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 강원도 명주 흉가 (3)
현재 시청자 수 94명.
생방송 중 추가된 인원 포함 총 구독자 수 526명.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생방송으로 100명 가까운 시청자와 20명의 구독자가 한 번에 늘어난 것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자극적인 콘텐츠와 입소문의 힘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현수는 피가 흐르고 있는 장롱으로 다가가 봐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저벅 저벅-
현수가 천천히,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
- 제발 다가가지 마요.
-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데
- 공포영화 클리셰임. 저러다 죽음.
- 빨리 이불 꺼내봐. 궁금해.
- 살 떨린다
채팅으로는 이불 들춰보라는 여론과 무시하라는 여론이 맞붙고 있었다.
현수는 숨을 살짝 내쉬며 이불 더미를 들어보았다.
“헉!”
이불 사이로 엎드려 있는 노인 귀신의 얼굴이 갑자기 나타났다.
칼로 그은 것 같은 깊은 주름과 흰자 없는 눈, 광대까지 찢겨 올라간 듯한 입 꼬리.
기괴하게 그지없는 외모였다.
심지어 장롱의 크기와 구조상 성인 남성이 들어갈 공간이 없어 보임에도, 노인은 엎드려 턱을 괸 모습으로 이불 속에 들어 있었다.
- 아 ㅅㅂ
- 나 끌래 도저히 안 되겠다
- 저게 어케 가능하ㅔ?
- ㄷㄷㄱㄹㄱㅎㄱㄷㅁㅁ23ㄹㄷㄹㅈ
채팅창은 더욱 격렬하게 올라왔다.
그 순간이었다.
이불 속 노인이 밖으로 확 튀어나와 현수를 덮쳤다.
“으악!”
순간 현수는 재빨리 몸을 틀어 귀신을 떨쳐냈다.
파사사사사사-
노인 귀신은 네 발로 기어서 방문을 통과해 나갔다.
우당탕-
그 사이 현수는 뒤로 주춤거리다 뒤에 있는 가구에 부딪쳤다.
콰삭-
오래 되어 부식된 서랍장이 부서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촤라라라락-
어디선가 숨어 있던 쥐들이 쏟아져 나와 바닥 곳곳으로 흩어져 도망갔다.
현수는 깜짝 놀라 자세를 살짝 낮추고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다.
“죄송합니다. 화면이 너무 흔들렸죠.”
현수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채팅창을 확인했다.
- 방금 장롱에서 튀어나온 거 뭐임?
- 너무 순식간에 지나갔어.
- 뭔가 확 덮치지 않았음?
- 눈물 날 것 같아. 너무 무서워.
- 어지간한 공포 영화보다 낫다.
- 저 핸드폰 화면에 뭐가 확 튀어나오는 게 찍혔는데 잘 안 보였음.
심령카메라 앱 화면을 비추고 있었지만, 송출 중인 생방송 화면 안의 앱 화면은 워낙 작은데다가, 갑자기 일어난 상황이라 제대로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만약 방금 같은 상황에서 앱 화면이 카메라에 나오고 있지 않았다면 그냥 현수 혼자 갑자기 넘어지는 그림만 송출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현수 혼자 쇼하는 것처럼 보였을 가능성이 컸다.
심령카메라 앱을 이용한 것이 정말 신의 한 수였다.
“후우. 다시 이동을 해볼게요.”
현수는 길게 숨을 내쉬며 닫힌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다가가 문고리를 돌려 열었다.
끼이이익-
문소리와 함께, 거실 한 가운데 노인 귀신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현수가 놀라 심령카메라 앱 화면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현수가 보고 있는 귀신을, 시청자들도 희뿌연 형태로나마 볼 수 있었다.
그 노인은 유화 속 초상화의 주인공이었지만 얼굴은 야차처럼 시뻘겋고 흉측하게 변해 있었다.
“우에오이아아오야이아오!!”
노인이 알 수 없는 언어로 버럭 소리치자 강렬한 냉기가 온 집안을 휘감았다.
“큭!”
현수가 팔로 얼굴을 감쌌지만 귀와 소매로 느껴지는 찬 공기는 한 겨울의 눈보라 같았다.
쿵 쿵 쿵
노인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럴수록 한기도 점점 더 강렬해졌다.
