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수원 폐 스튜디오 (3)
“으아아악!”
태환은 출구까지 질질 끌려갔다.
현수의 눈에는 태환의 다리를 붙잡고 끌고 가는 여자 귀신의 모습이 훤히 보였다.
그리고 심령카메라에는 하얀 형체가 태환의 다리를 끌고 가는 것이 찍히고 있었다.
- 뭐야!! 뭐야!
- ㅈㄴ실감난다.
- 헐!!! 뭐야!!!!
- 지금 상황 설명 좀!!!
- 설명 좀 해주세요.
- 아 무서워!!
태환은 온 몸으로 바닥의 먼지를 쓸어가며 출구까지 끌려갔다.
“큭!”
현수는 태환을 쫓아 달려가며 힙색에서 팥을 한 줌 쥐어 귀신을 향해 확 흩뿌렸다.
그러자 귀신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며 태환도 멈춰 섰다.
화아아악
심령카메라 속 하얀 형체도 연기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헉. 헉. 헉. 헉.”
현수는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보았다.
귀신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괘, 괜찮아?”
현수가 태환을 일으켜주며 물었다.
“저, 저, 저-”
태환은 놀랐는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정 못 있겠으면 나가 있어.”
“아, 저. 아.”
태환은 눈을 크게 뜨고 눈알을 굴리며 주변을 보았다.
아직 뭔가 정리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 근데 아까 나던 그 이상한 소리, 지금 안 남.
- 어??? 맞네???
- 방음부스 문 안 닫히지 않았음???
- 열려 있는 것 같은데.
- 소리 안 남.
시청자들의 채팅이 올라왔다.
현수는 천천히 방음부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활짝 열려 있는 문.
그리고 소리를 제대로 듣기 위해 크게 올려놨던 볼륨.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까 들렸던 칠판 긁는 소리와 말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태환과 현수에게는 더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 소오오오오오오오오름
- 지금 귀신이 밖으로 나가면서 저 꼬마 끌고 나가고, 그러고 소리 멈춘 거??
- ㅅㅂ쌉소름이다.
- 대박
- 진짜야? 레알??
현수와 태환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가 다시 방음부스로 고개를 돌렸다.
금방이라도 뛰쳐나가고 싶던 태환도 지금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지 그대로 다리가 얼어붙은 모양이었다.
“다시 방음부스 안으로 들어가 볼게요.”
현수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아이씨.”
태환이 고민하는 듯 발을 동동 구르자 현수가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하지만 태환은 눈을 질끈 감고는 현수의 뒤를 따랐다.
아무래도 공포보다 호기심이 더 큰 모양이었다.
스윽
현수와 태환이 방음부스 안으로 들어왔다.
분명 스피커와 고스트사운드는 켜져 있었다.
“저 고스트사운드는 건전지로 작동을 하는 거거든요. 지금 보니까 아까랑 똑같이 전원도 다 켜져 있는데 소리가 멈춰있네요.”
현수가 EMF 탐지기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LED 불빛이 1개에서 2개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확실히 아까보다 훨씬 얌전해진 느낌이었다.
- 팥에 퇴마가 된 건가??
- 퇴마 된 거???
- 어떻게 된 건가요?
시청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현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스트사운드 장비를 다시 분해했다.
“음. 일단 오늘 이곳 촬영은 이쯤에서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귀신의 존재가 명확하게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여기서 알아낼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여기 이태환 씨가 위험하기도 했고요.”
현수의 말에 조소를 보내는 시청자들이 나타났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차피 짜고 치는 거면서 위험이란다.
- 장난질도 리듬을 맞춰가며 쳐야지 종방 구실도 왤캐 뻔함??
- ㅋㅋㅋㅋㅋ저기 아마 지금도 운영 중인 스튜디오일 듯.
채팅을 본 태환이 억울했는지 나서서 말했다.
“아니, 정말이라니까요. 저도 반신반의 했는데 와서 보니까 진짜 찐임. 진짜 찐임.”
태환의 말에 현수도 거들었다.
“뭐, 믿고 안 믿고는 우리 캡처님들 자유지만, 명확하게 말씀드리면 일절! 조작이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 그럼 시청자들 번갈아 가면서 초빙 하든가.
- 솔찌 그렇게 하면 그 시청자들 다 매수한 스태프 아니냐고 할 거면서.
- 조작이든 아니든 재밌게 보면 된 거 아님? 뭐 그렇게 말들이 많아.
- 아 지긋지긋하다.
생방송 시청자가 200명이 넘자 확실히 채팅창 올라가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다.
