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6화 마왕을 낚는 방법 (2)
이 마왕들은 에센시아 제국에 있는 헤르마늄 광산의 정확한 규모에 대해 알 수 없었다.
우리가 베인 녀석을 통해 푼 정보가 있어서 매장량이 좀 많겠거니 하겠지만.
그게 대륙에서 가장 큰 헤르마늄 광산일 거라고 예상하진 못했을 것이다.
직접 가서 파보지 않는 이상에야.
무엇보다 에센시아 제국에서 이곳 헤르마늄 광산에 대한 정보를 완전히 막아두었기에 에센시아 제국 북부로 넘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들은 알아내고 싶어도 방법도 없지.
거기다 마왕 하킨은 애초에 헤르마늄 광산을 찾은 목적이 마왕 헤르게니아에 있었으니.
그의 입장에서는 마왕 헤르게니아를 찾고 나면 헤르마늄 광산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을 것이다.
마왕 케만은 말할 것도 없고.
아니지.
어쩌면 조금은 관심이 있었을 수도 있나?
그가 에센시아 제국 북부에 온 이유 중에 하나는 이곳 북부를 사수해서 마왕군의 군세를 유지하는 거니까.
헤르마늄 광산의 존재는 그런 마왕 케만의 목적에 확실히 대치된다.
그 규모가 작든 크든 상관없이.
에센시아 제국에서 헤르마늄 광산을 아무 방해 없이 돌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부담될 터.
그런데 그 규모가 대륙에서 가장 크다는 이야기는.
마왕 케만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스토리였다.
그만큼 천사군과 제국군의 힘을 키워줄 수 있다는 뜻이니까.
만약 정말 이 헤르마늄 광산이 무사히 그들에게 들어갔다면.
아마 지금쯤 마왕군은 그대로 짐을 싸야 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도 정상적인 상황일 때의 가정이지만.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절대 아니었다.
두 마왕을 쳐다보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보물이 하나만 있는데. 그 보물을 원하는 사람이 둘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천사군과 제국군을 빗대서 돌려 말한 거지만.
이 두 마왕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먼저 마왕 케만이 자신만만한 기세로 답을 말했다.
“싸워서 쟁취해야겠군. 내 것을 다른 녀석에게 줄 필요는 없다.”
맞다.
이게 일반적으로 마왕이 할 만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마왕 하킨은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흠. 하지만 꼭 천사군과 에센시아 제국군이 싸운다는 보장이 있나? 서로 양보를 한다면 얼마든지 나눠 가질 수 있을 텐데? 대륙 최대의 매장량이라면 둘이서 충분히 나눌 수 있다.”
이 대답도 일견 맞는 소리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녀석들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하고도 남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마왕 케만은 좀 더 마왕스러웠고.
마왕 하킨은 조금 더 유연한.
오히려 중립에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
양보라는 미덕은 마왕에게는 그다지 어울리는 느낌은 아니지만.
그 말을 들은 마왕 케만이 한심스럽다는 눈초리로 마왕 하킨을 쳐다보며 혀를 찼다.
“쯧. 마왕이 되어서 한다는 소리가…….”
“현실적인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아마 천사군이나 제국군이라면 이런 방안을 냈을 테니까.”
“그런 약한 소리나 하니까 방어군으로 밀려나서 이런 곳까지 온 거다.”
“이 새끼가……!”
아픈 곳을 찔렀는지 마왕 하킨이 발끈하자 그제야 마음에 든다는 듯 마왕 케만이 기세를 끌어올렸다.
“왜? 오랜만에 한판 뜰까?”
“그래. 이번 기회에 그 못생긴 면상을 아주 갈아주마.”
“크크. 그럼 난 내 목을 분리시켜 줘야겠군.”
확실히 둘 다 상극이네.
성격부터 시작해서 사고방식까지 어느 하나 어울리는 구석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 같은 자리에 두면 시도 때도 없이 싸울 것 같아서 일단 손을 들어서 둘을 말렸다.
“이야기는 마저 들어보시고 싸우셔도 늦지 않습니다만.”
중간에 나서자 둘 다 시선이 내게 몰렸다.
“흠. 한참 재밌었는데 말이지.”
마왕 케만이 기세를 거두면서 내 말을 듣는 척하자 마왕 하킨도 마지못해 힘을 빼고 나를 쳐다보며 궁금한지 물어보았다.
“그래서 넌 저 케만 녀석의 의견이 맞다고 생각하는 거냐?”
“음. 확률로 따지자면. 네. 100 퍼센트에 가깝겠네요.”
