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 도래진 초등학교 (4)
- 숙직실 가봅시다.
- 보통 1층 중앙현관 쪽에 숙직실 있지 않음?
- 숙직실 ㄱㄱㄱㄱㄱ
채팅창을 본 태환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 와중에 숙직실을 들어가라고요?”
태환의 말에 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 도망칠 거 아니면 어디든 가긴 가야지, 뭘.”
- [회원 가입 기간 : 3개월] 차비 지원
- 항상 감사드립니다!
- [5000원 파워챗]
- 조금만 힘내세요!!
- [회원 가입 기간 : 12개월] 장비 지원
- 포기하지 마세요!
방금 있었던 공포스러운 상황 때문인지 파워챗과 멤버십 가입이 줄을 이었다.
태환은 완전히 겁에 질린 표정이었지만 현수는 여기서 물러날 수 없었다.
“넌 정 무서우면 학교 밖에 있든가.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도 되고.”
현수의 말에 태환은 방금 들어온 유리문을 빤히 보았다.
지금 이곳을 나가 밖에 혼자 있는 것이 더 미친 짓인 것 같았다.
- 나 같으면 혼자 안 있음.
- ㅋㅋㅋㅋㅋㅋㅋㅋ우리 태화니 어캄????
- 캡틴님 쟤 울 거 같아욬ㅋㅋㅋㅋ
태환은 고민이 되는 듯 바깥과 현수를 번갈아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수, 숙직실 가보죠.”
그의 대답을 듣자마자 현수는 조명을 비추라는 손짓을 했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차분하게 가자.”
현수의 말에 태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 저 친구는 뭐 있음????
- 캡틴님은 귀신을 볼 수 있고 태환님은 귀신한테 직접 잡힘.
- 태화니는 귀신이 붙잡을 수 있음.
- 귀신을 붙잡을 수 있는 게 아니라 귀신이 붙잡을 수 있다고??ㅋㅋㅋㅋㅋㅋ
- [20000원 파워챗]
- 태화니 군대 가기 전에 불고기 사먹으렴.
채팅이 올라오는 사이, 둘은 나무로 된 숙직실 앞에 섰다.
현수가 천천히 문을 열자 태환이 손전등으로 안을 비추었다.
오래된 텔레비전과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이불.
벽에 걸린 모자와 유니폼.
경광봉과 호루라기.
서류철.
정리가 안 된 숙직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구석에 오래된 컵라면 용기들이 쌓여 있었다.
“정리를 했을 법도 한데, 컵라면 용기는 뭐죠?”
태환이 물었다.
“아무래도 노숙자가 잠시 머물렀던 것 같기도 한데.”
현수가 컵라면 용기와 함께 버려져 있는 쓰레기들의 유통기한을 확인해보며 말했다.
- 노숙자가 있다니까 더 무서운데????
- 근까지는 흔적이 없는 거 아님??
시청자들도 궁금한 반응들을 올렸다.
그러던 중, 현수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숙직실 구석에 피 묻은 방망이가 놓여 있는 것이었다.
현수와 태환은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 EMF 탐지기 켜 봐요.
- 여기서 고스트사운드 켜 봐도 될 듯???
채팅을 본 현수가 EMF 탐지기로 방망이를 가리켜 보았다.
그러자 LED가 5개 모두 깜빡였다.
“여기서 노숙했던 사람. 혹시 막 연쇄살인범, 그런 사람 아니에요?”
태환이 찝찝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설마. 그러려고.”
현수는 방망이를 빤히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 위자보드로 물어봐요.
- 여기 있는 귀신들한테 물어보면 되잖음.
채팅에서는 가져온 장비들을 모두 쓰기를 바라는 모양이었다.
쿠르릉-
그때 복도 밖에서 무언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 초긴장.
- [1000원 파워챗]
- 쫄깃쫄깃쫄깃
- 무섭다.
현수가 숙직실 밖으로 몸을 돌리는 사이, 태환은 구석에 놓여 있던 방망이를 들었다.
“그건 뭐하러?”
“혹시 모르잖아요.”
태환과 현수가 대화를 나누었다.
뚜벅뚜벅
밖으로 나오자 어두운 복도에 발걸음 소리가 메아리쳤다.
“숙직실 바로 옆으로 바로 과학실하고 컴퓨터실이 있네요. 저쪽에 교무실도 있고.”
