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화 마왕을 낚는 방법 (6)
타란 제국 수도성 지하에서 키메라를 만들어냈던 대천사.
그때 당시에는 더미로 된 형체밖에 보지 못했지만.
아마 본체가 눈앞에 있다면 대략적으로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 에센시아 제국에 지원 나온 대천사들 중 그 녀석이 섞여 있을 확률도 아주 배제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마왕 헤르게니아가 그 대천사를 언급했을 테고.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었다.
만약 그 대천사가 에센시아 제국에 정말 왔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 녀석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따로 자리를 만들어 준다면 또 모를까.
뭐 이것도 정말로 왔다는 가정하에 일어날 일이지만.
“그 대천사 이름이 어떻게 돼?”
“으……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도 불쾌하네.”
단지 이름만 언급했는데도 정말 질색하는 표정을 짓는 마왕 헤르게니아를 보니 아주 절절하게 싫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년 이름은 아그네스야.”
“아그네스라…… 일단은 알았어. 혹시라도 만나지 못하더라도 이름을 알고 있으면 어떻게든 확인은 해볼 수 있을 거다.”
대천사를 만나주지 않는데 억지로 자리를 만들어달라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하게 보일 터.
하지만 단순히 에센시아 제국에 그 아그네스란 대천사가 입성했는지 안 했는지 정도는 이름만으로 확인이 가능할 것이다.
그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거고.
굳이 만날 필요까지는 없겠지…….
무엇보다 그 대천사 아그네스가 마왕 헤르게니아와 함께 있던 내 모습을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는 마왕의 플레이트를 쓰고 있었던 데다가 모든 관심이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가 있어서 날 기억하고 있을지 확실하진 않았다.
뭐 위험한 상황이 생길 여지는 애초에 만들지 않는 게 맞긴 하니까.
꼭 만나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가급적이면 직접 마주치는 상황은 피할 생각이다.
그러다 잠깐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대천사 아그네스가 직접 왔다면. 헤르마늄 광산으로 유인했을 때 같이 잡을 생각이냐?”
“흐응…… 그건 어쩔까나.”
그러면서 마왕 헤르게니아가 마왕 케만 쪽을 쳐다보았다.
자신이 나서지 않더라도 마왕 케만이 충분히 잡을 상황이라면.
애써 나서지 않는 게 맞겠지만.
분풀이를 위해서 직접 전투를 할 상황도 배제할 수 없었다.
“어차피 그전에는 올 거잖아?”
“뭐 그렇지.”
“그럼 그때 가서 봐. 마음 같아서는 직접 목을 비틀어주고 싶지만.”
그리고는 잠시 말을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마…… 내 생각대로라면 이곳에는 안 왔을 거야. 그년은 남을 앞에 내세우고 뒤로 빠지는 유형이라서.”
“그런가?”
“응, 전에도 다른 대천사들이 다 나서고 난 뒤에야 마지막에 모습을 드러냈거든.”
“그럼 볼 일은 없겠네.”
“하지만 만약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또 모르지.”
“나중에라도 올 수 있다는 거네?”
“응. 그러니까 확인은 해봐야 해.”
“알았다. 친히 목을 비틀 수 있게 딱 묶어서 대령하마.”
내 농담 섞인 말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환하게 미소 지었다.
“정말 웃기지도 않지만. 그 정성은 받아줄게.”
방금 그 말로 마왕 헤르게니아의 마음이 상당히 풀린 모양이었다.
그보다 대천사 아그네스라…….
분명히 그녀가 대천사들의 비밀 무기인 부유 도시를 만들었다고 했던가.
혼자서 다 만들었을 리는 없지만.
어쨌든 그만한 능력은 있다는 거니까.
잡을 수만 있다면.
혹은 다른 방식으로라도 대천사 아그네스를 빼낼 수 있다면 그것도 꽤 괜찮은 일일 것이다.
뭐 마왕 헤르게니아는 질색하겠지만.
“그래. 그럼 저 마왕들 무기 잘 고쳐주고. 타란 제국에서 할 일은 잊지 않았겠지?”
“응. 최신 레시피들 다 챙겨 놓을게.”
마왕 헤르게니아를 굳이 이곳에 남기고 가는 이유 중 하나는.
그녀가 이곳에 남아 있으면 마왕군 최신 무구들의 정보를 업데이트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곧 마왕군에게 무구를 팔아먹으려면.
마왕 헤르게니아가가 만들 수 있는 무구의 레시피가 훨씬 더 늘어나야 한다.
그렇게 그녀를 놔두고 성 밖으로 나오자 재중이 형이 말했다.
