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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401화 (1,401/1,404)
  • #1401화 마왕을 낚는 방법 (7)

    타란 제국은 전통적으로 폐쇄적인 포지션을 유지하던 국가였다.

    당연히 그동안 천사군에게 국경을 개방한 에센시아 제국을 비롯한 여타 다른 국가들과 다르게 타란 제국은 천사군과 거의 교류 자체도 없었다시피 했고.

    그런 타란 제국을 과연 천사군이 곱게 봤을까? 라고 생각해보면…….

    아마도 아니겠지.

    대륙에서 유일하게 자신들의 말을 들지 않는 타란 제국이.

    그것도 그 제국의 대공이 마왕군 진형에 갔다가 한참 동안 연락두절 되었다.

    천사 녀석들은 타란 제국을 트집 잡을 기회만 노리고 있었을 텐데.

    어떻게 보면 이건 아주 좋은 기회였을 수도 있다.

    혹 그게 아니더라도 재중이 형 말대로 기선제압을 위해 한 번 눌러봤을 수도 있고.

    하지만 천사 녀석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타란 제국의 대공이라는 사실을.

    타란 제국을 철수시킨다는 내 발언에 에센시아 제국 수비군 대장의 동공이 더할 수 없을 만큼 크게 흔들렸다.

    “어…… 그게…….”

    “기껏 필요하다 해서 힘겹게 마왕군 진영까지 들어가 정찰을 하고 왔더니 이런 대접을 하는데 너라면 더 하고 싶겠어?”

    “하지만…… 이건 저희의 결정이…….”

    안다.

    고작 수비군 대장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니까 정 꼬우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새끼를 당장 내 앞으로 데려와.”

    수비군 대장은 이젠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얼굴에서 비 내리듯 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마 잘못 걸렸다고 생각하고 있으려나.

    적당히 맞춰주면서 검사하는 척하고 수도성으로 들여보낼 생각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걸 용인할 만큼 내가 마음이 넓진 않아서 말이지.

    “앞으로 10분 준다. 늦으면 이대로 비공정을 돌려서 에센시아 제국을 벗어나도록 하지.”

    “헉……!”

    자칫 잘못하면 중간에 껴서 자신의 목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리자 수비군 대장이 부랴부랴 자신의 비공정으로 옮겨갔다.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피식 웃어버렸다.

    “꽁지 빠지게 돌아가는데?”

    “늦으면 당장 자기 목이 날아갈 테니까요.”

    감히 수비군 대장 정도가 실수한 일 때문에 타란 제국의 지원이 끊기면.

    그냥 단순히 직위가 날아가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거다.

    정말 목을 걸어야 할지도.

    마왕군이 코앞까지 와 있는데 타란 제국이 발을 뺀다면 당장 그만큼의 손해를 에센시아 제국에서 부담해야 한다.

    “어떤 놈이 올 것 같아?”

    재중이 형이 물어보자 잠시 생각해보다가 몇 명을 추려보았다.

    “일단 에센시아 제국 황제는 절대 올 리가 없을 테죠. 그렇다고 대천사가 직접 오기에는 해놓은 짓이 있으니 가능성이 없고. 뭐 적당히 에센시아 제국의 고위 관리직 중에 하나가 오거나…… 최상급 천사 정도가 와서 머리 숙이는 정도일까요?”

    황제가 직접 오기에는 가오가 상한다.

    그렇다고 대천사가 이 일을 벌여놨는데 여기 나오는 것 자체가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한다는 뜻이 될 테니 절대 나오지 않을 테고.

    그렇다면 역시 적당히 직위가 높고 자신들이 나서지 않아도 될 만큼의 녀석이 올 터.

    재중이 형도 딱히 아니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새로 온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냐?”

    “그럼 그냥 엎어야죠 뭐.”

    벌여놓은 일들이 있긴 한데.

    그렇다고 지금 에센시아 제국 황제와 천사군에 굽히고 들어갔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재중이 형 역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초장에 기를 죽이려고 설치는 녀석들 따위에게 밀릴 순 없지.”

    그러더니 한술 더 떠서 말을 꺼냈다.

    “아예 목을 날려버리는 것도 괜찮겠네.”

    “음…… 그래도 될까요?”

    “어때? 꼬우면 대천사라도 튀어나오겠지. 어차피 타란 제국의 대공이라면 그 정도는 마음대로 해도 돼. 카샤스 황제도 이런 상황이었으면 똑같이 했을걸?”

