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404화 (1,404/1,404)

#1404화 마왕을 낚는 방법 (10)

현재 에센시아 제국에서 가장 핫한 인물을 꼽자면.

그건 무조건 레오나 에센시아다.

차기 황위에 근접할 만큼 무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황위를 얻을 확률 자체가 제로에 수렴하는.

거기다 타란 제국의 황제와 약혼이 예정된 황녀의 값어치는 우리 상상 이상으로 높을 것이다.

당장 비에른 백작 역시도 모든 황족들이 그녀와의 대화 자리를 만들고 싶어 한다고 말할 정도니까.

다른 말로.

우리가 손을 내밀면.

그 손을 잡을 황족이 바깥에 널려있다는 말이다.

과연 그중 누구의 손을 잡아주는가는 순전히 우리의 선택이지.

황족들과 자리를 만들라는 내 말에 비에른 백작의 눈빛이 확연하게 번뜩였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서는 당장 누구부터 접촉할 것인가 판단하느냐 우선순위를 정한다고 정신이 없을 것이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비에른 백작이 말을 꺼내놓았다.

“쓸모만 판단한다면…… 1황자와 3황자가 가장 유력한 차기 황위 계승자입니다만.”

안다.

1황자와 3황자는 당장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쓰러지면 차기 황제에 꼽히는 인물들이니까.

그들이 가진 무력과 세력.

무엇 하나 부족할 것이 없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1황자 쪽은 귀족들과 기사단에게 더 비중이 있는 편이었다.

황금의 사자.

그 자신이 빛의 성질을 가진 영웅이자.

정치력.

지도력.

국가 운영 역시 모자랄 것이 없었다.

귀족들 역시 전부 발아래 두고 있는데다가.

모계도 건국 공신의 공작가.

더할 나위 없는 황제의 자질이라고 해야 하나?

반대로 3황자는 반대로 군부 쪽에 더 힘이 있었다.

철혈의 제왕.

전쟁에 미친 괴물.

채 스물이 되기도 전에 3개 왕국을 전쟁으로 복속시킨 능력자이기도 했고.

거기다 제국의 돈줄을 쥐고 있는 공작가가 3황자의 힘이기도 했다.

특히 3황자는.

미래의 라첼 공작과 더불어 에센시아 제국 최강의 기사 중에 하나였다.

어떻게 보면 거의 마왕급이라고 보면 될 터.

재밌는 것은 3황자가 1황자를 함부로 치지 못하는 데는 이 라첼 공작이 한 몫 한다는 것이었다.

1황자 쪽의 라첼 공작으로 인해, 무력만으로는 서로를 어떻게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뭐 어느 쪽이 되었든 그 힘이 적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아는 일이었다.

“둘 중에 한 녀석에게 붙으라는 말이야?”

“음. 굳이 쓸모를 언급하셨으니까요. 만약 5황녀께서 손을 들어주신다면 그 둘 중 한 명이 가장 적합할 겁니다.”

그러면서 비에른 백작이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두 황자의 팽팽한 저울에 무거운 추를 올려놓는 순간. 전세가 확 기울어질 겁니다.”

“레오나 에센시아가 선택하는 황자가 차기 황제가 될 수 있다?”

“네. 5황녀를 잡는다면 자신의 저울에 타란 제국을 통째로 올릴 수 있으니까요. 이를 마다할 황자는 없을 겁니다.”

확실히 비에른 백작의 말이 맞다.

현재의 레오나 에센시아는 단순한 황녀 그 이상의 값어치를 가진다.

“하지만 에센시아 제국의 황위 싸움에 타란 제국이 개입되는 걸 원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당장 레오나 에센시아의 손을 잡는다면.

타란 제국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에센시아 제국의 황위 다툼에 뛰어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다르게 말하면.

내정 간섭이 될 수도 있고.

차기 황제를 노리는 두 황자의 입장에서 타란 제국의 입김이 들어간 상태로 황위를 차지하는 건.

이후의 제국 운영에 부담이 될 수도 있을 터.

“아마 두 황자 분들도 그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겁니다.”

“알면서도 문다 이거야? 이 호의가 공짜가 아니라는 건 그들도 너무 잘 알 텐데?”

“네. 하지만 어차피 황위를 잇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뒷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자 이거군.”

