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7화. 마왕을 낚는 방법 (3)
과연 마왕 케만이 내 제안을 온전히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였다.
애초에 이 마왕이라는 녀석들이 제멋대로 일 처리를 한다는 건 지나가던 애들도 아는 이야기라.
아무리 옆에서 좋다고 해도 마왕 본인이 아니라고 하면 그만.
무엇보다 이번 일을 자신의 군단을 전부 이끌고 움직여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을 고작 처음 보는 인간의 말을 듣고 결정한다?
물론 내가 마왕 헤르게니아의 대리로 나서서 조언하는 입장이라 어느 정도는 영향을 주긴 하겠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마왕 케만을 움직이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마왕 케만 역시도 이번 일을 허락한다면 자신의 명운을 걸고 움직여야 하니까.
그래서 마왕 케만 녀석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곳곳에 집어넣었다.
헤르마늄 광산을 캐지 못하게 막는다던가.
대천사와의 단독 싸움이라던가.
이 정도의 스페셜 패키지면 아무리 자기 마음대로 노는 마왕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먹히지 않을까.
4군단을 통째로 움직여달라는 내 요구에 마왕 케만이 잠시 침묵을 지켰다.
“흠…….”
가만히 듣고 있던 재중이 형이 마왕 케만 쪽을 보면서 말했다.
<불멸> 꽤 고민되는 모양인데?
<주호> 네. 이건 아무리 마왕이라 하더라도 쉽게 움직일만한 상황은 아니니까요.
<불멸> 그래. 자신의 군단을 한꺼번에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아직은 부담일 거다. 그게 실패하든 성공하든.
만약에 적들이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라면 마왕 케만도 한 치의 고민도 없이 허락했겠지만.
이번 작전으로 마왕 케만의 군단 역시 적지 않은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결코 편안하게 결정할 만한 일은 아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마왕 케만이 곧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대천사들이 확실히 에센시아 제국군과 떨어지나?”
이건 아마도 내게 확답을 원하는 물음일 것이다.
아니.
자기 자신에게 확신을 심어주고 싶어 하는 것일 수도.
뭐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마왕 케만의 흥미를 충분히 이끌어냈다는 것만 해도 충분하다.
지금은 적어도 그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고민하는 중이니까.
그만큼 마왕 케만의 마음이 이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쪽으로 기울었다는 뜻이었다.
여기서는 그냥 툭 한마디를 던져주면 되지 않을까.
“네. 만약 천사군과 에센시아 제국군을 포함한 연합군이 갈라서지 않는다면…….”
“그러면?”
다음 말을 기다리던 마왕 케만의 진지한 눈빛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뻔 했다.
“뭐 그때는 마음대로 하시죠. 전혀 승산이 없는 게임에 패를 돌리라고 할 만큼 저 나쁜 놈 아닙니다.”
마왕 케만이 발을 뺄만한 구실도 충분히 만들어 준다.
만약 대놓고 계속 마왕 케만이 내 의견대로 따라오도록 강요한다면.
마왕 특유의 성질머리상 반발을 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이렇게 빠져나갈 만한 여지를 준다면.
이제부터 마왕 케만은 자신의 선택이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내 의견을 무작정 따르는 게 아니라.
“흠. 그러니까 천사군과 연합군이 갈라서는 것을 지켜보고 움직여라, 이거군?”
“네. 그래도 늦지 않을 테니까요.”
사실 타이밍은 그다지 이 일에는 상관없었다.
마왕 케만이 움직이냐 않는냐 그 사실 자체가 중요하지.
내가 한 발 양보하는 기색을 보이자 마왕 케만도 마음에 들었는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적어도 함정이라 생각하진 않아도 되겠군.”
그러면서 마왕 케만이 마왕 하킨을 슬쩍 쳐다보았다.
다소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라고 해야 하나?
<불멸> 흠. 저 녀석. 하킨을 계속 신경 쓰고 있었나 본데?
<주호> 네. 아무래도 저와 하킨이 짜고 치는 패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봐요.
그런데 내가 마왕 케만이 선택을 할 수 있게 여지를 열어주자 그런 의심을 상당히 지운 듯 했다.
하지만 완전히 그 의심을 걷었다고는 보기 힘들었다.
조금만 이상한 구석만 보이면 마왕 케만은 언제든지 이 판을 엎고 자신 마음대로 움직일 확률이 높았다.