“어째 어린 애 하나 달랑 남겨놓고 가는 기분인데?”
“역시 좀 그렇죠?”
수백 년 먹은 마왕인데도 불구하고.
매번 옆에 붙어 다니다가 떼어놓고 가려니 괜히 마음이 걸린다.
마왕 헤르게니아를 노리는 녀석들도 많고.
곧 재중이 형이 팔짱을 끼면서 괜찮다는 듯 말했다.
“여기서 저 녀석을 건들만한 배짱이 있는 놈은 없어 보이니까 괜찮겠지.”
“하긴. 마왕의 무구를 수선할 수 있는 능력이라니. 특수하긴 하죠.”
오기 전까지는 젼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마왕 헤르게니아의 값어치가 상상도 못 할 만큼 올라가 버렸다.
“조만간 다른 마왕들이 몰려들 수도 있겠어. 이미 마왕군 내에 헤르게니아에 대한 소문이 다 퍼진 모양이니.”
“충분히 가능성 있죠.”
어째 타란 제국으로 다시 데리고 가는 일이 어려워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긴 했다.
“일단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죠.”
“그래.”
성에서 나오자 챠밍을 비롯한 우리 팀이 모두 대기 중이었다.
“전사. 바로 비공정 띄워. 에센시아 제국으로 돌아간다.”
“흠. 슬슬 되돌아갈 때도 됐군요. 정찰을 나왔다가 거의 행방불명 된 수준이니까요.”
전사 형 말이 틀린 게 아닌 게.
우리가 마왕군의 영역으로 정찰을 한다고 넘어온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중간에 보고한 적도 없었고.
어쩌면 이미 우리가 다 죽었다 여길지도 모르겠는데.
“괜히 의심 사지 않으려면 돌아가 봐야지.”
곧 모두 비공정에 올라탔고.
에센시아 제국 북부에 들어올 때와 달리 나갈 때는 마왕군 정찰병들의 친절한 호위를 받으면서 나갈 수 있었다.
우리 옆을 편대로 날아가는 마왕군 정찰군들을 본 나르샤 누나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이러면 꼭 우리가 마왕군의 간부가 된 것 같잖아?”
“음…… 딱히 틀린 말이 아니라서 더 웃기네요.”
이곳의 최고 관리자인 마왕 하킨과 독대할 수 있는 위치인데.
정찰병들이 깍듯하게 대할 수밖에 없을 터.
마왕군에 들어올 때와 나갈 때의 우리 위치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렇게 에센시아 제국 북부를 벗어나자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암흑 지대에서 벗어나셨습니다. 》
《 암흑 지대로 인한 디버프에서 해제됩니다. 》
지금에 와서는 암흑 지대에 대한 패널티가 그렇게까지 부담스럽진 않았지만.
그래도 없는 편이 우리가 활동하기에는 좀 더 편하긴 했다.
비공정을 계속 몰고 남쪽으로 향하자 곧 에센시아 제국의 경계 병력들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비공정을 보자마자 바로 부산하게 날아가는 걸 보면.
꽤나 놀란 것 같기도 하고.
그 모습을 본 전사 형이 혀를 차며 말했다.
“부랴부랴 보고하러 가는 모양입니다.”
“그러게요. 우리가 죽은 줄 알았을 테니까.”
얼마나 더 비행해서 갔을까.
에센시아 제국 수도성이 보일 때쯤.
우리 주변으로 에센시아 제국의 비공정 몇 대가 접근해 오더니 우리를 포위하듯 주변을 에워쌌다.
- 아! 들리나?!
안 들릴 리가 있나.
그런데 정찰병으로 보이는 녀석들이 의외의 말을 했다.
- 귀하의 비공정은 현재 에센시아 제국성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리고는 우리를 포위한 모든 비공정의 주포가 열리면서 우리 쪽으로 방향을 맞췄다.
언제라도 우리 비공정을 격추시킬 수 있도록.
그러자 전사 형이 하울링 스킬로 크게 외쳤다.
- 이게 대체 무슨 짓이지?
- 비공정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신분 확인을 해야겠다. 그전에는 수도성에 접근할 수 없다.
- 하. 기껏 힘들게 마왕군을 정찰하고 왔더니. 이런 대우가 말이 되나? 그리고 여기 타고 있는 게 누군지 잊은 건 아니겠지?
- 절차상 어쩔 수 없다. 현재 에센시아 제국에 천사군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천사군?
이미 에센시아 제국에 들어온 건가?
도착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고 있긴 했는데 우리 예상보다 훨씬 빨리 온 듯 했다.
