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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94화 (1,394/1,404)

#1393화 마계 장인 (9)

얼마나 오래 4군단의 존재를 숨길 수 있을 진 장담할 순 없지만.

적어도 그들을 활용할 수 있는 시점까지는 최대한 숨겨놔야 한다.

그리고 이건 마왕 케만이 우리에게 협조를 해줘야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고.

괜히 마왕 케만이 저 잘났다고 마음대로 에센시아 제국을 들쑤시고 다니면 될 일도 되지 않는다.

마왕 하킨을 쳐다보며 물었다.

“혹시 이대로 숨죽이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마왕 케만이 그 말을 들을 것 같습니까?”

내 물음에 마왕 하킨이 잠시 인상을 찡그렸다.

으음.

어려운 질문이었나.

전에 잠깐 봤지만.

두 마왕 간의 사이가 그렇게까지 좋다고 보긴 힘들었다.

아니.

오히려 서로 안 잡아먹으면 다행일 지도.

그나마 다행인 일은 마왕 케만의 목적이 단순히 에센시아 제국에서 깽판치기 위해 온 것만은 아니라는 점 정도.

만약 그런 목적으로 왔었다면 이미 마왕 하킨을 무시하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난장판을 만들어놨을 것이다.

적어도 말이 통하지 않는 녀석은 아니었으니…….

마왕 하킨이 크게 한숨을 쉬더니 내게 말했다.

“일단 최대한 눌러놓도록 하지.”

“아뇨.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통제가 되는 말과 아닌 말의 차이는 앞으로의 전쟁의 승패를 갈라놓을 수도 있어요.”

어떻게 보면 마왕 케만도 내게 있어 하나의 장기판의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런 장기판이 제멋대로 움직이면 답도 안 나온다.

흐음.

뭔가 마왕 케만의 목줄을 틀어쥘 방법이 없으려나?

잠시 생각해 봤지만.

워낙 녀석에 대해 아는 게 없다보니 그렇게까지 좋은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건 재중이 형 하고 따로 이야기 해봐야겠는데.

마왕 하킨이야 어차피 처음부터 협조적인데다가 이 녀석의 최대 약점인 마왕의 무구는 마왕 헤르게니아의 도움이 없으면 절대 불가능한 부분이라.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마왕 하킨은 이쪽의 요구를 최대한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당장 마왕 헤르게니아가 배 째라고 도망이라도 가버리면 마왕 하킨 입장에선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라.

“흠. 아직 시간이 있으니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지.”

“네. 좋은 방법 떠오르면 말해주십시오.”

***

에센시아 제국 북부에서 마왕 하킨과 마왕 케만의 첫 조우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성과를 얻었다.

마왕 케만은 마왕 하킨이 임시로 지정해준 영지에 주둔하면서 일단 급한 불은 껐고.

주변에 정찰을 강화해 쥐새끼도 드나들지 못하도록 통제를 했다.

“마왕 하킨이 일은 잘하네.”

“네. 걸린 게 많으니까요. 이젠 마왕 케만만 얌전히 있어주면 베스트일 텐데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미묘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과연 얌전히 있으려나?”

그러자 나 역시 살짝 쓴웃음을 지으면서 답했다.

“역시 어렵겠죠?”

“당장이야 제국 북부의 상황을 본다고 몸을 사리겠지만. 상황 파악이 끝나면 어떻게 할지 아무도 몰라.”

그러더니 재중이 형이 살짝 말을 흐렸다.

“써먹기에 나쁜 패는 아닌데 말이야.”

마왕 하킨과의 대화를 모두 들었던 터라 재중이 형 역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네. 마왕군 하나의 전력이면 쓰기에 따라서 결과를 확 뒤집어엎을 수도 있겠죠.”

만약 마왕 하킨과 마왕 케만이 반목해서 서로 충돌하면 일단 에센시아 제국 북부에 주둔하는 일은 망한다.

그건 곧 천사군과 연합군에게 북부의 주도권을 전부 내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헤르마늄 광산 역시 날려 먹는 결과를 낳게 될 터.

마왕 케만이 멍청이가 아니라면 이런 악수를 두진 않을 것이다.

반대로 4군단을 제대로 쓸 수만 있다면 천사군과 연합군을 궤멸시키는 상황까지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협조가 잘 된다는 가정하에 말이지.”

“네. 그게 제일 어렵죠.”

레손 후작령에 도착하자마자 전사 형이 찾아왔다.

재중이 형이 전사 형을 보면서 물었다.