뭐 그런 상황이 온다면 우리도 아예 발을 빼버리면 되는 거니까 크게 문제는 없다.
결국 마왕 케만이 마왕 하킨을 쳐다보며 한마디 했다.
“장난질 치는 거면 미리 말해라. 그 전에 목을 날려줄 테니.”
도발기 가득한 마왕 케만의 발언에 마왕 하킨이 나와 마왕 헤르게니아를 잠시 쳐다봤다가 이내 한숨을 쉬었다.
아마도 마왕 헤르게니아를 봐서 많이 참는다는 눈치랄까.
“휴.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네 목을 먼저 분질러놓고 시작하는 건데…….”
“크크.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쯧. 됐다. 큰일을 앞두고 엉뚱한 데서 힘 빼기는 싫군.”
“싱겁기는.”
2차전이 일어나나 했는데 마왕 하킨이 바로 발을 빼버리자 마왕 케만도 의외라는 표정으로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만큼 마왕 하킨도 이 일에 진심이라는 걸 알았으려나.
곧 김이 빠진다는 눈치로 네게 물었다.
“좋다. 내가 해줄 일은 뭐가 있지?”
“음. 딱히 중간에 할 일은 없을 겁니다. 적어도 저쪽에서 먼저 공격해오지 않는 이상은 이쪽도 굳이 나서 대응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그러다가 생각나는 게 있어서 마왕 케만에게 신신당부하듯 말했다.
“아. 절대 4군단의 전력을 밖으로 내보이면 안 됩니다.”
“음? 그건 왜지?”
“일단은 우리 쪽의 히든카드라서요. 아직은 노출되면 안 됩니다.”
“히든카드라…… 그건 마음에 드는군.”
“네. 대천사들은 아직 에센시아 북부에 주둔하고 있는 마왕군 병력이 6군단만 있는 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거기 맞춰서 대천사들과 천사군을 보냈을 테고요.”
실제로 이쪽의 마왕들의 숫자에 맞춰서 대천사를 파견했다.
정확하게 6군단의 마왕들을 겨냥한 일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맞춤식으로 숫자를 맞출 이유가 없었다.
“천사군에서는 같은 수의 대천사들만 보내도 에센시아 제국군을 비롯한 연합군과 손을 잡으면 충분히 6군단을 밀어낼 수 있다는 의도가 있었을 겁니다.”
“확실히 그렇겠지. 그쪽 역시 우리만큼이나 전력 운용이 빠듯할 테니까.”
마치 천사군을 잘 안다는 듯 마왕 케만이 말하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4군단의 전력 은폐가 중요해지는 겁니다.”
“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4군단이 튀어나오면 무조건 당하겠군.”
“네. 6군단은 미리 말했다시피 에센시아 제국군을 치러 수도로 향할 테니까요.”
“그러면 천사군 녀석들은 별다른 추가 위협은 없겠다고 여기겠군.”
거기까지 말이 이어지자 마왕 케만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꺼냈다.
“그렇게 경계가 풀어진 적들이라면 어떻습니까? 절대 쳐들어올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면요.”
“기습하면 꽤 볼만하겠군.”
이젠 마왕 케만도 내 계획이 완전히 마음에 드는지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처음 잡는 대천사의 목은 자네에게 넘겨주도록 하지.”
“그래도 되겠습니까?”
마왕의 경우 시신은 상당히 가치가 높다.
현존하는 존재들 중에 가장 강력한 녀석들 중에 하나니까.
네임드 몬스터보다 값어치가 월등히 높다.
그런데 이건 마왕에게만 해당 되는 이야기는 아닐 터다.
동급인 대천사들 역시도 마찬가지.
대천사들의 값어치도 결코 낮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건 유저들이 직접 잡았을 때의 이야기겠지만.
드랍템이라던가 뭔가를 건지려면 아무래도 그쪽이 먹을 게 많다.
뭐 그렇다고 대천사의 시체, 그 자체가 값어치가 없냐고 하면 또 그건 아니지.
그들의 신체만 해도 충분히 돈이 된다.
아이템화 시킬 방법도 있을 테니까.
“여러 마리 있는데 하나 정도야. 네 작전이 정말 성공한다면 대천사들을 대거 죽일 수도 있겠지.”
