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화
# 호장리 수영장 (6)
현재 시청자 2811명.
후기 방송은 점점 무르익어 갔다.
녹화된 영상을 보던 현수는 수영장에 상당히 많은 악귀들이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거기에 악귀들이 왜 그렇게 많이 있었던 걸까?”
현수가 묻자 태환이 대답했다.
“아마 집단 자살 사고가 일어난 기운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까 온갖 잡귀부터 악령들까지 죄다 모여들었달까요?”
태환의 대답에 시청자들이 채팅을 올렸다.
- 그럴 수도 있겠구나.
- 그럴 수 있죠.
- 저승사자들이 다 같이 회식했을 듯ㅋㅋㅋㅋㅋㅋ
- 그 집단 자살 사고 일어났을 당시 절반 수 이상이 우울증 환자였대요. 거기 고등학생도 있었던 것 같은데.
- 보통 사고가 아니었군요.
- 5000원 파워챗
- 항상 수고하십니다!
- 거기 다시 갈 예정인가요???
채팅을 보던 현수가 대답했다.
“다시 갈지 안 갈지 아직 정해진 건 없습니다만 언제든 다시 도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수는 수아도령과 함께 다시 폐 수영장에 갈 것이라는 일정은 공개하지 않았다.
“아 참. 다음 주에는 수아도령tv의 수아도령님하고 같이 합방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대신 수아도령과 합방이 있다는 것은 커뮤니티 탭에 이어 누차 공지를 해주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열렬하게 환호하듯 채팅을 올렸다.
- 오! 다음 주도 꿀잼각이다.
- 10000원 파워챗
- 기대됩니다!!
- 수아도령 존잘인뎈ㅋㅋㅋㅋ
- 캡틴님 드디어 게스트가 나오는 겁니까!?
- 여캠 게스트는 안 나와요???
- 여캠 흉가 리액션 존잼일 것 같은데.
“다른 게스트에 대한 계획은 아직 잡혀 있는 것이 없습니다.”
현수가 웃으면서 손을 휘저었다.
“여캠 게스트 추진 해봐도 좋겠는데요.”
태환이 슥 현수를 보며 말했다.
“얘 사심있네. 하하하.”
현수가 태환의 어깨를 팡 치며 받아쳤다.
- 태환이 귀여움ㅋㅋㅋㅋㅋ
- 군대가기 전에 여캠이랑 합방 한 번 해욬ㅋㅋㅋㅋㅋㅋ
나름대로 태환의 팬층도 형성이 되어 있을 정도였다.
- 100000원 파워챗
- 진짜 퇴마하는 법을 배우긴 해야 할 듯.
- 10000원 파워챗
- 팥만으로는 안 될 것 같아요. 십자가를 들고 가든 성수를 들고 가든.
- 5000원 파워챗
- 악귀가 나타났을 때 싸울 수 있는 뭔가가 있긴 해야 할 거 같아요.
파워챗을 보던 현수가 태환을 보며 물었다.
“혹시 어머님께 악귀를 퇴치할 수 있는 방법, 뭐 이런 걸 좀 배울 수 있나?”
현수의 질문에 태환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쭉 내밀었다.
* * *
[수원 원조 물메기탕]
허름한 간판이 걸려 있는 출입문으로 현수와 태환이 함께 들어갔다.
문을 열자 카운터에 앉아 있던 중년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태환이 왔냐.”
“아, 아빠. 여기는 요새 저랑 같이 다니는 ‘박현수’ 형이요. 너튜브 보셨죠?”
태환의 말에 현수가 90도로 꾸벅 인사했다.
“반가워요. 태환이 애비 되는 사람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입대 앞두고 제가 너무 태환이를 데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마음이 많이 쓰였습니다.”
현수는 사가지고 온 과일 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허허. 젊은 사람이 인사치레도 할 줄 알고. 괜찮아, 괜찮아. 입대 전에 하고 싶은 거 해봐야지.”
태환의 부친이 대답하고는 슬쩍 주방 쪽 눈치를 보았다.
“그런데 애 엄마는 얘가 자네 쫓아다니는 걸 별로 안 좋아해. 본인도 무당 일 싫어해서 신만 받고 다른 일 하는데 아들내미가 귀신 쫓아다닌다니까.”
“아, 네.”
현수는 문득 죄송한 마음에 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주방에서 단발머리의 중년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엄마.”
태환이 손을 흔들자 태환의 모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이 박현수 군이군요.”
그녀는 현수를 보며 말했다.
현수 역시 그녀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 주변으로 하얀색 아우라가 맴도는 것이 보였다.
