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도래진 초등학교 (8)
“형님?”
태환이 현수를 부르는 순간 악귀가 대뜸 달려들었다.
“큭!”
귀신을 보는 현수는 곧바로 피했다.
하지만 귀신을 보지 못하는 태환은 어리둥절한 사이 그대로 악귀에 쓰이고 말았다.
현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태환을 돌아보았다.
태환은 두 팔을 축 늘어뜨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현수의 눈에는 태환의 등과 어깨, 머리 위로 회색 연기가 피어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임????
- 뭔 상황????
- 오!! 시청자 2500명 돌파 축하!!!
- 태화니 지금 이상해짐.
시청자들이 요란하게 채팅을 올렸다.
태환이 들고 있던 손전등도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현수는 핸드폰 손전등을 켜고 심령카메라로 태환을 비춰보았다.
심령카메라로도 태환의 주위에 감도는 회색 아우라를 확인할 수 있었다.
- 지금 뭐임???????????
- [빙의 된 거야???????]
- 암구호! 암구호!!
- 암구호 대봐요.
- [10000원 파워챗]
- 암구호!!!!!
현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물었다.
“이태환. 수원. 수원.”
문어를 댔지만 태환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 실시간으로 귀신 된 거임?????
- 이거 무슨 상황이야????
- ??????헐?????
- 야!!!! 태환아!!!!
시청자들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태환아. 수원이라고! 수원.”
현수가 다시 다그치듯 말했다.
그러자 태환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흰자 없는 검은 눈에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턱.
빙의된 것이 분명했다.
“크아아악!”
태환이 갑자기 방망이를 치켜들고 현수에게 덤벼들었다.
“큭!”
현수는 곧장 어깨로 태환을 확 밀친 후 방송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우당탕-
방송실 안에서 태환이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현수는 그 소리를 무시하고 일단 방송실에서 벗어날 생각부터 했다.
쿠당탕 쿵탕-
이어 태환이 방송실로 나오더니 매섭게 쫓아오기 시작했다.
- 추격전이다.
- 태환이 빙의됐어????
- 귀신한테 쓰임.
- 암구호는????
- 못 알아들음.
- ㅅㅂ
- 방망이 들고 쫓아오고 있엌ㅋㅋㅋㅋㅋㅋㅋ
- 어차피 다 조작인데 뭐가 위험해.
- 겁내 죽어라 도망치는데???????
현수는 채팅을 보지도 못한 채 도망치며 복도에 쌓여 있던 의자와 책상을 엎었다.
우당탕탕탕-
요란한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옆을 보자 지나가는 교실마다 귀신이 서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서서 심령카메라로 비춰 보여줄 틈이 없었다.
악귀에 쓰인 태환이 의자와 책상을 옆으로 던지며 쫓아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챙그랑-
챙강-
의자와 책상이 창문을 깨고 밖으로 나갔다.
지금은 창문이 깨지고 있는 것이었다.
- 지금 유리 깨지는 소리 들린 거????
-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돼.
- 아까 태환군이 방망이로 깨려고 했을 땐 안 깨졌는데 지금은 깨지는 거. 조작이라면 장치 설치를 다 못하거나 태환군 연기가 과한 상태인 걸 거고 진짜라면- 악귀가 둘을 못 나가게 붙잡고 있던 걸 거고.
- 무슨 악귀임??? 저기 대체 뭐임????
시청자들도 이 상황을 궁금해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안 되기는 현수도 마찬가지였다.
쿠당탕
현수와 태환에게서 번갈아가며 요란한 소리가 나왔다.
그렇게 2층 좌측 복도 끝까지 달린 현수는 바로 코너를 짚고 계단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그러다 문득, 뒤에서 쫓아오는 태환의 발자국 소리가 멎었다는 걸 깨달았다.
“후. 아 X발.”
현수는 자신도 모르게 욕을 중얼거리며 좌측 현관 쪽 계단 1층에 기대고 서서 숨을 몰아쉬었다.
태환이 걱정되었지만 지금 확실히 제 정신은 아닌 듯했다.
- 태환이 찾아야 할 거 같은데.
- [1000원 파워챗]
- 태환이 채팅 보고 있니.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 친구 지금 2층 어디 구석에 앉아서 이거 생방 보고 있을 걸?????? 시청자들이 속나 안 속낰ㅋㅋㅋㅋㅋ
- ㄹㅇㅋㅋ
- 들어와서 주작이라고 분탕질 할 거면 그냥 보지 말고 나가세요. 왜 재밌게 보는 사람들까지 김새게 만듦???
