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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98화 (1,398/1,404)

#1398화 마왕을 낚는 방법 (4)

마계의 서열을 결정하는 건 역시나 그 마왕의 강력함이다.

아무리 다른 조건들이 좋다고 해도.

결국 마왕과 마왕 사이의 전투에서 서열이 결정되는 거니까.

다른 마왕을 이기려면 보다 강한 능력은 필수.

하지만 성마대전 시대에서는 그 조건들이 조금 달라지는 듯 했다.

같은 진영의 마왕끼리 죽자고 싸우는 상황 자체가 없을 테니.

서로 싸우다가 죽기라도 하면 결국 그건 남 좋은 일만 시키는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서열 싸움을 하지 않는 건 아닐 테지만.

마왕 하킨 말대로 대놓고 서열 싸움을 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그렇다면 결국 다른 방법으로 서열을 대신하는 수밖에 없을 테고.

그중 가장 눈에 띄게 겉으로 보이는 건.

아마도 그 마왕의 금력이 아닐까.

“돈으로 서열을 만든다라…… 아주 틀린 말은 아니군.”

마왕 하킨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이게 정답인 듯 했다.

이곳도 그렇겠지만.

마계 역시 돈이 없으면 죽도 밥도 안 된다.

그리고 난 그걸 예전에 몸으로 직접 겪어 봐서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마왕 벨라의 마왕성이 거미줄 친 것마냥 아무 것도 없을 때.

그 마왕성 한 번 살려보겠다고 얼마나 열심히 했었던가.

당장 돈이 없으니 마왕성에 병력 배치는 고사하고 마왕성의 외벽 수리조차 불가능하던 때가 있었지.

없는 살림에 타르 광산을 구한다고 경매장을 들락거리기도 했고.

유저들을 유치해서 마왕성에 돈이 돌게끔 했었다.

아마 그때 내가 아니었다면 마왕 벨라의 마왕성은 그대로 폭삭 주저앉았을 터.

뭐 결국 중간에 쓰러진 바람에 내가 빠지면서 망하긴 했지만.

그만큼 마왕성이라는 게 돈이 들어가는 괴물이라는 뜻이었다.

병력 유지와 무구에 들어가는 돈까지 치면.

어지간한 능력으로는 마왕성을 유지하지 못 한다.

만약 마왕 벨라가 풍족한 자금만 지니고 있었다면.

마계 서열이 그보다는 훨씬 높지 않았을까.

본신의 전투 능력만으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서열을 유지했었으니.

그리고 이건 지금의 눈앞의 마왕들도 크게 다를 건 없을 것이다.

마왕 하킨이나 마왕 케만도 그들에게 자금이 있으니 저만한 군단을 유지하고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었다.

반대로 돈이 없다면?

이전에 봤던 최하 서열의 마왕 리센츠 정도가 되는 거겠지.

뭐 이쪽은 마왕 중에 결번이 생겨서 급하게 끼워 맞추기로 들어간 거라 자금이 부족한 건 당연하려나.

그래서 마왕 리센츠가 열심히 무역으로 앵벌이를 뛰는 거였다.

밀수를 하지 않으면 당장 마왕성조차 유지가 되지 않을 테니까.

덕분에 우리도 그쪽으로 라인을 잘 뚫어놨고.

조만간 그 덕을 볼 예정이다.

그때 마왕 케만이 조금은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마왕 하킨을 쳐다보며 말했다.

“흠. 내가 대천사를 잡아서 영향력이 올라가면 네게 좋을 게 하나도 없을 텐데?”

이건 마왕 케만의 말이 맞았다.

당장 둘의 영향력이 엇비슷하다고 가정했을 때.

다른 한쪽이 갑자기 확 커진다면.

분명히 문제가 생길 터.

그런데 마왕 하킨은 그런 마왕 케만의 독주를 오히려 도와주는 셈이었다.

두 마왕의 관계를 고려해본다면 이건 한참 잘못된 일이겠지.

마왕 하킨도 마왕 케만을 쳐다보더니 그런 것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답했다.

“어차피 내 목적은 대천사를 잡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이미 소기의 목적은 대부분 달성했고. 더 욕심낼 생각은 없어.”

그러면서 마왕 하킨이 마왕 헤르게니아 쪽을 쳐다보자 마왕 케만도 수긍하는 눈치를 보였다.