신을 받은 만큼 ‘어떠한 존재’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만큼 태환의 모친 역시 현수에게 특이한 기운을 느낀 듯 눈을 떼지 않았다.
“어- 엄마. 뭐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태환이 불쑥 끼어들어 말했다.
“그래, 앉을까요?”
태환의 모친이 테이블을 가리키며 말했다.
* * *
“그러니까 악령을 퇴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 이거네요?”
태환의 모친이 물었다.
현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라도 받으시게?”
“어- 아뇨. 그것까지는 생각 안 해봤는데.”
“영가를 천도시켜주는 천도재는 무당들이나 할 일이지, 일개 스트리머가 무슨 천도재를 한다고 해요?”
“그래도 악령을 확실히 퇴치를 하려면-”
“-그러니까. 그쪽이 무당도 아니고 왜 나서서 악령 퇴치를 하냐고요.”
태환의 모친은 약간 화가 난 목소리로 언성을 높였다.
현수가 입을 다물자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켜고 말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귀신을 볼 수 있다던데. 그것 때문에 귀신들하고 꽤나 씨름했을 것 같더구만요.”
“아, 네, 뭐.”
“그것만으로도 귀신들이 귀찮게 구는데 악령을 퇴치하니 어쩌니 귀신들 들쑤시고 다니면 그쪽 어떻게 될 것 같아요?”
태환의 모친은 공격적인 눈빛으로 말했다.
“그 너튜브에서 구독자 모으고 조회 수 생각한답시고 그런 짓하다가 악귀 쓰이면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가 될 수도 있는 거예요.”
“어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살인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갑자기 정신 헤까닥 돌아서 살인하는 사람들. 악귀 영향인 경우 많아요.”
그녀의 이야기에 현수는 방망이를 휘둘렀던 태환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렇지만 엄마, 최소한 악귀가 우리한테 덤비려고 할 때 막을 수는 있어야 할 거 아니야. 부적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쪽이 할 수 있는 일은 영가를 천도시켜주는 게 아니에요. 영상 몇 개 보니 귀신들 사연을 찾아내서 한을 풀어주기는 했다만 그건 운이 좋았던 거고.”
“그러면 어떡해?”
“귀신을 천도시켜준단 생각은 버리고, 적당한 선에서 귀신들이 도망치게 만들어야지.”
태환의 모친이 말했다.
“귀신을 도망치게 만든다?”
“보니까 팥을 뿌리고 그러시더만요. 그 정도로 그냥 접근해오는 귀신들을 물리치는 정도로만 하시는 게 신상에 좋아요.”
“그럼 물리치는 도구가 뭐가 있을까요?”
“액막이 부적도 있고 그때 쓰셨던 팥도 있고. 인터넷 검색 해보세요.”
태환의 모친은 자세히 설명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성수나 십자가, 이런 건 먹히나? 막 미국 공포 영화 보면 나오는 그런 거.”
“얘는. 그건 그냥 영화지. 악귀 나타났는데 십자가 들이밀어봐라. 퍽이나 도망가겠다.”
태환이 묻자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봤었는데요. 뭐 어떤 게 효과가 좋을까요?”
현수가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때 뿌리셨던 팥도 좋고, 소금이 대중적이긴 하죠. 두 개를 잘 활용해 봐요.”
인터넷에 나온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실 팥과 소금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나라 미신에 많이 등장하는 이야기였다.
귀신을 쫓기 위해 박을 깨고 팥죽을 먹는 것부터, 장례식장에 갔다 오면 문지방에 소금을 뿌려둔다든가, 밤에 소변을 본 아이나 불청객에게 소금을 뿌리는 행위 모두 마찬가지 맥락이었다.
* * *
이야기를 나눈 후, 현수와 태환은 다시 자취방으로 향했다.
“엄마가 많이 퉁명스러우셨죠? 제가 형 쫓아다니는 거 못마땅해 하셔서 그래요.”
태환이 지하철 의자에 앉아 말했다.
옆에 앉은 현수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
“야, 인마. 그러면 날 쫓아다니지 말아야지. 아니, 오늘 그냥 집에 들어가든가 해야지.”
“집에 있으면 뭐 해요. 심심하기만 하지.”
태환은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며 볼멘소리를 하듯 말했다.
현수는 한숨을 푹 내쉬고 다른 쪽을 보았다.
그러자 출입문 앞쪽에 얼굴이 새하얀 귀신이 보였다.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현수의 얼굴을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었다.
‘하아.’
현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시선을 피했다.