- 스트리머들 주작으로 돈 버는 꼬라지 너무 뵈기 싫음.
이 와중에도 조작 논란이 계속 됐다.
태환까지 악귀에 쓰인 마당에 조작 논란까지 이어지니 현수는 불쑥 화가 솟구쳐 올랐다.
“진짜 조작 아니고요. 아까 방송실에서 본 귀신은 지금까지 보인 귀신하고 다른 귀신이긴 했어요. ‘악귀’가 찍힌 거 같은데.”
현수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를 보며 작게 말을 이었다.
“태환이 집안에 무당 분도 있으시고 하니까 빙의가 잘 되는 거 같아요. 저도 빙의 안 믿었는데 저러는 거 보니까 무섭네요.”
현수는 스마트폰 손전등으로 위를 비춰보았다.
발자국 소리는커녕, 태환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 다시 올라가 봅시다.
- 다시 올라가 봐요. 태환이 찾아야지.
현수는 채팅창을 확인하며 다시 위로 올라가는 계단 위에 발을 올렸다.
그때, 슈베르트의 자장가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스피커가 아닌, 피아노 연주 소리였다.
“음악실에서 나는 것 같은데.”
아까 들어갔던 음악실이 바로 앞에 있었다.
학교의 1층과 2층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음악실로 온 것이었다.
- 나 이제 저 자장가 들으면 소름끼칠 것 같음.
- 소오오오오름 이상하게 자장가가 공포 연출에 많이 쓰이네.
- 맞음. 신기함. 아기 귀신이 무서워서 그런가???
현수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음악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일단 이곳부터 가보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었다.
끼이익-
다시 음악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다.
아까보다 더 어지럽혀진 공간.
깨진 액자들이 바닥 곳곳에 널려 있었다.
그리고 피가 흐르던 피아노는 처음 볼 때처럼 먼지만 쌓여 있었다.
피가 흘렀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 저거 아까 피 흘린 피아노 아님??????
- 이거 주작하고 있는 거면 스태프가 몇 명이 있는 거임.
- 주작 논란 이제 그만.
- 주작이든 아니든 ㅅㅂ ㅈㄴ 무섭다.
시청자들의 채팅은 점점 더 빠르게 올라왔다.
“캡처님들. 아까 이곳에서 굉장히 강한 귀신을 봤잖아요. 한이 강한 귀신. 지금 굉장히 추운 게 아직도 있는 것 같긴 해요. 제 눈에 보이진 않는데.”
현수는 심령카메라와 EMF 탐지기로 음악실을 다시 탐지해 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쿵!
음악실 앞문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현수가 휙 몸을 돌리자, 방망이와 손전등을 든 태환이 앞문에 서있는 것이 보였다.
“오우야.”
태환의 몸에서는 여전히 회색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태환은 굉장히 위협적인 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에라이 모르겠다!”
현수는 힙색에 있던 팥을 한 줌 쥐어 확 흩뿌렸다.
사아아아아아-
그러자 현수의 눈으로 회색 연기가 걷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건 심령카메라로도 정확히 포착되었다.
- 방금 뭐 뿌린 거임?????
- 와!!!! ㅈㄴ 신기해!!!!!
시청자들은 흥분한 듯 채팅을 썼다.
“어?”
태환이 놀란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야. 이태환. 수원. 수원.”
“네? 예, 예성이요.”
태환의 대답을 듣자마자 현수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휴우우우- 아오.”
갑자기 긴장이 풀린 듯 현수가 벽에 기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저 왜 여기 있어요? 아까 분명 방송실이었는데.”
“아무것도 기억 안 나?”
“에?”
태환은 정말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 ......ㅅㅂ
- 야 이거 지금 무슨 상황이에요????
- 이게 다 연기라고? 연기라고??
- 와 진짜 털이 다 곤두선다.
- 무서워 뒤지겠네.
현수와 태환은 말없이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캡처님들. 일단 태환이가 돌아오긴 한 것 같아요. 어어-”
현수는 음악실을 둘러보다 말을 이었다.
“지금 보통 상황이 아닌 것 같긴 하거든요? 정말 위험하기도 했었고요. 저도 태환이도.”
현수가 멘트를 잇는 동안에도 태환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팥’이 효과가 있다는 게 다시 입증이 됐다고 보면 될 것 같고요.”
- [10000원 파워챗]
- 거기서 나가세요.
- [4200원 파워챗]
- 방송도 방송이지만 너무 위험해 보임. 만약 진짜면 큰일 날 뻔한 거.