“무덤에 묻혀서 후회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죠.”

레오나 에센시아의 손을 잡았을 경우 어떤 파장이 있을지 알면서도 손을 잡는다라.

그만큼 상대 황자의 세력이 자신의 힘만으로 누르기에는 너무 견고하다는 뜻도 될 것이다.

만약 한쪽의 세력이 확연히 우세했다면 굳이 후에 이권을 내어주는 위험이 있는 조력을 구할 이유가 하등 없겠지만.

둘 다 너무 팽팽하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때 옆에서 재중이 형이 다른 한 명을 언급했다.

“2황녀는 어떻지? 그쪽도 황위에 관심은 있을 텐데?”

“아. 2황녀께서도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기는 합니다만…….”

“무슨 문제가 있나?”

“흠. 아무래도 에센시아 제국이 전통적으로 기사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제국이라…… 마탑의 마법사들을 주력으로 하는 2황녀님은 다른 황자님들에 비해 다소 세력이 부족할 겁니다. 지지 세력도 마찬가지고요.”

확실히 에센시아 제국은 전통적으로 기사단의 힘이 강하긴 했다.

특히 유력한 황족들은 거의 대부분 기사들로 이루어져 있기도 했다.

그런 에센시아 제국에서 2황녀가 특이하다면 특이한 케이스라고 해야 하나.

그럼에도 2황녀는 강하다.

원 역사에서 그녀는 마왕과 싸워도 지지 않을 거라고 전해지니까.

이름 앞에 마녀가 붙는.

특이함을 넘어 강력함이 붙는 마법사다.

성마대전 시대의 미래를 잘 아는 내 입장에서는.

어차피 가만히 두면 1황자가 황위를 잇는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가장 확실한 패를 잡자면 무조건 1황자의 손을 잡아야 한다.

2황녀나 3황자를 잡았다가 패하기라도 하면 그것도 그것대로 문제니까.

문제는 이놈의 1황자가.

성마대전을 치르면서 에센시아 제국을 대차게 말아먹는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에센시아 제국의 뿌리도 남지 않게 싹 날려 먹었지.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데.

어떻게 멀쩡한 에센시아 제국을 그렇게도 날려 먹을 수 있었는지는 지금도 의아한 부분이었다.

모든 역사가 수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미래에 망할 게 뻔한 패를 잡아주는 것도 어떻게 생각하면 웃긴 일이지.

결국 그 뒤를 이어 에센시아 제국을 이어받은 5황녀.

그러니까 레오나 에센시아가 결국 개고생을 하게 된다.

정확하게 말하면 쫄딱 망해서 뿔뿔이 흩어진 에센시아 제국의 힘을 그녀가 다시 모으지.

만약 그때 마왕과도 겨룰 수 있을 영웅 중에 하나인 마녀 2황녀와 철혈의 제왕 3황자가 그대로 살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황위 싸움에 밀려 죽어버린 두 영웅이 살아 있었다면.

아마 성마대전의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뭐 이건 그냥 아쉬운 정도지.

그들을 꼭 살려야 한다는 건 아니었다.

비에른 백작을 보면서 물어보았다.

“2황녀는 아예 가능성이 없다는 건가?”

“음…… 꼭 그렇다고 할 순 없습니다. 실제로 마법사만으로 이루어진 기사단도 있으니까요. 능력 자체만 따지면 2황녀님도 굉장하신 분입니다.”

어떻게 보면 2황녀의 능력이 정말 대단한 거다.

마법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에센시아 제국에서 실제로 저만한 세력을 일궈낸 셈이라.

적어도 모든 것을 가진 상태로 시작한 1황자보다는.

2황녀 쪽을 훨씬 더 높게 보고 있었다.

물론 2황녀도 아예 제로에서 시작하진 않았겠지만.

황자의 지원을 어느 정도 받았으니 저만한 성과를 이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의 능력을 폄하하거나 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

불가능에서 가능을 만들어낸 그 능력은 진짜일 테니.

솔직히 마음만으로 치면 2황녀에게 살짝 기울긴 했다.

뭐 그렇다고 3황자도 아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지.

3황자 역시도 자신의 힘으로 다른 왕국을 차지한 셈이니까.

굳이 셋 중 하나를 빼자면.

