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 호장리 수영장 (2)
현재 시청자 수 4722명.
이제는 방송을 켜고 조금 지나면 금세 1000명 정도는 넘을 수 있었다.
물론 방송을 진행하며 비슷한 상황이 계속 연출이 되면 시청자 수가 빠르게 감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현수는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두며 샤워실 앞에 섰다.
“일단 남자 샤워실부터 들어가 볼게요. 아까 귀신 보였던 창문이 남자 쪽이었던 것 같아요.”
현수는 빨간색으로 쓰인 WOMEN과 MAN을 가리키며 말했다.
태환은 시청자들이 잘 볼 수 있도록 거미줄과 먼지가 가득한 팻말에 손전등을 비춰주었다.
“그리고- 보면 EMF 탐지기도 남자 샤워실 쪽 방향에서 더 강하게 잡히고 있어요.”
현수는 EMF 탐지기가 카메라에 보이도록 들고 팻말을 가리켰다.
여자 샤워실 앞쪽에서는 LED 불빛이 1개 정도까지 올라가는 반면에 남자 샤워실 앞에서는 3개까지 올라가고 있었다.
- 와 저거 진짜 신기해.
- 우리가 귀신 본 창문이 남자 샤워실 쪽임????
- 네. 남자 샤워실 쪽이래요.
- 저거 진짜 효과 있는 거 같아.
- 나 저거 사봤는데 내 방 키보드 위에서 저거 불 올라와서 개깜놀함.
- 전자기파를 감지하는 거라 전자제품 앞에서 불 켜지기도 해요.
현수는 열려 있는 샤워실 쪽으로 살짝 몸을 밀어 넣었다.
이어 태환과 강한 손전등 불빛이 샤워실 전체를 가득 채웠다.
현수는 수아도령이 이 샤워실을 들어왔던 장면을 떠올려 보았다.
“바로 이곳에서 영적 기운이 느껴지고 있어요. 강한 한은 아니지만-”
수아도령이 샤워실을 가로질러 걸어가며 주변을 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쾅’하는 소리와 함께 샤워실이 닫혔다.
“어어!”
카메라맨이 놀라 화면이 흔들렸지만 수아도령은 초연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 바람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정도 영적 능력을 가진 귀신은 저렇게 사물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아, 네, 네.”
수아도령의 말에 카메라맨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샤워실을 꼼꼼히 보았다.
꽤 높은 천장과 창문의 위치.
아까 보였던 그 이목구비는 귀신이 분명했다.
그리고 형체가 제법 또렷했던 것으로 보아선 수아도령이 말했던 것보다 한이 강한 귀신인 듯했다.
쾅-
그때 문이 세게 닫혔다.
현수와 태환이 일제히 출입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씨! 깜짝이야!”
태환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 깜짝이야.
- 헐 ㅅㅂ
- 개놀랐네.
시청자들 역시 꽤 놀랐는지 수십 개의 채팅이 연달아 올라왔다.
끼이이익-
그때 다시 문이 열렸다.
쾅-
그러더니 또 세게 문이 닫혔다.
끼이이익-
다시 문이 열렸다.
쾅-
세게 문이 닫혔다.
이런 움직임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굉장히 규칙적이면서 일정한 강도였다.
- 뭐야 저것도 ㅈㄴ 무섭네.
- ㅠㅠㅠㅠㅠㅠㅠ
- 뭐야. 무슨 일이야?????
- 100000원 파워챗
- 사랑합니다 캡틴님.
- 아 뭐야무어야뭐야뭐야
- 1000원 파워챗
- 뭐 안 보이는 것 같은데.
그때, 하얀 연기가 들더니 문 쪽에 사람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귀신이었다.
백발의 노인으로 보이는 귀신은 현수와 태환을 똑바로 응시한 채 문을 세게 닫았다 열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현수는 심령카메라로 비춰보았다.
“저기, 저기, 문 쪽에 귀신이 있거든요?”
심령카메라로도 문 쪽의 하얀 형체가 찍혔다.
- 사람인가????
- 그냥 하얀 덩어리 같은데.
- 뭐야 뭔데 저기서 문을 막 저래??????
- 아 무서워.
- 뭐가 무서워. 근데 오늘은 엄마랑 자야겠다.
현수는 요란하게 들리는 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저렇게 사물을 만질 수 있는 수준이라면 상당히 강한 원한의 귀신이라는 의미였다.
