 있는데 소름임.
가끔 여자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려서 가봤는데 들어가자마자 에어컨 바람 같은 찬바람이 붐.
게시 글에는 간략한 후기와 함께 입구 사진이 걸려 있었다.
[예중시 하늘의 문]
공동묘지의 입구 현판에는 녹슨 철문과 함께 현판이 붙어 있었다.
고글에서 검색을 해보니 충남 예중시에 위치한 곳으로 20년 전까지 운용 되었던 공동묘지라고 조회가 되었다.
그리고 제법 많은 스트리머와 방송사에서 이곳을 방문했던 이력이 있었다.
현수는 그들의 영상을 하나씩 찾아보았다.
입구에서 조금 들어가면 있는 공용 화장실.
그리고 지나가면 나타나는 낮은 언덕과 비석 없는 무덤들.
수많은 귀신들이 느껴진다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이 영상들은 공포감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정말 귀신이 촬영되거나 기현상을 포착한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연출의 힘으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데가 나으려나.”
현수는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았다.
남들이 자주 안 가는 곳보다 꽤 이슈가 되었던 곳을 한 번 더 가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상서로 터널과 폐 수영장 모두 방송국과 타 스트리머가 방문했던 곳이었지만 그곳은 ‘집단 자살’, 혹은 ‘사망 사고’가 발생했던 곳이기도 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만큼 원한이 강하거나 악귀가 있을 가능성이 컸다는 의미였다.
그나마 이 공동묘지는 그런 사고가 없기도 하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오간 곳인 만큼 악귀가 있을 가능성은 적어보였다.
“다음에는 이곳으로 가자.”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가는 길을 검색해보았다.
딩동-
그때 메일 알림이 왔다.
현수가 바로 메일함으로 들어가 보았다.
[광고 제안] 택티컬 라이트 광고 문의
메일을 확인해 본 현수가 눈을 껌뻑였다.
“헐? 광고?”
* * *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강남 한복판.
현수는 포탈 사이트에 나온 지도를 확인하며 ‘굿라이트’라는 회사에 찾아갔다.
현수에게 광고를 준 바로 그 업체였다.
현수가 벨을 누르자 직원이 나와서 문을 열어주었다.
[각종 조명 장비의 모든 것! 굿라이트!]
회사 한 쪽 벽에는 커다란 브로마이드가 붙어 있었다.
나름 연예인을 섭외해 광고를 하는 업체인 듯했다.
“이쪽으로.”
현수가 안내를 받아 회의실 안 쪽으로 들어가자 중년 남자 두 명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어서오세요. 캡틴 퇴마 채널 박현수 씨죠?”
“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굿라이트 김희재 팀장입니다. 여기는 한수봉 대리고요.”
“반갑습니다.”
현수와 두 남자는 서로 악수를 하며 인사를 했다.
스윽
인사를 마치고 잠시 사담을 나눈 뒤, 팀장이 테이블 위로 검은 플라스틱 상자를 올려놓았다.
“이번에 저희가 출시한 손전등인데요. 이 제품을 현수 씨 채널에서 광고해 주시면 어떨까 해서요.”
“아. 제 채널에서요.”
“네. 보니까 어두운 곳에서 촬영을 하시더라고요. 그럴수록 조명이 진짜 중요하죠.”
“그렇죠. 생방송 위주로 하니까 화질이 뭉개지기도 하고.”
“이 손전등은 10만 루멘 밝기에 보시면 어느 거치대에도 장착할 수 있게 호환이 가능하고요. 옵션을 이용하시면 머리, 어깨, 가슴, 어디에든 다 장착해서 편하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오호.”
팀장과 대리는 손전등을 꺼내 열렬히 제품 설명을 해주었다.
촬영할 때 제법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안 그래도 태환이 떠나면서 손전등과 조수의 필요성을 조금 느끼던 차에 잘 된 일이었다.
“‘택티컬’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건, 군용으로도 납품이 된다는 건가요?”
“하하하하. 그건 아닙니다. 군대에서 쓰기엔 너무 밝죠. 그만큼 험하게 써도 튼튼하다는 의미입니다.”
팀장은 자신 있다는 듯 손전등을 테이블에 쿵쿵 찍었다.
하지만 손전등의 조명은 깜박임이 없이 견고하게 빛났다.
“단가는 어떻게-”
현수가 상체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
“제품에 대한 설명을 3분 내외로 해주시면서 생방송과 클립 영상에 올려주시는 조건으로 VAT 포함 500만 원으로 견적을 보고 있습니다. 100만 원 상당의 저희 택티컬 라이트 본체와 풀 옵션 제품들은 증정해 드리고요.”
