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9화 마왕을 낚는 방법 (5)
현 성마대전 시대에서 마왕군의 최상위 포식자는 서열 1위 마왕 데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마왕 데칸도 성마대전이 진행되면서 어느 순간 죽어버렸다.
문제는 이 녀석이 누구에게 죽는지.
어떤 전투에서 죽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혹은 어느 시점의 전투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죽었을 수도 있고.
또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자리를 다른 마왕 녀석에게 물려주었을 수도 있겠지만.
확률상 이건 거의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낮은 확률이라.
애초에 마왕이라는 녀석들이 자신의 자리를 다른 녀석에게 물려준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그 자리가 마계 최고의 자리라면 더욱 그럴 테고.
그렇다는 건.
결국 누군가에게 죽었다는 가정이 가장 설득력이 있었다.
같은 마왕에게 밀려서 죽었던가.
아니면 대천사들에게 죽었던가.
아마 이 둘 중에 하나겠지.
만약 전투 중에 대천사에게 죽었다면 어차피 다른 마왕 녀석들의 서열이 자동으로 올라갈 테고.
자연스럽게 다른 문제가 생겨난다.
원래의 마계 서열 2위가 마왕 아이셔스.
그렇다는 건 자동적으로 그녀가 마계 서열 1위로 올라섰을 텐데…….
성마대전 역사에는 마왕 아이셔스가 서열 1위였다는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의 정보가 부족해서 못 찾았을 수도 있겠지만.
이쪽은 역시 이상해.
반대로 현 서열 1위 마왕 데칸이 다른 마왕에게 죽었을 경우의 수가 있었다.
이때는 그냥 그 마왕이 서열 1위가 될 테니까.
그리고 이건 우리가 잘 아는 사실 중 하나였다.
미래 시대 마계의 왕.
마왕 바이카르.
다음 대 서열 1위인 마왕 바이카르를 알고 있기에.
중간 과정을 건너뛰더라도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현재의 마왕들에게 물어보았다.
혹 마왕 바이카르를 아는지.
하지만 우리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전혀 아니었다.
먼저 마왕 하킨이 의문 가득한 눈빛으로 내게 되물었다.
“바이카르?”
응?
반응이 이상하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마왕 케만을 보자 이 녀석 역시도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그게 누구지?”
그러더니 마왕 케만이 마왕 하킨에게 물었다.
“너 바이카르라는 녀석에 대해 아는 거 있냐?”
“아니. 전혀. 처음 들어본다.”
순간 나와 재중이 형의 시선이 중간에서 마주쳤다.
<주호> 형, 이 녀석들. 마왕 바이카르를 전혀 모르는데요?
<불멸> 그러게.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아무리 무명이라고 해도 마왕 정도는 되어야 서열 1위에 올라설 자격이 있을 텐데.
재중이 형 말대로 현재의 성마대전 시대에 마왕 서열 끝자락이라도 쥐고 있어야 서열 1위에 올라설 만한 자격이 된다.
그런데 두 녀석의 말만 들어보면 마왕 자리에 마왕 바이카르의 이름 자체가 없었다.
<주호> 혹시 중간에 이름을 바꾼 게 아닐까요?
<불멸> 흠. 그런 경우도 배제할 순 없겠네.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도 정도가 있지.
고작 최상급 마족 수준으로 모든 마왕들을 씹어 먹고 서열 1위에 오른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물론 성마대전 시대에 수많은 마왕들이 죽어 나가니까 중간에 공백이 생긴 빈자리를 채운다고 마왕에 올라서는 녀석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런 녀석들 중에서 서열 1위에 오르는 녀석이 있다는 건 쉽게 생각하기 힘들었다.
<불멸> 혹은 누군가 마왕 바이카르가 성장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팍팍 밀어주는 경우도 있을 테지.
<주호> 으음. 다른 마왕이 대놓고 키워주면 그것도 가능성이 있겠네요.
아무것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야.
우수한 조력자가 있는 게 훨씬 가능성 높을 것이다.
<불멸> 아무튼 현 마왕 중에는 바이카르가 없다 이거지…….
그러더니 재중이 형이 내게 다시 물었다.
<불멸> 그런데 마왕 바이카르는 찾아서 뭐하려고?
재중이 형이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걸 보면 내 속을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는 듯 했다.
