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 수원 폐 스튜디오 (4)
9시가 되자 현수는 바로 방송시작 버튼을 클릭했다.
“안녕하세요! 캡틴 퇴마입니다.”
현수가 인사하는 사이, 50명의 시청자가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 후기 기다렸어요.
- 오늘은 좀 다르게 방송할 거라고 했는데.
- 안녕하세요~~
- 안녕하십니까요
- 안녕하세요!
- 옆에 게스트가 있네요. 오늘은.
- 안녕하세요~
- 어제 같이 찍었던 그 사람이네.
- 이태환!!!
- 우리 태화니.
- 귀요미 태화니ㅋㅋㅋㅋㅋㅋㅋ
- 수맥 그 L봉 가져와서 하나도 못 씀ㅋㅋㅋㅋㅋㅋㅋ
- 챙겨온 게 넘 귀엽지 않음???
- 안녕하세요!
어제 200명이 넘는 생방송 시청자, 그리고 생방송 총 영상 조회 수가 10000명이 넘다보니 후기가 궁금했던 사람들이 제법 되는 것이었다.
“오늘은 어제 함께 했던 여기, 이태환 씨를 모시고 왔습니다. 어제 녹음실에서 많은 걸 알아내지 못했는데요. 그래도 선명한 귀신의 모습과 음성이 포착된 만큼 같이 들은 사람이랑 함께 ‘리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수는 웹캠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 기대된다.
- 빨리 시작합시다.
- 기대돼요!!
현수는 송출 중인 방송 화면에 컴퓨터 바탕화면과 웹캠 화면이 동시에 나오게 설정한 후 이야기를 이어갔다.
“오늘은 영상들을 차근차근 돌려보면서 한 번 같이 분석해보는 시간을 가져볼게요. 자. 일단 처음에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한 두어 차례 정도 귀신이 저한테 확 덤벼들었죠?”
현수는 녹음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부터 스튜디오를 수색하는 장면들을 빠르게 넘겨가며 보았다.
그때, 하얀 무언가가 현수를 덮치는 심령카메라 화면에서 정지를 하였다.
“제가 귀신을 보는데, 이 귀신은 뭔가 형체로 나타나지 않았었어요. 정말 말 그대로 갑자기 확 얼굴로 덤비는 느낌? 지금 심령카메라로 보이는 그 장면 그대로 보였어요.”
정지된 귀신의 모습은 소독차의 하얀 연기가 얼굴로 뿜어져 오는 것처럼 녹화가 되어 있었다.
- 뭔지 잘 못 알아보겠어요.
- 언뜻 사람 얼굴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 음 모르겠어요.
시청자들도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아무래도 심령카메라의 화질이 좋지 않은데다가 어두운 가운데 갑자기 하얀 물체가 나타나며 초점이 흐려졌기 때문일 것이었다.
“전 아무것도 못 봤는데.”
태환은 영상을 보며 중얼거렸다.
“약간 추운 느낌 같은 건?”
“겨울이니까? 그런데 거긴 조금 더 추웠던 거 같아요. 시멘트 안이라 그런가.”
“그게 영적 감각이라고 해서 근처에 귀신이 있으면 더 추워지는 거야.”
현수는 설명을 해주며 영상을 계속 재생시켰다.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녹화 영상을 돌려보던 중, 드디어 방음부스 장면이 나왔다.
“아! 저기, 저기.”
현수가 영상을 멈추고 말을 이었다.
“저기 여자 귀신. 분명히 저기 서서 절 보고 있었어요. 심령카메라를 보면 하얀 형체로 보이죠. 그런데 다른 때랑 달리 되게 선명해요.”
현수는 심령카메라로 촬영된 장면을 확대해 보여주었다.
“보면 여기 머리카락, 눈, 코, 입. 명확하진 않지만 확실하게 제가 본 윤곽 그대로 담겼어요.”
“아. 진짜요? 전 진짜 아무것도 못 봤는데.”
“맞아. 맞아. 심령카메라로 보면-”
현수가 확대한 귀신을 마우스 포인트로 가리켰다.
“-딱 날 보고 있었고. 네 발목을 잡은 귀신도 이 귀신이었어.”
“아. 나 소름 돋는 거 같아요.”
태환이 자신의 팔을 북북 긁었다.
“그런데 심령카메라가 아니라 그냥 방송용 카메라로 촬영된 사진 보면~ 귀신의 모습이 전혀 안 보이지.”