“혀, 형님. 형님.”
그때 태환이 세면대 쪽으로 다가가며 현수를 불렀다.
“왜?”
현수가 뒷걸음질 치다 세면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콰앙 콰앙-
그러는 사이에도 문소리는 계속 나고 있었다.
“X발. 이, 이거 뭐예요?”
태환이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세면대에 손전등을 비췄다.
“X발.”
현수도 욕을 흘렸다.
뿌옇게 바랜 거울과 갈색으로 변한 세면대. 녹슨 수도꼭지.
정체모를 끈적이는 액체가 수도꼭지에서부터 세면대까지 가득 들어차 있었다.
- 저게 뭐예요????
- 기름인가???
- 피 아니에요????
- 피 색깔은 아닌 것 같은데.
- 뭐임????
- 만지지마요!!!
- 1000원 파워챗
- 만지지 마세요.
- 왠지 토할 거 같이 생겼어.
그 액체에서는 심지어 심한 악취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수도에 하수가 고여서 썩은 것 같은데요.”
“으.”
현수와 태환이 뒤로 물러서며 미간을 찌푸렸다.
끼이이잉-
그때 요란하게 울리던 문소리가 멎었다.
“아까 창문에서 보았던 귀신이 지금 문을 잡고 있던 귀신이었어요?”
“모르겠어. 창문 귀신은 눈코입만 봤지 자세히 보질 못해서.”
현수가 고개를 들어 높이 걸린 창문을 보았다.
그러자 더욱 소름끼치는 것이 보였다.
아까 보았던 그 귀신의 이목구비가 이번에는 샤워실 밖에서,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 아 소오오오름
- 저거 뭐야.
심령카메라를 본 시청자들이 흥분해 채팅을 올렸다.
현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안 되겠다. 일단 나가자.”
현수의 말에 태환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출구 쪽으로 향했다.
쾅!
순간 문이 다시 닫혔다.
“뭐야!”
태환이 달려가 몸으로 문을 밀어보았다.
하지만 밖에서 잠긴 것처럼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형님. 문이 안 열리는데요.”
태환이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문을 부술 것을 찾는 모양이었다.
푸쉿-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 수도꼭지를 돌린 것처럼 샤워실에 있는 모든 샤워기에서 검은 액체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지독한 악취가 순식간에 샤워실을 휘감았다.
“우욱!”
현수와 태환이 코와 입을 틀어막고 주변을 보았다.
푸쉿 푸쉿
찔꺽 찔꺽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찐득한 액체는 바닥으로 쭈욱 떨어져 눌러 붙었다.
“혀, 형님! 이거! 이거!”
현수가 놀라있는 사이, 태환이 샤워실 출구 옆쪽에 있던 커다란 선풍기를 들었다.
크기로 봐서는 샤워를 한 사람들의 몸을 대충 말려주는 용도로 쓰던 듯했다.
“끝 잡아.”
현수와 태환이 커다란 선풍기를 마치 충차처럼 들고는 문을 강하게 밀어치기 시작했다.
콰앙 콰앙 콰앙-
푸쉿
치지지지직-
껄떡 껄떡
꿀렁 꿀렁
뒤에서는 점도 높은 액체가 마구 쏟아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그만큼 악취도 머리가 아플 정도로 빠르게 차올랐다.
콰아앙-
이어 큰 소리와 함께 문이 부서졌다.
현수와 태환은 밖으로 뛰어나가며 바로 숨을 몰아쉬었다.
“아. 이제 좀 살 것 같다.”
현수와 태환이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방금 뭐였어요?”
“모르겠어.”
현수는 샤워실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 방금 샤워실에서 뭐가 나온 거예요??????
- 녹물?????
- 수도가 작동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녹물이 저렇게 나오나? 무슨 타르 덩어리처럼????
- 냄새 심했어요????
“네. 냄새가 엄청 심했어요. 여름철 하수구 냄새 같은.”
현수가 채팅을 보고 대답했다.
“여기까지 냄새가 따라 나오는 것 같아요.”
태환도 한 마디 거들었다.
“아까 창밖에서 우릴 보던 귀신은 안 보이네요. 대체 무슨 영문인지.”
현수는 샤워실 밖에서 창문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 100000원 파워챗
- 다시 들어가 봅시다.
그때 10만 원짜리 후원이 들어왔다.