“없는 동안 문제 없었어?”

“음. 아주 문제가 없진 않았죠.”

그러더니 전사 형이 살짝 표정을 구기면서 말을 이었다.

“천사군이 에센시아 제국 국경을 넘었다고 합니다.”

“역시 그랬나.”

“알고 있었습니까?”

“어. 마왕 케만이 말해주더라고. 자신들이 에센시아 제국 북부로 빠르게 넘어온 것도 그것과 무관한 것 같지 않고.”

“흐음, 마왕군도 정보가 굉장히 빠르군요. 이쪽에선 이제야 안 사실인데.”

“마왕 하킨 쪽은 느려. 북부에만 있으니 정보가 제대로 돌 리가 있나.”

재중이 형의 말에 전사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우리도 마왕 하킨의 정보망이 아니라 유저들의 정보를 보고 알아낸 겁니다.”

“그래?”

“유저들이 이런 일은 누구보다 빠르지 않습니까. 대륙 곳곳에 포진한 유저들이 다 눈과 귀죠.”

이건 전사 형의 말이 맞았다.

일반적인 NPC들이 소문을 퍼트리는데는 아무래도 그 한계가 명확하니까.

거리나 물리적으로도 그렇고.

하지만 유저들은 다르다.

귓속말이나 게시판의 글 한 방이면 대륙 반대편까지 정보가 바로 전달된다.

아마도 천사군의 진행 경로에 유저들이 있었을 테고.

그 소문을 입을 타고 빠르게 퍼졌을 것이다.

“지금쯤 유저들이 다 알겠네.”

“네. 곧 에센시아 제국에 큰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을 눈치 채고 슬슬 한 다리 걸쳐보려고 다들 움직이고 있습니다. 주변 왕국을 들쑤시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요.”

“그럼 게시판이 난리 났겠군.”

“예. 안 그래도 타란 제국에서 한 번 물을 먹은 터라. 이쪽에서 한 번 만회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더군요.”

“곧 귀찮은 파리 떼들이 몰려들겠네.”

그 말에 전사 형도 피식 웃어버렸다.

“제 죽는 것도 모르고 불 속으로 달려드는 격이죠.”

“그래. 고래 싸움에 새우들이 끼어봐야…….”

두 사람 말대로 이번 에센시아 제국의 방어전은 무려 마왕과 대천사가 직접 맞부딪힐지 모르는 전쟁이다.

원래라면 이 시점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을 전쟁이기도 했고.

과거의 성마대전 시대에선 이런 이벤트 자체가 없었으니까.

그만큼 아무도 결과를 모르는 전쟁이라는 거다.

성마대전의 정보를 미리 알고 있는 유저들 역시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그 사이에 유저들이 끼어들어 봐야 죽기밖에 더 하겠는가.

일단 체급 자체가 다르다.

아직은 유저들이 상대하기에 마왕이나 대천사들은 좀 멀고 먼 존재지.

당장 타란 제국에 고대 마룡 하나만으로도 그 난리를 겪었으면서 학습이 안 되나 싶기도 하고.

“최전선 분위기는 어때?”

이건 나 역시도 알고 싶은 내용이었다.

최전선에 주둔하던 4군단이 빠졌으면 분명히 어떤 식으로든 전선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저만한 규모의 전력이 빠졌음에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

“음. 생각보다 이쪽은 잠잠하더군요.”

“그래?”

“아마 뭔가의 방법을 써서 전력 공백을 메우고 있는 듯 합니다.”

“쉽지 않을 텐데.”

병력이 넘치게 있으면 큰 문제나 표가 나지 않겠지만.

당장 부족하면 바로 삐걱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너 같으면 어떤 식으로 할까?”

재중이 형이 내쪽을 보면서 물어보자 잘 알 수 없겠다는 듯 말했다.

“부족하면 다른 곳에서 채워야 하니…… 방어군 중 하나를 돌려막기 하지 않을까요?”

당장 생각나는 건 이 정도.

이게 딱히 답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베인 녀석이 있었으면 저쪽 정보를 얻기 좀 편했을 텐데요.”

하지만 지금 베인은 에센시아 제국 북부가 아닌 마왕군 본진에 가 있는 중이었다.

베르탈륨 광석 밀수입을 위한 작업을 처리하기 위해서.

결국 이것도 구매자가 넘쳐야 가격이 올라가는 장사라.

물론 마왕 하킨의 6군단을 상대로도 충분히 매출을 올릴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을 바라본다면 마왕군 본진에서 작업을 쳐둬야 한다.

