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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402화 (1,402/1,404)

#1402화 마왕을 낚는 방법 (8)

대천사와 천사군이 에센시아 제국에서 마음대로 깽판을 치고 있으니 불편한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어려움을 겪는 이는 다름 아닌 눈앞의 총 방어대장인 비에른 백작이었다.

맡은 일에 비해 직책이 그리 높지도 않은데 상대해야 하는 녀석들은 하나 같이 자신보다 높은 직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 이리저리 치일 수밖에.

당장 에센시아 수도 방위에 필요한 병력을 뜻대로 구성하는 것조차 애를 먹을 정도라.

아마 이대로 시간이 흘렀다면 비에른 백작이 먼저 사표를 던지고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골치덩어리인 천사들을 에센시아 제국 수도에서 치워준다고 말하자 비에른 백작이 내 말을 잘못 들었나 싶어서 두 눈을 껌뻑거렸다.

들어놓고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을 때면.

충분히 보일 만한 반응이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내가 언제 자신 없이 말하는 걸 봤어?”

“아니…… 하지만 아무리 타란 제국이 건재하고 에센시아 제국의 지원군으로 왔다고 하더라도. 천사군을 전부 몰아낼 만큼의 권력을 행사할 수는 없을 겁니다.”

비에른 백작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이었다.

실제로 타란 제국의 힘으로도 천사군을 마음대로 오라 가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특히 타란 제국은 애초에 천사군과 사이가 굉장히 좋지 않았다.

만약 에센시아 제국에서 물러나라고 요청이라도 하면 묵살하거나 되려 성을 낼지도 모른다.

천사들이 굳이 타란 제국의 요구를 들어줄 이유가 없기도 하고.

이건 그냥 설득 자체가 안 된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난 딱히 천사군을 설득할 생각 자체가 없었다.

말을 해도 들어 먹지도 않을 녀석들에게 굽히는 것도 시간 낭비고 쓸데없는 짓이다.

“타란 제국이 왜 그런 쓸데없는 데 힘을 쏟을 거라 생각하지?”

“네? 하지만 분명 타란 제국의 대공이시니…….”

“아. 내가 타란 제국의 대공이 된 건 맞긴 한데. 그렇다고 딱히 타란 제국의 배경을 여기서 쓸 생각은 없어.”

그러자 비에른 백작이 좀 더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로가슈 왕국이라면…….”

애초에 타란 제국도 안 되는데.

로가슈 왕국이라고 해도 별 수 있을까?

그걸 너무 잘 알기에 비에른 백작도 뒷말을 애써 흘렸다.

비에른 백작은 최대한 내가 속한 왕국을 배려해서 한 말일 테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돼. 로가슈 왕국이 타란 제국보다 힘이 부족하다는 건 나도 잘 아니까.”

“네…….”

“그런데 내가 언제 타란 제국이나 로가슈 왕국의 힘을 쓴다고 한 적이 있었나?”

내 말에 비에른 백작이 잠시 우리 대화를 되새기듯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닙니다.”

“그치? 애초에 알아먹지도 않을 녀석들한테 압박을 넣어봤자 소용없어.”

“하면……?”

엄청나게 궁금한 듯한 비에른 백작의 얼굴을 보다가 손을 들어 주변의 비공정들을 가리켰다.

“여기서부터는 쟤들도 들으면 안 되니까. 다 물려.”

“아! 알겠습니다.”

아무리 비에른 백작이 신용을 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들을 신용한다는 건 또 아니니까.

혹여나 쓸데없이 말이 새어나가기라도 하면 귀찮아지는 정도가 아니라.

판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천사군이 비에른 백작 휘하에 있는 녀석들에게도 뭔가 작업을 쳐놨을 수도 있고.

큰일을 앞두고는 최대한 조심하는 편이 좋다.

잠시 후 모든 비공정들이 떨어져 나가자 비에른 백작에게 말했다.

“일단은…… 에센시아의 영웅. 그러니까. 성마대전에 파견 나갔다가 들어온 녀석들 있지?”

“에센시아 제국의 황자와 황녀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 여기 원래 영웅밭이잖아.”

타란 제국도 영웅들이 많긴 한데.

어차피 카샤스 황제가 워낙 강력하다보니 다른 영웅들이 묻힌 감이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에센시아 제국은 고만고만한 영웅들이 제법 많다.

그것도 서로가 엇비슷한 힘을 가진.