순간 현수는 잠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반드시 내부를 확인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상황에서 굳이 다시 들어가지 않았었다.
무엇보다 물리력을 행사하는 귀신이 저 안에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꺼림칙했다.
하지만 10만 원이나 후원을 했다면 다시 들어가는 액션을 보일 필요가 있었다.
현수는 태환을 보며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알겠습니다. 다시 들어가 볼게요. 태환아. 넌 뒤에서 조명 비춰라.”
현수가 샤워실 출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시 들어가신다고요? 위험할 것 같은데?”
“네가 뒤에서 엄호해. 여차하면 바로 도망가게. 문은 부서졌으니까 괜찮을 거야.”
현수가 앞장서서 걸으며 말했다.
태환은 찝찝한 표정으로 현수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다시 샤워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현수와 태환을 비롯한 시청자 모두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샤워실에는 그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샤워기에서 검고 끈적이는 액체가 떨어지기는커녕 바닥에 흔적조차 없었다.
마치 현수와 태환, 그리고 시청자들 모두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샤워실은 처음 들어왔을 때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뭐 잘못 본 거 아니죠?”
태환이 현수의 뒤에서 나지막이 말했다.
“잘못 봤을 수도 있지. 우리 모두가.”
현수는 소름이 끼치는 느낌을 고스란히 받으며 중얼거렸다.
- 뭐야 왜 깨끗해.
- 분명 샤워기에서 뭐 떨어지는 거 봤는데!!!!!!
- 맞아요. 뭐 떨어졌어요.
- 우리도 다 봤음.
- 봤으니까 녹물이냐 아니냐 그런 소리를 했었지.
- 지금 뭐야, 뭐야.
- 이건 도저히 조작이 불가능한 것 같은데. 그 짧은 사이에 청소를 할 수 있을 리도 없고.
- 말도 안 돼. 진짜 말도 안 돼.
- 미쳤다.
- 이건 조작이 아니네요.
- 조작일 수가 없음. 시간이나 상황상.
- 이 채널 진짜 레알로다가 미쳤다.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엄청나게 뜨겁게 달아올랐다.
현수와 태환 역시 멍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 1000원 파워챗
- 다음 장소로 이동합시다.
- 무서워요. 후딱 넘어갑시다.
- 이동 이동 이동
- 진짜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임??????
- 이야 진짜 다른 채널에서 여기 체험한 것보다 여기가 훨씬 재밌다. 비교 불가네.
- 다른 스트리머가 여기 방문한 것보다 더 존잼임. 딴 거 볼 필요도 없다.
- 이런 현상이 말이나 되는 건가????
- 보고도 안 믿김.
시청자들의 반응은 한참 동안 뜨겁게 달아올랐다.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현수는 태환의 팔을 툭 치고는 돌아서 샤워실 밖으로 나왔다.
태환이 부랴부랴 쫓아 나왔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아직 들러볼 곳이 많아.”
현수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여자 샤워실 쪽으로 EMF 탐지기를 다시 대보았다.
이쪽은 여전히 아무 신호도 잡히지 않는 것은 물론, 한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어 보였다.
“샤워실 옆으로 화장실이 있는데요. 화장실도 한 번 들러보겠습니다.”
샤워실과 바로 붙어 있는 화장실 역시 남녀로 나뉘어 있었다.
아무래도 방금 샤워실에서의 경험 때문에 찝찝했지만 온 이상 그냥 지나갈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수아도령 역시 이곳을 들렀던 만큼 현수도 이곳을 촬영해야만 했다.
화장실 안쪽은 샤워실보다 더 악취가 심했다.
대소변으로 인한 악취라기보다는 무언가 썩는 것 같은 비릿한 냄새가 올라왔다.
현수와 태환은 화장실 칸막이 쪽으로 불빛을 비춰보았다.
“EMF 탐지기가 다섯 개 풀로 찼어요. 오싹한 기운이 가득하고요. 이곳도 샤워실처럼 귀신이 있는 것 같아요.”
현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주변을 보았다.
하지만 현수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푸세식으로 된 칸막이 안에서 ‘달각’하는 소리가 들렸다.
현수와 태환 모두 그쪽으로 시선이 집중 되었다.
달각-
그때 한 번 더 소리가 들렸다.
현수와 태환이 서로 눈을 마주친 뒤 조심스럽게 푸세식 구멍 안으로 불빛을 비춰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