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 도래진 초등학교 (2)
현재 시청자 수 120명.
방송을 시작한지 불과 5분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현수와 태환은 교문을 지나 운동장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 초등학교인가보다.
- 와!!!! 저 정글짐 진짜 올만이닼ㅋㅋㅋㅋㅋㅋ
- 정글짐ㅋㅋㅋㅋㅋㅋㅋㅋ 아재 인증
- 저기서 얼음땡 하면 개꿀잼임.
- ㅋㅋㅋㅋㅋㅋㅋㅋ정글짐 얼음땡ㅋㅋㅋㅋㅋ
교문 한 쪽 옆으로는 온갖 기구들이 쭉 세워져 있었다.
현수는 태환에게 그쪽으로 가자는 손짓을 하고는 천천히 다가갔다.
저벅 저벅 저벅
걸을 때마다 흙길 밟는 소리가 유난스레 크게 들렸다.
“조명 잘 비춰.”
현수가 태환에게 기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태환이 굉장히 밝은 고출력 손전등을 비췄다.
스마트폰 손전등보다 몇 배는 더 밝은 불빛이었다.
- 이야. 이제 장비빨 좀 생기네.
- 이제 좀 밝다.ㅋㅋㅋㅋㅋㅋㅋ
- 태화니 굳굳ㅋㅋㅋㅋㅋㅋ
- 현수님 카메라 앵글 진짜 다큐 같음.
- 점점 더 실감난다.
- 주작질.
- 주작주작주작주작주작주작주작주작주작주작주작주작주작주작주작주작주작주작주작주작
- [10000원 파워챗]
- 항상 감사드립니다!
채팅이 쉼 없이 올라오는 사이, 현수는 철봉 쪽에 무언가 스치듯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잠시만요. 지금 철봉 쪽에 뭔가 보였거든요?”
현수가 작게 속삭이며 태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자 태환이 철봉 쪽으로 손전등을 돌렸다.
동시에 현수의 심령카메라 역시 철봉 쪽을 비추었다.
-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 안 보여요.
- 날벌레들인가? 검은 점들 날아다니는 거??
- 그건 날벌레인 듯.
심령카메라로도 무언가 정확히 포착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현수는 천천히 주변으로 눈알을 굴리면서 철봉 쪽으로 다가갔다.
“주변시로 하얀 뭔가가 확 이 근처에 맴도는 게 보였거든요. 여기 이 위치.”
철봉을 비롯한 모든 기구들은 갈색으로 심하게 녹이 슬어 있었다.
만약 장갑 없이 기구를 이용했다가는 심하게 다칠 정도로 까슬한 상태였다.
“EMF 탐지기를 한 번 대볼게요.”
현수는 이 철봉에 귀신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분명 하얀 형체가 지나가긴 했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이곳에 없었다.
“탐지기로 보면, 지금 불빛이 세 개에서 네 개로 깜빡이죠. 어떤 전자기파 흐름이 여길 지나가고 있다는 의미거든요.”
현수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철봉을 슥 비췄다.
태환도 긴장된 표정으로 현수 옆에서 조명을 비췄다.
- 아
- 아!!!!!!
- 욎쪽왼쪽왼쪽왼쪽!!!!
- 왼쪽!!!!!
- 왼쪽!!!!!!!!!
갑자기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왔다.
“네? 왼쪽이요?”
현수가 놀라며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높이별로 늘어서 있는 철봉의 가장 왼쪽에는 성인 남성의 키보다 훌쩍 큰 철봉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치마를 입은 여자 귀신이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머리카락은 바닥으로 축 늘어져 있지만 치마와 옷은 중력을 거스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더욱 기괴하고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으악!”
태환이 뒤로 나자빠지면서 조명이 다른 곳을 비췄다.
동시에 현수의 카메라도 흔들리며 핸드폰 카메라를 비췄다.
“헉. 헉. 헉.”
현수의 스마트폰 손전등이 다시 철봉을 비췄지만 귀신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 방금 봤어요??????
- 와 이거 찐이야??? 진짜 찐이야???????
- 이거구나. 이거.
- [50000원 파워챗]
- 대박 장난 아닙니다.
- [1000원 파워챗]
- 심장 떨어지는 줄.
- 토요일 밤의 꿀잼!!!!!
현수는 숨을 몰아쉬며 채팅창을 확인했다.
“파, 파워챗 후원 감사드립니다. 어우. 잠시만요. 지금 심장이.”