“조만간 돌아오겠지. 마왕군의 주요 정보를 물어서.”

재중이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탈륨 광석 판매를 하려면 필연적으로 마왕군의 머리들과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결국 최종 구매 결정을 하는 건 마왕군의 마왕들일 테니까.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들에게서 주변 상황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터.

애초에 전략 물자를 파는데 주변 정세가 끼지 않으면 말이 안 된다.

그리고 그게 바로 고급 정보가 될 테니 지금 베인 녀석을 불러들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아쉽지만 지금은 아쉬운 대로 해야 하려나.

“마왕 헤르게니아는요? 같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러자 전사 형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말해주었다.

“아, 6군단에 가 있더라. 그 뭐라던가…… 새로 바뀐 마왕군의 무구 체계를 보고 싶다고 했었나?”

“그래요?”

“몇백 년 전하고 장비가 많이 바뀌었다면서. 앞으로 팔아먹으려면 알아야 한다던데?”

“하하…… 그렇군요.”

아무래도 마왕 헤르게니아는 타란 제국의 연구시설에서 만들어낼 무구들에 대해서 정보를 얻으러 간 모양이었다.

자기가 가지고 있던 무구 정보는 꽤 오래전의 것이니까.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마왕 헤르게니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의 무구 장인이 새 무구들을 보고 그냥 넘어갈 리가 있나.

“혹시 다른 사람들은?”

“아, 애들? 걔들도 무구 구경한다면서 헤르게니아를 따라갔다. 어차피 여기 있어 봐야 할 것도 없잖아.”

“그럼 형도 구경하다 왔겠네요.”

마왕 헤르게니아와 같이 갔으면 마왕군 내에서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현재 마왕군에서 마왕 헤르게니아를 감히 건들 수 있는 이는 없으니까.

내 말에 전사 형이 뜨끔한 듯 머리에 손을 올리며 웃음 지었다.

“하하. 마왕군에 생각보다 좋은 방어구가 많더라고.”

“음. 그래도 마왕급 무구는 없죠?”

“어, 다 퀄리티가 좋긴 한데 썩 눈에 차진 않아.”

전사 형은 이미 상위의 무구인 타이탄 플레이트가 있으니 어지간한 무구는 눈에 차지 않을 것이다.

마왕 하킨이나 다른 마왕이 직접 쓰는 무구라면 또 모를까.

굳이 성향을 꼽는다면…….

그 근육파 마왕 녀석이 쓰던 갑주 정도가 딱 어울릴지도.

방어력만은 굉장해 보였으니까.

각 마왕이 쓰는 무구들이 다른 특색이 있다는 걸 고려해보면.

그 마왕의 갑주에도 특수한 능력이 있을 것이다.

“여차하면 마왕이 입고 있던 갑주 뺏어 줄까요?”

“아서라. 전쟁 난다. 아직은 마왕하고 싸우고 싶지 않다고.”

“뭐 좋은 기회가 있겠죠.”

그런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마왕 하킨의 부하로 보이는 녀석이 찾아왔다.

“마왕 하킨 님께서 찾으십니다.”

***

오자마자 찾는다길래 대전을 찾아갔더니 그곳에는 마왕 헤르게니아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입에 불만을 가득 담고서.

“아, 한참 구경 중이었는데.”

“많이 건졌어?”

그러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몇 가지 레시피를 꺼내 보여주었다.

빠르네.

저 레시피가 그녀 손에 있다는 건.

앞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니까.

“수확이 나쁘지 않네.”

“그래도 고급 무구는 없더라.”

“그건 마왕 하킨한테 뜯어내야지. 당장 네 말이라면 껌벅 죽을걸?”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내 말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같이 웃어버렸다.

그때 대전이 열리면서 안으로 들어가자 뜻밖의 인물이 이미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왕 케만…… 또 보는군요.”

아무래도 이 녀석은 자신이 받은 영지에 얌전히 있을 생각은 없는 듯 했다.

벌써부터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걸 보면.

마왕 하킨도 짧게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보니 딱히 방법이 없는 듯 하고.

곧 나와 옆에 있던 마왕 헤르게니아를 본 마왕 케만이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것도 대놓고 자신의 목적을 밝혔다.

“마왕 헤르게니아. 당신을 마왕군 본진으로 데려가기 위해 왔습니다.”

그 말을 들은 마왕 헤르게니아가 곧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나를 보면서 바로 한마디 했다.

“저건 또 뭔 개소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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