“제가 생각을 해봤는데요. 쓸모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그 ‘솔트샷건’을 사는 게 어때요?”
그 사이 태환이 포탈 사이트에서 이상한 장난감 총을 보여주며 말했다.
“솔트샷건? 그게 뭔데?”
“해충 퇴치용 총인데요. 보시면 여기 통에 소금을 넣고 샷건처럼 레버를 당겨서 장전한 뒤에 쏘면, 소금이 확 분출되면서 해충을 잡아주는 거예요.”
“오호.”
“손으로 팥 뿌리고 그런 거 보다는 좋지 않을까요?”
“나름대로 보는 맛도 있긴 하겠다. 얼마나 쓸모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현수의 말에 태환이 씩 미소를 지었다.
“일단 주문해보자. 네 거랑 내 거, 해서.”
“히히. 재미있겠다.”
현수는 태환의 표정을 살피고는 솔트샷건을 검색해 두 정을 주문했다.
* * *
토요일. 저녁 7시.
호장리 폐 수영장 주변.
현수와 태환이 렌트한 차에서 내리며 주변을 보았다.
멀리 시골집들이 보이는 가운데, 수영장 주변은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바로 지난주에 악령들에게 쫓겼던 기억 때문인지 괜스레 더 한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바로 준비해요?”
태환이 솔트샷건과 고출력 손전등을 챙기며 말했다.
“준비하지 뭐. 금방 올 텐데.”
현수도 바디캠과 심령카메라, EMF 탐지기 등등 각종 장비를 몸에 두르며 대답했다.
그리고 바로 커뮤니티 탭을 확인해 보았다.
- 안녕하세요. 캡틴 퇴마 박현수입니다.
이번 주 토요일 라이브 방송은 수아도령님과 함께 19시부터 진행될 예정입니다.
본격적인 체험 라이브는 21시부터 진행될 터이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현수가 그제 남겨둔 공지였다.
여기에 구독자들의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 첫 번째 합방!
- 수아도령하고 첫 합방이라니. 기대된다.
- 수아도령 존잘인데.
- 항상 응원합니다.
- 오! 합방!
- 두 시간 일찍 시작하네요.
- 아 중간부터 봐야겠네.
현수는 댓글을 달아준 사람들에게 하트를 달아주었다.
그렇게 준비를 하는 사이, 7시가 조금 넘었고, 현수는 먼저 방송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캡틴 퇴마 박현수입니다.”
현수가 카메라에 대고 인사하자 시청자들이 바로 반응을 해주었다.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 오늘은 어디에요???
채팅이 빠르게 올라오며 100명이 넘는 시청자가 한 번에 유입되었다.
“지금 수아도령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7시에 뵙기로 했는데 조금 늦으시네요.”
현수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부우우웅
그때 한쪽에서 헤드라이트를 켠 승합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 수아도령님 오셨나 봐요.”
현수와 태환이 승합차 쪽으로 카메라를 비추며 말했다.
끼익
승합차가 멈추고 헤드라이트가 꺼지자 보닛과 차체 측면에 붙은 스티커가 보였다.
애기 신이 점지한 수아도령TV
010-****-****
형형색색의 스티커로 자신을 광고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스티커 좌측에 수아도령의 캐리커처까지 그려져 있어 제법 귀여운 디자인이기는 했다.
이내 문이 열리자 수아도령과 그의 카메라맨, 그리고 ‘실장’이라 불리는 수아도령의 비서가 내렸다.
‘귀신들이 붙어있다.’
현수는 수아도령의 몸에 정체 모를 아기 귀신들이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것이 흐릿하게 보였다.
심령카메라로도 확인이 안 되는 아기 귀신들이었다.
“안녕하세요.”
현수가 인사하자 수아도령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수아도령님이 지금 막 도착하셨습니다.”
현수가 멘트를 하는 사이 수아도령이 다가와 현수의 카메라에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수아도령입니다. 이야. 이렇게 만나 뵈니까 반갑네요.”
“네, 반갑습니다. 팬이에요.”
현수와 수아도령은 형식적인 인사를 하며 악수를 했다.
그러는 사이, ‘실장’은 차에서 캠핑용 테이블을 꺼내 차 앞에 세팅을 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퇴마는 21시부터 하니까 그때까지는 간단히 토킹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죠. 잠시 저희 식구들이 장비를 세팅하는 사이에 여기가 어딘지 간단히 이야기 나눌까요?”
수아도령은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굉장히 능숙했다.
“조금 있다가 말씀드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괜히 시청자 분들이 여기 찾아오시면 복잡해지니.”
“음. 그래요,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