둘은 속삭이듯 이야기를 하며 천천히 과학실 앞으로 가보았다.
“조명.”
현수의 주문에 태환이 손전등을 비추었다.
과학실 바닥에 소주병들이 나뒹구는 것이 보였다.
“여기서 술도 먹었었나 봐요. 확실히 폐교된 이후에 여기서 누군가 지냈던 것 같아요.”
- 와. 저기서 술 먹는 것도 진짜 어지간한 깡다구다.
- 조심하세요. 저런 데서 지내는 노숙자도 제 정신은 아님.
- 어차피 다 구라인데 그냥 소리쳐서 불러요.
현수와 태환은 과학실 안으로 천천히 들어가 보았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병 하나가 을씨년스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방금 숙직실에 들어갔을 때 들렸던 소리가 바로 이 소리인 모양이었다.
“아까 마이크에 잡혔나? 우리 숙직실에 들어갔을 때 났던 소리요. 이 소리인 것 같아요.”
“이 병이 쓰러질 만큼 바람이 세게 불었던 것 같지는 않은데요.”
현수와 태환이 대화를 나누며 EMF 탐지기를 들어 여기저기를 탐지해 보았다.
“어? 형님. 이거.”
태환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종이를 가리켰다.
10년쯤 되어 보이는 카드 영수증이었다.
“여기 기운이 너무 안 좋아요. 계속 소름이 끼치는 게 영 찝찝한데.”
태환이 소름 돋는 듯 팔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어디는 기운이 좋았니.”
현수는 천천히 몸을 돌리면서 과학실을 전체를 비춰보았다.
옥색으로 된 스테인리스 찬장과 해골 인체 모형.
완전히 변질되어 버린 에탄올 속 개구리 시신들.
“옛날부터 과학실은 진짜 무서웠던 것 같아요.”
태환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옛날부터 이상하게 과학실하고 음악실에 괴담이 많긴 했어.”
현수도 태환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다음 교실로 이동하기 위해 뒷문으로 향했다.
* * *
교무실과 교실 몇 개를 지나는 동안 구독자는 1400명을 넘기고 있었다.
뿐만아니라 시청자 수도 500명을 훌쩍 넘고 있었다.
귀신이 나타나지 않고 EMF 탐지기만 작동하며 하나씩 건너가는 사이, 인기 급상승 동영상에 등록이 되며 동시 시청자 수가 풀쩍 뛰어오른 것이었다.
숫자를 본 현수는 짐짓 당황했지만,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복도를 가로질러 걸었다.
“파워챗 후원 감사드립니다. 멤버십 가입도 감사드려요. 지금 현장인 만큼 리액션은 자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릴게요.”
- 시그니처 리액션 있음?
- 캡틴님 그런 거 없긴 함.
- 그냥 이거 보고 있으면 후원하고 싶은 마음이 듦.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1000원 파워챗
- 옛다 받아라.
- 오 시청자 500명 ㅊㅋㅊㅋ
시청자 수가 올라가는 만큼 구독자 수도 눈에 띄게 올라가고 있었다.
1400명을 넘은지 얼마 안 돼 바로 1500명을 기록한 것이었다.
현수는 채팅창을 확인하다 걸음을 멈추었다.
복도 끝에서 보였던 여자 귀신이 처음에 서있던 바로 그 자리였다.
그리고 그 자리는 공교롭게도 음악실 앞이었다.
“아. 아까 말하던 그 음악실이네요.”
태환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음악실]
나무로 된 문 위에는 초록색 현판이 작게 걸려 있었다.
손전등 불빛에 비춘 현판은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음악실 같은데 귀신이 잘 붙는 이유가 뭐야? 네가 생각할 때.”
현수가 물었다.
- 레알 궁금
- 나도 중학교 때 음악실 귀신 소문 있었음.
- 진짜 왜 그럼??????
- 태환이란 분이 그런 걸 알아요? 무당인가??
시청자 중 몇 명이 태환의 상황을 궁금해 했다.
“말해도 되나?”
현수가 태환을 보며 묻자 태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는 태환 군 증조모님이 무당이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약간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답니다.”
현수의 말에 시청자들이 수긍하는 분위기를 내비쳤다.
- 아아아아.
- 그럼 그렇지. 데리고 다니는 이유가 있지.