- 뭐야 뭐야 뭐야
- 이거 실제 상황임?
- 저 아저씨 ㅈㄴ 무섭게 생겼네.
“어엇!”
노인은 현수의 바로 앞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쿠당탕-
동시에 부엌에 있는 각종 집기들이 마구 쏟아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와장창-
그릇들이 쏟아져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님?
- 위치를 모르는데 어떻게 신고함?
- 신고하면 알아서 추적하겠지!
- 이거 다 주작임. 신고는 무슨.
송출되고 있는 장면은 마치 몸싸움이 일어난 것처럼 요란하게 흔들렸지만, 시청자들은 실제 상황이라는 것이 반신반의 한 모양이었다.
“헉 헉, 귀신들은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가할 수 없어요. 걱정 마세요.”
현수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 그러기엔 아까 너무 끌려가던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수는 다시 거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노인 귀신이 팔을 앞으로 뻗은 채 성큼성큼 다가왔다.
“크윽!”
현수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러다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도망갈 곳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툭-
그때 현수가 나온 방 앞으로 소녀 귀신이 서있는 것이 보였다.
쿠당탕탕-
부엌 집기들이 다시 한 번 쏟아졌다.
그때 아직 들어가지 않은, 굳게 닫힌 방이 보였다.
현수는 일단 그곳으로 들어가기 위해 내달렸다.
쿵쿵쿵쿵쿵
쫓아오는 노인 귀신의 발자국 소리가 기괴하게 들렸다.
마치 누군가 주먹으로 바닥을 빠르게 치는 것만 같았다.
쾅-
현수가 어깨로 문을 부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정체를 알 수 없는 퀴퀴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동시에 노인 귀신의 발자국 소리도, 부엌에서 요란하게 나던 그릇소리도 모두 멈추었다.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처럼 ‘삭막한 고요’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현수는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을 깨달았다.
바닥에 보이는 정체 모를 무언가.
- 바닥에 뭔가 있는 거 같은데? 아닌가?
- 저거 뭐임?
- 뭐에요?
- 뭐임?
현수는 바닥의 무언가가 귀신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었다.
심령카메라 앱을 이용하든 이용하지 않든 현수는 모든 걸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니 분명 귀신은 아니었다.
등골이 오싹해진 현수가 카메라를 다른 곳으로 비춘 채 그 ‘무언가’를 손전등으로 확인해 보았다.
시신이었다.
성인으로 보이는 백골과 아이로 보이는 백골. 총 두 구의 시신이었다.
- 뭐에요.
- 뭐임?????????
- 캡틴퇴마님. 뭐예요????
- 카메라 좀.
- 뭔지 말씀 좀 해주세요.
- 들어서 좀 보여주세요.
시청자들의 채팅창은 불붙은 것처럼 타올랐다.
“잠시만요, 여러분. 일단 경찰에 신고부터 좀 할게요. 잠시 생방송 끊을게요.”
현수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허겁지겁 방송을 종료했다.
실제 사람의 시신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 * *
폐가 체험을 콘텐츠로 하는 스트리머가 실제 변사체를 발견하는 경우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종종 발생하는 일이었다.
‘폐가’라는 것이 인적이 끊긴 건축물을 의미하다 보니 부랑자나 범죄자 같은 사람들이 숨어들기 적합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사람들 눈에 잘 띄는 도심지나 마을 언저리의 폐가들은 흉물스러운 것이 자꾸 눈에 보이니 빠른 조치가 이루어지지만 실질적으로 그렇지 않은 외딴곳의 폐가들은 이처럼 오랫동안 버려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시신의 주인은 20년 전에 이 집에 살던 할아버지와 손녀딸이라고 밝혀졌다.
성격이 불같던 할아버지는 장애가 와 거동이 불편했고, 이제 초등학생이었던 손녀딸은 그런 할아버지 옆에서 굶어 죽은 것이었다.
전기와 수도가 끊기는 동안에도 누구의 도움을 받지 못했던 모양이다.
경찰은 의심의 눈초리로 현수를 조사했다.
현수는 증거로 자신의 방송 녹화 영상을 보여주었고, 경찰들이 보인 의심의 눈초리는 혐오의 눈초리로 바뀌어 있었다.
“앞으로 이런 폐가 체험, 이딴 거 하지 마세요. 네?”