어지간해서는 1 퍼센트 정도는 남겨둘 만도 하지만.
이미 과거 성마대전 시대의 전례가 있기에.
천사군은 절대 에센시아 제국군에 협조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우리가 본 에센시아 제국 황제는.
아주 욕심이 넘치는 녀석이지.
만약 그런 성향이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천사들에게 헤르마늄 광산을 공유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황제는 그 광산의 존재를 꽁꽁 감춰버렸으니까.
“그만큼 확신한다는 거군.”
“절대 둘 다 양보 안 할 겁니다.”
내 확신 어린 대답에 마왕 케만이 마음에 든다는 듯 말했다.
“크크. 이 녀석보다 더 마왕 같은 대답이군.”
《 마왕 케만과의 친밀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
끝까지 속을 긁는 걸 보면 아마 원래 성격이 저런 듯 했다.
아마 언제 한 번 터지긴 하려나?
물론 그게 지금이어서는 안 된다.
아직 해줘야 할 일이 많으니까.
잠시 화제를 돌렸다.
바로 마왕 케만을 보면서 물었다.
“마성대전의 최전방에 위치한 광산들은 이미 보합 상태죠?”
그러자 마왕 케만이 잠시 생각해보는 듯 하다가 이내 답을 내주었다.
“우리가 우세하다만. 천사군의 거센 저항을 뚫기 쉽지 않더군.”
이게 마왕으로써 대답해 줄 수 있는 최선이랄까.
애써 마왕군이 고전하고 있다는 말은 하지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건 인간들의 연합군 때문 아닙니까? 단순히 천사군만으로는 당신들을 막아낼 수 없을 테니까요.”
과거 성마대전에서는 마왕군이 천사군과 연합군을 이겨내고 최종적으로 대륙을 차지하게 된다.
뭐 단순히 무력만으로 이긴 건 아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마왕군이 이기는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현재의 성마대전은 그와는 판이하게 다른 결과가 나오는 중이었다.
바로 유저들의 존재.
인간의 연합군에 대규모의 유저들이 포진하게 되면서 세력비가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다.
처음에야 유저들의 존재 따위는 양측에서 신경도 쓰지 않았겠지만.
유저들이 점점 레벨이 오르고 신규 장비를 획득하며 힘을 기르자 그들의 영향력이 상상 이상으로 커지게 되었다.
이게 당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애초에 유저들은 성마대전의 역사를 꽤 많이 습득한 상태로 진행하고 있으니까.
뭐 그들 사이에서도 그 차이는 있다고는 해도.
어쨌든 그들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런 유저들이 각 왕국에 들어가 성마대전에 참전해 있으니 전세가 기울어지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아마 말을 하지 않았겠지만.
마왕군이 상당히 밀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와중에 마왕 하킨이 에센시아 제국 북부로 진출한 소식은 그들에게도 꽤나 고무적인 일이 아니었을까.
반대로 마왕 케만까지 보내서 이 새로 생긴 라인에 신경 쓴다는 건 그만큼 마왕군이 수세에 몰렸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곧 마왕 케만이 다소 불만이 있는 눈치로 내게 물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딱히 의도랄 건 없습니다. 다만 최전방의 광산은 이미 포화상태라고 말씀드린 거죠.”
서로 밀고 힘들어 밀어봐야 겨우 작은 광산 한두 개의 이득을 볼 뿐이다.
어떻게 보면 팽팽한 전선에서 큰 차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들인 품에 비해 그다지 먹을 게 없다는 뜻도 된다.
무엇보다 서로 차지해봐야 곧 전쟁터가 되다 보니 안정적으로 광석을 캐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거다.
그게 헤르마늄 광산이 되었든.
베르탈륨 광산이 되었든 말이지.
광산을 유지하는 건 어렵지만.
무너뜨리는 건 그 난이도가 유지하는 것보다는 몇 배는 쉬울 터다.
그때 마왕 하킨이 내게 물었다.
“그래서 천사군이 이곳 에센시아 제국의 헤르마늄 광산에 심혈을 기울일 거다 이거군.”
“네. 그렇죠. 조금만 신경 쓰면 대규모의 매장량을 가진 광산을 손쉽게 꿀꺽할 수 있으니까요.”
“그 대상이 동맹인 에센시아 제국군이라 해도 말이지.”
“에센시아 제국 황제에게 조금 아쉬운 소리를 듣더라도. 얻는 게 훨씬 크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게임 아니겠습니까.”
최전방의 마왕군을 상대로 싸우는 것보다야.
에센시아 제국을 좀 들쑤시는 편이 훨씬 난이도가 낮다.