거기다 그런 천사군들 때문에 우리를 붙잡아 놓는다라…….
이건 에센시아 제국군이 단독으로 결정한 행동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천사군의 입김이 들어간 확률이 높겠지?
옆에서 전사 형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할 거냐?”
“으음. 일단은 해달라는 대로 해주죠. 이대로 돌아가면 우리 목적을 달성하긴 힘드니까요.”
“정말 귀찮게 하네.”
전사 형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고.
이건 우리 팀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딱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내가 타란 제국의 대공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한다는 건.
당장 누가 온다고 하더라도 같은 입장을 취할 테니까.
곧 에센시아 제국군의 비공정이 우리 옆에 붙더니 수비군의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이 우리 비공정으로 올라탔다.
먼저 날 발견하고는 살짝 허리를 숙여 보였다.
슬쩍 눈치를 보는 것으로 봐서는 확실히 나임을 알고도 막아선 것이다.
“주호 대공께 불편함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에센시아 제국 수비군 제 3 정찰대 대장이 인사 올립니다.”
다소 불쾌함을 드러냄과 함께 손을 들어 올리자 수비군 대장이 고개를 들었다.
“이게 무슨 개 같은 경우지? 마왕군의 영역까지 들어가서 고생해가며 정찰한 우리를 붙잡다니.”
“아…… 죄송합니다. 천사군에서 검문을 엄격히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와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그걸 허락했다고?”
“……일단은 그렇습니다만.”
이건 누가 봐도 월권인데.
아무리 천사군이라고 하더라도 남의 제국에 이래라저래라 할 만한 위치는 아니다.
물론 에센시아 제국이 친 천사군 성향이 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천사군이 요청한 일들을 모두 받아준다는 얘기는 또 아니니까.
특히 수도 방어군에 대한 명령까지 바꿀 정도라면.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천사군에게 상당한 양보를 했다고 봐야 한다.
<주호> 어떻게 봐요?
<불멸> 흠. 에센시아 황제가 천사군에게 파병을 부탁하는 입장이라면…… 아주 못 할 요청은 아니지.
<주호> 설마 수도성 안에서도 이러는 건 아니겠죠?
<불멸> 그거야 들어가 보면 알겠지. 얼마나 천사군들이 내정에 간섭하고 있는지는.
“그럼 신분 확인은 된 건가? 이제 수도로 들어가면 되겠군.”
길을 트라는 식으로 말을 하자 곧 수비군 대장의 이마에서 땀이 막 쏟아져 내렸다.
당황함을 감추지 못한 채로.
“음…… 그게 사실은…… 천사군들이 직접 확인하겠답니다.”
“아주 미치겠군.”
“정말 죄송합니다.”
그때 옆에서 전사 형이 한마디를 거들었다.
“감히 타란 제국의 대공이자 로가슈 왕자의 신분 확인을 하는 것도 모자라 재차 검사를 하겠다고? 그것도 에센시아 제국군이 아닌 천사군이?”
“윽……!”
“우리를 지금 마왕군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이 무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전사 형이 대놓고 까기 시작하자 수비군 대장이 안절부절하지 못 하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댔다.
그도 그럴 것이 이쪽은 타란 제국의 대공이자 지원군인데.
그걸 천사군이 조사하겠다고 나선 셈이라.
중간에 끼인 수비군 대장만 난처하게 된 상황이었다.
에센시아 제국의 수비군 대장 정도면 그 위치가 절대 낮지 않지만.
그것도 위치 나름이다.
양쪽으로 타란 제국과 천사군이 끼어 있다면 중간에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을 테니.
그때 재중이 형이 내게 말했다.
<불멸> 아무래도 천사군 이것들이 초장부터 기선 제압하려고 수를 쓰는 모양인데? 일단 넌 타란 제국의 대공이니까.
<주호> 고작 이걸로요?
<불멸> 우릴 잡아둔다면 자신들이 마음대로 타란 제국을 휘두를 수 있다고 보여주는 셈일 테니.
그 말을 듣고는 저절로 입가가 올라갔다.
이것들이 시작도 전에 신경전부터 해보자는 건가?
<주호> 그럼 그 생각이 한참 잘 못 됐다는 걸 보여줘야겠네요.
<불멸> 어떻게 하게?
<주호> 한 번 보세요.
그리고는 바로 수비군 대장에게 엄포를 놓았다.
“가서 전해. 타란 제국 대공이 짜증나서 지원군 그만둔다고.”
“에…… 그게 무슨?”
“타란 제국은 이 시간부로 에센시아 제국에서 철수할 테니. 알아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