황족들.

“1황자와 3황자였던가? 2황녀도 있을 테고.”

전에 전사 형에게 대략적으로 에센시아 제국의 경쟁 구도를 들은 적이 있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분명 그 셋이 삼파전인데.

이제는 그 구도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바로 5황녀인.

레오나 에센시아로 인해.

당장 그녀가 가진 세력은 다른 황자나 황녀에 비해서는 많이 부족하지만.

무력만으로는 절대 뒤지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레오나 에센시아는 성마대전 시대의 최강의 영웅 중에 하나니까.

물론 그때만큼의 힘을 아직 가지진 못했지만.

타란 제국에서 르아 카르테를 각성하면서 정령왕들의 힘을 빌려다 쓸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아직 다른 황자와 황녀들은 그 사실을 까마득하게 모른다고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도 알게 될 터.

그때 레오나 에센시아가 모든 황자와 황녀들을 상대로 힘을 겨루는 건 다소 미련한 짓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조금 양념을 쳐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내 물음에 비에른 백작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황족 중에서는 가장 강력한 영웅들입니다. 차기 황제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위치이기도 하고요.”

거기까지 말이 나오자 비에른 백작을 넌지시 쳐다보면서 물어보았다.

“그래서 우리 총 방어대장은 누구를 밀고 있으려나?”

현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아직은 건재하다고는 하나.

그 나이를 고려해보면 충분히 후계 구도를 고민해볼 만한 상황이기는 했다.

정확하게 모르긴 해도.

에센시아 제국 내에서도 이런 이유로 파벌이 상당히 갈라져 있을 터.

전에 각 기사단이 따르는 황족이 다르다는 말을 전사 형에게 듣기도 했었고.

당연히 제국 내에 고위 관료들과 영웅들 역시 각자의 황족에게 줄을 섰을 확률도 높았다.

눈앞의 이 비에른 백작 역시도 마찬가지.

그 역시 과거 성마대전에서 에센시아의 권력 싸움에서 최종적으로 살아남았으니 역사에 나올 수 있었을 터.

그래서 물어보았다.

과연 비에른 백작은 누구를 미리 차기 황제로 찜해놨을까.

과거대로라면 아마…….

내 질문에 굉장히 난처한 눈빛을 한 비에른 백작이 계속되는 내 집요한 시선에 결국 한숨을 내쉬면서 말을 꺼냈다.

“휴…… 사실 아직입니다.”

“응?”

“그게…… 제가 따를 주군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어?

이건 이상한데?

분명 지금쯤이면 충분히 영웅인 황자나 황녀들 중 하나를 선택했을 거라고 여겼는데.

슬쩍 시선을 돌려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 역시 어깨를 으쓱하면서 웃었다.

<불멸> 원 역사하고는 꽤 많이 꼬였는데?

<주호> 역시 그런 것 같죠?

재중이 형이 비에른 백작을 흘깃 보더니 짧게 평했다.

<불멸> 이 녀석이 총 방어대장까지 하면서도 고전하는 이유를 알겠군. 당장 확실하게 밀어주는 황족이 없으니 이 모양인 거야.

<주호> 그래도 황제가 있지 않아요?

<불멸> 황제가 정말 밀어줄 생각이었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됐을 것 같아?

그 물음에는 바로 고개를 저어 보였다.

<주호> 아뇨. 황제가 비에른 백작에게 정말 힘을 실어줬다면 천사군에게 저렇게 빌빌거리진 않았겠죠.

<불멸> 그래. 아무리 제국 황제가 힘이 빠졌다고 해도 에센시아 제국은 자기 안방이야. 하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방법을 줬을 거다.

결국 이 비에른 백작은 후계 권력 구도에 끼지 못하고 이리저리 치이는 중이라는 건데.

과거의 성마대전과 비교해보면 정말 큰 차이다.

자칫 잘못하다가 통곡의 벽이라 불리던 영웅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으니까.

“황제는 침묵하고?”

“……네.”

“그동안 고생 많이 했겠네.”

내 한 마디에 순간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에센시아 총 방어대장 비에른 백작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으음.

시스템 메시지가 울리는 걸 봐서는 진짜인 모양이었다.

“아니. 한 녀석만 골라서 비호를 받았으면 일이 쉬웠지 않나?”

“그게…….”

순간 옆에서 재중이 형이 한마디 말을 꺼냈다.