현수가 보고 대답을 해주기 어려울 정도였다.
“일단 밖으로 나가자.”
현수는 장비를 챙겨 태환을 데리고 건물 밖으로 뛰어 나왔다.
* * *
“후. 후. 헉. 헉.”
밖으로 나온 현수와 태환은 숨을 몰아쉬며 생방송 화면을 확인했다.
현수는 자신의 몸에 거치 되어 있던 촬영용 카메라를 탈착해 셀카처럼 바꿔 들었다.
“캡틴 퇴마입니다. 아. 수원에 있는 녹음실에 방문을 했는데요. 저 안에 굉장히 한이 강한 귀신이 있었는데 그 정체나 저기 있는 이유, 이런 걸 알지는 못했어요.”
- 캡틴 퇴마인데 퇴마를 하긴 하는 거임?
- 그냥 귀신 만나는 게 다인 듯?
- 팥 뿌렸잖음.
- 그걸 누가 못함ㅋㅋㅋㅋㅋ
채팅들이 격렬하게 올라왔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현수를 격려하는 채팅도 있었다.
- 수고 많으셨어요.
-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 옆에 있는 그 태환이라는 사람 괜찮은가요?
시청자들이 물었다.
“태환아. 괜찮아?”
현수가 묻자 태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쪽 다리 잡혔었지?”
현수가 쪼그려 앉아 태환의 바지를 살짝 들어 올려 보았다.
그러자 귀신에게 붙잡혔던 왼쪽 발목이 붉게 올라 있었다.
“보면 아까 귀신한테 잡혔던 자리가 붉게 변해 있어요. 엄청나게 세게 붙잡았던 모양이에요.”
현수가 카메라로 발목을 비추며 말했다.
“그런데 막 발목이 아프거나 하진 않았어요. 그냥 끌려가는 그 공포가 더 무서웠지.”
태환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하지만 표정은 여전히 상기되어 있었다.
“다친 데는 없지?”
“전혀요.”
현수의 질문에 태환이 어깨를 으쓱였다.
현수는 EMF 탐지기를 발목에 대보았다.
그러자 LED 불빛이 4개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 와. 진짜 신기하다.
- 저거 나도 하나 사야겠다.
“귀신이 잡았던 곳이라 아직 기운이 남아있나 봐요. 말씀드렸다시피 이게 귀신을 100% 찾아내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접점이 있는 것 같긴 하거든요. 감지하는 귀신이.”
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을 이었다.
“아무튼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할게요. 이 녹음실 건은 바로 후기로 넘어가지 않고 영상을 조금 분석해보면서 녹음된 그 귀신 소리도 검토하는 시간을 가져볼게요. 다음 라이브는 바로 내일 밤에 진행하겠습니다.”
- 수고하셨습니다!
- 영상 빨리 올려주세요.
- 와 궁금하다. 궁금해.“
채팅이 올라오는 것을 확인한 현수가 방송 종료를 눌렀다.
“하아.”
현수가 한숨을 푹 내쉬고 태환을 보았다.
“그렇게 막 찾아오면 어떡해.”
“그냥 장난삼아……. 정말 저런 이상한 일이 있으리라곤 생각 안 했죠. 다 조작이라고 생각했어서.”
태환은 미안한 듯 고개를 푹 떨어트리며 말했다.
“진짜 큰일 나려고. 거기다 귀신은 둘째치고 그렇게 예고 없이 나타나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진짜 이상한 시청자가 갑자기 나타나서 난동부리거나 할 수도 있는 건데. 그래서 내가 정확한 위치는 비공개로 하는 거고.”
“죄송해요.”
현수의 말에 태환이 머리를 긁적였다.
“앞으로는 쫓아오지 말고. 뭐, 방송 재밌게 봐줘서 고맙고.”
현수가 태환의 팔을 툭 치며 말했다.
“아! 그런데 지금 녹음실 촬영한 거 분석할 때 저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어?”
“같이 봤잖아요. 귀신한테 직접 끌려도 가보고. 발목에 흔적도 있고. 소리도 같이 들었고요. 제가 옆에서 같이 보면 분석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태환이 말했다.
“무슨 소리야, 인마. 쫓아오지 말라니까.”
“그래도요. 도움이 되시면 좋잖아요. 어차피 입대 전까지 알바도 못하고. 집에서 뒹굴뒹굴 하고 있는데 형이나 도우면 안 돼요?”
“무슨 실없는 소리 하고 있어. 난 월급도 못 줘. 그럴 시간 있으면 어디 노가다나 택배 상하차 같이 단기 가능한 일이라도 해.”