- 진짜 아니라니깤ㅋㅋㅋㅋㅋ
채팅창은 이 학교를 더 둘러봤으면 좋겠다는 의견과 일단 나가라는 의견으로 대립해 있었다.
그리고 시청자 수도 2500명까지 올랐다가 2000명으로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아무래도 비슷한 장면이 계속 보이고 있는 것 때문에 시청자들이 떨어져 나간 모양이었다.
“일단 탈출을 목적으로 움직일게요.”
현수는 태환을 보며 말했다.
위험도 위험이지만 방송 내용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오늘 들은 말 중 제일 반갑네요.”
태환은 씩 웃더니 바로 음악실 창문으로 향했다.
손전등을 비추자 창문 밖으로 어두컴컴한 산과 운동장이 보였다.
그때 현수의 눈에는 창문에 비친 귀신의 모습이 보였다.
어린 여자 아이의 귀신이었다.
“태, 태환아!”
현수가 외치는 순간, 여자 아이 귀신의 뒤로 아까 보았던 그 악귀가 나타났다.
“이런 X발!”
현수가 태환의 팔을 확 잡아당기면서 몸을 틀었다.
동시에 창문 속 여자 귀신이 비명을 지르듯 입을 크게 벌렸다.
파창-
귀신이 비치던 창문이 갑자기 깨지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현수는 눈을 크게 뜨고 이 광경을 지켜보다 태환과 함께 창문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잡초가 무성한 운동장까지 쉬지 않고 내달렸다.
“헉. 헉. 헉. 헉.”
현수는 숨을 몰아쉬며 학교를 보았다.
“와. 방금 뭐였어요?”
태환도 심호흡을 하며 물었다.
- 방금 창문에 하얀 거 뭐 있었는데.
- 창문에 귀신 비췄음. 그러고 갑자기 깨짐.
- 창문에 귀신 있었어요.
- 귀신이 창문 깼나.
- 악귀가 못 나가게 막고 다른 귀신이 나가게 도와준 거 아니야???
- 저기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임?
- [100000원 파워챗]
- 완전 재밌게 봤어요!!!!!
- [5000원 파워챗]
- 이번 건 후기방송 진짜 기대된다.
- 태환군 괜찮니???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본 듯했다.
중요한 건 현수의 심장이 아직도 터질 것 같다는 점.
현수는 가슴이 아픈지 꾹꾹 지압을 하며 채팅창을 확인했다.
“파워챗 후원 감사합니다. 일일이 불러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현수가 지금까지 들어온 파워챗 후원금을 확인하며 말했다.
오늘 생방송 중에만 200만 원이 넘는 금액이 들어와 있었다.
이 중 30%를 너튜브에서 가져간다고 하니 130만 원에서 140만 원 정도 수익이 생긴 것이었다.
수익이 생겼다는 건 기쁜 일이었지만 수명은 줄어든 기분이기도 했다.
- 오늘은 퇴마 실패인가????
- 귀신 정체도 못 밝힌 듯??
- ㅈㄴ 역대급으로 재밌게 보긴 했는데 퇴마는 실패로 봐야 할 듯.
- 방송 보면서 도래진 초등학교에 대해 계속 검색했는데 뭐가 안 나옴. 교육청 홈페이지에서 뭐 두 개 검색되는 데 별거 아니고.
퇴마를 하거나 귀신 정체를 밝힐 때 나름대로 시청자들의 역할도 한 몫 해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청자들도 도래진 초등학교 귀신에 대해서는 제대로 찾아내지 못한 듯했다.
“오늘 저기 다시 들어가는 건 많이 위험한 것 같아요. 오늘은 철수하고 내일 후기방송으로 찾아뵐게요.”
현수의 말에 시청자들 중 몇 명이 반박을 했다.
- 다시 들어가서 퇴마 ㄱㄱㄱ
- 아쉬운데 한 번 더 가죠!!
- 밤은 길다!!!!
채팅을 보던 현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도 오늘 보고 들은 것에 대해서 조금 인터넷 조사를 해봐야 할 것 같기도 하고요.”
- 들어가서 위자보드 해본다며!
- 위자보드라도 ㄱㄱㄱㄱ
시청자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현수는 태환에게 돌아가자는 손짓을 했다.
“태환이가 악귀에 쓰였던 것 다 확인 하셨죠? 악귀를 불러내 대화를 시도하는 건 정말 위험할 것 같으니 일단 보류하고 철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