마치 이미 대천사와의 전쟁에 승리했다는 듯 말하는 마왕 케만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 감정이 시시각각 빠르게 변하는 녀석도 보기 힘드니까.
아까까지는 죽이니 살리니 하던 놈이 지금은 더없이 친한 친우가 된 것처럼 살랑거린다.
그때 옆에서 마왕 하킨이 한마디 거들었다.
“대천사의 목은 일종의 훈장이다.”
“훈장……?”
“그래. 만약 마왕이 아닌 자가 대천사의 목을 손에 쥐게 된다면…….”
거기까지 말을 듣는 순간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설마 마왕 후보라던가……?”
“흠. 이미 알고 있었나?”
혹시 마왕 헤르게니아가 귀띔해줬나 싶어서 마왕 하킨이 그쪽을 쳐다보자 그녀는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가르쳐준 적 없어. 그리고 이런 쪽으로 비상하게 머리가 돌아가는 애니까.”
“흠. 그렇습니까.”
그러더니 내게 다시 말을 해주었다.
“대천사의 목은 그 자체로 훈장이나 마찬가지다. 그게 마왕이 아닌 자라면 마왕의 자리에 오를만한 자격을 충분히 보여 주는 셈이지.”
“대천사를 잡을만한 존재니까. 마왕에도 오를 수 있다 이겁니까?”
“맞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수여받은 경우라면…….”
“스스로 잡은 것보다 조금 자격이 부족하지만 마왕에게 인정을 받았다고 여겨질 수 있겠군요.”
내 결론에 마왕 하킨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케만 저 녀석이 꽤 네 편의를 봐준다는 뜻이겠지.”
“흠…….”
분명 마왕 케만과의 친밀도는 그다지 높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지금 보여 주는 호의는 그 이상이다.
이건 한 번쯤 의심해볼 만한 상황인데?
아무런 대가 없이 주는 호의는…….
대부분은 함정일 확률이 높으니까.
하지만 마왕 케만은 다르게 생각하는 듯 했다.
“네 녀석의 작전으로 대천사를 넷이나 잡을 수 있다면…… 나 역시 얻는 게 많다는 것만 말해두도록 하지.”
그 말에 슬쩍 마왕 하킨을 보며 설명을 요구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해주었다.
“솔직히 대천사는 한 녀석도 잡기가 힘든 게 사실이니까. 그런데 넷을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면. 마계에서 저 녀석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올라갈 거다.”
“어떤 식으로 올라가죠?”
이미 마왕 케만의 마계 서열이 4위다.
그 이상으로 올라가는 건 더 높은 서열의 마왕 녀석을 꺾는 방법밖에 없을 텐데.
지금 같은 성마대전 상황에서 같은 상위 마왕끼리 치고받는다?
이건 적들에게도 기회를 주는 거나 마찬가지라.
어쩌면 대천사들에게 비웃음을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적을 앞에 두고 지들끼리 싸운다고.
아니나 다를까.
마왕 하킨 역시도 같은 말을 했다.
“지금 같은 시기에 서열 좀 올려보겠다고 마왕끼리 싸우는 건 미련한 짓이지. 잘못하다가 양쪽 모두 한꺼번에 쓰러지기라도 하면 대참사고.”
그 말을 하면서 마왕 케만을 빤히 쳐다보는 걸 보면 지금 자기 상황을 그대로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서열 6위가 서열 4위와 서열 싸움하겠다고 이 시점에 맞붙는 모양새라.
마왕 하킨이 마왕 케만에게 짜증 내면서도 직접 무력행사를 하지 않는 건.
이런 이유에 기인했을 거다.
그걸 아는 마왕 케만도 겉으로만 긁는 듯 했고.
만약 성마대전 때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둘 다 칼을 빼 들고 서로의 목을 치려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서열을 높일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흠. 그 방법이 대천사를 잡는 거군요.”
내 말에 하킨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열이 낮다고 마계 내 영향력이 낮다는 건 아니니까. 대천사를 여럿 잡았다는 전적만으로도 아래에 수많은 추종자가 생기는 것뿐만 아니라. 마왕성에 줄을 대려는 녀석들이 발에 치일 정도로 많아질 거다.”
그 순간 마왕 하킨의 숨은 의도가 이해되었다.
결국 모든 것은 하나로 모인다.
“돈으로 서열을 만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