경찰은 미간을 찌푸리며 짜증난다는 듯 말했다.
이런 변사 사건에 스트리머들이 개입되어 있는 것이 퍽 싫은 모양이었다.
신고자로 조사를 받고 나온 현수는 벌써 대낮이 된 하늘을 올려다 본 후 기지개를 켰다.
밤새도록 한 숨도 못 잤지만 딱히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다.
귀신들에게 시달린 것도 모자라 난생처음 변사체까지 본 것이 보통 경험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 * *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현수는 자신의 장비들을 내려놓고 바로 컴퓨터를 켰다.
현수의 채널에는 확인해야 할 댓글이 수십 개나 쌓여 있었다.
아무래도 아까와 같은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방송 종료를 했으니 무슨 상황인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 어떻게 된 일이에요?
- 캡틴 퇴마님 괜찮으신가요?
└괜찮지 그럼. 주작질도 가락을 맞춰가며 하는 법임.
└심사 뒤틀린 분 여기 또 있네.
- 빨리 복귀하시기 바랍니다.
- 후기 좀 남겨주세요.
현수는 댓글들을 확인하며 촬영한 영상 원본을 따로 하드디스크로 옮겼다.
클립으로 만들 장면과 쇼츠 영상으로 제작할 순간을 따로 분류해 업로드 하기 위해서였다.
“게임 방송보다 녹화본 올리는 건 쉽겠다.”
촬영 시간이 길었지만 주요 자막을 제외하고는 크게 효과를 넣을 것이 없어 편집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았다.
되레 날것 그대로의 장면이 더 흥미로울 것 같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현수는 댓글에 하트와 대댓글을 달아주며 시청자들과 소통을 해나갔다.
“오호. 구독자가 그세 또 늘었네. 539명. 이거 괜찮은데?”
너튜브 생방송을 했던 통 영상 조회 수도 1000명이 넘어가 있었다.
물론 상세 인사이트를 확인해 보니 평균 시청시간은 총 2시간 길이 중 30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집에 들어갈 때부터의 연속 시청률이 높았다.
즉, 산을 오르는 동안은 다 10초씩 뒤로 후딱후딱 넘겨가며 보았다는 의미였다.
“음. 그럼 생방송도 집으로 들어갈 때부터 할까?”
어떻게 생각하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장비들의 배터리 문제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수는 금세 생각을 접었다.
안 그래도 조작 논란이 있을 콘텐츠니 준비하고 올라가는 것부터 촬영하는 게 그나마 나을 것 같았다.
“올라가면서 목적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좀 해주고 노가리 까는 게 좋겠다. 쩝.”
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인 듯했다.
그때 댓글 알림이 또 올라왔다.
- 후기 좀 알려주세요.
└하트 눌러주시는 거 보니 무사하신 듯.
- 오늘 아침 뉴스로 20년 전 실종된 사람들 발견 됐다던데. 거기 어딘지 모자이크 처리 되어 있긴 했는데 왠지 캡틴 퇴마님 가셨던 곳 같았음.
└ㄹㅇ?????????
└진짜요???????????
└뉴스 링크 점.
└https://news.wregf.com/3r32wwfwr423/3e_12413
현수도 댓글을 보고 놀라 링크를 클릭해 보았다.
[단독] ‘흉가 체험’하던 스트리머, 변사체 발견.
너튜브에서 ‘흉가 체험’ 콘텐츠를 하던 크리에이터 박모 씨가 성인 남성과 아이로 추정되는 변사체를 발견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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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기사로 송출이 되었다.
현수가 갔던 그 집은 모자이크 되어 있었지만 실루엣으로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클립들을 정리한 후 후기 방송을 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 * *
클립과 쇼츠 영상까지 정리해 올린 현수는 하품을 하며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는 마치 수면제를 먹은 것처럼 순식간에 잠에 빠져 들었다.
그날 밤.
잠에서 일어난 현수는 냉장고에서 간단히 먹을 것을 챙긴 다음 다시 방송을 켰다.
“안녕하세요. 캡틴 퇴마입니다.”
현수가 인사하는 사이, 20명의 시청자들이 우르르 몰려와 접속했다.
방송을 켜자마자 20명이나 들어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역시 어제 일어난 사건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