    “흠. 충분히 그렇죠.”

    아마 카샤스 황제였으면 좀 전의 상황에서 바로 수비군 대장의 목을 날려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유저의 성향이 있는 나와는 달리.

    카샤스 황제는 뼛속까지 황족의 피를 타고난 인물이니까.

    감히 자신을 이런 곳에서 시험하려고 하는 이들을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쉬운 생각과 함께 손이 움찔했다.

    “역시 아까 목을 날려버릴 걸 그랬나 봐요.”

    아쉬움 가득한 내 말투에 재중이 형이 다시 웃어 보였다.

    “이제 좀 대공 같아 보이네.”

    “하하.”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급하게 되돌아갔던 비공정이 다른 비공정으로 바뀌어서 날아 오는데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 비공정에 올라탄 인물은 꽤나 눈에 익은 인물이었다.

    그 녀석은 바로 우리 비공정으로 넘어온 뒤 한쪽 무릎을 꿇더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

    “제국성 총 방어대장 비에른 백작이 타란 제국의 대공을 뵙습니다.”

    비에른 백작.

    이전에 우리를 도와 에센시아 제국을 지킨.

    그리고 미래의 통곡의 벽이라 불리는 비에른 공작이 되는 인물.

    그런 그가 직접 나를 마중 나온 것이다.

    “오랜만이군?”

    “네. 전에 오셨을 때는 제국성의 상황이 너무 급하게 돌아가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흔히 군신의 예는 자신이 소속된 황족에게 바쳐야 하는 게 맞겠지만.

    이 비에른 백작은 그런 관례를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했다.

    지금도 꿋꿋하게 무릎을 굽히고 내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주군이 나인 것 마냥.

    “이거 다른 녀석들이 보면 곤란한 거 아냐?”

    그러면서 옆에 붙은 비공정을 쳐다보자 비에른 백작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저들 모두 그때 주호 대공님께 목숨을 빚진 녀석들입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흐음. 그래?”

    에센시아 제국을 구할 당시에 살아남은 녀석들인 모양인데.

    용케 비에른 백작이 그들 위주로 군대를 다시 꾸린 듯 했다.

    옆에서 재중이 형이 웃음 지었다.

    <불멸> 능력 있네. 벌써부터 자기 군대를 만들어놓고.

    <주호> 그러게요.

    <불멸> 확실히 통곡의 벽은 통곡의 벽이려나.

    곧 비에른 백작을 일으켜 세우자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바로 왔어야 하는 건데.”

    에센시아 제국성 총 방어대장이라.

    단순 직책만으로 보면 타란 제국의 대공을 맞이하기에 그렇게까지 나쁜 그림은 아니었다.

    뭐 대공이라는 이름값에는 좀 밀리는 그림이기는 해도.

    어쨌든 타국의 사절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느낌은 나니까.

    “적어도 다음에 올 녀석의 목은 안 쳐도 되니 다행인 건가?”

    내가 웃으면서 대답하자 비에른 백작이 더욱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천사군 녀석들이 중간에 손을 쓴 모양입니다.”

    “흐음. 아무리 그래도 에센시아 제국의 방어군까지 손댈 수 있었던가?”

    “제가 총 연합 회의에 불려 간 동안 몇몇 지휘관 녀석들이 잘못된 오더를 받은 것 같습니다. 지금 빠르게 조사 중이고 책임지고 전부 목을 날리겠습니다.”

    “그건 과연 어떠려나?”

    “네?”

    “만약 황제가 사주했다면? 황제의 목까지도 날릴 수 있어?”

    “……음.”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내 입에서 언급되자 비에른 백작이 바로 인상을 썼다.

    그리고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답했다.

    “황제…… 까지는 힘들겠죠.”

    “뭐 그럼 됐어. 적당히 조사하는 척하고 끝내. 어차피 그리 중요한 일도 아니니까.”

    괜히 여기서 비에른 백작이 들쑤시고 다니다가 에센시아 황제의 눈 밖에 나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아직 이 녀석은 날 위해 해줘야 하는 일이 많다.

    통곡의 벽이 될 미래를 위해서도 그렇고.

    “하면 그렇게 지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상황 좀 들어보자. 지금 에센시아 제국이 어떻게 돌아가는 중이지?”