- 그냥 추억 쌓기가 아니라 조력자 개념이었네.
- 자문 역할을 해주는 건갘ㅋㅋㅋㅋㅋ
- 요새 무당들 사이비 얼마나 많은데. 터미널 무당들. 뭐 그런 거 아님?
- 증조할머니라는데 패드립은 치지 맙시다.
- 패드립이 아니라 물어보는 거 아님. ㅅㅂ 뭐만 하면 패드립이래.
일부 시청자들끼리는 약간의 감정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싸우지들 마시고요.”
현수가 말하는 사이, 태환이 대답했다.
“‘학교’라는 공간이 귀신들이 모이기에 좋은 기운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음악실 같은 경우에는 음. 귀신들이 ‘소리’에 예민하다고 해요. 가령 예를 들어서 무당들이 쓰는 ‘방울’ 있잖아요. 그것도 귀신들이 그 소리를 좋아해서 쓰는 거라고 하거든요.”
- 아아아아아 소리.
- 하기야 피아노 소리나 리코더 소리 밤에 들으면 귀신 부르는 소리 같긴 함.
- 핵무섭지.
- 탬버린은 안 무서운데.
-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 탬버린ㅋㅋㅋㅋㅋ
- 생각 바꿔봐. 탬버린이 ㅈㄴ빨리 막 울리고 있다고 생각해봐 아무도 없는 방에서. 그것도 쌉소름임.
- 캐스터네츠도 무섭겠다.
- ㅋㅋㅋㅋㅋㅋ캐스터네츠. 뭔가 올만에 들어보는 발음이야.
시청자들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서로 떠들고 있었다.
하지만 현수와 태환은 초긴장한 상태에서 음악실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후. 문 연다.”
현수가 미닫이로 된 음악실 문을 열자 태환의 조명이 주변을 환하게 비췄다.
한쪽에 놓인 피아노와 벽에 걸려 있는 소고.
그리고 가방 안에 들어가 있는 리코더와 탬버린들.
바닥에는 무척 오랜만에 보는 멜로디언도 굴러다니고 있었다.
“와. 여기 진짜 무섭네요.”
태환이 음악실 곳곳을 손전등으로 가리켰다.
벽에는 각 시대의 음악가들 초상화가 액자에 잠겨 걸려 있었다.
교과서에서 흔히 보았던 그림들이었지만 이런 환경에서 이런 조명으로 보니 한층 더 무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나중에 형님은 ‘귀신의 집’ 같은 거 디자인 하셔도 잘 되실 거 같아요. 이런 거 하도 많이 봐서.”
태환이 액자 속 음악가들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내가 너라면 액자 속에 사람 얼굴 있는 건 자세히 안 볼 거다.”
현수가 피아노와 바닥의 집기들을 확인해보며 말했다.
“누구 초상화도 아니고 교과서로 봤던 사람들 얼굴이잖아요. 여기에 뭐 쇼팽 귀신, 베토벤 귀신이 있겠어요?”
태환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정말 남들보다 필요 이상으로 긴장했다가 또 금방 풀어지는 것 같아, 쟤는.”
현수는 피식 웃으며 피아노를 확인해 보았다.
피아노에서 EMF 탐지기 반응이 최대로 작동했다.
“지금 보시면 피아노에서 강한 전자기파가 감지되는데요. 역시 제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거든요?”
현수는 피아노 건반을 꾹 눌러보았다.
그러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망가진 피아노인 것 같아요. 건반 어딜 눌러도 반응이 없네요.”
현수가 건반을 하나씩 눌러보는 와중에, 타건감이 뭔가 다른 건반이 있었다.
“어? 잠시만.”
현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피아노 건반을 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방금 누른 피아노 건반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으어!”
동시에 태환도 비명을 질렀다.
음악실 벽에 걸려 있던 음악가들의 초상화가 일제히 바닥에 떨어지며 액자 유리가 깨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와장창창
쿠당탕-
와장창-
챙강-
이어서 피아노에서도 갑자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연주가 아닌 굉장히 느린 템포로 연주 되는, 기괴한 음색의 ‘슈베르트의 자장가’였다.
“나가, 나가요! 나가!”
태환이 기겁을 하며 음악실 밖으로 도망쳤다.
“야, 야! 이태환!”
현수도 재빨리 장비를 들고 음악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슈베르트의 자장가는 계속해서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