현수는 쓰러져 있는 태환을 일으켜 세워주며 멘트를 이어갔다.
“이번엔 너도 본 거야?”
현수가 묻자 태환이 가슴을 움켜쥐며 현수 몸에 결속된 구형 스마트폰을 가리켰다.
“아니, 곁눈질로 이 심령카메라 확인하고 있는데 갑자기 뭔가 목이 확 졸리는 느낌이 들면서 절 밀치는 것 같았어요.”
태환은 목을 긁적이며 말했다.
“여러분. 방금 뭐였는지 심령카메라를 다시 좀 확인해볼게요.”
현수와 태환은 머리를 맞대고 구형 스마트폰의 심령카메라 앱 녹화 장면을 다시 확인해 보았다.
- 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이렇게 이 자리에서 바로 심령카메라 녹화본 확인하는 건 처음인 듯.
- 개 쫄린다 진짜.
- [100000원 파워챗]
- 귀신 보여주세요.
- 심령카메라 사진 보여주세요.
- 보고 싶어요. 심령카메라.
채팅창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현수와 태환은 조금 전, 철봉 쪽을 비췄던 장면을 천천히 돌려보았다.
“지금 여기서 내가 멘트를 치고. 여기서 저쪽으로 고개를 돌렸단 말이지.”
생방송 화면에서는 현수와 태환의 손가락과 심령카메라 앱 화면이 가득 차게 나오고 있었다.
“여기서 캡처님들이 왼쪽, 왼쪽 하는 소리를 듣고 내가 이쪽으로 몸을 돌렸을 때-”
현수의 멘트와 함께, 심령카메라에는 가장 왼쪽 편 높은 철봉과 하얀 형체가 촬영된 화면을 보여주었다.
불과 5m도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거리.
하얀 형체의 외곽선이 뚜렷하게 찍혀 있었다.
물론 보기에 따라 사람이 아닌 하얀 연기처럼 보이는 수준이었지만 귀신을 똑바로 봤던 현수는 귀신의 머리카락과 팔다리를 정확히 짚을 수 있었다.
“귀신이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는데요. 지금 이 부분이 손, 발이었거든요? 머리카락은 바닥으로 축 늘어져 있었고.”
- 주접 떨고 있네.
- 어디다 연기 피워놓고 괜히 쇼하는 거 아님?
- 저거 어두울 때 검은 바구니에 드라이아이스 담아놓고 피우면 저런 식으로 연출 가능함.
일부 시청자들의 조작 논란이 이어졌다.
“조작 아니에요. 진짜, 진짜로요.”
태환이 흥분한 듯 철봉으로 가서 공중에 팔을 휘휘 저었다.
“아유. 여기로 와. 혼자 있지 말고.”
현수가 알겠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철봉에 아무 장치가 없다는 걸 증명하려는 태환의 등 뒤로 아까 그 여자 귀신이 나타나 있었다.
“보세요! 무슨 드라이아이스 그릇이니 뭐니 없죠?”
허우적대는 태환을 향해 현수가 천천히 심령카메라를 들었다.
그 모습은 고스란히 생방송을 타고 송출되었다.
- 뒤 뒤뒤뒤뒤뒤
- 태환아 뒤 봐라 뒤
- 뒤!!!!!!!!!!
- 뒤뒤뒤!!!!
현수는 심령카메라 너머로, 태환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는 귀신을 보았다.
한참 몸을 휘젓던 태환이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움직임을 멈췄다.
현수와 심령카메라, 그리고 생방송용 카메라가 모두 자기를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아아아악
등골이 오싹해진 태환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저, 지금 뒤에 있죠?”
태환의 질문에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아아아아
새하얀 손이 태환의 등 뒤에서 어깨, 가슴까지 쓸어내렸다.
핏기 없는 하얀 손에 검은 손톱.
현수는 그런 귀신의 손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귀신을 보지는 못하지만 물리적으로 느낄 수 있는 태환 역시 그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으어어!”
태환이 몸에 벌레가 낀 것처럼 몸부림을 치면서 몸을 비틀었다.
그러자 심령카메라 속 귀신이 하얀 연기가 되어 사그라졌다.
- 쟤 웃기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무서운데 웃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꽁트 찍냨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채팅창에서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올라왔다.
“괜찮아?”
현수가 자신의 옆으로 온 태환의 몸을 살피며 물었다.
“아오. 뭐였어요?”
“철봉에 매달려 있던 귀신이 네 뒤에 있었어.”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EMF 탐지기로 태환의 몸을 훑어보았다.