<주호> 음. 그냥 좀 궁금해서요. 현재의 마왕 바이카르는 과연 어느 수준일지요.
그냥 미래에 강력한 마왕이 과거에 얼마만큼의 위치에 있었는지.
그리고 지금도 똑같이 강했었는지 그게 궁금했었다.
하지만 두 마왕의 말만 들어보면 그걸 알 방법 자체가 없어 보였다.
곧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불멸> 그럼 현 시대의 마왕 바이카르를 찾아보는 일도 꽤 재미있겠네. 혹시라도 마왕에도 못 올라 빌빌거리고 있으면 키워보는 것도 재밌을 테고.
<주호> 하하…….
솔직히 그렇게까지 마왕 바이카르를 찾아 키워주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재중이 형 말대로 나름 재미있을 것 같기도 했다.
정말 찾아낼 수만 있다면.
<주호> 일단 이번 일을 끝내고 천천히 찾아보죠.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 이상 결국은 마왕으로 올라올 테니까요.
<불멸> 그래. 일단은 급한 불부터 꺼야지.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두 마왕 쪽을 쳐다봤다.
확실히 이쪽을 처리해야 그 다음이 있다.
아.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마왕 헤르게니아에게도 물어봤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지금 저기 굴러다니는 마왕들도 다 모르는데?”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봉인된 지 오래되어서 외부의 상황을 오히려 더 모르겠지.
그런데 그녀의 이어지는 다음 질문은 꽤 날카로웠다.
“왜? 그런 마왕이 꼭 있어야 하는 거야?”
“아뇨. 사실 마왕인지도 잘 몰라요. 그냥 예전에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어서.”
“흐응. 뭔가 엄청나게 수상한데?”
마왕 헤르게니아가 날 빤히 쳐다보자 슬쩍 고개를 돌려 그 시선을 피했다.
계속해서 시선을 피하자 그녀도 김이 빠졌는지 두 손을 들었다.
“됐어. 나중에 말해줄 거지?”
“으음. 네. 괜찮은 상황이 되면요.”
미래의 마계 서열 1위를 과거의 그녀에게 말해주는 게 과연 맞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리고 어쩌면 인식 자체를 못할 수도 있었다.
그녀가 특수한 존재이긴 해도 성마대전의 룰에서 벗어나긴 힘들 테니까.
다시 마왕 하킨과 마왕 케만을 보면서 말했다.
“마왕 서열에 없으면 됐습니다. 딱히 중요한 인물도 아니고요.”
이 녀석들에게는 이 정도 설명이면 될 것이다.
혹 나중에 생각이 나서 발견하면 그때 다시 알아봐도 될 테니까.
“아, 그럼 다시 일 이야기를 하도록 하죠. 일단은 우린 에센시아 제국으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내 말에 마왕 하킨과 마왕 케만 모두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에센시아 제국에?”
“네. 대천사들의 동향도 살펴봐야 하고. 무엇보다 에센시아 제국에 밑밥을 좀 뿌려두고 와야 하거든요.”
“그게 무슨 뜻이지?”
마왕 케만의 질문에 옆의 마왕 헤르게니아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대천사의 봉인에서 풀려났다는 걸 대천사들에게 알려줘야 하거든요. 정확히 말하자면 에센시아 제국을 통해 소문을 퍼트릴 겁니다. 우리가 드러나지 않게 조심해서요.”
“흠……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네. 그래야 대천사들이 헤르마늄 광산을 차지할 명분이 생깁니다. 아무리 대천사들이라고 해도 동맹인 에센시아 제국을 대놓고 무시하면서까지 헤르마늄 광산을 차지할 순 없으니까요.”
거기까지 설명을 하자 마왕 케만도 이해를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헤르마늄 광산을 조사할 수 있는 명분이겠군. 대천사의 봉인이 풀려 마왕 헤르게니아가 풀려났으니까.”
“정확합니다.”
그러면서 마왕 케만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이렇게 해야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천사군과 에센시아 제국군이 서로 갈라서게 될 겁니다.”
내 설명에 마왕 케만이 놀랍다는 눈빛으로 박장대소했다.
“크크. 재밌군. 재밌어.”
그러더니 마왕 하킨을 보면서 말했다.
“우리 애들 중에서 얘만큼 머리 쓰는 애들이 있었나?”