내 말에 마왕 하킨도 납득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들인 노력에 비해 얻는 게 크겠군. 그리고 최상품의 헤르마늄 광석이라면. 대천사들도 침을 질질 흘릴 테니까.”
역시 마왕 하킨도 마왕 중 하나라 그런지 대천사들의 욕심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마왕 케만 역시 마왕 하킨의 의견에 동감한다는 듯 말했다.
“그 재수 없는 자식들이라면 충분히 하고 남을 생각이다. 동맹의 등을 치는 정도야 그 녀석들에겐 전혀 어렵지 않지.”
모처럼 둘의 의견이 맞아 떨어지긴 했는데.
의견이 맞은 것조차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서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어지간히 안 맞긴 하네.
곧 마왕 하킨이 다시 내게 물어보았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겠지?”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현재 헤르마늄 광산에 에센시아 제국군이 대거 투입된 건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흠. 확실히 한 번 건드려봤더니 벌집 쑤시듯 제국군이 몰려오더군.”
마왕 하킨이 마왕 헤르게니아를 찾기 위해 그 언데드 마왕을 헤르마늄 광산으로 보낸 결과.
헤르마늄 광산은 폐쇄되고.
이후 다시 헤르마늄 광산을 마왕군에게서 탈환하기 위해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대규모의 제국군을 투입했다.
그것도 영웅들이 상당수 포함된 병력을.
이건 반드시 헤르마늄 광산을 되찾겠다는 황제의 의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준 셈이었다.
물론 우리의 연락을 받은 마왕 하킨이 그 언데드 마왕과 마왕군을 바로 빼돌려서 무력 충돌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래서인지 지금쯤 에센시아 제국군도 어리둥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터.
기껏 있는 병력 없는 병력 다 빼서 탈환하러 갔는데.
이미 헤르마늄 광산에 마왕군 머리카락도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마왕군이 무슨 의도인가 싶어서 더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더니 마왕 하킨이 내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네 덕분에 위험한 상황은 피했다.”
“별말씀을.”
만약 전군 빠르게 철수하라는 내 의견을 무시했다면.
지금쯤 아무리 언데드 마왕이 포함된 마왕군이라고 하더라도 몰살되었을 수도 있었다.
에센시아 제국군도 진심으로 최상의 병력을 보낸 거라.
“아마 에센시아 제국군은 단순히 헤르마늄 광산 폐쇄를 위해서 마왕군이 왔다 갔다고 생각할 겁니다.”
이것 말고는 들어맞는 답이 없을 테니까.
실컷 헤르마늄 광산을 차지하고는 점거하지도 않고 빠질만한 이유로는 말이지.
“다른 말로는. 이제 마왕군이 다시 침략하지 않을 거라는 예상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헤르마늄 광산에서 철수한 마왕군은 빠르게 북부로 복귀했으니까.
그 흔적을 정찰로 알아낸 녀석들도 상당수 있을 거다.
이번엔 마왕 케만이 내게 물었다.
“흠. 그럼 우리가 허를 찌르면 되는 건가? 마왕군이 철수했다고 여긴다면 다시 병력을 빼지 않겠나.”
하지만 난 바로 고개를 저었다.
일견 마왕 케만의 의견은 타당해 보인다.
현재 그가 끌고 온 새 마왕군 군단 덕분에 우리의 병력이 훨씬 강력하니까.
두 마왕군 군단의 무력으로 밀고자 하면.
얼마든지 밀 수 있다.
“아뇨. 우리는 당장 진군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서 미소와 함께 말했다.
“곧 천사군이 우리 역할을 대신해 줄 테니까요.”
내 말에 마왕 케만이 이제야 알겠다는 듯 눈빛을 번뜩였다.
“천사군과 제국군이 싸우게 두자는 거군.”
“네. 굳이 나서서 우리가 공동의 적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가만히 있어 주는 게 최선이죠.”
거기다 마왕 케만의 군단은 철저히 숨겨야 하니까.
곧 마왕 하킨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천사군과 제국군이 틀어지면. 서로의 병력이 완전히 분리될 겁니다. 그때. 6군단은 에센시아 제국 수도를 칩니다.”
바로 마왕 케만에게도 작전을 전달했다.
“그럼 마왕 케만은. 4군단을 끌고. 앞으로 천사군이 주둔하고 있을 헤르마늄 광산으로 가십시오.”
그리고 웃으면서 장담하듯 말했다.
“앞서 약속했듯이. 대천사의 목을 직접 날려버릴 기회를 제가 만들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