현수가 두 영상을 비교해 보여주었다.
- 헐ㄷㄷㄷㄷㄷㄷㄷㄷ
- 대체 이거보고 조작이라는 사람은 뭐임???
- 몇 살 쯤 돼보였어요?
“나이요? 음. 제가 봤을 땐 한 20대 중반? 모르겠어요. 머리카락으로 얼굴 절반을 가리고 있었어서.”
현수는 다시 영상을 재생하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이제 저희가 고스트사운드를 설치하러 들어가죠. 태환이가 밖에 있었고.”
현수는 고스트사운드에서 소리가 나오는 장면을 재생시켰다.
끼이이이이익-
칠판 긁는 소리와 함께 들리는 이상한 소리.
볼륨을 조절하며 현수와 태환이 귀를 기울였다.
-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 뭐지. 무슨 소리지?
- 말하는 것 같은데.
- 주문 외우나??
- 주기도문???
- 아니에요. 그건 아닌 듯.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어요.
시청자들도 초 집중을 한 상태로 소리를 듣고 있었다.
“전 ‘여기서 나가’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음. 다르게 들으면 ‘나가고 싶어’ 같기도 한데요?”
태환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나가고 싶어?”
“네. ‘여기서 나가’라는 걸 생각하고 들으면 그렇게 들리고 ‘나가고 싶어’라고 생각하고 들으면 또 그렇게 들리는.”
- 나가고 싶어-에 한 표.
- 저도 나가고 싶다는 걸로 들리는데요??
- 나가고 싶다는 거요.
- 아 그래? 난 왜 아무리 들어도 여기서 나가라는 걸로 들리지??
- 나가고 싶다-요!
- 후자가 맞는 것 같은데요.
‘나가고 싶어’라고 들은 시청자들도 제법 되는 모양이었다.
“음. 만약 고스트사운드를 통해 들은 그 말이 방음부스의 귀신이 한 말이면, 귀신은 그 녹음실에 발목이 묶여있는 것 같은데요.”
현수가 채팅창을 보며 말했다.
- 나가고 싶으면 지가 나가면 되지 왜 안 나가고 그러고 있대 그럼.
- 뭔가 사연이 있겠죠.
채팅을 보던 태환이 말했다.
“귀신이 장소에 구속이 된 지박령인 경우도 있지만 사물에 붙어서 못 움직이는 경우도 많아요. 특정 사물에 미련이 너무 강하게 남아서 거길 못 떠나는 거죠. 그럴 땐 그 물건을 치우면 귀신도 자연스럽게 떠나가게 돼요.”
그의 말에 현수가 눈을 크게 뜨고 태환을 보았다.
그러자 태환이 피식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옛날에 엄마한테 들었어요. 이런 얘기 자주 해주심. 헷.”
“음. 그럼 네가 보기엔 사물에 붙은 것 같아, 장소에 붙은 것 같아?”
“사물이요. 장소였으면 애초에 문을 열고 들어갈 때부터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요?”
“음. 사물에 붙었다고 그러면-”
현수가 생각하는 표정으로 눈알을 굴렸다.
- 전국 싱어송라이터 협회 공로상.
- 그 상장 있잖아요.
- 상장!! EMF 탐지기계가 요란하게 번쩍거렸던 거!!
- 그거네!! 그거!!
- 혹시 가수가 꿈이었던 여자가 죽어서 못 이룬 꿈 때문에 그 녹음하는 방음부스하고 상장 주변에서 못 떠나는 거 아님??
시청자들의 댓글을 본 현수의 머릿속에 상장이 떠올랐다.
재빨리 영상을 돌려 그 상장을 촬영한 장면을 확인해 보았다.
EMF 탐지기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는 상장.
[전국 싱어송라이터 협회 공로상]
가수 황희영
상장 아래에는 손전등 불빛에 반사되어 보이지 않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현수는 바로 너튜브에서 ‘황희영’을 검색해 보았다.
여러 채널과 영상들이 나오던 중, 낯익은 방음부스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한 젊은 여인의 영상이 업로드 되어 있었다.
감미로운 멜로디에 부드러운 음색을 가진 그녀는 가사에 감정이입이 된 듯, 행복한 표정으로 노래를 불렀다.
시청자들 모두 그녀의 음색에 한껏 취해 감탄사를 연발했다.