그러자 LED 불빛 4개가 격렬하게 번쩍였다.
“아. 진짜 무서워 돌아가시겠네요.”
태환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래도 추억 핑계로 계속 나 쫓아다닌다고?”
“이 정도 매운맛은 되어야 추억이죠.”
태환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현수는 그런 태환을 보고 피식 미소를 짓고는 학교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일단 계속 안으로 들어가 볼게요.”
둘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사아아아아아-
하얀 아지랑이 같은 귀신들의 모습이 아까보다 더 많이 보였다.
현수는 심령카메라로 이 풍경을 고스란히 찍어 송출했다.
“지금 보이는 하얀 연기들이 다 귀신들이에요. 한이 강하면 강할수록 형체가 또렷하게 보이는데, 지금 저 귀신들은 ‘원한’이라고 부를 정도의 한이 있는 귀신은 아닌 것 같아요.”
현수가 귀신들을 촬영하며 설명을 해주었다.
“보통 사람이요.”
운동장 중간 쯤 갔을 무렵, 태환이 운을 뗐다.
“자기가 겪은 추억의 3배 정도 기간을 곱씹는데요. 그러니까 한 달 추억이면 세 달 동안 곱씹고, 1년의 추억이면 3년 동안 곱씹는 거죠.”
“그래서?”
“저도 군대에서 곱씹을 추억 만들려고 여기 이러고 있는 거지만 여기 있는 귀신들은 얼마나 곱씹을 게 많으면 여기 이러고 있는 걸까요?”
태환의 말에 현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 [1000원 파워챗]
-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씁쓸하긴 한 듯.
- 죽어서 성불 못하는 귀신들은 얼마나 안 좋은 기억, 아니면 추억이 많은 걸까.
- 세상에 미련 없는 귀신이 어디 있겠어.
- 생각해보면 그렇긴 하다.
- 퇴마하는 사람이 반갑지 않을 수도 있겠다.
- 그런데 캡틴님, 정작 퇴마를 하긴 하는 거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보면 이렇게 저렇게 귀신들 한은 잘 풀어주고 계신 듯????
- 후기 방송 보면 귀신들 한 풀어주고 계심. 소화원도 그렇고 그 녹음실 무명가수도 그렇고.
- [10000원 파워챗]
- 파이팅!!
“파워챗 감사드립니다. 후원 감사드려요. 후원 해주실 때마다 리액션을 해드려야 하는데 이렇게 라방할 때는 바로바로 리액션 못해 드리는 점 양해 부탁드릴게요.”
현수가 걸어가며 말했다.
그렇게 구령대 가까이에까지 다가가자 옆쪽에 게양대와 함께 책을 보고 있는 세종대왕 동상이 보였다.
- 저 동상에 책장이 다 넘어가면 사람이 죽는다는 소문 있지 않았음??
- 나 우리학교에 있었음ㅋㅋㅋㅋㅋㅋㅋㅋ
- 22222나도나도
- 국룰이구낰ㅋㅋㅋㅋ
현수와 태환은 구령대 앞에서 학교 현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쪽으로 이동했다.
덜컹-
그때 어디선가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현수와 태환이 뒤로 물러서며 구령대 아래를 보았다.
[체육창고]
구령대 밑에는 체육시간에 사용하는 온갖 물건들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다.
둘은 서로를 보며 눈을 마주친 뒤 창고 철문으로 천천히 다가가 보았다.
“지금 이 창고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어요.”
현수는 EMF 탐지기를 앞세워 걸으며 말했다.
“뭐 좀 보여요?”
태환 역시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아무것도 안 보여.”
현수는 창고 철문에 아무런 잠금장치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걸 확인했다.
“조명.”
현수가 태환에게 손짓을 하고는 철문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그러고는 천천히 당겨 보았다.
끼이이이이이잉-
교정 전체에 금속 물리는 음산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 오. 시청자 200명 돌파.
- [1000원 파워챗]
- 200명 돌파 축하 축하.
- 와. 구독자는 별로 안 되는데 생방 시청자가 200명이 넘네.
- 이 방송은 생방이 꿀잼임ㅋㅋㅋㅋㅋㅋㅋ
- 생방 보고 클립 봐야 재미남.
현수는 동시 시청자 수가 200명이 넘었다는 채팅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못한 채 창고 문을 활짝 열었다.
동시에 태환의 손전등이 창고 안을 훤히 비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