    사장님을 에센시아 제국에 남겨놓고 가긴 했지만.

    에센시아 제국 내부의 일까지 전부 알기는 불가능했다.

    특히 천사군과 같은 일들은 직접 제국성에서 활동하지 않는 이상에서야.

    “얼마 전 천사군이 에센시아 제국 국경을 넘겠다고 통보한 뒤 바로 제국성까지 들어왔습니다.”

    “일방적인 통보인가?”

    “네. 정확한 연유는 모르겠지만. 황제께서는 천사군에 딱히 파병 지원을 요청하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천사군 녀석들이 정식적인 요청도 없는데 마음대로 왔다 이거군? 하지만 지금은 천사군의 손을 황제가 들어주고 있는 것 같은데?”

    “거기까진 잘…… 중간에 어떤 거래가 오갔는지까지는 방어대장의 직책으로는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이건 확실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정에 관련된 일에 굳이 총 방어대장이 낄 이유는 없으니까.

    물론 그게 수도성 방어에 관련된 일이라면 정보가 들어왔겠지만.

    에센시아 제국 황제와 대천사들의 밀담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둘 정도이려나?

    뭔가를 주고 받았거나?

    아니면 둘 다 이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던가…….

    “어쩌면 둘 다 쿵짝이 맞아서 그랬을 수도 있고.”

    “네?”

    “아니야. 그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천사군이 제국성에 들어왔다는 건 수도 방위에도 문제가 생겼을 텐데?”

    내 물음에 비에른 백작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현재 천사군과 왕국들의 연합군들로 인해 대폭 늘어난 병력으로 인해 수도성 전체가 꽤나 어수선한 분위기입니다. 그 때문에 저도 총 연합 회의에 불려갔던 겁니다.”

    “수도 방위를 위한 병력 구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국군만으로 방어를 하던 체계를 천사군과 연합군과 나누거나 증편시켜야 해서…….”

    당장 마왕군이 수도성을 향해 진군하면 제국군만이 아니라 천사군과 연합군이 전부 나서야 한다.

    그렇다면 그 수도 방어의 총괄 책임자인 비에른 백작이 모든 과정들을 처리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쉽게 될까?

    “뭐 제국군은 그렇다 치고…… 천사군과 연합군은 내 명령을 듣지 않을 텐데?”

    어쩌면 왕국의 연합군까지야 어떻게든 제국의 힘으로 누를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에센시아 제국이 그만한 힘은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천사군은 상황이 아예 달랐다.

    내 말에 비에른 백작이 크게 한숨을 쉬어 보였다.

    “휴.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입니다.”

    “역시 말 안 듣지?”

    “네. 마치 회의실을 보신 것 마냥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군요. 사실 총 연합 회의에서 천사군의 방어대장과 멱살까지 잡을 뻔 했습니다. 이쪽 말을 아예 무시하는 수준입니다.”

    안 봐도 뻔하다.

    천사군이 에센시아 제국에게 굳이 허리를 숙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것도 자신들의 병력 지휘를 제국의 방어대장에게 맡긴다?

    이건 대천사들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어?”

    “휴. 어쩔 수 없이 천사군은 단독 방어 체계를 하는 쪽으로 어떻게든 합의를 보긴 했습니다만…….”

    “미치겠네?”

    “하아…….”

    자기네 안방에 다른 군단의 병력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는데.

    그 병력들이 이쪽 방어대장의 말을 씨알도 들어먹지 않는다?

    칼을 든 깡패들이 안방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개떼처럼 몰려다니는데 막을 수 없다라…….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다.

    “안 그래도 매번 천사군과 날을 세우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언제 한 번 크게 터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황족님들도 한껏 벼르다고 계십니다.”

    “그래?”

    “네. 이곳은 자신들의 안방이니까요. 천사군들이 마음대로 설치는 걸 두고 볼만큼 얌전하신 분들은 황족 중에 없습니다.”

    옆에서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웃었다.

    <불멸> 상황이 꽤 재밌게 돌아가네.

    <주호> 그러게요. 알아서 깽판을 쳐주네요.

    <불멸> 어때? 민원 처리 좀 해줘야겠지?

    재중이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쯤에서 도움을 좀 줘야 하려나.

    곧 비에른 백작을 보면서 한 가지 제안을 꺼냈다.

    “그 천사 녀석들. 내가 수도성에서 싹 치워주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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