《 마왕 케만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마왕 케만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마왕 케만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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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케만의 감탄이 섞인 질문에 마왕 하킨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괜히 그녀가 이곳에 데리고 온 게 아니겠지.”
《 마왕 하킨과의 친밀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
이미 마왕 하킨은 내게 들은 정보를 알고 있어서 그런지 친밀도가 크게 오르진 않았다.
이미 전에 오를 만큼 올랐으니까.
“전에 천사군과 에센시아 제국군이 갈라서는 것을 지켜보고 움직이라고 했었지?”
“분명 그렇게 말하긴 했었죠.”
“크크. 지금 보니 그만큼 자신이 있었군.”
마왕 케만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한데.
딱히 그런 점은 상관없는 듯 했다.
만약 그랬다면 친밀도가 확 깎였을 텐데 말이지.
그보다는 확실하게 천사군을 끌어낼 방법이 있다는데 훨씬 높은 점수를 준 모양이었다.
“좋아. 칼춤을 춰줘야 한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자신을 선택한 것이 괜찮은 판단이었다고 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 보네.
“그럼. 두 분 마왕님들은 서로 이야기 나누시죠. 각 마왕군을 차질 없이 준비하려면 꽤 바쁜 시간이 될 테니까요.”
그러자 마왕 하킨이 내게 물었다.
“바로 에센시아 제국으로 떠나는 건가?”
“네. 지금쯤 되돌아가야 얼추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겁니다. 대천사들의 천사군이 에센시아 제국 국경을 넘은 지 좀 됐으니까 아마 거의 도착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흠. 그럼 마왕 헤르게니아도 같이?”
그런 마왕 하킨의 질문에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대천사가 근처에 있으면 들킬 확률은 얼마나 돼요?”
“트랜스 상태 말이지?”
“네. 만약 대천사가 보자마자 들킬 것 같으면…….”
그녀가 정체를 숨기는 마법을 쓰더라도 정체를 들킨다면 에센시아 제국에 데리고 가는 건 마이너스다.
당장 마왕이 에센시아 제국 한복판에 나타난 셈이라.
거기다 대천사들과 천사들이 우글거리는 장소에 그녀를 데리고 갔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결국 말을 꺼냈다.
“흐음. 역시 좀 그렇네. 아쉽지만 난 이곳에 남는 게 맞겠어.”
아무래도 그녀도 자신의 상태에 그렇게까지 확신은 없는 듯 했다.
만약 들키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다면 그녀의 성격상 전혀 개의치 않았을 텐데.
역시 대천사를 대상으로 속이는 건 꽤 어려운 모양이었다.
곧 마왕 헤르게니아가 마왕 하킨과 마왕 케만을 보고는 말했다.
“그리고 얘들. 조만간 대천사 애들하고 대판 붙어야 하잖아. 저렇게 맛이 간 무기를 들고 싸우는 건 어려울 거야. 혹 재수 없게 싸우다가 무기가 부러지기라도 해봐. 대천사 애들한테 얼마나 우습게 보이겠어.”
아무래도 마왕 헤르게니아는 같은 마왕들이 대천사들에게 꿀리는 상황 자체가 싫은 모양이었다.
거기다 자신을 긴 시간 봉인하는데 일조한 대천사들의 목을 날릴 수 있다는데.
안 도와줄 이유도 없을 테고.
그러자 두 마왕들도 기꺼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흠흠. 그럼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안 그래도 이가 나가려고 해서 싸울 때마다 얼마나 불안한지…….”
“고쳐주시기만 하면 대천사들의 목을 바치도록 하죠.”
아마 저들끼리 시스템 메시지가 있었다면 친밀도가 마구 올라가고 있지 않을까.
그녀 말대로 마왕들의 지원을 위해서라도 두고 가는 편이 나겠네.
“그럼 갔다 와서 봐. 아마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그런데 마왕 헤르게니아가 내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그렇게 가까이 가자 내 귓가에 대고 한마디 했다.
“대천사 중에 전에 그년이 와 있는지 꼭 확인해 봐. 알았지?”
누군지 잠시 생각해보다가 타란 제국에서 봤던 그 대천사가 떠올랐다.
“그때 그 더미?”
“응. 혹시 왔으면 내 손으로 그 목을 확 비틀어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