“아. 돈이 목적이 아니라 추억이 목적이니까 그렇죠. 입대 앞두고.”
“군대 앞두고 귀신을 만나고 싶다는 거야?”
“어어- 추억 만들기?”
태환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부모님은?”
“제가 어디 있는지만 알면 크게 걱정 안 하셔요.”
“에휴.”
현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배낭을 짊어졌다.
“제가 들어드릴게요!”
그러자 태환이 배낭을 뺏어 들었다.
현수는 그런 태환을 가만히 보며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다.
하지만 이야기 나눠봤을 때 그렇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그저 입대 전에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어차피 얼굴까지 카메라에 다 잡힌 마당에 이상한 짓은 안 하겠지.’
현수는 옆에서 조명으로라도 소소하게 도움이 되었던 태환을 떠올리며 걸음을 옮겼다.
* * *
집으로 돌아온 현수는 한숨 자고 일어나 방금 촬영한 장면들을 모두 클립 영상과 쇼츠로 제작하기 위해 편집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밤에 있을 방송을 준비하기 위한 영상들을 따로 정리했다.
동시에 너튜브 동영상 관리 탭에 들어가 채널 상태를 확인했다.
구독자는 1013명을 기록하고 있었다.
드디어 수익창출을 위한 기본 조건이 달성된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조건은 12개월 내 총 시청시간 4000시간 이상.
현수는 동영상 관리 페이지에 수익창출 메뉴로 진입해 보았다.
공개 동영상의 시청시간 : 7429시간
시청시간 역시 조건을 달성해 있었다.
“오? 어느새?”
나름대로 게임방송 할 때의 클립들과 퇴마 방송 이후의 시청시간들이 톡톡히 역할을 해준 모양이었다.
고글 메일에 접속해보니 아니나다를까 역시 수익창출 조건 달성에 대한 안내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현수는 너튜브 채널을 비즈니스 채널로 전환해 두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해 바로 작업을 진행함과 동시에 수익창출 신청을 진행했다.
“신청하면 승인까지 얼마나 걸리지?”
검색을 해보니 그 기간은 천차만별이었다.
누군가는 한 달이 걸렸다 하는 반면 누군가는 4일 만에 승인이 났다는 것이었다.
“일단 신청해보고 기다려야지, 뭐.”
현수는 너튜브 파트너프로그램 신청 절차를 진행하며 중얼거렸다.
잠시 뒤.
저녁 식사를 대충 마치고 8시 쯤 되자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현수가 묻자 문 밖에서 태환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에요. 태환이.”
어제 함께 촬영했던 태환이었다.
원룸이라 컴퓨터와 현관문의 거리가 멀지 않아 현수는 의자에 앉은 채로 슥 밀려가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안녕하세요.”
태환이 캔 맥주 몇 개를 사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와. 여기가 스트리머의 방이구나.”
태환은 신기한 듯 원룸을 두리번거렸다.
“게임방송 때부터 봤으면 익숙할 거 아니야?”
“그렇죠. 요기. 요 벽면. 자주 봤죠.”
현수가 컴퓨터 웹캠이 가리키는 벽면을 보며 말했다.
“이 방송까지만 같이 하고 그 다음부터는 나 혼자할 거야. 그렇게 알고 있어.”
“아유. 그래도 제가 조명 비추고 하는 게 그래도 도움 되지 않았어요?”
“되기는 됐는데 너도 겪었다시피 위험해. 가끔 그렇게 물리력을 행사하는 귀신들이 있더라고.”
현수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제가 듣기로 약간 신기 있는 사람은 귀신하고 물리적 접촉이 가능하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그런 거 아니에요? 형님 귀신 보신다며요.”
태환이 현수 옆에 의자를 가져와 앉으며 물었다.
“신기?”
“소위 신가물이라고 하죠. 신을 받아야 하는 사람? 뭐, 귀신 보고 하는 게 다 그런 거 아닌가?”
“음. 그런가? 모르겠는데.”
현수는 어깨를 으쓱였다.
지금까지 무당을 직접 본 적도 없거니와 가족 중에도 무속 일을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잠깐. 나는 목덜미 잡힌 적이 있으니까 그렇다 치고. 그럼 넌? 너 발목 잡혔잖아. 귀신 못 보는 거 아니야?”
현수가 물었다.
“저 돌아가신 증조할머니가 무당이셨대요. 실제로 뵌 적은 없긴 한데.”
태환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순간 태환의 등 뒤로 인자해 보이는 할머니 귀신이 슥 나타났다.
무섭다기보다는 포근하게 태환을 지켜주는 듯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