마왕 하킨의 목적은 애초에 마왕 헤르게니아를 찾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마왕 헤르게니아의 능력을 고려해보면.

그녀를 찾아내 손을 잡은 마왕 하킨의 영향력도 그렇게 낮다고 볼 순 없을 터.

여기에 에센시아 제국 북부를 손에 넣었고.

만약 이대로 작전이 잘 될 시에는 에센시아 제국 전역을 손에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욕심을 낸다고 너와 위치를 바꿨다가는 4군단이 그대로 노출된다.”

그 순간 마왕 케만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 하킨의 말대로 6군단과 마왕 케만의 4군단이 서로 역할을 바꾸게 되면.

4군단이 에센시아 제국 수도로 향하게 될 테고.

그럼 천사군과 에센시아 제국군은 4군단이 북부로 넘어왔다는 사실을 바로 알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천사군이 헤르마늄 광산을 욕심낸다고 단독으로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게 된다.

당장 마왕군 군단 두 개가 코앞에 와 있는데 자기들 좋겠다고 병력을 나누는 건.

목을 내놓고 죽여 달라는 뜻이나 다름없으니까.

거기다 다른 문제가 또 생기게 될 것이다.

바로 추가 천사군을 에센시아 제국으로 불러들이게 될 테니까.

마왕군에 비해 대천사의 숫자가 부족하니 본진에 지원을 요청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대천사 몇의 목을 날릴 수만 있다면 앞으로 마성대전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게 될 텐데. 내가 욕심 좀 더 내보겠다고 큰일을 그르칠 생각은 없다.”

이건 어떻게 보면 마왕 하킨이 마왕 케만에게 먹잇감을 통 크게 양보한 것이나 다름없는 그림이었다.

마왕 케만도 머리가 돌로 되어 있지 않는 이상 이 상황을 바로 이해했을 테고.

“흠. 따로 원하는 게 있나?”

원래라면 마왕 케만이 마왕 하킨에게 원하는 걸 물어볼 일 자체가 없을 것이다.

애초에 둘의 관계를 고려해보면 이런 질문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라.

하지만 지금은 마왕 하킨이 상당히 양보를 많이 한 셈이라.

“호오? 네가?”

“빚지고는 못 살지. 그것도 네 녀석에게는 말이야. 앞으로 이 일을 가지고 얼마나 생색을 낼지 생각하면. 그냥 하나 들어주고 끝내는 게 낫지 않겠나?”

마왕 케만은 이번 작전으로 생기는 빚을 남겨놓고 싶지 않은 듯 했다.

뭐 이건 마왕 하킨에게도 딱히 나쁜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마왕 하킨이 대천사들을 상대하고 제거할 수 있는 포지션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은 그에게 있어 최고의 상황이라 볼 수 있었다.

“으음. 그렇다면. 마왕 헤르게니아의 거처를 그쪽 진영에서 절대 개입하지 않겠다는 확답을 주었으면 좋겠군.”

순간 마왕 케만의 몸이 움찔했다.

이건 아마도 마왕 케만의 세력 쪽에서 마왕 헤르게니아와 관련해 미리 약속해놓은 뭔가가 있는 듯 보였고.

그걸 지금 마왕 하킨이 직접 지적한 셈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접촉하지 말라고.

당연히 마왕 케만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꽤 아픈 곳을 찌르는 재주가 있군.”

“거절인가?”

잠시 고민하더니 마왕 케만이 물어보았다.

“단순히 거처면 되는 건가?”

“만약 마왕 헤르게니아가 직접 가겠다고 하면 모르겠지만. 강제로 너희 진영으로 데리고 갈 생각은 버리라는 거다.”

“흠. 어차피 우리 말고 다른 진영에서도 그녀를 데리고 가려고 눈이 벌게져 있을 텐데?”

“그건 그때 이쪽에서 알아서 하도록 하지.”

“음. 이거 돌아가면 어지간히 귀찮게 굴겠군.”

“이번 일이 끝나고 네 영향력이 커지면. 그 녀석과도 해볼 만하지 않나?”

순간 마왕 케만의 눈빛이 진득하게 번뜩였다.

“확실히 마계 회의에서 입김이 높아지긴 하겠지. 그 녀석의 발언을 무시할 정도로.”

“그럼 된 건가?”