“왜? 비에른 백작이 보기에는 차기 황제가 될 만한 자질을 가진 황족이 없었나?”

그런 재중이 형의 말에 비에른 자작의 어깨가 움찔했다.

이거 너무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것도 문제긴 하네.

아직은 젊은 시절의 통곡의 벽이라 그런 건가 싶기도 하고.

“제 입으로 답하기에는 어려운 문제인 점 미리 알려드립니다. 불멸 공작.”

“뭐 그렇다면야.”

그리고는 다시 한 번 물어보았다.

“그렇다고 설마 여기 타란 제국의 대공에게 생각이 있는 건 아니겠고?”

재중이 형의 질문에 비에른 백작이 흘깃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건…….”

“아쉽게도 타란 제국의 대공이 에센시아 제국의 황제가 될 순 없어.”

정말 그런 생각이 있었던 건가?

솔직히 좀 놀란 눈치로 쳐다보자 비에른 백작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리고 딱히 재중이 형의 말이 틀리지 않은 게.

타란 제국의 대공이 에센시아의 황제가 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다른 제국의 대공이 황제가 된다는 건.

에센시아 제국의 직계들을 전부 죽이거나.

혹은…….

그들 중 누군가와 혈연을 맺는 방법 정도일까.

전자는.

실현하기 굉장히 어려운 미션이니 일단 빼더라도.

후자도 뭐 어렵긴 매한가지겠지.

타란 제국의 대공인 내가 혼약을 맺을 만한 위치에 서 있는 건 굳이 뽑자면 2황녀 정도.

만약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이건 내 쪽에서 사양이다.

고작 그런 방식으로 에센시아 제국에 속할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다.

그런데 그때 비에른 백작이 고개를 들더니 뭔가 결심한 듯 꿋꿋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사실. 5황녀인 레오나 에센시아 님이 가장 황제에 어울리는 재목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흐음?”

“하지만…… 아쉽게도 황제가 되진 못할 겁니다.”

비에른 백작의 말을 듣고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도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보는 눈은 정말 좋네. 그러니 그 전쟁에서 끝까지 살아남았던 거려나.”

“정말요.”

나와 재중이 형의 대화를 이해할 리가 없는 비에른 백작이 궁금하다는 듯 쳐다봤지만.

딱히 풀어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비에른 백작이 고른 선택지는.

최고의 선택일 테니까.

어설프게 마음에도 없는 황자나 황녀들을 골라봤자.

결국은 정착하지도 못했을 터.

뭐 과거처럼 레오나 에센시아가 미리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상황에서는 그들이 최선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어떻게 그렇게 생각했지? 5황녀가 활약한 건 그때가 전부였을 텐데?”

내 물음에 비에른 백작의 눈빛이 진지하게 물들었다.

“타란 제국에 있었던 일들을 귀환한 기사단들에게 보고 받았습니다.”

아…….

왜 비에른 백작이 레오나 에센시아를 선택했는지 이제 좀 알겠다.

분명 레오나 에센시아가 르아 카르테를 써서 정령왕의 힘으로 싸우는 걸 지켜본 녀석들이 한둘이 아니었을 터.

적어도 그 자질이 부족하다는 말은 쏙 들어갈 만한 일일 테니까.

무엇보다 제국을 이끌어갈 지휘관으로서의 능력 역시 그 전에 이미 충분히 보여줬었다.

비에른 백작이 다른 황족보다 높은 점수를 주기에는 충분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는 건…….

“이미 황제나 다른 황족들이 전부 알고 있겠네?”

내 물음에 비에른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단의 보고를 받을만한 위치에 있는 이들은 다 알고 있을 겁니다.”

결국 황제와 황족들은 다 안다는 거다.

하지만 카샤스 황제와의 혼인까지 엮여 있으니 쉽사리 건들지는 못할 테고.

반대로 생각해보면.

어차피 출가외인이 될 사람이라 건들지 않는다는 쪽이 더 맞지 않을까.

오히려 타란 제국의 힘을 빌리려면 그녀와 살갑게 지내는 편이 더 나은 선택이라 여길 것이다.

지금 비에른 백작의 표정에 아쉬움이 가득한 건.

아마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겨우 자신이 따를만한 황제의 자질을 가진 이를 찾았는데 말이지.

그런 비에른 백작을 보면서 웃으며 말했다.

“만약 그녀가 황제가 된다면 어떨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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