1황자가 빠질 뿐이다.

미래에 에센시아 제국을 말아먹는 전례를 보기도 했고.

“그럼 1황자는 어떻게 생각해?”

사실 1황자에 대한 비에른 백작의 솔직한 평가를 듣고 싶었다.

직접 옆에서 지켜봤을 테니.

그리고 확실한 계승자 중에 하나인 1황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에른 백작은 5황녀인 레오나 에센시아를 지지했다.

그러니까 그가 어떻게 1황자를 평가하는지.

한 번쯤은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음…… 유력한 황제 계승자시죠.”

“그건 이미 알고. 왜 1황자가 아닌 5황녀지? 혹시 1황자에게 무슨 큰 문제가 있나? 성격이라던가 건강이라던가 하는 것 말이야.”

이 질문은.

미래의 성마대전에 대해서 알고 있지 못하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당장 누가 보더라도 1황자는 대단해 보이니까.

압도적인 지지와 세력을 지니고 있는 데다가 본인도 영웅의 무력을 지닌.

그야말로 최고의 황제감이었다.

그런데 내 질문은 그에게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물었다.

잠시 멈칫했던 비에른 백작도 이상한 점이 있는지 내게 되물었다.

“실례되는 질문입니다만. 마치 1황자에게 꼭 무슨 문제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물어보시는군요.”

그 질문에 옆에서 재중이 형이 쓴웃음을 지었다.

<불멸> 흠. 이거. 너무 노골적으로 물어본 건가?

<주호> 그러게요. 이 정도면 눈치 챌 수도 있을까요?

<불멸> 아니야. 어차피 비에른 백작은 에센시아 제국이 망하는 결말을 모르니까. 그저 민감한 질문 정도로 여길 거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표정을 굳히던 비에른 백작이 혹시라도 누가 주변에 듣는 것 마냥 고개를 숙이고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 이전부터 성내에서 1황자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돌기는 했습니다.”

“무슨 소문이지?”

“저도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1황자의 상태가 상당히 이상하다는 소문이 돌더군요.”

“정확하게는 어떤 소문이지?”

“음…… 갑자기 하늘을 보고 혼잣말을 하는 때가 많다고 하더군요. 거기다 요즘 들어 전혀 영문을 모르는 이상한 명령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하고요.”

“그래?”

“하지만 아직까지는 외부로 그런 소문이 흘러나간 적이 없습니다만. 성내에서 쉬쉬하는 정도지. 정확한 소문이 아니기도 합니다.”

하긴 제국의 황제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비밀로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건 비단 황제뿐만 아니라 유력한 황위 계승자들 역시도 마찬가지.

만약 그들에게 일신상의 문제가 있다면 다른 계승자들에게 먹잇감이 되기 충분했다.

당연히 모든 사실을 숨기려 할 터.

특히 방금 비에른 백작이 말한 정도의 건강 상태와 판단 능력이라면.

조금의 헤프닝 정도로 넘길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혼잣말이야 어쩌다 그냥 할 수도 있는 데다가.

윗대가리들이 이상한 명령을 내리는 건.

이미 수도 없이 보지 않았던가.

고작 그런 걸로 트집을 잡았다가는 오히려 역습을 당할 빌미만 쥐어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래의 결과를 너무 잘 알고 있는 내가 보기에는 비에른 백작의 말들에서 이상한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옆에서 재중이 형도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

재중이 형 역시도 미래의 결과를 잘 알고 있으니까.

<불멸> 이거 꽤 수상한데?

<주호> 역시 그렇죠?

<불멸> 먼저 한 번 접촉해보는 게 나으려나?

재중이 형의 제안에 잠시 생각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호> 네. 이상한 점이 딱 보이는데 그냥 넘어가면 찝찝하죠.

<불멸> 그럼 비에른 백작에게 자리를 만들어보라고 해야겠네.

그렇게 결정이 되자 바로 비에른 백작에게 말했다.

“1황자. 지금 만날 수 있을까?”

“음…… 1황자입니까?”

비에른 백작은 아마 우리가 1황자에게 줄을 댈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듯 했다.

“그냥 대화만. 어때?”

그리고 한 가지 먹이를 던져주는 것도 있지 않았다.

“5황녀와 함께 보자고 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