- 와 노래 잘한다.
- 막 기교가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부드러워. 봄바람처럼.
- 아름답다.
- 그 귀신이 저 분이었던 거야????????
시청자들 역시 현수와 태환처럼 노래에 매료가 되어 있었다.
현수가 직접 본 옷차림과 외모.
분명 저 사람이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영상은 4년 전에 업로드 되었던 것.
그 이후로는 그녀의 영상을 더 찾아볼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포탈 사이트 어디에서도 그녀를 찾아볼 수 없었다.
현수는 노래하고 있는 무명가수 ‘황희영’의 얼굴을 한참동안 들여다보았다.
* * *
이 날 진행한 생방송에서는 최대 300명이 넘는 시청자들이 들어와 실황을 보았다.
뿐만 아니라 녹화 영상 및 영상 클립, 그리고 후기 방송의 편집 영상까지 포함하면 영상 조회 수가 10만 명을 넘기게 되었다.
동시에 구독자 수도 순식간에 200명이 늘어나 1251명을 기록하고 있었다.
소위 말해 아직 ‘떡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가파른 상승세는 아니었지만, 상대적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인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중요한 점은 이번 영상에 등장한 ‘무명가수 황희영’의 영상이 되레 떡상 했다는 점이었다.
생방송과 편집 영상에 등장한 그녀의 음색에 많은 네티즌들이 매료되어 조회 수를 올려주었고, 알고리즘을 타고 타 그녀의 영상이 역주행으로 확 떠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귀신이 된 ‘무명가수 황희영’은 너튜브에서 핫한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영상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그녀와 스튜디오의 사연 역시 공개가 되었다.
황희영, 그녀는 무명가수로 음원도 냈었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짧고 굵은 투병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녀는 누구보다 가수가 되고 싶어 했다고, 그녀의 생전 지인들이 댓글을 달아주었다.
그리고 스튜디오 사장은 실종 상태라고 전해졌다.
스튜디오가 잘 안 돼 신변을 비관하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하는데, 산행을 나간다고 외출한 이후로 연락이 두절되었다고 누군가 댓글에 밝혔다.
현수는 정체모를 네티즌의 근거 없는 루머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진짜라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예성 스튜디오’에 나타났던 귀신에 대한 소문은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영상을 본 일부 시청자들이 그곳을 찾아갔지만 잠긴 스튜디오 앞에서 밤을 새봐도 더 이상 여자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고 전해졌다.
또 한 가지.
무려 3일 만에 너튜브 파트너 프로그램 승인이 되었다.
즉, 이제 수익창출이 가능해진 것이었다.
광고를 붙여서 광고 수익을 낼 수도 있었고 파워챗 후원을 받을 수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채널 멤버십을 열어 구독자들에게 고정적으로 후원을 받을 수도 있었다.
이제야 바야흐로 너튜브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된 것이었다.
탁
현수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잔을 내려놓고 테이블 위에 10만 원 돈 봉투를 건넸다.
마주 앉아 있는 태환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뭐, 돈 못 준다고는 했는데 그래도 방송 출연하고 같이 이야기 나누고 해서 분위기 메이킹도 됐고. 이래저래 고마워서. 받아.”
현수의 말에 태환이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진짜 됐어요. 진짜.”
“됐어. 내가 마음 쓰여서 그래. 나중에 또 무슨 소리 할지도 모르고.”
“에이. 진짜 아니에요. 진짜로요. 정말. 녹음하셔도 돼요.”
태환이 극구 사양을 했다.
현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뭐 그렇게까지 사양을 하고 그래.”
“돈 말고 대신 다른 부탁을 들어주세요.”
“뭐? 뭐 어떤 거?”
“앞으로 촬영 가시는 거 따라가게 해주세요. 정말 조수 노릇 톡톡히 할게요.”
태환이 양 엄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아이, 진짜.’
현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이마를 짚었다.
“저 아빠 거지만 10만 루멘짜리 손전등 있어요! 조명도 제가 완전 잘 들 수 있고요. 무거운 짐도 제가 챙길게요.”
“아니, 뭐 좋은 일이라고.”
“그냥 군대 가기 전에 추억 쌓기죠. 뭐, 채널이 커지면 나중에 저 전역하고 일자리라도 생길지 모르고요.”
태환이 배실배실 웃으며 말했다.
현수는 난처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한숨을 푹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