“아하. 네, 네.”
현수가 지금까지 들어왔던 스트리머들의 광고비보다는 적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현 시점에 필요한 물건이기도 하고, 첫 광고라는 점, 그리고 오랫동안 활동한 것이 아닌 빠른 시간에 성장한 10만 스트리머라는 점을 고려해 봤을 때 거절할 필요는 없어보였다.
“좋습니다. 진행하도록 하죠.”
현수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면 계약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내용을 어떻게 촬영할지에 대해서는 컨펌을 받아야 하나요?”
“어떤 키워드가 들어가야 하는지는 저희가 알려드릴 겁니다. 그 내용이 들어가게, 자유롭게 촬영해 주시면 됩니다. 컨펌 여부는 생방송 때 저희가 보고 판단할게요.”
“아아. 만약 부족하거나 별로면-”
“-한 번 더 촬영을 부탁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지금까지 현수 씨가 촬영했던 스타일을 지켜봐왔으니까 큰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여기. 가이드라인입니다. 여기 있는 내용들만 자연스럽게 들어가 주면 돼요.”
대리가 A4용지를 건네며 말했다.
안에는 여러 키워드와 함께 상황들이 기재 되어 있었다.
내구성 - 어딘가에 부딪치거나 떨어트려도 제품이 오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
성능 - 멀리 있는 것도 잘 보인다는 것을 어필하는 장면.
색감 - 눈이 피로하지 않는 밝기라는 것을 어필하는 장면.
.
.
.
이쪽에서 요구하는 것을 보았을 때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 등장할 필요는 없어보였지만 일부 어색한 멘트는 포함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어차피 광고라는 것을 고지하고 촬영해야 하는 만큼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으리라 판단이 되었다.
“문제없겠네요.”
현수가 웃으면서 화답하는 사이, 팀장이 계약서를 현수 앞에 들이밀었다.
* * *
그 주 토요일 저녁.
현수는 렌트카를 타고 예중시 산골에 위치한 ‘하늘의 문’ 앞에 도착했다.
그러고는 바로 차 앞에서 방송장비들을 세팅했다.
“안녕하세요! 캡틴 퇴마 박현수입니다.”
현수가 방송시작을 하고 몇 초 뒤 바로 인사를 했다.
- 안녕하세요~~
- 역시 오늘도 어김없이 토요미스터리.
- 어라. 태환이 안 보이는 듯ㅋㅋㅋㅋㅋ
- 아이고 우리 태환잌ㅋㅋㅋㅋㅋ
- 안녕하세요~~
- 오늘은 어디에요??
곧장 채팅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늘은 예중시에 있는 ‘하늘의 문’에 왔습니다. 무연고자 공동묘지라고 하는데요. 이미 많은 셀럽들, 스트리머 분들을 비롯해 방송국에서 왔다 갔더라고요. 아! 태환이는 사정상 당분간 못 나올 것 같습니다.”
현수는 채팅을 보며 바로 대답을 해주었다.
- 태환이 등짝 얼얼?
- 태환이 보는 맛도 있었는뎅ㅋㅋㅋㅋ
- 조수 안 뽑으시나욬ㅋㅋㅋㅋㅋ
현수는 채팅을 보며 오늘의 장비들을 소개했다.
“이곳은 지금까지 갔던 곳과 다르게 자살이나 사망사고가 없었던 곳이라서 악귀가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새로 오신 분들도 계시니까 제 장비 소개부터 간단히 하겠습니다.”
현수는 솔트샷건과 EMF 탐지기, 고스트사운드 등 자주 쓰는 장비들을 소개해주다 손전등을 들어보였다.
“이건 제가 드디어 받게 된! 첫 광고 제품입니다. 여러분들 덕분이에요!”
현수의 말에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왔다.
- 오오오오오 ㅊㅋㅊㅋㅊㅋ
- 광고 받은 거임?????
- 와!!!ㅋㅋㅋㅋㅋㅋㅋㅋ캡틴 퇴마 진짜 많이 컸닼ㅋㅋㅋ
- 과고???광고???
현수는 채팅 반응을 보며 택티컬 라이트를 카메라에 비춰주었다.
“일단 숙제 좀 아주 짧~게 하고 가겠습니다. 이 제품은요!”
이어 바로 제품에 대한 간략한 스펙과 구조를 설명해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