“흠. 좋다. 그녀의 건은 내 선에서 알아서 막도록 하겠다. 하지만 그가 직접 나서겠다고 하면 그건 못 막아줘.”

“여기까지 오면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절대 올 수 없으니까.”

“그래. 총사령관이 자리를 비우면 문제가 심각해지긴 하겠지.”

그들이 말하는 걸 들어보니.

아마도 마계 서열 1위인 그 녀석을 말하는 듯 했다.

현재 마계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마왕 데칸.

내가 아는 마왕 서열 1위와는 완전히 다른 녀석이긴 한데.

그런데 대체 언제 이 마왕 녀석이 죽는 거지?

마왕군이 과거 성마대전에서 이기는 건 확실하지만.

그 자리에 이 마왕 데칸은 함께 하지 못 한다.

중간에 죽는 게 확실하다면.

언제 죽는지 아는 것도 중요할 텐데.

아쉽게도 이 시기는 따로 서술되어 있지 않으니까.

혹시나 싶어서 마왕 하킨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마왕 데칸에게 경쟁자가 있습니까?”

내 물음에 마왕 하킨이나 마왕 케만이나 모두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마치 못 들을 소리를 들은 것 마냥.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도처에 있는 마왕들이 전부 다 경쟁자다.”

“당장 조금만 흔들려고 목을 틀어쥐고 그 자리에 오르려는 녀석들이 즐비해.”

둘 다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걸 듣고는 조금 질문을 바꾸었다.

“직접적으로 목을 칠 수 있을 만한 마왕은요? 가령 예를 들어 마왕 케만. 당신은 그를 죽일 수 있습니까?”

그 순간.

마왕 케만이 확 짜증을 냈지만 차마 대답을 하지 못 했다.

오히려 옆에 있던 마왕 하킨이 대신 말해주었다.

“꽤 곤란한 질문을 하는군. 물론 마왕 케만도 충분히 자격은 있지만. 아쉽게도 나나 그나 무력은 한참 밀린다.”

아까 금력이니 어쩌니 했지만.

결국 마왕 서열은 무력.

그만큼 서열 1위는 강하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조금만 다른 걸 물어볼까?

“혹시 마왕 아이셔스는요?”

현재 챠밍이 가진 마왕의 스태프가 바로 마왕 아이셔스의 스태프였다.

혹시라도 마왕 아이셔스를 알고 있다면 그녀의 스태프도 바로 알아볼 수 있을 터.

내 물음에 마왕 하킨이나 마왕 케만 둘 다 의외라는 듯이 내쪽을 빤히 쳐다봤다.

조금은 의심스럽다는 눈치도 함께.

“네가 그녀를 어떻게 알지?”

“너…… 어디서 들은 거냐?”

설마 이거 물어보면 안 되는 거였나?

과거 성마대전 시대에 마왕 아이셔스가 서열 2위라고 해서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건데.

저 둘의 반응이 묘하게 갈라진다.

이거 잘못 짚은 건가?

옆에서 듣고 있던 재중이 형도 같은 생각인지 표정을 살짝 구겼다.

<불멸> 저 반응들. 뭔가 이상하지?

<주호> 네. 그냥 서열 2위의 이름을 말했을 뿐인데.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오네요.

마치 무언가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걸 말했다는 반응이라.

그때 마왕 헤르게니아가 중간에 나섰다.

“내가 말해줬어. 왜? 문제 있어?”

그러자 마왕 하킨과 마왕 케만 모두 동시에 납득한다는 눈치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마왕 헤르게니아가 내게 마왕 아이셔스에 대해서 따로 언급한 적은 없었다.

챠밍이 가진 마왕 아이셔스의 스태프를 보더니 좀 놀랐을 뿐.

딱 그 정도의 반응이었는데.

지금 보니 그보다는 많은 걸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저 마왕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마왕 아이셔스는 최소 몇백 년 전의 마왕일 터.

마왕 헤르게니아가 알고 있는 마왕들 중 하나니까.

거기다 그 긴 시간 계속해서 서열 2위를 지켜왔다는 건.

그만큼 이 마왕 아이셔스가 강력하다는 뜻일 테다.

뭔가 다른 것도 있는 듯 한데.

이건 나중에 따로 물어봐야 하려나.

그때 잠시 생각나는 게 있어서 그들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마계에 바이카르라는 마왕도 있습니까?”

미래의 마계 서열 1위.

과연 이들은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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